〈 3화 〉 1. 피해자의 시점에서
* * *
“이봐, 거기 아가씨. 유저야?”
“그럼 저런 큰 뿔이 머리에 달려있는데, 인간이겠어? 유저지.”
머지않아, 나를 향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시작되었다.
“처음 보는 종족인데, 저건 또 뭔 종류인가?”
“뿔이 달린걸 보니 악마 아닌가?”
“악마라니, 유저들 중에서도 가장 사라져야 하는 놈들 아녀!”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는, 딱 봐도 독실한 신자로 보이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팔을 걷어붙이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뭐라고 지껄이든 최대한 무시로 일관하려 했다. 그러나 덩치 큰 기독교인이 더는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다가오는 것마저 반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왜, 왜 이러세요?”
그는 대답 대신 하차벨을 눌렀다.
“다음 역에서 내려라. 안 좋은 꼴 보기 싫으면.”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저는 그저”
마치 명령하는 듯한 모양새에, 반박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짝
고개가 오른쪽으로 휙 돌아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순간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 입안에서 비릿한 혈향이 느껴지고, 아릿한 통증이 한쪽 뺨에서 올라오기 시작할 때쯤에서야 내가 뺨을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아들이, 웬유저란 놈한테 뻑이 가서 말이야. 들어보니까 악마족이라고 하더든? 너같은 년들이 이렇게 대낮에 돌아다니니까 그런 거 아니야! 악마면 악마답게 밤에나 기어나오라고. 알겠어?”
“...죄송합니다.”
따가운 사람들의 눈초리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 높게 들어올린 중년인의 손바닥을 보곤 나는 얌전히 꼬리를 내렸다. 악마가 아니라 용족인데요, 라고 멋있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폭력을 경험한 입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다음 역은, ㅁㅁ아파트 정문입니다.]
당연하게도, 하차벨이 눌렸으니 버스는 바로 다음 역에서 멈춰섰다. 빨리 내리라는 승객들의 무언의 압박에 결국 나는 스스로 버스에서 하차했다. 내가 내리자마자, 버스 안은 다시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변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하니 나와 유저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 이야기의 주제였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버스는 문을 닫고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떠나갔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지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 처지가 억울했고 서러웠다. 얻어맞은 뺨도 아팠지만, 그들에게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스스로의 나약함이 더 아프고 서럽게 다가왔다.
난 악마가 아니야... 용족이라고. 설령 내가 악마족이라고 해도 초면인 당신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어.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우윽..”
저 인간들 앞에선 눈물을 보이기 싫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참고 있던 울음이 결국 터져나왔다.
누가 듣고 이쪽을 바라볼까봐 숨을 죽이며 눈물만 흘리고 있으니 더더욱 서러웠다.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외출하고 싶지 않았는데.
몇 분 뒤에, 감정을 전부 추스른 뒤 핸드폰을 켰다. 카메라의 셀카모드를 키니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 화면에 비춰졌다. 마스크 끈도 끊어지고, 후드티도 늘어나고... 하여튼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하하...”
역설적이게도, 그런 잔뜩 망가진 스스로의 모습 덕분에 웃음이 나왔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씁쓸함이 담긴 웃음이었지만 덕분에 기분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시궁창에서 조금 나아져봤자 여전히 시궁창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한 거라는 모 연예인의 명언도 있으니까.
눈물에 눌어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뿔을 다시 후드 안쪽으로 숨긴 뒤 버스 노선을 확인했다.
"...머네."
목표지인 시청까지는 열 정거장이 넘게 남아 있었다. 도보로 가기엔 불가능한 거리였다. 별 수 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도, 다음에 온 버스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버스 좌석에 몸을 뉘였다. 목적지인 시청까진 금방이었다.
거대한 시청 건물. 과거엔 거의 찾을 만한 일이 없는 곳이었지만, 유저가 된 지금은 달랐다. 무슨 일을 하려고만 하면 직접 찾아와서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건물이 눈앞에 들어오니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다. 이제부터 저 안에 들어가 유저 복지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서, 직접 그 사람과 마주보고 대화를 하며 용건을 전하고, 서류 작성까지 마쳐야 한다.
사람과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지가 어연 한 달을 훌쩍 넘은 내게는 너무나도 난이도가 높은 미션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해본 대화라곤, 편의점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일방적으로 시비가 붙어, 죄송합니다를 연호한 것밖엔 없었다.
말을 길게 하는 법마저 잊어버릴 지경인데, 이런 내가 시청 직원들 앞에서 제대로 말을 할 수나 있으련지 걱정이었다.
그렇게 잔뜩 고민을 떠안고 한참을 건물 앞에서 서성이다가, 계속 이렇게 투명한 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더 눈에 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드티와 롱패딩을 껴입고, 마스크까지 덮어서 완전무장한 수상한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나라도 시선이 갈 것이다.
결국 이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고 자동문 안으로 들어서니, 히터로 달아오른 따스한 공기가 차게 얼은 피부를 녹여 주었다.
조금 긴장이 완화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저분들은 이쪽 창구를 이용해주세요.]
내가 첫 번째 관문으로 예상했던, 그러니까 일반 시민이 아닌 유저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아예 시청 차원에서 유저들 전용 창구를 만들어 둔 것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문 안쪽인가?’
뭔가 굉장히 단단해보이는 철문이 [유저 전용 창구]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다. 이곳이 맞나 싶어 열어보니, 일단 안쪽에 공무원 한 분이 계시긴 했다.
문제는, 방과 공무원분이 계신 두 공간을 나누는 벽이, 일반적인 유리가 아니라 솨창살이라는 점이었다. 시민들의 민원을 받아주는 창구가 아니라 감옥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아니, 감옥이라기보단 취조실 느낌 같기도 했다.
“유저분이신가요? 들어오시죠.”
“아, 네.”
친절한 목소리의 지시대로 방 안으로 들어서니,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거 방음도 잘 안 될 것 같은데, 바깥쪽 사람들의 관심을 잔뜩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구조에 놀라셨나요?”
“어...조금요.”
“얼마 전에, 미노타우르스 종족으로 변이하신 유저분이 찾아오셨는데 지원금 수령기한이 다 지나 재지급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리를 피워서요. 원래 이 자리를 담당하던 분은 그 거한의 주먹에 일방적으로 맞고 전치 10주 판정을 받으셨죠. 굉장히 친절하신 분이셨는데...그 뒤로 이렇게 쇠창살이 생겼네요.”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내게 그런 불미스러운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지. 친절하게만 들렸던 공무원의 목소리가, 이젠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이 사람도 뉴스 댓글창을 가득 채운 사람들처럼 유저를 나쁘게 보는 걸까.
아니면 내 외모가 마음에 안 드나?
혹시 유저에게 피해를 봤다는 직장 동료분이랑 많이 친하셨나?
그렇지만 난 그 미노타우르스 유저가 아닌데. 이 사람이 보기엔 다 같은 유저처럼 보이는 걸까.
애초에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게 나쁜 거 아니야? 내가 왜 신경을 써줘야 하지.
아니야, 나랑 같은 유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나라도 사과를 해야 해.
그게 상식적으로 올바른 일이 맞나? 갑작스러운 사과에 부담스러워하시면 어떡해?
따스한 히터바람에 약간이나마 녹았던 긴장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두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신경쓰이고, 입이 얼어붙은 듯 잘 열리지 않는다. 대화를 하지 않고, 사회와 단절된 기간이 길었던 후유증 때문인지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예의에 안 어긋나는 건질 감조차 잡질 못하겠다. 말실수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죄, 죄송.."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오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긴장 탓인지 갑작스럽게 기억나지 않는 몇몇 간단한 단어들을, 목소리까지 떨어 가며 설명하는 데에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그녀는 내 말을 경청하다, 한 마디로 내 긴 잡설을 축약했다.
“그러니까...유저 생활지원금 연장 신청을 하러 오셨다고요?”
“네! 바로 그거에요...죄송해요. 생활지원금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괜찮아요. 그럼 딱히 수입원이나 직업은 없으신거죠?”
“일단 수입원도 부업 몇 가지 정도밖에 없고, 의탁할 혈육도 없어서...”
정확히는 혈육이 없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이쪽에서 단절당한 쪽이지만. 그들이 변해버린 나를 친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은 덕분에, 나는 현재 친부모나 다른 친지들이 등록되어 있지 않은 무연고자나 다름없는상태였다.
“일단 이 서류를 작성해 주세요. 제출하시면 관련 부서에서 판단 후, 지원금 급여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핸드폰으로 연락도 갈 거고요.”
서류철을 건낸 여직원이, 용건이 끝났으면 가보라는 듯 자신의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힘없는 걸음으로 감옥 같은 방에서 나와 근처의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서 [유저 전용 창구]에서 나온 내게 관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지만, 딱히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름, 주민번호, 생일 등등을 적어 내려가던 손길이, 성별 란에서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떨리는 손을 바로잡고 서류 작성을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탄 버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몇 시간 전에 좋지 않은 일을 겪었던 만큼, 잔뜩 긴장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이 많으니 이쪽에 쏠리는 관심도 분산되었다.
무엇보다 내 앉은 자리 앞에 서 있던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해 준 덕분에,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집 앞 정거장에 도착한 나는 저 멀리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 펼쳐진 노을을 감상하며 거리를 걸었다.
“...후우, 힘들었다.”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억울하게 뺨을 한 대 맞긴 했지만, 예전에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별 일도 아니었다. 흔히들, 계속해서 비슷한 일로 상처를 입다 보면 무뎌진다고들 하잖는가. 이젠 누가 그 어떤 일로 시비를 걸어와도 딱히 상처를 안 입을 자신이 있었다. 맞지만 않는다면.
‘그러고 보니, 실제로 맞아본 건 그때 이후로 처음인가.’
남자였을 적에는 나름 친구들과 치고받은 적도 있고, 운동을 하다 다친 적도 있어서 고통에 익숙했었다. 그러나 이런 몸이 된 뒤로는 아프다 싶으면 눈물부터 나고, 약한 모습이 자꾸 나왔다.
‘...용족은 오감이 모두 인간에 비해 조금씩 뛰어나다고 했었지?’
어쩌면 오감에 포함되는 촉각도 더 민감하니, 통증도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뭐, 앞으로 되도록 맞을 일은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세상일 전부가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었다. 또 그 틀딱 아재처럼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고, 마음에 안 들면 손이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없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럴 때마다 이상한 시비에 걸려 맞고 울음이 터졌을 때 '나는 울보가 아니야, 그냥 통각이 민감해서 그런 거야'라는 자기합리화에 쓸 만한 근거 하나쯤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용족은 통각이 더 민감하다는 가설을 머릿속 구석에 각인시켜둔 채, 나는 익숙한 어두운 골목에 들어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