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그의 말에 운씨세가의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소가주님. 안 됩니다.”
“소가주님! 법보와 단약은 동급이라 해도 수십 배의 가격 차이가 납니다. 더욱이 자상검은 흑시(黑市)에서 수천만 냥에 거래되는 최상급 법보가 아닙니까. 그것마저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아무리 왕급 단약이라 해도 손해가 큽니다!”
“운청휘. 뱉은 말은 지킬 거라고 믿는다.”
임성양은 운청휘가 말을 번복할까 두려워 급히 품에서 짙은 향기를 내뿜는 단약을 꺼내 들었다.
“뭘 멍청히 보고만 있는게야? 빨리 십만 냥 가지고 오지 못할까!”
임성양이 주위를 둘러보며 수하들을 닦달했다.
“조, 존명!”
얼마 지나지 않아 십만 냥이라는 거금이 모였다.
임씨세가의 일원 중 몇몇이 서둘러 광장을 벗어났다.
그들에게 자상검이 귀하긴 했는지, 아니면 임성양이 두려웠는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십만 냥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왕급 하품의 단약과 은자 십만 냥이다.”
임성양은 급히 물건을 운청휘의 손에 쥐여 주고 자상검을 건네받았다.
“하하하. 돌려받았어!”
그는 감격스럽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상검의 가치는 자신의 아들 이상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수천만 냥이나 되는 자상검을 고작 은자 십만 냥과 단약 한 알과 바꾸다니……!”
“……미친 게 틀림없어.”
광장에 모여 있던 관중들은 저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마디씩 뱉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운씨세가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봐도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소가주님. 어찌 이리 쉽게 자상검을 내주신단 말입니까…….”
차마 운청휘를 나무랄 수 없기에, 그들은 그저 울상만 지으며 푸념했다.
“그래 봤자 한낱 고철 덩어리일 뿐.”
운청휘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뭐? 지금 고철 덩어리라고 했나? 하하하!”
그 말에, 임성양은 임비화의 죽음도 잊어버린 듯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무지하기 짝이 없구나! 왕급하품의 법보를 고철 덩어리라 한 게냐?”
“그럼, 고철 덩어리가 맞는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보던지.”
임성양을 향해 냉소를 지은 운청휘가 곧바로 몸을 돌려 비무대를 내려갔다.
쨍!
그 순간, 운청휘의 등 뒤에서 쇠가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자상검이 부러졌다.
왕급하품의 법보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다만, 운청휘가 임비화를 향해 날린 일격은 왕급하품의 법보가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을 품고 있었다.
한마디로, 과도한 힘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것도 자상검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의 두세 배는 훌쩍 넘어가는 힘을.
자상검을 빼앗는 것부터가 운청휘의 계산이었다.
임비화에게서 검을 뺏는 순간, 참천신검의 검집은 자상검의 영성(灵性)을 모조리 흡수했다.
만약 임비화를 향한 일격을 날리지 않았더라도,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고철 덩어리를 왕급하품의 단약과 은자 십만 냥으로 바꾸었으니, 이만한 장사가 어디 있을까.
“자, 자상검이 부러지다니!”
그 광경에, 누군가가 경악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어쩐지 너무 쉽게 넘겨주나 했더니, 고철덩어리로 변해서 그런 것이었군.”
“그런데 말이야. 어쨌거나 왕급하품의 법보잖아, 어떻게 저리 쉽게 부러지는 거야?”
“하하. 자네 제대로 본 건가? 방금 그건 왕급하품의 법보가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어. 그 때문에 과부하가 걸린 거겠지. 평범한 사람이 체력의 한계를 넘겨 힘을 쓴 것과 다름없어. 이백 근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자가 사백 근, 육백 근을 든다고 생각해 보게. 몸이 성하겠는가? 천 근을 실을 수 있는 마차에 강제로 만 근의 물건을 싣는다면 마차가 부서지는 것과 같은 이칠세.”
“운청휘의 심계가 이 정도로 깊을 줄이야……. 이미 폐물이 되어버린 자상검으로 왕급하품의 단약과 십만 냥의 은자를 받아냈으니…….”
“임성양은 아마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 것 같은데. 겨우 돌려받은 자상검이 부러졌으니!”
저마다 상황을 추측하기에 바쁜 이들은 급기야 임성양을 비웃고 있었다.
“운청휘!”
임성양의 이를 가는 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그는 전신의 힘줄이 솟은 채로 두 눈에 불을 켜고 운청휘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푸학!
끝내 화를 참지 못한 임성양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혼절했다.
그가 건넨 단약은 증기단으로, 취기단보다 상급의 단약이었다. 이번 생에서 월경으로 넘어가는 데 도움을 줄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은자 십만 냥까지 얹어 고철 덩어리와 바꾸었으니…….
“겨우 이 정도로 혼절하다니. 정말 대단한 위인이로구나.”
운청휘는 하찮다는 듯 임성양을 돌아보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쯤이면 저쪽도 끝이 났겠군.”
“청휘야, 그게 무슨 소리냐?”
그 말에 운한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백부님께서는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임박, 그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영약원에 갔을 겁니다.”
임박은 임씨세가 가주의 이름이었다.
“영약원에?”
운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운청휘의 말대로라면, 임박은 영약원을 강제로 뺏으러 간 셈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임씨세가의 오인철 광산처럼, 운씨세가의 영약원도 천원왕조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임박이 미치지 않고서야, 내기까지 걸어두고 강제로 뺏을 리가 없었다.
“약재가 아닙니다. 영수(靈獸) 한 마리를 위해서입니다.”
운청휘는 영약원에서 있었던 일을 대강 일러주었다.
영수를 발견하고, 운호가 임씨세가와 내통했던 일까지 듣게 되자, 운씨세가의 일원들은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뭐? 영약원에 영수(靈獸)가 있다고?”
“운호, 이 괘씸한 놈! 감히 세가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임씨세가와 내통해?”
“과연! 오인철 광산까지 내걸며 도박을 하더니, 영약원의 영수를 알고 있었던 것이구나!”
“다행히 소가주님이 선견지명으로 영양원에 다녀왔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꼼짝없이 당했겠어!”
“소가주님, 그 영수(靈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선이 일제히 운청휘에게로 모여들었다.
“이미 거두었습니다.”
운청휘는 그 영수(靈獸)가 혼돈 영수(靈獸)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후…….”
삽시간에 긴 한숨들이 흘러나왔다.
영수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천우성 삼대 세력의 자산을 합쳐본들 그 발끝에나 미칠 수 있을까. 천원왕조에서도 가장 큰 몇몇 세가만이 영수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가령, 천원왕조 황실이 그러했다.
“영약원은 손실이 없겠습니까?”
누군가 긴장한 듯 물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미 그에 대한 준비도 다 마쳤습니다.”
운청휘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투에 늦은 것은 그 준비를 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때, 멀리서부터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은 덩치가 소만큼 크고 몸통이 온통 붉은 말이었다.
하루에 오천 리를 달린다는 혈한마가 분주히 달려오고 있었다.
“대장로님! 비화 도련님이 이겼습니까?”
말에 타고 있던 무인은 멀리서부터 소리치고 있었다.
“이런…….”
임성양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말에 타고 있던 중년의 무인은 혼절해 있는 임성양을 보고 짐작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임비화의 패배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너희 둘, 가서 대장로를 모셔!”
중년인은 지시를 하면서도 시선은 운청휘를 향해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달 뒤 우리 소가주님이 돌아오시면 재결투를 신청할 것이야!”
그 말과 함께, 임씨세가의 사람들은 서둘러 천우광장을 떠났다.
“청휘야, 저게 무슨 소리냐? 말투로 보아하니 큰 낭패를 본 것 같은데?”
임씨세가의 사람들이 떠나자, 운한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방금 말을 타고 온 자는 임성양의 심복, 임전(林战)이었다. 임성양과 함께 나타나지 않더니, 임박을 따라 영약원에 갔던 모양이다.
“다 죽을 줄 알았더니, 저자를 포함해 임박도 살아 있나 봅니다.”
운청휘가 예상이 빗나갔다는 듯 내뱉었다.
“백부님, 이제 돌아가시죠.”
그는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
운씨세가의 의사청.
운한 부자와 새로 뽑은 고위층, 태상장로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운청휘는 중앙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무심한 듯 탁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임박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태상장로님, 제게 하실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운청휘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듣는 이들은 움찔했다. 운청휘가 태상장로를 나무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상장로는 화를 내는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소가주가 알아야 할 것이 있네. 반년 전, 임박의 아들 임위가 천원학원에 입문했다. 이제 한 달 뒤면 돌아온다고 하더구나. 만약 노부가 임박에게 손을 썼다면, 필시 운씨세가에도 해가 미칠 것이야.”
“천원학원!”
“소문이 사실이었군. 임위가 정말로 천원학원에 입문했어.”
운청휘를 제외한 이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천원학원은 천원왕조 황실의 직속 학원이다.
천원왕조에서 가장 큰 학원인 만큼 제자들도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황제를 알현할 때도 무릎을 꿇지 않으며, 세가에서 앞다투어 영입될 정도였다.
더군다나 황실에서 제후로 봉하는 일도 잦으니, 그 위세를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하필 임위가 그 천원학원의 제자라니. 난처한 상황이었다.
운현은 하나 남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이를 갈고 있었다. 임위가 강해질수록, 지위가 높아질수록 복수가 어려워지지 않는가.
홀로 평온함을 유지하던 운청휘가 운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임위가 천원학원의 제자이든 아니든, 형님의 복수는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운현이 흠칫 놀라더니 목이 메는 듯 겨우 입을 열었다.
“청휘야. 이제 너만 믿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