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23화 (23/430)

제23화

운청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형을 바라보았다.

“저를 믿는다면, 수련에 집중하십시오. 나머지는 제게 맡기면 됩니다.”

“수련?”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의혹이 나타났다.

“현이의 영해는 이미 복구가 되었소.”

그때, 운한이 침착하게 덧붙였다.

“예?”

그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운한은 반년 전 단약을 구해 아들의 영해를 복구하려 했지만, 네 장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급하품의 단약은 한 알만 해도 은자 백만 냥이었다. 운씨세가의 1년 수입 절반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한 번에 큰 지출이 생긴다면 자칫 자금 융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더욱이 운현의 영해를 복구하는 데 필요한 단약은 적어도 세 개. 그만한 양을 샀다간 정말로 세가가 몰락할지도 모른다.

“이상하군요. 요즘 세가의 자금 상황은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요. 그렇다면 소가주님이 세가의 돈을 쓰지 않으셨다는 것인데…….”

수뇌부들의 눈에 의혹이 피어올랐다. 세가의 자금을 쓰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디서 비용을 충당한 것일까?

운현의 영해를 복구하는 데 쓰인 단약의 출처가 궁금할 수밖에.

“청휘가 사용한 단약은 왕급하품의 복령단 세 알로, 뺏거나 훔친 것이 아닙니다. ……청휘가 손수 만든 것입니다.”

운현은 동생을 바라보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숨겼던 것을 털어놓았다.

“예? 직접 정제하셨다고요?”

“그게 가능한 것이더냐? 왕급하품의 단약은 왕급 연단사만이 정제할 수 있건만…….”

수뇌부들은 물론, 운한과 태상장로마저 믿을 수 없다는 듯 운청휘를 돌아보았다.

운청휘가 연단사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저 인급 연단사 정도라고 생각했던 그들이다. 그런데 왕급하품의 단약을 정제하다니!

“천원왕조 전체를 놓고 봐도 왕급 연단사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아!”

“황성의 진란 그자가 천원왕조 제일의 연단사라고 하지만 그도 백 세가 넘는 고령에야 겨우 왕급 상품의 연단사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소가주는 이제 겨우 열여덟이니 십 년 안에 천원왕조 제일의 연단사가 되어도 이상할 것 없잖습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운씨세가가 천원왕조 내에 손꼽는 대세가가 되는 일도 시간문제입니다!”

저마다 격앙된 얼굴로 떠들던 수뇌부들이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들의 눈빛에는 의혹도, 불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감출 수 없는 존경심과 동경심이 가득했다.

“그만! 청휘가 왕급 연단사라는 것은 세가의 홍복이지만 그렇다고 임위가 한 달 뒤 돌아온다는 것이 바뀌더냐!”

태상장로가 들떠 있는 사람들을 다시 가라앉혔다. 연단사가 존귀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연단사일 뿐 무인은 아니었다.

태상장로는 운청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노부의 말이 듣기 싫겠지만 모두 사실이지 않느냐. 만약 청휘 네가 연단사라는 신분으로 임위를 상대하려면 방법은 오직 하나, 연단사협회에 가입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연단사는 모두가 탐내는 인재였다. 어떤 세력이든 그들을 데려가려 힘썼고 거절하면 굴복시켜서라도 곁에 두곤 했다.

심지어 영입에 실패한 연단사를 죽여 다른 세력이 데려가는 일을 방지하려는 시도도 잦았다.

그러니 연단사는 귀하게 대접받는 만큼 위험한 직업이었다.

이런 상황은 고아단이라는 이름의 연단사가 나타나며 끝을 맺었다.

그는 혈혈단신의 힘으로 연단사 협회를 만들어 천성대륙의 모든 연단사를 끌어들였다.

회원인 연단사가 외부 세력의 협박을 받거나 살해당하면, 협회는 모든 힘을 동원하여 그 세력과 대항하였다.

그렇게 안전을 보장받은 연단사들은 수 천 년간 협회를 발전시켰고, 연단사 협회는 천성대륙의 가장 큰 세력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연단사 협회의 도움을 받기 위한 무인들의 협조가 있었으니, 만약 협회가 특정 세력을 공격하고자 한다면 셀 수 없는 무인들이 협회를 위해 나설 터였다.

다만, 협회에서 조건 없이 연단사들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연단사들은 특정한 대가를 치러야 가입할 수 있었다.

먼저, 등급이 오르지 않은 연단사들은 매년 협회에 일정한 금액을 내야 했다. 또한, 협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설령 목숨을 내놓는 일일지라도.

물론 그런 상황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연단사들은 살아 있는 동안 협회의 부름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목숨을 내놓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운한과 운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운청휘는 협회에 가입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에.

아니나 다를까 운청휘의 입이 열렸다.

“임위는 제가 처리합니다. 협회 일은 못 들은 것으로 하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운청휘가 협회에 가입해 쓸데없는 속박을 당할 리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운청휘는 속박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선계에서 억만 생령들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버려 두었다. 조치가 필요할 때에도 수하를 시켜 해결할 뿐, 직접 나서지 않았으니까.

“고아단. 그 녀석이 천성대륙에서 넘어왔던 것이군…….”

운청휘가 낮게 중얼거렸다. 선계로 넘어간 고아단이 운청휘의 수하가 되었다는 것은 수뇌부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자신의 수하가 만든 협회에 충성하라니. 소문이라도 나면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운청휘가 협회에 가입하지 않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협회가 자신의 밑으로 들어온다면 모를까.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선계에서처럼 내버려 둘 테지만.

무엇보다 고아단은 운청휘의 수하들 중에서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능력이 출중한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고아단은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운청휘를 알현할 자격도 없지 못했다.

이처럼 볼 일도 드문 고아단이기에, 어디에서 선계로 왔는지를 운청휘가 알 턱이 없었다.

똑똑!

그때, 의사청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가주님! 사소연 소저가 뵙기를 청합니다!”

운몽의 목소리가 밖에서 울렸다.

“사소연?”

운청휘의 아미가 구겨졌다. 지금 운청휘가 천우성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자를 꼽으라면 사소연이었다.

“그게……, 만약 만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실 거라 하였습니다.”

운몽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후회?”

운청휘가 피식 실소를 내뱉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또 무슨 이유를 댈지 궁금하기는 했다.

“객실에서 기다리라 전하게.”

***

운씨세가의 객실.

사소연의 등을 따라 긴 흑발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매끈하고 가녀린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청색 비단옷이 사소연의 자태를 돋보이게 했다. 자색으로는 천우성에서 제일, 천원왕조 내에서도 손에 꼽을 미녀였다.

운청휘가 객실로 들어서자, 사소연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운청휘, 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야?”

사소연은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그 말을 하려고 나를 부른 건가?”

운청휘의 아미가 구겨졌다.

“그래! 네가 아직 날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나도 지금까지 널 잊지 못하고 있고. 예전부터 네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성장하기 전이잖아. 하지만 지금의 너는 달라. 폭혈단을 취한 임비화도 이겨 버렸으니 적어도 성경 9단계의 무위라는 뜻이잖아. 열여덟에 성경 9단계라니, 아마 천원학원에도 너만 한 천재는 몇 안 될걸?”

사소연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의 넌 이젠 날 욕되게 하지 않아. 모든 걸 포기하고 너와 함께할 가치가 있다고. 그게 황성의 엽씨세가와 척을 지는 것일지라도.”

사소연은 자신의 외모와 남자를 다루는 방법에 자신이 있었다.

황성의 엽씨세가 소가주도 그녀에게 정신을 못 차리지 않았던가. 세가의 반대에서 불구하고 사소연을 정혼자로 삼을 만큼.

그러니, 사소연은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운청휘를 다시 자신의 치마폭에 감쌀 수 있다고 믿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해오는 사소연을 보며, 운청휘는 실소하고 말았다.

“내가 아직도 네게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는군? 사소연.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구나. 자신감이 넘치면 오만일 뿐이다. 그리고, 이건 생각하지 않았나?”

“뭘?”

“지금은 널 욕되게 하지 않는다고 했나? 네가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하지만, 감히 너 따위가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다른 이가 말했다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 운청휘가 말하니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뭐, 뭐라고?”

사소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만약 운청휘가 ‘우린 끝났다’라거나 ‘우린 어울리지 않아’ 등의 대답을 했다면, 사소연도 그러려니 했을 터였다.

그러나 운청휘가 내뱉은 말은 사소연의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너 따위라니.

그 말은 거절을 넘어선 명백한 우롱이었다.

타고난 재능은 평범해도 사소연은 빼어난 미모와 스스로 자신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황성 대세가의 후계자도 자신의 치마폭에 감싸지 않았던가.

아무리 무재를 타고났다지만, 배경을 보면 운청휘의 가문은 엽씨세가의 십 분의 일에도 못 미쳤다.

그런 주제에 자신을 비하하고 치욕까지 주다니.

운청휘의 말이 귓가에 되풀이되는 듯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마치 자신을 기방의 기녀처럼 취급하지 않았나.

연신 숨을 몰아쉬던 사소연은 한참 후 가까스로 화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운청휘, 그 말 후회하게 해 주겠어. 맹세해! 언젠가 꼭 후회하게 해 줄게!”

“후회? 너 따위가?”

운청휘가 시답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건 알아두도록. 동승주루에서 널 살려 둔 건 옛정을 봐서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려주지. 그러니 다시 내 눈앞에서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는다면…… 그때는 나를 무정하다 탓하지 말도록.”

운청휘의 말과 동시에, 형체를 이룬 살기가 사소연을 덮쳤다.

반항은 생각할 수도 없는 살기에, 사소연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소연은 모르겠지만, 운청휘로서는 사소연을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최대한의 참을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3년 전에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아낀 사소연이다.

운청휘의 세계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

운청휘는 그때의 아픔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운청휘는 의연하게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

비록 배신이라는 결말일지라도, 사소연의 행복을 빌었다.

우습게도 3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위치가 변하자 그녀가 다시 돌아오려 한다.

짐승도 지나온 풀은 먹지 않는다. 선제 운청휘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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