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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에 미친놈-34화 (34/39)

〈 34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33

* * *

······대퇴근이 땡겼다.

기다림에 지친 몸이 발작을 일으켰다.

하체가 몹시 불편했다.

때앵·─

"······끝이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종이 울렸다.

나는 재빠르게 가방을 맸다.

"얘들아, 이거 가지고가라!"

선생님이 은색의 봉투를 하나씩 건네줬다.

······코코아 파우더···?

"숙제다. 이걸로 초콜릿 만들어서 인증해! 우유랑 섞고 끓여서···."

나는 바로 핸드폰을 켰다.

······홀로라이브 마크중이네.

구라는 언제나 옳다.

"알았지? 엄마랑 해 봐라! 수행이야!"

나는 가장 빠르게 문을 열었다.

────────────────

"언니, 그거 뭐야?"

"이걸로 초콜렛 만들으래. 그냥 편의점걸로 인증할까?"

채륜이는 지갑을 스윽 꺼냈다.

"나도 집에 초콜릿 있으니까······ 구라쳐야지."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핸드폰에 시선을 깔고 걸어갔다.

"난 초콜릿 사러갈게. 내일 봐."

"응."

채륜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빠져나갔다.

소윤이는 뒤꽁무니를 촐싹촐싹 뛰어갔다.

내 옆엔 정윤이만 남았다.

"······야, 넌 초콜릿 있냐?"

나는 정윤이의 어깨를 톡톡 쳤다.

정윤이는 내리깔은 시선을 내 얼굴에 올렸다.

"······만들래."

"불이냐 킬 수 있냐?"

정윤이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딴거 만들어서 뭐 하게.

그냥 구라까고 놀면 되잖아.

"아냐아냐. 이딴거 아무짝에도 쓸모없···─"

"분명 맛있을 거야. 이왕 받은 건데···아깝잖아?"

"······."

······정윤이는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정윤이는 눈웃음을 지었다.

"어휴,그래······ 만들어······."

"같이 만들자."

정윤이는 까치발을 들었다.

정윤이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우리 집에서?"

"그럼 어디서?"

"······내 묷까지 만들어라."

"······알았어."

정윤이는 다시 시선을 땅에 박았다.

────────────────

정윤이는 현관에서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나는 식탁앞에 앉아 핸드폰을 켰다.

"여기 우유 있어?"

"냉장고 열어 봐."

정윤이는 우유 한 팩을 꺼내 왔다.

"······계량컵."

"몰라."

정윤이는 선반을 뒤적였다.

계량컵······ 본 적 없는데.

정윤이는 선반에서 무언가를 집었다.

······계량컵이 있나···?

나는 조심히 정윤이에게 다가갔다.

"찾았냐?"

"계량컵은 아니라도······."

정윤이는 작은 플라스틱 컵을 쥐고 있었다.

······너무 작은데···?

······잠깐만, 저거 가글할 때 쓰는 거 아냐?

"야, 그거 내 가글컵인데?"

"이거만한 게 없으니까······."

"······."

······민트향 초코.

어차피 내가 먹을건 아니라 놔뒀다.

정윤이는 컵에 파우더를 담고 용기에 뿌렸다.

"······그거 얼마나 담아야 해?"

"우유 이백미리에 파우더 백칠십미리. 못 들었어?"

20ml가 최대인 컵으로 여러 번 옮겼다.

두 용기에 각각 파우더와 우유를 담아냈다.

"······다 된 거야?"

"응."

정윤이는 다시 선반을 뒤적였다.

"또 뭐?"

"냄비에 넣고 끌여야돼."

"여기 냄비."

나는 싱크대에 놓인 냄비를 꺼내줬다.

"······불 킬줄 알지?"

"응."

정윤이는 익숙하게 가스벨브를 열었다.

조절기를 돌려 불을 켜고 냄비를 올렸다.

냄비안에 파우더와 우유를 모두 넣었다.

"······끓이면 초콜릿이 돼?"

"아마도?"

정윤이는 젓가락으로 슥슥 저었다.

따뜻한 초콜릿 향이 풍겼다.

"오······ 찐득해지는 거 같아."

정윤이는 냄비 속을 빤히 쳐다봤다.

정윤이는 젓가락에 뭍은 진액을 빨았다.

젓가락 끝엔 투명한 액체가 매달렸다.

"······초콜릿맛나!"

정윤이는 젓가락을 넣고 다시 저었다.

······너나 다 처먹어라.

정윤이는 몇 분 동안 계속 저었다.

"이거 죽 같은데, 이 정도면 된 거지?"

"왜 나한테 물어."

정윤이는 내게 젓가락을 보여줬다.

초콜릿은 찐득하게 거품을 문 채 달라붇었다.

"이제 얼리면 끝이야."

정윤이는 얼음틀에 진액을 부었다.

얼음틀은 냉동실 속으로 향했다.

"이제 굳히는 거야?"

"응."

"얼마나?"

"3시간."

정윤이는 포크를 꺼냈다.

정윤이는 포크로 냄비를 박박 긁어 냈다.

나는 정윤이에게 다가갔다.

"······뭐 해?"

"초콜릿 달라붙은 거."

냄비에 진액이 굳어 착 달라붙었다.

정윤이는 포크로 누룽지 긁어내듯 떼어 냈다.

정윤이는 떼어낸 조각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맛있어!"

정윤이는 맛있는 듯 계속 집어먹었다.

굳은 진액은 초콜릿처럼 변했다.

······나는 조각을 집어먹었다.

"······맛있네?"

굳은 진액은 마치 초코 과자 같았다.

우유가 듬뿍 들어가 부드럽고 달지 않았다.

······많이 단 일반 초콜릿보다 맛있었다.

"맛있지? 맛있지?"

"어,어······."

정윤이는 조각을 문 채 다가왔다.

정윤이가 문 조각이 턱에 닿았다.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

"······3시간 동안 뭐 하게?"

"······게임이나 할래?"

"······그래."

정윤이는 천천히 물러섰다.

나는 빠르게 방으로 향했다.

나는 게임기를 연결해 레이싱게임을 켰다.

────────────────

우리는 조이스틱을 마구 돌렸다.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듀오로 많이 이겨서 새 차도 하나 뽑았다.

"······지금쯤이면 됐을까?"

"보고올게."

정윤이는 거실로 내려갔다.

잠시 후, 정윤이는 접시에 우유,파우더,초콜릿을 올려왔다.

"야, 흘리겠다."

나는 접시를 건네받아 내려놓았다.

나는 초콜릿을 꺼내봤다.

"······말랑한데?"

······말랑하다.

초콜릿인데, 말랑해.

······덜 얼린 거 아냐?

"······야, 이거 덜 얼린 거 아냐?"

"분명 쌤은 이렇게 하라고······."

얼마나 말랑하냐면, 손으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아직 완성 아냐!"

정윤이는 파우더를 한꼬집 잡았다.

초콜릿 위에 파우더를 살살 뿌렸다.

"······이제 된 거야?"

"······아마도."

정윤이의 손가락이 턱선을 타고 내려갔다.

나는 초콜릿 한 조각을 집어먹었다.

"······쫄깃하네."

말랑한 느낌과 더불어 식감마저 쫄깃했다.

쫄깃한 초콜릿······ 색달랐다.

······맛있는데?

씹을 때마다 껌같은 말랑함.

초콜릿이 이를 밀어냈다.

"······성공이야?"

"······맛있어."

나는 입에 문 채로 답했다.

정윤이는 곧바로 한 조각을 집어먹었다.

"······맛있다!"

정윤이의 턱이 열심히 움직였다.

정윤이의 눈썹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사진부터 찍어야지."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파우더가 묻은 초콜릿은 티라미수 같았다.

정윤이는 컵에 우유를 부었다.

우유는 살짝 넘쳐 바닥에 흘렀다.

정윤이는 우유를 꼴깍꼴깍 마셨다.

"천천히좀 먹어."

나는 휴지를 뽑아 정윤이의 입을 닦아줬다.

우리는 쫄깃한 초콜릿을 계속 집어먹었다.

────────────────

양이 꽤 많아서 배부르게 먹었다.

날은 이미 저물었다. 3시간이나 기다렸으니.

정윤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읏쌰···! 내일 봐···아앗···!"

"아?"

······아불싸.

바닦에 흘린 우유를 안닦았다······

······이렇게 스노우볼이 흘러갈줄은······

정윤이는 우유에 미끌려 넘어졌다.

양말이 미끌리며 향한 곳은 내 쪽.

다행히 안 다치나 싶었지만······

"······우웁···!?"

정윤이는 넘어지며 내 품에 안겼다.

······완벽히 받아내진 못했다.

얼굴을 못막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입술을.

서로의 입술이 착 달라붙었다.

"우우웁···!"

"······."

······내 몸이 확 당겨졌다.

정윤이는 내 두팔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끌어안았다.

입술이 더욱더 밀착했다.

내 갈라진 입술이 침으로 부드러워졌다.

······분명 멈춰야 하는데.

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후움······."

정윤이가 깊은 콧바람을 내쉬었다.

······까끌한 돌기가 내 혀를 마찰했다.

······확실하다. 이건 혀다.

내 입속에 혀가 들어왔다······

우린 혀까지 비벼대며 진한 교감을 나눴다.

"후움···!"

······뺨이 차갑다.

내 뺨에 물방울이 주륵 흘렀다.

······정윤이의 눈이 물기로 축축해졌다.

눈 끝엔 눈물이 찔끔 묻어 있었다.

······나는 정윤이의 승모근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좀 오랫동안 껴안았다.

몇 분이 지나서야 우리는 서로 떨어졌다.

서로의 입술 사이엔 침바늘이 늘어졌다.

정윤이의 얼굴은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겠지······

"······정윤아···─"

"미, 미안···!"

제정신을 차렸는지 정윤이는 바로 가 버렸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쿵 울렸다.

······나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첫 키스는 아니지만.

제대로 된 키스를 느꼈다.

앞니에 혀 돌기가 긁혀 오는 느낌.

입안에 혀가 얽혀 오는 느낌.

모두 생생했다.

······이렇게 좋은 거였나···?

······근데 상대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엣취."

······나는 둔감한 게 아니다.

나는 하찮은 하렘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얘는······ 나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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