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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24화 (24/59)

〈 24화 〉 10. 전조

* * *

유저들은 흔히 말하는 초인, 즉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평범한 인간보다도 근력이 약한 용족이 특이 케이스인 거고, 당장 눈앞의 여리여리한 서큐버스 유저인 혜림도 기본 능력치만으로도 일반 성인 남성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났다.

이런 초인적인 신체를 가진 유저들이 취하는 데에는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알코올이 필요했다.

말술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 미노타우로스나 켄타우로스 같은 말의 신체를 가진 유저들의 경우는 보드카를 수십 병은 마셔야 취기가 살짝이나마 든다고 들었었다.

늑대인간이나 수인들 역시 대부분이 근접 직업군에 특화된 신체능력 및 추가 능력치를 지닌 종족이다 보니 술에 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수요를 놓칠 리가 없는 주류 회사들은 얼마 전, 알코올 농도가 엄청나게 높은 유저들 전용 술을 출시했다.

당연하게도 나 역시 유저 중 하나였기에 ‘유저 전용 맥주’라는 로고가 붙어있는 맥주캔에 호기심이 들었고, 충동구매를 통해 냉장고에 쟁여 두었다.

그 캔 안에, 평범한 인간보다도 각종 약물­ 특히 알코올에 약한 용족이라면 한 모금만 마셔도 뻑 가는 고농도의 술이 담겨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바닥과 천장을 구분하기가 점차 힘들어진다.

분명 방금 전만 해도 기분 좋게 치킨을 뜯고 있었는데, 왜 내가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거지.

그런 내 빙빙 도는 시야의 한구석에 유저 전용이라는 로고가 진하게 쓰여 있는 캔이 눈에 들어왔다.

‘...잘 취하지 못하는 유저들을 위한 맥주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마시면 쉽게 취할 수 있음...?’

손을 허우적거리며 캔을 집으니, 그 뒷면에 쓰여진 주의 문구가 보였다.

­[알코올에 민감한 인큐버스/서큐버스 및 용족, 일부 파충류 수인족의 경우 주의 요망.]

아, 어쩐지. 분명 기억상 한 모금만 마신 것 같았는데 머리가 핑 돌더라니...

“야아아...괜찮냐아아...”

“아니이이요....”

나와 마찬가지로 바닥을 기며 꿍얼대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큐버스 역시 술에 그리 강한 종족이 아닌 만큼, 그녀도 지금 나처럼 만취한 상태이리라.

나는 완전히 붉어진 그녀의 얼굴과 시선이 마주한 순간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위험해.’

몸이 이렇게 변한지만 일 년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내 스스로의 정신을 ‘남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일단 남자의 몸보단 여자의 몸이 아직까진 더 끌리고, 무엇보다 남자와 한다고 생각하면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눈앞의 여자는, 정확히 말하자면 서큐버스는 내 이상형에 거의 들어맞는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실낱같은 이성을 놓지 않기 위해, 그녀의 흐트러진 옷가지를 주워 깊은 가슴골을 가려 주었다.

“뭐야아... 같은 성별끼리 왜이리 부끄럼을 타요...?”

내 점퍼를 얼굴에 뒤집에쓴 채 투덜거리던 그녀는 덮어두었던 옷가지와 이불을 홱 던져서 날려버렸다.

“덥단 말이야... 나 옷좀 벗을게요. 괜찮죠?”

“아니, 안 괜찮­”

대답이 채 돌아가기도 전에 이쪽으로 따끈한 옷가지들이 날아왔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꼭 감았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나봐...!’

아무리 같이 술을 마시는 대상이 같은 여성으로 보여도, 저런 식으로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도 안 되는 짓이란 말인가.

거의 술자리를 나가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종종 저렇게 덥다고 옷을 마구 벗어던지는 주사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지금의 내게는 안타깝게도 혜원이 딱 주사가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건가?’

혜원은 내게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다. 그녀의 벗은 몸을 볼 수 있다면 나름 이득이잖아? 내가 벗긴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벗는다는데?

죄책감과 기대감이 반반씩 썪인 시선을 그녀의 몸으로 향한 순간, 나는 살색의 향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알고 보니 완전히 옷을 전부 벗은 것은 아니었다. 혜원은 살색 속옷만 남긴 채 모든 옷을 훌훌 벗어버린 상태였다.

이 상태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생각보다는 덜 외설적인 모습에 나는 안도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아무리 술에 취해도 일단 제대로 정신머리가 박힌 사람인 이상 속옷까지 벗지는 않겠...'

“...아쉬워요?”

“...”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나는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아쉽다고 하는 순간 그렇고 저런 일까지 하게 될 것만 같아서.

“아직은 더 더워서 그런데... 혹시 직접 벗겨줄래요?”

건조해진 입술을 핥으며 이쪽을 향해 등을 내보이는 그녀.

그런 그녀의 매끄럽고 새하얀 등에는 반쯤 풀어진 브래지어 후크가 있었다.

그대로 그 후크를 벗기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 쪽을 바라봤다. 분위기를 다 깨버린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 중에 극소수였기에, 나는 당연히 걸려온 전화는 스팸 전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당연한 추측이었다. 내 최근 통화 내역들은 배달 음식집과 스팸 및 광고성 전화번호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아니면 예진이나 예림이 쪽에서 내가 집에 잘 들어왔는지 확인차 전화했을 수도 있겠다. 만약 그녀들의 전화라면 받아서 걱정하지 않도록 잘 대답해 주어야겠지.

그러나 핸드폰 액정 위에 드러난 두 글자는, 내 모든 추측을 뛰어넘는 사람을 뜻하고 있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

“...엄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만연했던 취기가, 싹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

우리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독실한 신자 집안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싫었지만, 부모님을 사랑했기에, 누나를 사랑했기에, 남동생을 사랑했기에 그들과 똑같은 신을 믿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멸할 악이며, 오직 나를 믿는 ‘인간’들만이 그런 악에서 벗어나 후세에 구원받을 수 있다.]

­[예, 주신의 아드님이시어.]

딱히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중년 아저씨. 그가 우리 가족과 수만 명의 신자들의 ‘신’이었다.

우리가 믿는 종교가 외부인들에게 ‘사이비’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받고,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우리 가족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나를 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리고 왜 우리 가족들에게만 이웃들이 무서운 눈초리를 던지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항상 우리가 찾아가 예배를 드리던 중년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도 쉬이 간파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가족들은 이미 그 사이비 종교에 너무 깊게 빠져든 뒤였다.

그래서 나는 구태여 그 사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동조하기만 한다면,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내게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시는 부모님, 언제나 툴툴대지만 나와 동생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누나, 그리고 까불댈 때도 있지만 가족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막냇동생.

이 완벽한 가족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침묵했던 것이, 어쩌면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이런 벌을 받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점차 감각이 없어져 가는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채,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는 구원받을 수 있는‘인간’이 아니야! 악마다! 너를 가까이하는 자들 모두가 파멸의 운명을 맞을 것이다. 그러니 썩 물러가라 이 악마야!]

그 사이비 교주였던 중년 아재가 그렇게 말한 날,

나는 차가운 겨울날 아무것도 입지 못한 채 문 밖으로 쫒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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