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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2화 (2/430)

제2화

운청휘는 하나의 문파를 떠올렸다.

“너도 천검종이 떠오른 것이냐?”

운한은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이것을 태상장로에게도 보여 줬었는데, 너와 같이 천검종을 언급했다. 채하의 소문이 워낙 넓게 퍼지다 보니, 천검종에 닿아 채하를 문하 제자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네 부모도 채하를 보살피려 함께 천검종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추론에 지나지 않기에 아는 이는 나와 태상장로 둘 뿐이다.”

천검종은 천성대륙에서도 휘하에 수십의 인류문명을 두고 지배하는 유명한 문파로, 천우성이 있는 천원왕조 또한 천검종의 지배를 받는 왕조에 속했다.

그러나 운청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보고 싶은 이들이 천검종으로 가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운청휘는 그들이 천검종으로 갔다고 확신했다. 선계에도 천검종이 있고, 그들이 만드는 요패의 재료가 더 좋은 것을 제외하면 눈앞의 요패와 다를 것이 없었다.

“백부님, 천우성에서 천검종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하루에 오천 리를 달리는 혈종마(血鬃马)로는 며칠이 걸립니까?”

운청휘는 당장이라도 천검종에 갈 생각으로 조바심을 내었다.

“아쉽게도, 천검종의 위치는 천검종 제자들 말고는 아는 이가 없을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 백부가 이미 다녀와서 그들의 위치를 확인했었겠지.”

운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천검종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신비문파인 천검종에 입문하려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

만약 천검종이 위치를 숨기지 않았다면 천검종의 대문 문턱은 이미 사람들에게 밟혀 흔적도 없이 닳아버렸을 터였다.

천검종은 정파.

그 속에 무엇을 두고 있을지는 몰라도, 대외적으로는 민간인에게 손대지 않는다.

그 까닭으로 천검종은 불필요한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위치를 숨기는 쪽을 선택했으리라.

그러나 운청휘는 더욱더 암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미 일신의 공력이 소진되었다. 신식(神識)도 소진되어 전성기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만약 공력이 있었더라면, 하늘도 거역하는 신식(神識)으로 천성대륙 전체를 뒤덮어 부모님과 채하를 단번에 찾아냈을 것이다.

‘당장은 무위를 회복해야만 다시 부모님과 채하를 만날 수 있겠구나!’

***

운한은 운청휘를 데리고 저택으로 들어가 그가 전에 있었던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운청휘는 익숙한 정원이 눈에 들어오자 옛 생각에 잠겼다.

‘옛 생각이 저절로 나는구나. 채하와 둘이서 이 정원에서 자주 놀곤 했었지.’

“실종된 삼 년간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이냐? 어찌 이제야 돌아온 것이야?”

운청휘의 거처가 마련되자 운한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3년 전 홀로 낭야산(琅琊山)으로 수련을 갔다가 산적들과 만났습니다. 그놈들에게 3년이나 잡혀 있다가 얼마 전에야 겨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운청휘는 일전에 생각해 둔 것을 그대로 말했다.

“낭야산에 홀로 갔었다고……?”

운한은 어이가 없었다. 낭야산은 수십 무리의 도적 떼들이 집결해 있는, 그야말로 도적소굴이었다.

천원왕조에서도 이들을 토벌하려 여러 차례 무인들을 보냈지만, 흉험한 산세 탓에 번번이 소탕에 실패하고 돌아왔던 곳이 아니던가.

“탈출해서 돌아왔으니 다행이구나. 하지만, 청휘야, 다시는 그런 위험한 곳에 홀로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운한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운청휘는 말을 아꼈다. 낭야산에 수련을 간 것은 사실이나 산적이 아닌 공간 폭풍에 휘말려 선계로 갔던 것까지는 알리지 않았다.

“그동안 수련은 했더냐? 무위는 어느 단계까지 달성했느냐?”

운한이 제법 중요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무위라…….”

운청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성경(星境) 3단계쯤 되는 평범한 무인입니다.”

평범한 무인.

그 말에 운한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3년 전의 운청휘는 열다섯의 나이에 천우성 제일 기재로 불렸고, 성경 5단계에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한데 3년이 흐른 지금, 도리어 무공이 3단계로 하락한 것이다.

운한이 다시 생각해보니, 산적들에게 잡혀 있었더라면 수련할 시간이 없었을 터였다. 도리어 무공을 폐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처지였다.

“너무 낙심할 것 없다. 너의 그 천재성으로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몇 년이면 다시 정상에 복귀할 것이니.”

운한이 위로를 건넸다.

“예. 꼭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운청휘의 얼굴엔 굳은 의지나 결심 같은 것이 없었다.

“백부님, 저와 함께 약재각(藥材閣)에 다녀오시겠습니까.”

운청휘가 느닷없이 말했다.

선계와 달리, 천성대륙에는 선령지기가 없었다. 있다고 해도 최하급으로 여기는 영기만이 존재했다.

영기에만 의존해서는 무위를 전부 회복하는 데 적어도 백 년 이상이 걸릴 터인데, 운청휘로서는 이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운청휘가 선택한 방법은 연단이었다. 단약의 도움이 있다면, 무위의 회복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약재각이라…….”

운한의 얼굴에 난처함이 스쳤다.

약재각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혹시 3년간 연단술(煉丹之術)이라도 익힌 것이더냐?”

“예! 저와 함께 잡혀 있던 사람들 중 연단사(煉丹師)가 하나 있었는데 3년 동안 몰래 배워 이제는 그의 모든 것을 익혀 두었습니다.”

운한의 얼굴에는 기쁨이 감돌았다. 연단사는 천성대륙에서도 가장 고귀한 직업 중의 하나였다.

그 지위로 놓고 말할 것 같으면 절대 이 운씨 가문의 가주보다 낮지 않았다.

운한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필요한 약재를 말하면 내가 내일 여기로 가져다주마.”

“부탁드리겠습니다.”

운한의 저의를 알 수는 없었지만, 운청휘는 일단 필요한 약재들을 운한에게 일러 주었다.

자라나는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평범한 약재들이니, 운청휘가 요구한 것들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터였다.

“아버지, 진짜 청휘가 돌아왔습니까?”

그때, 정원 밖에서 한껏 들뜬 목소리가 들리며 곧 한 청년이 운청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훤칠하고 준수한 용모의 청년이었지만, 기이하게도 왼쪽 소매가 비어 펄럭이고 있었다.

“청휘야, 정말 너구나……!”

더는 참기 어려웠는지 운청휘에게 달려들어 와락 부둥켜안은 청년은 다름 아닌 그의 사촌 형 운현이었다. 사촌지간이라곤 하나, 둘은 친형제와 다름없이 우애가 좋았다.

그러니 3년 만의 재회가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왼손은 어쩌다 그렇게 되셨습니까?”

격동한 운현과 달리, 두 눈을 가늘게 뜬 운청휘에게서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만약 이 자리에 선계의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선제 운청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는 것은 그가 살기를 품었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예고였다.

“아…… 아니다, 그저 내 부주의로 팔을 잃은 것이다. 오늘은 네가 돌아온 기쁜 날이 아니냐? 우리 우울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꾸나. 하하…….”

운현의 눈에 암담함이 스치며 운청휘를 안았던 오른팔도 아래로 미끄러졌다.

“……예.”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속으로 짙은 살기를 갈무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운현은 왼팔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무공도 폐해져 있었다.

“아버지, 오늘 저녁은 저와 이 녀석의 독대를 허락해 주시지요. 3년 동안 못 봤더니 소자가 아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는 운현의 눈에는 절박함마저 보였다.

“그래, 좋다. 하지만 유념하거라.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한다.”

운청휘와 회포를 풀고 싶은 것은 운한도 마찬가지였으나, 아들의 눈빛 보고서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반년 전 왼팔을 잃은 뒤로 성격이 날카롭게 변하고 자포자기한 듯 살아온 운현이었다.

그런 아들이 반년 만에 처음으로 보이는 웃는 얼굴에 어찌 고집을 부릴 수 있을까!

운한이 떠나고, 운현은 하인들에게 술과 안주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술상을 앞에 두고, 둘은 끊임없이 잔을 부딪쳤다. 벌써 열잔 넘게 마셨지만 안색도 호흡도 그대로였다.

열 번의 순배가 돌았지만 운청휘의 안색과 호흡은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선주로 단련된 운청휘에게 천성대륙의 범주는 물이나 다름없었다.

운현이 넌지시 물었다.

“청휘야, 도대체 3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냐? 네가 실종되고 가문 전체가 너를 찾았었다.”

청휘는 백부에게 말했던 것을 운현에게 반복했다.

형제는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3년 동안 못 한 이야기를 채워 넣기라도 하겠다는 듯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느 순간, 술만 계속 마실 뿐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

시간은 어느덧 늦은 밤이 되었다.

“청휘야, 3년 동안…… 주량이 엄청 늘었구나. 형이……. 졌다!”

운현은 하나에 다섯 근이 들어 있는 죽엽청주를 세 개나 마신 뒤에야 취기가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청휘는 가슴이 아팠다.

열다섯 근의 죽엽청주를 마셔야 취하는 주량이라니……술을 너무 자주 마셔서 늘어난 주량이 분명했다.

예전의 운현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운현이 팔이 잘린 이후부터 술에 의지하여 현실을 망각하며 살아왔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운현은 더 이상 못 마실 정도로 마시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무위만 어느 정도 회복하면 형님의 무공을 되찾고 그 팔도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운청휘는 취해서 자고 있는 운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형을 이렇게 만든 그 놈이…… 어떤 놈이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아주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습니다.”

운현을 침상으로 데려가 눕힌 후 운청휘는 정원으로 나왔다.

날이 밝기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았기에 동쪽 하늘은 은은히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수련한 공법은 전부 선천생령들의 것이니 당장 필요한 것은 평범한 공법을 수련하는 것이겠군.”

선계의 생령들은 태어날 때부터 선천생령을 지니고 태어난다.

천성대륙의 말로 한다면 태어날 때부터 선천경의 무력을 지닌 것이다.

천성대륙의 무인은 단계별로 성경, 월경, 양경으로 나뉜다.

양경 그 위로 선천경인데 바로 선계의 선천생령을 말하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선천생령의 수명이 500년 이상이라, 이미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운청휘의 무위가 성경 3단계로 떨어진 지금 그가 선계에서 수련한 무공은 지금의 무위로는 펼쳐낼 수가 없다.

운청휘가 생각하기로 제일 빠른 회복 방법은, 단약 외에도 범용 무공을 따로 익혀야 했다.

예를 들자면 운청휘의 지금 상황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보검을 쥐여 준 거나 다름없었다.

아기의 힘으로는 보검을 들어 올릴 수도 없는 법. 같은 이치로 운청휘도 선계의 공법을 펼치려면 적어도 선천경까지 무위를 회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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