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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20화 (20/430)

제20화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비무를 바라보는 관중들과 달리, 운한과 운현만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후후. 대장로도 청휘의 상대가 안 되는데, 임비화는 말할 것도 없지. 임씨세가 놈들, 놀랐을 거다! 하룻강아지가 범에게 덤빈 꼴이니! 청휘는 예전에도 지금도, 천우성 제일 기재니까.”

운현의 감상에 곁에 있던 운씨세가의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 대장로님도 소가주님의 상대가 못 되었단 말인가?”

“성경 9단계의 고수마저 상대가 안 된다니……! 임비화가 패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군!”

“저렇게 밀려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어.”

“흐흐, 임씨세가는 큰일 났군. 오인철 광산은 둘째 치고, 임비화의 목숨이 날아갈 지경이니…….”

임씨세가 무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다시 여유를 찾은듯했다. 운청휘의 실력이 의외이긴 했지만 그들도 이미 만단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었다.

“이놈, 깊이도 감췄구나. 나마저 속이다니!”

임비화가 팔뚝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억지로 삼키며 가라앉은 얼굴로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벌써 날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악을 쓰듯, 임비화가 운청휘에게 달려들었다.

십오 장 정도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의 거리가 절반쯤 좁혀졌을 때, 임비화는 ‘창!’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의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다음 순간, 눈부신 백광이 뿜어져 나오며 비무를 구경하는 이들에게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덮쳐왔다.

“그 검은……!”

누군가는 검의 정체를 알아본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임비화의 검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건 천왕하품 법보(法寶)잖아!”

“맙소사,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건 천왕하품의 자상검(紫霜劍)이야!”

“자상검은 임씨세가 가주의 보검인데? 저게 왜 저기 있는 거야? 설마 이번 결투를 위해 가주의 보검마저 빌려준 건가?”

“쯧쯧, 이건 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는군, 자상검이 등장한 이상 운청휘는 이미 졌다고 봐야겠어!”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운씨세가의 무인들은 자상검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지며 저마다 임씨세가의 뻔뻔함에 치를 떨었다.

“가주님, 큰일입니다! 저놈이 자상검을 가지고 있는 이상 소가주님은…….”

“가주님, 임씨세가가 이렇게까지 후안무치하게 나온다면 이 결투는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아니면 영약원은 물론이고 소가주님의 안위도…….”

운씨세가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운한을 바라보았다.

운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임씨세가의 무인들이 다가와 그들을 둘러싸며 가로막았다.

특히 임성양은 운한을 노려보며, 승부에 개입하려거든 자신을 먼저 상대하라는 듯 운한을 막아서고 있었다.

“임성양! 임씨세가는 정녕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이냐! 자제들의 대결에 왕급하품의 법보까지 들이미는 건 어느 세가의 도리더냐!”

운한이 성난 얼굴로 임성양을 꾸짖었다.

“부끄러움? 가주, 한 세가의 장으로서 말씀을 가려서 하시오! 이번 결투에 왕급 법보를 금지한다는 규정은 없었소만!”

임성양이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윙윙윙!

운한과 임성양이 대치하는 중에도, 비무는 이어지고 있었다. 임비화가 뽑아 든 장검이 기이한 울음을 토해냈다. 완전히 거리를 좁힌 임비화가 운청휘의 앞에서 검을 휘둘렀다.

“자상검까지 뽑게 만들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얼음처럼 시린 검기를 동반한 자상검이 운청휘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운청휘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 누구도 운청휘가 피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쿵!

허공을 가른 자상검이 그대로 비무대의 지면에 박히며 강렬한 진동과 함께 먼지 구름을 일으켰다. 이윽고, 검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퍼져나갔다.

“이, 이것이 왕급 법보의 위력인가……!”

눈앞에서 자상검의 위력을 경험한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왕급 법보는 들어만 봤을 뿐, 처음 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렇다면 운청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다들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을 때, 임비화가 냉랭하게 소리쳤다.

“도망치는 것은 제법이구나. 다만! 이번에 피했다고 다음도 피한다는 보장은 없지!”

“어떻게 된 거야? 아직 죽지 않은 거야?”

모두들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흩어지는 안개 사이로 운청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붉은 장포에 긴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드리운 그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이었다. 등에 메고 있는 검집에서는 태양 빛을 받은 문양이 은은한 빛을 뿜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조금 전, 짧은 순간이었지만 운청휘의 등에 있는 검집이 진동하는 걸 본 것이다.

“이번에는 피할 곳이 없게 해주마!”

임비화가 다시 달려들었다. 자상검을 연속으로 휘두르자 내기가 담긴 검기가 먼저 운청휘에게로 휘몰아쳤다.

운청휘는 영후백변신법을 펼치며 폭발해 오는 검기를 피했다. 다만 검기는 피했지만 임비화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진검은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운청휘가 뒤로 회피하는 군!”

“크크, 그럼 물러나야지 전진하겠나?”

“그런데, 저렇게 피하기만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지! 비무장의 크기가 변하지 않는 이상 비무장 아래로 피할 수는 없잖아.”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운청휘는 이미 비무장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참천. 흡수는 이만하면 되었다.”

운청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윙윙윙…….

잔잔한 진동이 그의 등에서 울렸다.

“아직이란 말이냐?”

운청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들 그가 검기를 피하기에 급급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운청휘는 참천신검의 검집으로 검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공간의 통로에서 혼돈 영수와 싸우며, 검집도 많은 손상을 입었다. 복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법보를 흡수하는 것이다. 임비화가 쓰는 법보가 왕급하품이긴 하지만, 검집의 복구에는 도움이 될 터였다.

“너무 오래 걸리는군. 방법을 바꿔야겠어.”

운청휘가 낮게 중얼거렸다.

“하하하. 이것도 피해 봐라!”

운청휘가 구석으로 몰리자 임비화는 괴상하게 웃으며 파죽지세로 운청휘를 향해 검을 찔렀다.

“피해 보라? 너 따위가 할 말은 아니군.”

운청휘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갑자기 임비화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미친, 저 미친놈!”

“자상검을 향해 정면승부라니!”

“저놈은 이제 끝났어!”

누군가의 말소리와 함께 운청휘가 자상검의 공격 범위에 들어섰다.

“헉……!”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관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자상검을 뺏었어?”

“뭐야! 임비화가 자상검을 뺏겼어!”

대결이 이어짐에 따라 열기로 가득했던 광장에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임비화의 손에서 시린 냉기를 뿜어내던 자상검이 어느새 운청휘의 손에 들려 있었다.

운청휘는 자상검을 힘껏 휘둘렀다.

쾅!

굉음과 함께 자상검에서 폭사된 검기가 비무장에 내리꽂히자, 바닥에는 삼 장 깊이의 구덩이가 파였다.

자상검의 힘을 일 할도 끌어내지 못한 임비화와 달리, 운청휘는 자상검의 힘을 전부 발휘하였던 것이다.

“가뜩이나 형편없는 검이, 네놈 손에 쥐어지니 쇠붙이만도 못하구나!”

장검을 쥐고 서 있는 운청휘의 붉은 장포가 휘날렸다. 그 뒷모습이 마치 한때를 풍미했던 절세검신 같았다.

“운청휘, 너……!”

고고하게 서 있는 운청휘와 달리, 임비화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로써 임비화는 운청휘에게서만 두 번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처음 운청휘에게 공포를 느낀 건, 3년 전 운청휘가 단 일초로 임위에게 중상을 입혔을 때였다.

그때의 운청휘가 천우성 제일 기재였던 것처럼, 임위는 운청휘 다음가는 기재였음에도 단번에 중상을 입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다시는 운청휘에게 공포를 느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빌어먹을. 3년 전과 무엇이 다른 거지…….”

굴욕을 느낀 임비화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공포를 느낀 것도 모자라, 스스로 운청휘에게 굴복하고 말았으니.

임비화의 표정이 점차 비장해졌다.

“……비화야! 아니 된다!”

이때, 비무장 아래의 임성양은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소리 질렀다.

“안 된다니? 무슨 소리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며 임성양을 바라보았다.

“저기 봐! 임비화가 뭔가를 꺼냈어!”

모든 시선이 다시 임비화에게로 모였다. 임비화가 품에서 선홍색 단약 하나를 꺼내 들고 서 있었다.

비무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금방 단약에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피비린내를 알아차렸다.

“세가의 영광을 위하여!”

임비화는 비무장 아래에 있는 임성양을 바라보며 서글프게 웃었다.

“아버지, 보중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그는 단약을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고 삼켜 버렸다.

“내가 너무 오만했군. 아니, 너를 너무 쉽게 봤다고 해야 하나. 천우성에서 누구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운청휘인데 말이야.”

운청휘를 바라보고 있는 임비화의 표정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에 없었던 평온함 그 자체였다.

다만 평온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무섭게 상승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무서운 기세로 상승하던 임비화의 무위는 성경 9단계를 가볍게 넘어 월경 1단계에 도달했다. 한눈에 봐도 비정상적인 무위의 상승이었다.

다만, 주변을 압도하는 기세와 달리 임비화의 모습은 괴이하게 변해갔다.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고 온몸의 핏줄이 두드러지더니, 역한 피비린내가 섞인 괴상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비무장 주위에 있던 이들은 하나둘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금약(禁藥) 폭혈단(暴血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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