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33화 (33/59)

〈 33화 〉 15. 나를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겐가!

* * *

­테러단체로 지정되었던 단체, 한 유저가 단신으로 생포.

­[헬반도]의 본거지에 생겨난 거대 빙산... 그 정체는 무엇인가.

­과격파 유저들의 본산, [헬반도] 길드의 최후.

­수수께끼의 마법사 유저,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질들 90% 이상 생존... 심리치료 밑 보상은 후의 문제

나는 방 안에서 뒹굴거리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훑어보았다.

대부분이 어제 일어났던 대사건에 대해 대서특필 중인 기사들이었다.

누나를 집에 보내고, 집에서 혼자 누워서 뒹굴거리는 삶. 내게 가장 익숙했었던, 지난 일여 년간의 일상에 드디어 돌아오게 된 것이다.

거기에 더 좋은 점이 있다면, 역시나 편리한 하인 두 사람을 얻게 된 점이랄까.

“물.”

“...여기요!”

내가 손을 까닥이자 예진은 컵을, 예림은 물병을 재빨리 가져왔다. 그러더니 물을 컵에 따라,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물이 담긴 잔에 마법으로 자그마한 얼음을 띄워 마시니 상쾌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차가운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즐기며, 상태창에 새롭게 떠오른 문구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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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화율: 1.02%)

[동화율 1.0%달성. <히든 종족="" 특전="" 스킬­용의="" 맹약(Pledge="" of="" Dragons)="">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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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율. 난생 처음 보는 개념이었지만, 몇 번의 실험 끝에 저 동화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종족 특성에서 알아챌 수 있듯, 종족들은 각자의 특이한 성격과 기질이 있다. 어디까지나 게임 속에선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제한적이기에, 사실상 설정놀이에 불과하다고 욕을 먹었던 설정이지만...

게임 캐릭터의 몸을, 현실의 우리가 가지게 된 이상 설정놀이는 더 이상 설정놀이가 아니게 된 것이다.

엘프는 자연을 사랑하고, 드워프는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악마는 인종을 불구하고 상대방의 고통, 쾌락을 즐긴다.

미노타우르스와 오우거, 늑대인간 같은 몬스터 모델링 기반의 종족들은 파괴를 일삼는 본능이 내제되어 있고, 켄타우로스는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정신적인 질환이 생길 정도의 달리기에 대한 강박증세를 지니고 있다

수인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강한 상대를 보면 투쟁심을 느끼고, 자신을 굴복시킨 상대방에겐 복종하며 ‘상대방의 우월한 유전자를 받고 싶어’한다.

나 역시 동화율이 올라갈수록 주변인들을 저도 모르게 깔보게 되고, 마법을 사용하며 나르시스트가 된 것처럼 스스로의 우월감에 심취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마치 스스로의 강함에 심취해, 자신의 최후마저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전설 속의 용들처럼.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면 할수록, 동화율은 점점 올라갔다.

‘물론 나 한 사람의 경험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컴퓨터 의자를 빙글 돌려, 뒤에 서 있는 예진과 예림을 바라봤다.

도대체 왜 저런 걸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두 사람은 예림이 집에서 가져왔다는 검정과 하얀 색이 조화를 이룬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거기에, 단순히 메이드복만 입은 것이 아니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듯 호의 어린 시선을 이쪽에 보내오는 것을 보면 뭔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 잡아먹겠다며 달려들던 애가, 한 번 싸움에서 졌다고 의기소침한 채 명령에 복종하는 모습이란...

‘역시 동화율의 탓도 어느 정도 있겠지.’

실제로 동화율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예진이의 상태창에도 ‘동화율’이란 스텟이 생겨났다는 답을 받을 수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당하거나, 전투의 흥분을 느낄 때마다 올라간다고 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부족한 감이 있어, 동화율의 상승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스킬인 ‘용의 맹약’을 통해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제약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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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맹약(Pledge="" of="" Dragons)=""/>

용의 피가 담긴 맹약. 일대일로 사용 가능하며, 맹세 이후에 이를 어길 시 서로간에 동의한 형벌이 그 자의 몸에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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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스킬 설명이었지만, 용과의 약속. 여러 전설과 신화 및 서브컬쳐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는 유명한 이야기잖은가.

용과의 맹약을 어기면 용도, 그 맹약에 함께했던 사람도 최후를 맡는다는 스토리. 아무래도 스킬 <용과의 맹약="">은 그러한 플롯에서 조금 더 편의성을 갖춘 스킬인 것 같았다.

맘대로 어길 시에 가해질 형벌을 이쪽에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데다가, 맹약 역시 이쪽이 원한다면 즉시 취소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이 스킬이 생겼다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거대한 빙산에 갇힌 예진의 얼굴 부분만 녹여내었고, 성공적으로 내게 ‘복종’하겠다는 맹세를 받을 수 있었다.

감옥에서 팔다리를 전부 구속된 채로 영양공급만 받으며 가축처럼 살지, 내 집에서 살지 결정하라고 했더니 바로 맹세하겠다고 외쳤었지.

그런 그녀와의 맹약에서 정한, 내가 정한 규율을 어길 시에 받을 형벌은... 비밀이다.

“그런데 예림아... 넌 도대체 왜 아직까지도 여기 있는 거야?”

나는 과거회상에서 끝낸 뒤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던 예림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시치미를 떼듯 시선을 돌렸지만, 흔들리는 동공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내가 오랜 친구의 속임수에 제대로 당해 생포당했을 당시, 나를 구해준 것은 예림이었다. 예진이가 ‘오빠가 갇혀 있던 밀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예림이밖에 없다’라는 정보를 알려 준 덕택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 점을 생각해 나는 예림이에게 구태여 죄를 묻지 않았다.

예림이는 나와 예진이의 화해를 주선했던 빚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내가 그녀에게 의지했던 시기도 있었던 만큼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그녀를 용서했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분명 집까지 데려다줬던 예림이가, 도대체 왜 친언니의 옆에서 그녀에게 가해진 형벌을 자진하여 받고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친언니만 외롭게 벌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면 참 눈물 나는 우애라며 감동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주인님! 몸을 씻으시려구요? 제가 등을 닦아 드리겠습니다!

내가 샤워를 하려 들 때마다 샤워실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던지.

­주인님의 속옷...

빨래를 개다가 괴상한 짓을 하려던 시도를 한다던지,

­주인님, 밤시중을 들겠습니다.

아예 속옷 차림으로 침실까지 쳐들어온 적이 있었다. 오히려 나와 맹세까지 한 예진이보다 더 열성적인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자꾸만 선을 넘나드는 행위에 화를 내고, 심지어 집에서 나가라고 매까지 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얼굴을 붉히고 매를 맞을 때마다 괴상한 신음을 내길래, 내 쪽에서 내쫒는 걸 포기해 버렸다.

“넌 언제 나갈래?”

“...”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걸 물어보면 열성적으로 대답하면서, 이 주제에 대해서만 묵비권을 행사했다.

나야 편하고 외모도 예쁜 하인을 하나 더 얻는 거라서 좋기는 하지만, 예림이의 개인적인 일들과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이런 관계는 좋지 않았다.

메이드복을 입고, 언뜻 보기엔 악마로 착각할 수 있는 뿔이 달린 이종족에게 복종하는 여자?

주변 인물들에게 손절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그녀를 걱정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실실거리고 있는 예림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어휴... 됐다.”

나는 포기하듯 고개에 힘을 빼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오랜만에 게임이나 할...”

­띵동.

내가 마우스를 움직이며 게임 사이트에 접속하려던 순간, 문 밖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다녀올게요. 주인님은 거기 계세요.”

“아냐. 손님이나 이웃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나가야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 집에서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애가 튀어나오면 무슨 생각부터 들겠냐?”

자리에서 튀어나가려던 예림을 말리며,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젠 걷는 것도 귀찮아져 <비행>마법을 통해 둥실 떠오른 나는, 현관문으로 천천히 날아가 잠금을 해제했다.

“누구세요?”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

"...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그들은 다시금 청와대에서 나왔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뭐, 일단 찾아왔으니 문은 열어 주겠다만... 나는 기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사용 중이던 마나 쉴드 위로 간단한 버프를 둘렀다. 우진이 때처럼 멍청하게 당하는 일은 없는 편이 좋으니까.

간단한 조치 후 문고리를 돌리자 양복을 입고선글라스를 착용한 익숙한 모습의 요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갑게도, 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이미 안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겨울 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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