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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40화 (40/59)

〈 40화 〉 17. '드래곤다운 일'

* * *

“너희가 원하는 100명분, 꽉꽉 채워 왔어. 이제 약속을 지켜.”

접선 장소였던 충주의 으슥한 골목길, 가로등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여성이 붉은 색의 스크롤을 가볍게 던졌다.

검은 옷의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둥글게 말려 있던 스크롤을 펼쳤다.

불길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스크롤을 펼치자, 짙은 묵으로 그려진 검은 색의 마법진이 드러났다.

그 마법진을 확인한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부족해.”

“나도 더 이상은 양보 못 해. 그 100명이 한계야.”

“내가 원했던 건 질 좋은 영혼 100마리였지, 이런 피라미들을 원한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불성실하다면, 네 소중한 그이를 내가 어떻게 해버릴지도 모르겠는데.”

“...”

남자는 한숨을 쉬며 한밤중에도 붉게 빛나는 여성의 붉은 눈을 응시했다. 그 붉은 동공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피를 뒤집어쓴 것만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모든 일이 끝난다면­ 저 눈을 빼서 방 안 어딘가에 장식하고 싶네.’

보석, 그 중에서도 루비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눈을 감상하던 남자는 선심을 쓰듯 입을 열었다.

“랭킹 4위가 가져온 결과물이라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 한 번만 봐줄게.”

“그, 그럼!”

“씁, 아직 말 다 안 끝났어.”

위협적인 쇳소리에 그대로 입을 다문 여자. 순종적인 그녀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남자는, 허공에 한 인물의 얼굴을 띄웠다.

“그 사람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백발에 금안, 그리고 머리 위에 달린 검은 뿔. ‘판타지아 온라인’의 pvp컨텐츠에 관심이 있었던 유저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혹시 지금 시키려는 일이­”

“맞아.”

남자의 수긍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반발했지만­

“안 돼.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란­”

“그 사람이 내가 붙잡고 있는 인간보다 소중한가 봐?”

경고어린 으름장 한 마디에 할 말이 없다는 듯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너와 그 녀석이 친하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이 부탁을 하는 거고.”

“그게 무슨...”

“암살자는 기습에 특화되어 있지. 그리고 넌 그 랭킹 3위와 친한 데다가... 그 녀석은 기습에 원체 약한 마법사잖아?”

남자가 무엇을 요구할지 알아차린 여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번 일만 끝내면, 그 놈과 만나게 해 주는 건 물론이고 너희에게 일체 간섭하지 않겠어. 이건 ‘맹세’다. 거짓을 고할 순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

여자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물까지 보였지만, 남자는 그녀가 어떤 결정을 할지 확신하고 있었다.

눈앞의 여자에게는, 그가 잡아둔 인질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없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하던 사람을 인질로 잡혔는데 눈에 잡히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

“흐음...”

토끼겅듀를 막는 군사작전을 시행하기까지 하루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덕분에 하룻동안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백수마냥 집안의 침대에 누워 두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손바닥 사이의 공간에 푸른 마나를 방출했다.

그렇게 방출된 마나가 특정한 형태를 갖추자, 그 안에서 화려한 용언 마법들이 차례차례 발현했다.

출력을 지극히 낮춘 지옥의 불꽃과 고대 서리거인의 숨결이 부딪히고, 최고신의 번개와 작은 해일이 함께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이 모든 마법의 영향력은 내 손바닥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완벽에 가까워진 마나 컨트롤 탓이었다.

처음 이런 짓을 할 때에는 마나를 움직이는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라는 의의가 있었지만, 이미 마나로 만든 실로 줄넘기까지 가능해진 내겐 그 목적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 대신,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다. 바로...

­동화율이 상승했습니다.

“아, 올랐다.”

바로 ‘동화율’이 오르는 조건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정확한 조건은 아직까진 잘 모르겠지만, 이로서 용족 고유의 으로 분류되는 스킬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동화율이 오른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알아냈다.

‘용언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만 오른다면 생각하기 편할 텐데, 저번에 보석을 봤을 때도 동화율이 잔뜩 올랐단 말이지.. 동화율이 오르는 정확한 기준은 도저히 모르겠어.’

동화율을 올리려면 대충 각종 매체에서 묘사하는 드래곤다운 행동을 하면 되는 건지, 아님 그보다 더 정확한 기준이 있는 건지는 앞으로 실험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를 알아내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동화율이 오를수록 꺼림척한 느낌, 정확히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이런 동화율이 올라가는 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구석에 떠오른 알림창이 눈에 띄었다.

­[동화율: 5.0% 달성. 가 생성되었습니다.]

“5 퍼센트? 벌써 이만큼이나 올랐었나?”

저번, 그러니까 보석에 코박죽을 시전한 뒤에 확인한 동화율이 대충 2퍼센트 대였다. 그 뒤론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동화율이 5%를 넘어간 상태라니.

예상보다 훨씬 상승폭이 가팔랐다. 일단 동화율이 오를 때마다 새 스킬이나 유용한 능력을 주니 좋기는 한데, 앞서 말한 부작용을 조심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오르지 않도록 자주 의식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막말로 동화율이 100%에 달하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종족 퀘스트라니­ 어휴, 머리가...”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아무리 출력을 낮췄다지만, 용언 마법에 들어가는 정신력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위대한 드래곤의 혈통을 이어받은 존재라지만 결국 생명체인 한 뇌가 계산할 수 있는 마나식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무리를 하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도 똑같았다.

방 밖으로 나오니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왼편에서 들려왔다. 주방에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쫑긋거리는 귀를 보아하니 예진이였다.

“설거지 중이야?”

“...주인님?”

이젠 주저없이 ‘주인님’이란 부끄러운 호칭으로 나를 부르는 예진이를 볼 때마다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그 독선적이던 예진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주인님이라고 안 불러도 된다니까... 냉수나 한 잔 줘.”

“넵!”

각력을 높이는 스킬까지 동원해 순식간에 얼음 담긴 냉수가 눈앞에 대령되었다.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확실히 편하긴 하네.

“후우...”

냉수를 들이키니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좀 식는 느낌이었다.

“상태창.”

상태창을 부르자 곧바로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동화율 말고는 변한 점이 전혀 없는 상태창을 쭉 내리자, 새롭게 늘어난 칸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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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 퀘스트

드래곤다운 일 하기(0/10)

보상: 인벤토리 개방. 월드 퀘스트 개방.

­­­­­­­­­

“...드래곤다운 일?”

어처구니가 없어 한 혼잣말이었는데, 상태창은 기다렸다는 듯이 ‘드래곤다운 일’의 항목을 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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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다운 일­(완료 시 해당 항목에 체크 표시)

용언 마법 사용하기(­)

재보 모으기(­)

남을 굴복시키기(­)

공주 납치하기(­)

용족 이외의 종족 경멸하기(­)

인간 학살하기(­)

자기만의 레어 만들기(­)

강제로 뿔 잡히기(­)

반려 만들기(­)

반려와 행복한 뿔잡(검열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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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나는 마지막 10번째 항목을 보자마자 퀘스트 창을 내리찍었다.

당연히 내 손은 허상인 창을 통과해 식탁에 부딪혔고, 아무런 버프나 보호 마법조차 걸려 있지 않았던 손에서 짜릿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으으...”

스스로의 멍청함에 통탄하며 상에 머리를 박은 나는,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예진을 불렀다.

“예진아?”

“네? 무슨 일이신가요?”

“너도 동화율이 떴다고 했었지?”

“그렇죠.”

간단히 긍정하며 설거지를 이어가는 예진이의 꼬리를 멍하니 응시하며, 나는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혹시 지금 동화율이 어느 정도야?”

그러자 잠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아무래도 상태창을 확인하는 듯 싶었다.

“지금 확인해보니 12%네요.”

“...뭐?”

12퍼센트라면, 내 동화율의 두 배를 훌쩍 넘긴 비율이었다. 만약 동화율이 오를 때마다 나오는 보너스가 모든 유저에게 적용되는 사항이라면, 수인인 그녀 역시 나와 같은 를 받았을 터였다.

“너도 그럼 를 받은 거야?”

“네. 분명 ‘고양이 수인다운 행동 하기’였었죠.”

“...퀘스트는 다 마쳤고?”

“열 개 중에 아홉 개는 다 끝마쳤네요. 상태창의 설명대로면 열 개를 전부 끝내야 클리어라네요.”

벌써 아홉 개나 완료했다니, 나와는 퀘스트 내용이 다른 걸까.

“그럼 그 퀘스트 내용이 뭐였는데?

“머리 쓰담쓰담 당하기, 꼬리 잡히기, 주인 구하기 같은 거였어요. 고양이들이 진짜로 할 법한 짓들이요.”

아마 내게 주인님이란 말을 서슴없이 쓰는 걸 보아 ‘주인’이란 사람은 나인 것 같긴 한데... 실제로 내가 그녀를 쓰다듬거나 꼬리를 장난스레 잡았던 적도 있으니까.

“그럼 아직 클리어하지 못한 한 가지는 뭔데?”

“주인님에게 꼬리를 잡힌 채 끈적한 순애야­”

“그만! 그만 말해. 안 말해줘도 알 것 같으니까.”

내가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치자, 그녀는 내 반응이 재밌는지 짓궂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 그리고 동화율이 10%를 찍었을 때에는 칭호를 몇 개 주더라구요.”

“칭호? 무슨 칭호?”

‘주인님’의 질문에 예진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새롭게 얻어낸 칭호에 대한 설명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는 창은 하나같이 가관인 내용을 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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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선택한 주인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복종하는고양이에게만 주어지는 칭호. 착용 시: '주인님'에 대한 애착 증가.

­자신이 선택한 주인님을 진심으로 원하고 집착하는 고양이에게만 주어지는 칭호. 착용 시: '주인님'에 대한 집착 증가.

­발정기를 잘 참아내는 수인에게 주어지는 칭호. 착용 시 발정기 효력 감소. 부작용으로 참아왔던 성욕이 거칠게 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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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걸 알려주면 어떻게든 도망가려 들겠지.'

비록 계약에 묶여 있는 몸이지만, 당장이라도 눈앞의 오빠­ 이젠 주인님이 된 분을 따먹고 싶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밝히면, 수줍은 우리 주인님은 멀리 도망가시겠지.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예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비밀이에요. 후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어우, 그런데 갑자기 오한이 돋네. 몸이 좀 안 좋나?”

아무것도 모른 채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을 긁적이는 ‘주인님’을 보며, 예진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환기를 하느라 창문을 열어놨는데, 많이 추우셨나 보네요. 금방 닫을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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