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화 (1/430)

서장

3년 전, 뜻밖의 사고에 휘말려 선계로 넘어온 운청휘.

그는 선계에서 3천 년의 시간을 보낸 끝에, 질타선계의 운제(雲帝)로 거듭났다.

시공간을 가르고 인계로 돌아온 운청휘 앞에, 겨우 3년이 지난 천성대륙이 펼쳐졌다.

“한때는 내 실력이 부족해 사랑하는 사람도 지키지 못했으나, 지금은 천하(天下)가 내 발밑에 엎드릴 것이다!”

제1화

천원왕조, 천우성.

은은하게 부는 가을바람이 천우성에 쾌적함을 더해주는 이때, 붉은 장포를 입은 청년이 북적이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열일고여덟쯤 되었을까. 수려한 용모는 아니지만 청수하고 깔끔한 자태가 마치 티끌 하나 없는 백옥을 보는 듯했다.

청년은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하고 노련한 기세를 뿜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마치 풍상고초를 다 겪은 노인에게서나 볼 법한 것이었다.

더욱이 눈빛은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하고 밤하늘의 성신(星辰)처럼 깊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함이 깃들어 있었다.

청년의 어깨에는 빈 검집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는데, 검집에 아로새겨진 무늬가 사뭇 신비하여 행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신묘한 느낌마저 안겨주었다.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구나. 하지만 천성대륙은 겨우 3년이 흐른 것을 보니, 선계와 인계의 시간이 천 배는 차이가 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군.”

운청휘는 기억에 남아 있던 거리가 눈앞에 다시 펼쳐지자 한숨을 내뱉었다.

“3천 년의 시간을 버텼을 동안 다들 어찌 지내셨을지…….”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감격이 몰려왔다. 가족들이야 그와 이별한 지 고작 3년이지만 운청휘에게는 집을 떠나 온 지 3천 년이나 흘러 있었다.

3천 년 동안, 운청휘가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 얼마나 많은 밤낮을 꿈에서 가족들을 만나 놀라서 깼었던가…….

순간 눈물이 그의 얼굴을 적셨다.

천성대륙의 기준으로 3년 전 그날, 야외에서 수련을 하는 운청휘의 앞에 기이한 폭풍이 도래하였다.

억만년에 한 번이나 있을 법한 시공간의 왜곡이 하필 운청휘를 집어삼킬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대로 혼절하고 만 운청휘가 눈을 떴을 때는, 전설로나 내려오던 선계에 도착해 있었다.

운청휘가 마주한 선계는,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전설에 의하면, 천성대륙의 무인은 그 무도의 수련이 정점에 달하면 공간을 가르고 선계로 등선한다 하였다.

극락이자 무인의 도원인 것이다.

그러나 운청휘는 알게 되었다.

선계는 도원이 아니며, 대부분의 경우 지옥보다도 참혹한 세계였다.

우선, 법도가 없었다. 실력만이 법이었고, 약육강식이 난무했다.

무공의 수위만 높으면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막는 이가 없어 살인, 방화, 수탈 등 난세의 아비규환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더욱이 일부 선인들은 그저 분풀이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길 망설이지 않았는데, 개중 연단가문은 무공이 낮은 이들을 내키는 대로 잡아들여 노예로 부리고 단약(丹藥) 실험을 해대기에 이르렀다.

수백만의 생명이 있는 성채를 한 명도 남김없이 도륙하는 선인도 그 이유가 고작 법보의 정제였으니, 선계에서 가장 가치가 없는 것을 말한다면 생명이었다.

이런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운청휘는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남아서 천성대륙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택한 것이 자강불식(自強不息)의 수련이었다.

수련의 과정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으니, 무수한 굴곡이 가시덤불처럼 운청휘의 눈앞에 드리웠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치 않는 과정이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수련의 끝에, 운청휘는 마침내 살아남아 성장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 증거로, 운청휘는 질타선계 십대선제 중 한 명으로 등극하였다.

발을 한 번 구르는 것만으로도 지진을 일으키고, 말 한마디로 수백억 생명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들이 바로 선제다.

질타선계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하늘을 찌르는 무위와 무소불위의 권력이 주어졌으나, 운청휘는 결코 뼛속부터 선계에 녹아들 수 없었다.

고국은 버리기 어렵고 고향은 떠나기 어렵다고 했었던가.

천성대륙은 곧 운청휘의 고향이었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 또한 천성대륙에 있었다.

어찌 운청휘가 선계의 비정한 권력에 만족하여 고향을 등질 수 있겠는가.

선제가 된 후, 운청휘는 본격적으로 천성대륙으로 돌아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중의 모든 것을 이용하길 아끼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운청휘는 선고시기부터 내려오던 공간신검, ‘참천신검(斩天神劍)’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선계의 공간은 매우 견고하여, 설령 선제의 전력을 다한 일격이라 할지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참천신검의 위력으로, 마침내 운청휘는 선계의 공간을 찢어내어 자그마한 입구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운청휘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공간의 틈새로 들어가 천성대륙으로 향하는 통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공간의 틈새에는 운청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통로를 개척하는 도중 때때로 엄습하는 외부의 공격에 대비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운청휘가 상대한 도철(饕餮) 괴수의 수만 백이 넘었다.

심지어 선계에서 멸종되었다 알려진 혼돈 영수와도 마주쳤으니, 운청휘가 천성대륙으로 돌아왔을 때 일신의 무위마저 대부분 소진해 버린 것은 필연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등에 덩그러니 달려 있는 빈 검집 또한 한때는 참천신검의 보금자리였으나, 대륙으로 돌아오는 험난한 과정에서 어느 틈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진된 무위는 다시 천천히 회복하면 되고 참천신검도 되찾을 기회가 있다. 하지만 아공간 반지만큼은…….”

거듭 생각해보아도, 아공간 반지만 떠올리면 운청휘는 안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아공간 반지 안에는 무공, 단약, 법보, 방대한 양의 선석(仙石: 선계의 화폐) 등 그의 전 재산이 들어 있었으니까.

비록 참천신검은 잃어버렸다고 하나, 무위를 어느 정도 회복하면 검집을 이용하여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공간 반지는 되찾을 기회조차 없을 듯해, 입맛이 쓴 운청휘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적어도 선계에서 3천 년을 보냈음에도, 천성대륙의 부모님과 누이를 볼 수 있으니…….”

3천 년의 시간을 반추한 끝에 가족들을 떠올린 운청휘는 잠시 시름을 잊고 다시 희색이 만연하였다.

“아버지는 월경(月境)으로 들어서셨는지 모르겠군, 만약 아직이라면 귀띔이라도 하여 십 년 안에 천성대륙의 제일고수로 올라서시게 해야겠고……. 어머니이야 워낙 욕망도 없어 원하는 것이라고는 우리 가족의 안위를 원하실 텐데, 이제 나도 돌아왔으니 그 누가 우리 가족을 건들 수 있을까.”

“채하는…… 가지고 있는 한증이 질병은 아니고, ‘구음한맥’이라는 체질이 문제이지만, 각성을 한다면 수련에 있어서 하루하루가 일취월장하겠지.”

“너무나 기대되는구나! 아버지의 그 근엄하신 얼굴이 내가 돌아온 것을 봤을 때 어찌 변하실지 궁금하군. 어쩌면 눈물을 흘리실지도.”

운청휘의 얼굴이 짓궂게 변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엄격한 모습이었다. 아들인 운청휘 앞에서 웃음을 보인 적도 없었고, 말투도 만년빙산처럼 차갑기만 했다.

그러나 빙산의 아래에 물이 흐르듯, 엄한 태도에는 어머니 못지않은 사랑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운청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각 후.

운청휘는 한 세가의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문을 지키는 호위가 바뀐 것 빼곤 3년 전과 똑같구나…….”

운청휘는 세가의 입구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별안간 문이 열리며 기세가 범상치 않은, 사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러자 칼을 차고 문을 지키던 열 명의 호위들이 급히 사내에게 예를 올렸다.

‘백부님이로군. 언제 가주가 되신 거지?’

운청휘에게는 그 모습이 뜻밖이었는데, 운청휘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운씨 가문의 가주는 그의 아버지였다.

“청, 청휘가 아니더냐?”

중년의 사내는 운청휘를 대번에 알아보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달려와 그를 부둥켜안았다.

“청휘 이놈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실종된 지 3년이나 되어서 우린 네가…….”

백부 운한(云瀚)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울먹였다. 기쁨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운청휘가 커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으니 그에게는 운청휘가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백부님,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백부에게서 느끼지는 짙은 염려와 관심에 운청휘도 코가 시큰해졌다.

운한은 습관적으로 운청휘의 이마를 뒤로 쓸며 말했다.

“아니다, 아니야. 네가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 백부는 너무나 큰 위로가 되는구나!”

만약 이 장면을 선계의 선인들이 봤다면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것이다. 감히 선제 운청휘의 이마에 손을 대는 간 큰 인간이 존재하다니!

“네 부모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네가 돌아온 것을 알면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

백부 운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백부님, 저희 아버님 어머님에게 무슨 변고라도 있는 겁니까?”

운청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가주가 아버지에서 백부로 바뀌었으니 당연히 좋지 않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험. 험. 청휘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운한이 미안하다는 듯 헛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사연은 길지만 간략히 말해 주마. 2년 전, 채하의 한증이 별안간 치유되었다. 게다가 무공의 재능까지 발휘하더니 고작 일 년 만에 무위가 성경(星境) 1단계에서 월경(月境) 1단계까지 성장하여 천우성의 제일고수가 되었단다. 이 일로 천우성 전체가 떠들썩했고 천원왕조까지 파란을 불러일으켰지. 그런데 1년 전, 채하와 네 부모님이 너와 마찬가지로 하룻밤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그들은 너와 달리 신비한 요패(腰牌)를 하나 남겼더구나.”

운한은 품속에서 요패 하나를 꺼내 운청휘에게 넘겨주었다.

운청휘는 한눈에 요패를 알아보았다. 오천 리 땅 밑에만 있다는 ‘지심운철’(地心陨铁)로 만들어진 요패였다. 선계에서는 지심운철을 사용해 목걸이나 팔찌 등 장신구를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이는 지심운철에 마음의 안정을 돕는 효능이 있어 오랜 시간 지니고 있으면 주화입마의 위험을 덜어주기 때문이었다.

“천, 검?”

요패 앞면과 뒷면에는 ‘천’과 ‘검’이 새겨져 있었다.

“설마 천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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