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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에 미친놈-35화 (35/39)

〈 35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34

* * *

정윤이는 벽에 착 달라붙어 걸었다.

가로등이 안 비추는 사각지대라 더 추웠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는 다이얼을 꾹꾹 눌렀다.

"······여보세요."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왜?"

예민이는 펜을 놓고 전화를 받았다.

정윤이는 입을 가리고 조용히 말했다.

"······했어······."

"뭘?"

"키스······."

예민이는 펜을 책상에 탁 내려놓았다.

"······진도가 빠르네."

"사귀지도 않았는데······."

"······뭐!?"

정윤이의 핸드폰 스피커가 크게 진동했다.

한적한 길에 예민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윤이는 재빠르게 소리를 줄였다.

"왜,왜요?"

놀란 정윤이가 소리쳤다.

예민이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쩌다 한 거야?"

"넘어져서 그만······."

정윤이는 가만히 서 있지 못했다.

"······그리고. 했어?"

"······뭘?"

"고백!"

예민이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그걸 왜 해?"

"병신아! 그만큼 분위기 좋을 때가 어딨어?"

예민이는 등받이에 머리를 푹 밀었다.

정윤이는 머리를 털었다.

"······그러네."

"이 멍청이가······."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될 거 같지 않아?"

정윤이는 머리띠를 뺐다.

"그래······ 키스도 했으니 1주 만에 해 봐······."

예민이는 이마를 탁 쳤다.

"꼭 1주내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묘한 관계가 될···─"

"응. 담에 봐."

정윤이는 전화를 뚝 끊었다.

그녀는 구석진 길을 천천히 걸었다.

"으음······ 머리아파······."

예민이는 침대에 풀썩 누웠다.

"······순서가 안 맞잖아······."

예민이는 깍지를 끼고 머리를 받쳤다.

"내가 본거에서 선키스는 다 안 됐는데······."

예민이는 눈을 꾹 감았다.

"······바보들. 그냥 내가 먹어?"

예민이는 책상 위 문제집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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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라니까요!?"

채륜이는 황설수설 설명했다.

"편의점걸로 찍으면 모를 줄 알았니? 이렇게 이상하게 나와야 정상인 거야."

선생님은 핸드폰으로 우리가 만든 초콜렛을 보여줬다.

"청소 하고 가라."

선생님은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하아······ 좆같네······."

채륜이는 작게 소곤거렸다.

나와 채륜이의 눈이 맞았다.

"······걸렸어?"

나는 가방을 메고 말했다.

"응. 걸렸어."

채륜이는 마냥 실실 웃었다.

······저렇게 웃는 거 어색하다.

"얼른 가. 애들 기다리겠다."

"아냐. 지금쯤 이미 갔을 거야."

오늘 하루. 나는 정윤이와 말을 안 섞었다.

······신경 쓰인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은 처음인데······

······조만간 누나한테 물어봐야지.

"······그럼 너먼저 가. 일찍 가는 게···─"

"너 제낄려고 그런 거잖아."

······저년의 속셈정돈 뻔히 보인다.

원래부터 말 안듣는 애였지.

"······그래서 뭐? 신고라도 하게?"

채륜이는 내게 다가왔다.

내려다본 옷깃속 채륜이의 속살이 보였다.

"아니아니. 그냥 가자."

"······."

나는 채륜이와 빠르게 튀었다.

신발을 갈아신고 도로로 뛰쳐나왔다.

"······이제 너도 공범이다?"

채륜이는 실실 웃었다.

······그래. 저런 게 좋다고.

우리는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날이 따뜻해지자 길바닥에 지렁이가 죽어 있다.

"내일 봐. 이만······,"

"야옹."

채륜이가 가는 골목에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길바닥의 지렁이를 건드렸다.

"······얘 냥이 아냐?"

채륜이는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냥이 맞네? 얘가 왜 밖에······."

채륜이는 고양이를 안았다.

"야, 걔 더러워. 만지지 마."

"얘 소윤이가 키우는 애야!"

채륜이는 고양이를 번쩍 들어 보여줬다.

······왼쪽눈의 점박이가 익숙했다.

"······얘 피나는데?"

"뭐!?"

나는 고양이의 왼쪽 앞발을 잡았다.

털은 피칠갑이 되었다. 내 검지에 피가 묻어나왔다.

"진짜네!?"

"소윤 얘는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고양이가 뛰쳐나오질 않나. 다치질 않나.

얘는 진짜 뭘 키우면 안 돼.

바닥에는 참치캔이 놓여 있었다.

"······이거 날카롭잖아. 이거 만졌나 봐."

채륜이는 참치캔을 가리켰다.

"어휴, 그러게 왜 만져서······."

"야옹······."

나는 고양이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고양이의 눈에 물기가 반짝였다.

"······일단 데려가자."

"······어딜?"

"병원."

"살짝 긁힌걸로 뭘······."

"깊게 파였을 수도 있지?"

"돈은 있어?"

채륜이는 지갑을 꺼냈다.

"······오천 원."

"진료도 안 되겠다."

채륜이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가보자."

"소용없을 걸."

오천 원으로 진료를?

이건 헛수고다.

그냥 집에 가서 연고만 바르면 될 걸······

······이렇게 생각 하면서도 난 채륜이를 따라갔다.

"······저기로 빠져나왔네."

나는 소윤이집의 열린 창문을 가리켰다.

"소윤이는 있으려나?"

"학원 갔을 걸······."

채륜이는 힘없이 답했다.

우리는 시내로 나왔다.

고양이는 걷지 않게 채륜이가 안았다.

"······저기 있다."

채륜이는 동물병원을 가리켰다.

우리는 동물병원에 들어갔다.

병원 안에서 개,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카운터의 간호사가 우리를 친절히 맞이했다.

채륜이는 고양이의 앞발을 보여줬다.

"얘가 다쳤는데······."

간호사는 고양이를 유심히 살펴봤다.

"칼에 긇혔네요. 앉아서 대기해 주세요."

"저기, 진료비는요?"

채륜이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런 건 오천 원이요."

"다행이다······."

채륜이가 가진 돈과 딱 맞았다.

······뭐이리 싸지?

우리는 대기 시트에 앉았다.

"니 고양이도 아닌데, 내도 되는 거야?"

"오천 원 쯤이야······."

채륜이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혔다.

잠시 후, 우리 차례가 왔다.

우리는 진료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야옹."

의사는 반갑게 고양이를 맞이했다.

의사는 고양이를 책상에 놓고 살펴봤다.

"음······ 긁혔네요."

"애가 캔에 베여서······."

"일단, 소독할게요."

간호사가 고양이의 몸을 붙잡았다.

의사는 솜에 알코올을 묻혔다.

의사는 솜을 상처 부위에 마찰했다.

"먀앙!!"

고양이는 발버둥 쳤다.

간호사의 팔에 이빨을 드러냈다.

"조금만 참아요."

"야아아앙······."

의사는 앞발을 붙잡고 솜을 비볐다.

"다 됐어요."

의사는 붕대를 꺼냈다.

붕대에 약을 바르고 상처 부위에 둘렀다.

"야옹······."

"잘 참았어요."

의사는 츄르 한 포를 건네줬다.

채륜이는 포를 뜯고 고양이에게 먹였다.

고양이는 혀를 날름거리며 핥았다.

"고양이는 균이 잘 번식해요. 집에 가서 붕대 풀고 잘 씻겨 주세요. 고양이 연고 발라주시구요."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우리는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채륜이는 카운터에 5천 원을 건넸다.

우리는 상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걸어도 되는 거 아냐?"

"아플테니까······."

채륜이는 쉽사리 고양이를 놓지 못했다.

────────────────

채륜이는 아무렇지 않게 소윤이 집으로 들어갔다.

"바로 씻기랬지?"

우리는 화장실로 향했다.

채륜이는 세면대에 따뜻한 물을 담았다.

"붕대 좀 풀어 줘."

채륜이는 붕대를 가리켰다.

나는 상처를 감싼 붕대를 풀었다.

고양이는 성질을 냈다.

"현준아, 여기에 담가."

"야옹······."

나는 고양이를 들어서 목욕물에 담갔다.

고양이는 뒷발로 바닥을 지탱했다.

앞발로 내 팔을 짚었다.

"이제 내가 할 게."

채륜이는 고양이를 한 손으로 들었다.

채륜이는 남은 손으로 물을 뿌렸다.

고양이는 공중에서 앞발로 걷는 시늉을 했다.

"야옹······."

"이러면 되려나?"

채륜이는 살짝씩 손으로 담긴물을 뿌렸다.

고양이는 꼬리를 홱 휘저었다.

물이 이리저리 튀겼다.

"야옹!"

"좀만 참아 좀만."

나는 고양이의 앞발을 붙잡았다.

채륜이는 상처에 물을 뿌렸다.

"이제 샴푸 할게."

채륜이는 고양이용 샴푸를 쭉 짰다.

채륜이는 두 손으로 고양이를 비볐다.

고양이는 앞발로 물을 마구 휘저었다.

샴푸로 인해 물은 뿌옇게 변했다.

"물 틀어줘."

나는 수도꼭지를 돌렸다.

따뜻한 온도로 맞춰 고양이에게 부었다.

채륜이는 몸통 아래를 두 손으로 비볐다.

몰과 털이 비벼지며 찰싹였다.

"야옹······."

"다 끝났어 다."

채륜이는 꼬리의 물을 짜내고 번쩍 들어 올렸다.

채륜이는 수건을 가져와 고양이를 감쌌다.

"어때? 개운하지?"

"야옹······."

나는 고양이의 머리를 톡톡 쳤다.

"이제 연고였지? 가지고올게."

채륜이는 고양이를 내려놓았다.

"고양이 연고가 있···─"

"먀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양이가 내게 달려들었다.

고양이는 내 팔에 발을 뻗었다.

날카롭게 세워진 손톱이 내 팔에 다가왔다.

······씨발 손톱 깎으라고─

사악─

······내 얼굴에 피가 튀었다.

선반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내 눈앞에 다른 팔이 보였다.

그 얇은 팔엔 고양이의 손톱이 박혀 있었다.

"다친 데······없지···?"

······그녀의 팔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녀는 남은팔로 내 오른팔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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