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손잡이 두 개 달린 용족이 되었다-51화 (51/59)

〈 51화 〉 22. 좀비

* * *

“....”

바깥에서 cctv를 통해 심문 과정을 보고 있던 정부 관련 인사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어디까지나 고문이 아닌 ‘심문’만으로 상황을 풀 수 있다고 하길래 맡겨 놨더니,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고문쯤은 약과로 보일 정도로 사람을 망가트려 놓았다.

그래도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리기 전에 중요한 정보는 다 뽑아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긴 한데, 그 정보의 내용조차도 충격적이라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전염성 질병? 그것도 언데드화?”

마치 아포칼립스물의 좀비들을 연상시키는 전염성을 지닌 좀비 하나를 정부의 지원을 받던 비밀 연구소 안으로 몰래 잠입시켰다는 남자의 이야기에 여러 정부부처에 비상이 걸렸다.

“좀비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애초에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마법을 쓰는 현상은 현실성 있고요? 이미 이 세상은 저희의 과학지식만으론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수두룩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저 출신인 저로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자가 ‘인벤토리’능력을 자유자제로 구사했다는 증언에 따르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흑마법사’클래스는 게임 내에서 사용하던 소모품만 있으면 실제로 그런 질병들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면 그런 전염성이 첨가된 질병 마법들이 전술적으로 사용되었고요.”

엘프 유저의 첨언에 이번 일로 급하게 모인 정부의 중요인사들이 침묵했다. 기존의 전염병 상태와는 궤를 달리하는 전염성과 치명성을 지닌 질병은 그 실체를 알아챘을 타이밍에는 이미 연구소 바깥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비밀리에 운영되는 연구소인지라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심과는 거리가 멀어 인명피해도 적고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감염자들의 가족들이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언론에 모든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난리가 날 게 뻔했다.

“...그 랭커들은?”

최상위권 랭커 세 명이 동거 중이라는 사실은 비밀리에 이미 다 드러나 있었다. 저 흑마법사를 체포하는 과정에선 이미 더 이상 그녀들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번에도 그 랭커들을 동원하면 해결될 일이 아닌가? 이번 흑마법사 학살 사태도, 전번의 헬반도도 그치들이 해결해 주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 세 명의 랭커, 하다못해 그 중 한 명이라도 동원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번 사태도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온 소리였다.

“그거 좋군요. 마침 국민들도 그 세 명에게 관심이 집중된 상태고, 여러 사태를 해결한 전적이 있다 보니 여론도 호의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정부의 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다른 장관이 손뼉을 치며 그 의견에 맞장구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웃음짓는 인사가 한 명 있었으니, 방금 전 이 회의의 발언자들에게 조언을 날렸던 엘프 유저였다.

‘그 세 사람에게만 너무 의존하게 되면, 언젠가 우리나라는 붕괴한다. 당장 미국이나 서방 국가만 봐도 벌써부터 그 셋을 포섭하기 위해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만일 유저들 탓에 혼란을 겪고 있는 타국들이 안정기에 집어들게 되면?’

답은 간단했다. 한국 역시 선진국이고, 꽤나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입지를 다지고 있는 국가들이었지만 전통적인 강대국들에겐 자본력이든 뭐든 막연하게 밀리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강대국들이 겨울에게 더 좋은 대우를 약속하며 자국으로 귀화를 유도한다? 패물을 좋아하는 그녀가 넘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겨울이 넘어가면 동거 중인 다른 랭커 둘도 자연스럽게 따라 넘어갈 거고.

그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천억 대의 자본과 주거지, 패물은 물론이고 1억 톤 가량의 자수정이 묻혀 있는 광산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랭킹 2,3위와 20위대 랭커들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뛰게 될 것이다. 당장 그녀들이 우리나라에서 활약한 활약상만 보아도 그 가치는 입증된 지 오래였다.

마음만 먹으면 수천명은 우습게 죽일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전적이 있는 흑마법사를 산 채로 제압하고 단신으로 국가를 위협하던 반란단체인 [헬반도]라는 이름의 길드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단신으로선 인간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해내는 게 바로 그녀들이었다.

마치 비유하자면 일종의 섬세한 전략병기, 즉 원하는 것만 부수는 핵과도 같은 치트키나 다름없는 초인들.

아마 억대의 자산 가지고는 그들을 이 나라에 붙잡아 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미래를 볼 줄 안다면 그들을 붙잡기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만에 하나 이들이 타국으로 빠져나갔을 때의 대비도 해야 하는데...계속해서 일이나 시키고 있다니. 최고급 예우는 기본적으로 해드려야지...’

꼴에 국가와 국민의 대표자란 인간들은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그 랭커들을 거론해댄다. 직접 일처리를 하는 것보단 알아서 잘 하고 뒤처리도 깔끔한 그 랭커들에게 일을 떠넘기려는 거다. 그는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국내 최고의 호텔에서 묵게 해줘도 부족할 상황에 이렇게 귀찮은 일들을, 심지어 시민들의 안전과 관련된 일을 이렇게 떠넘기려는 태도에 말을 잃었다.

당장이라도 화를 내며 눈앞의 테이블을 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랭커도 아닌 평범한 유저에 불과한 자신이 이 타이밍에 말을 꺼낸다면, 고래들이 헤엄치는 데에 수영하러 뛰어드는 꼴이다. 지느러미에 맞아 죽을 게 뻔할 뻔 자인데 먼저 입을 열어 손해를 볼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회의는 금방 끝났다. 유저들을 동원한다는 간단한 답만을 내놓은 채로.

*******

하늘을 날아서 도착한 곳은 한적한 시골에 들어서있는 이질적인 하얀 건물들이 몰려 있는 특이한 구역이었다. 설명을 듣자하니 그 흑마법사의 좀비가 침입하기 전까진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연구소였다고. 물론 왜 이 규모의 연구소가 바깥에는 안 알려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은 괜한 호기심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자꾸 일을 시키네. 귀찮게.”

툴툴대며 자갈길에 발길질을 해대자, 함께 따라 온 예림이가 입을 열었다.

“1억 톤짜리 광산 받았잖아요. 세계에서 손꼽히는 매장량이라던데. 오빠 말고 우리같은 서민 입장에선 얼마나 부러운지 알아요?”

“그래, 그걸 받고 종종 도와주기로 한 건 맞긴 한데... 흑마법사를 잡고 심문까지 도와준 지 벌써 세 시간도 안 지났어. 그런데 또 이런 귀찮은 일을 시킨다고?”

위대한 드래곤의 일족으로서 한 번 한 약속은 깨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귀찮게 한다면 그냥 외국으로 떠버리는 선택지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약속의 정확한 내용은 '종종'도움을 주겠다고 한 것. 그 종종의 기간을 대충 100년 쯤으로 잡아 버리면 100년에 한 번씩만 도움을 주면 간단히 약속을 지키긴 지켰다고 말할 수 이ㅣㅆ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그런 꼼수를 부리던가 해야겠지. 아니면 아예 이 나라를 뜨거나, 나와 약속을 나눈 인간들을 전부 죽여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아, 이건 좀 너무 갔나.

하여튼 잡생각은 떨쳐 버린 채, 나와 두 일행은 연구실의 어두컴컴한 정문으로 보이는 입구까지 도착했다. 전기는 벌써 끊겼는지 불이 들어와 있는 구역은 한 곳도 없었다.

“하여튼, 최초 발병지가 바로 저 연구소라고 그랬었지?”

“네. 아마 안쪽은 이미 좀비로 득시글 거리고 있을 거라고... 저 안쪽에 있을 언데드들을 전부 처리하고 나면 외부로 나간 좀비들도 추적해서 포획해야 해요.”

“그럼 너희는 바깥으로 나간 좀비들을 맡아. 밖으로 더 전염되어 일반인들까지 감염되면 귀찮아지니까.”

좀비들은 기껏해야 10레벨대 몬스터. 그 녀석들의 몸에 부여된 질병 효과여봐야 우리들 수준에선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

“귀찮은데...”

“이번 일 끝나면 자수정 100kg씩 줄게. 순도 높은 놈들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역시 자본 치료가 최고야.

요즘 들어 동화율이 좀 오른 탓인지 이런 잡소비가 아까워지긴 했지만, 그보다 일일히 직접 일을 처리해야 하는 귀찮음이 더 컸다. 거기에 벌써부터 몰려오는 이 졸음. 잠을 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 일을 빠르게 끝마치는 편이 좋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