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지켜보는 이들은 이 순간이 진미아의 최후라고 생각했으나, 진정한 최후는 아니였다.
진미아의 영혼은 승천하지 못하고 운청휘에게 붙들려 있었다.
“아아아……!”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진미아의 영혼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녀의 영혼에 내려진 저주는 영혼을 서서히 불태우고 깎아 내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끝없이 안겨 주리라.
막풍과 황기령은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
진미아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도주, 단 하나였다.
다만 그들이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순간, 운청휘의 영력화장이 그들의 몸을 거세게 찍어눌렀다.
펑! 펑!
연달아 굉음이 울리며, 막풍과 황기령은 지면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은 이미 온몸의 뼈가 부서져, 피거품을 내뱉으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하하하……!”
소도도가 섬뜩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피투성이가 된 그가 막풍과 황기령을 향해 천천히 한 발짝씩 내디뎠다.
“이 몸이 말했지 않느냐, 네놈들 전부 죽여주겠다고!”
음험한 웃음을 흘리며, 소도도는 두 사람의 앞에 멈춰 섰다.
그가 신발 한 짝을 벗어들었다.
짜악!
경쾌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소도도는 영력을 싣지 않고 순수한 힘만으로, 정확히는 신발 바닥으로 둘을 내리치고 있었다. 황기령과 막풍은 온몸에 못이 박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목숨은 쉬이 끊어지지 않았다.
곧 그들의 이가 부러지며 피거품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짜아악!
짜악! 짝! 짝짝!
소도도는 멈추지 않고 한동안 그 둘을 내리쳤는데, 그들이 완전히 숨이 끊어지자 손이 우뚝 멎었다.
이때 막풍과 황기령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꼼짝도 못 하고 소도도를 지켜보던 이들은 급기야 공포에 질려 숨을 들이켰다.
소도도가 이렇게나 잔인한 성정이었던가!
“남은 자들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담담히 지켜보던 운청휘가 소도도에게 물었다.
“저놈들?”
소도도의 시선이 무대 가장자리에서 몸을 웅크린 백여 명의 생도에게 향했다.
그들은 막풍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공격을 가했고, 이미 삼사십 명 가까이 소도도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변이 없다면, 공휘가 오겠지 않겠나?”
소도도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이미 와 있다.”
운청휘가 대답했다.
“그건 곤란하군. 우리가 저들을 죽이는 걸 허락하지 않을 텐데 말일세.”
소도도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죽일 건지 살릴 건지, 말만 해.”
운청휘의 목소리는 간결하고, 힘이 실려 있었다.
“공휘를 죽일 수 있겠나?”
소도도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곧 고개를 내저었다.
“됐네. 화풀이는 다 했으니. 저 쓰레기들을 죽이든 말든, 상관없다네.”
무리에 섞여 있던 청의 노인이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운청휘의 성장이 매우 빠르군. 노부가 진미아에게 준 지급 신병은 대항할 수 없을 줄 알았건만……. 결국 해냈구나.”
그게 낮게 중얼거리며 무대 위로 몸을 훌쩍 날렸다.
“보라고, 공휘 부원장이야!”
“운청휘와 소도도는 끝난 거나 다름없겠어. 공휘 부원장은 형당을 관장하잖아! 학관에서 살인이 일어나면 누구보다 엄격하게 처리하는 분이야. 저들은 수십 명의 생도를 죽였고, 막풍 교관님까지 죽였다고!”
생도들이 저마다 수군거리고 있을 때.
운청휘와 소도도는 또다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들은 소엽을 데리고 무대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경공을 펼쳐 빠른 속도로…… 떠났다!
공휘는 멀어지는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다가,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입을 열었다.
“막풍은 심판의 신분으로 공정성을 잃고 진미아, 조여룡, 황기령과 결탁하였다! 더욱이 생도들에게 소도도를 공격하고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영력이 담긴 공휘의 중후한 목소리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귓가에 똑똑히 들려왔다.
“이에 운청휘가 호연지기를 품어, 학관의 문호를 깨끗이 하고 큰 공을 세웠음을 알린다!”
말을 마친 공휘는 더는 볼 일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빠르게 무대를 떠나 버렸다.
운청휘가 소도도가 비록 수세에 몰리긴 했으나, 이렇게 많이 죽였으니 과한 방어가 아닌가. 잘못이 없다고 해도 결코 공이라고 볼 순 없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공휘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공휘는 운청휘와 소도도를 보호하고 있었다.
“운청휘와 소도도가 공휘 부원장의 보호를 받고 있었구만!”
“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지금껏 그리 행동한 거였네!”
* * *
운청휘와 소도도는 빠른 속도로 질주해 기재 반으로 돌아왔다.
“특별히 중요한 일이 없다면, 방해하지 말도록. 폐관 수련을 할테니.”
소도도에게 당부한 운청휘는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위이잉……!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검집이 저절로 운청휘의 손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운청휘는 차오르는 흥분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황급 법보를 하나만 더 삼킨다면, 참천신검의 행방을 감지할 수 있다하였지?”
운청휘가 문득 말을 멈추더니 긴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신검의 행방을 말하도록.”
위이잉…….
칼집에 담겨 있던 지급 신병이 한 줌의 가루로 변해 바닥에 흩어졌다.
검집은 운청휘에게 뭔가를 전하려는 듯 연이어 진동했다.
“이미…… 참천심검과 소통을 했었구나!”
별안간 운청휘가 눈을 부릅떴다. 숨길 수 없는 열망과 동요가 그의 눈빛을 더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
운청휘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다락방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성공학관 내에 그의 명성이 자자했다.
거의 모든 생도가 얼굴만 마주치면 운청휘의 이야기를 꺼내기 바빴다.
“들었어? 운청휘가 내원 대항전에서 벌인 일. 상급 생도인 진미아, 황기령뿐만 아니라 심판인 상급 교관 막풍도 죽였다는군.”
“어디 내원 대항전뿐이야? 외원 대항전에서도 운청휘는 사람을 죽였어. 그중엔 황성 운가의 방계 자제 운비와 심판 막운도 있었다는군. 막풍이 운청휘를 자극한 건 막운의 복수를 하려는 거였어!”
“맞아. 그보다, 중요한 건 형당을 관장하는 공 부원장의 태도야. 운청휘를 처벌하긴커녕, 생도들 앞에서 그를 치켜세웠다네!”
“뭐? 진미아도 운청휘에게 죽었다고?”
어떤 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맙소사. 그, 그녀는 3대 성도 중 한 명인 운해의 심복이잖아!”
“운청휘는 정말로 겁이 없군. 성도 운해의 사람까지 죽이다니……!”
* * *
학관에서 수만 리 떨어진 황성.
규모가 삼백만 평에 달하는 호화로운 저택 안에서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어두운 표정을 내비쳤다. 그는 막 하인의 보고를 받은 참이었다.
“진미아가 죽고, 지급 신병도 뺏겨?”
청년이 말을 내뱉을 때마다, 그에게서 폭발하는 기세가 자리에 있는 이들을 무섭게 덮쳐왔다.
청년을 제외한 이들은 어느새 식은땀으로 등이 흥건했다.
그들은 최소 월경 5단계 이상에, 몇 명은 월경 9단계의 무인이지만, 청년의 분노 앞에서는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황성 내, 황궁처럼 화려함을 자랑하는 또 하나의 저택.
간소한 옷차림에도 제왕과 같은 기품을 뿜어내는 한 청년도 하인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의 낯빛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곧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진미아가 죽고, 지급 신병도 빼앗겼다라……. 이번엔 운해라도 어려웠겠군. 성공학관에 전하게. 운청휘와 소도도를 겨냥한 모든 공격을 중지하지. 자아, 운해가 얼마나 골머리를 앓는지 지켜봐야겠어.”
마찬가지로 황성 내, 호화로움의 극치에 달한 또 다른 저택.
다소 내성적으로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패기를 뿜어내는 청년이 경국지색의 여인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흑돌을 쥔 청년이 손에서 바둑돌을 떨어트리더니 무표정하게 말했다.
“효언(晓嫣), 운청휘는 네 말처럼 만만치 않구나.”
“엽천 오라버니, 그게 무슨 소리죠?”
백돌을 쥔 여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반 시진 전에 성공학관에서 소식이 왔다. 이번엔 운해가 실수했더군. 심복 진미아도 잃고 지급 신병도 빼앗겼다지. 그 범인이 바로 운청휘라 하지 않더냐.”
톡.
여인이 들고 있던 백돌을 땅에 떨어트렸다.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엽천 오라버니, 말씀하신 운해가 오라버니처럼 성공학관의 성도 중 하나인 그 운해인가요?”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 덕분에 운청휘를 대적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요. 이제 운해가 맹렬하게 그를 압박할 테니!”
* * *
외부의 일에 신경 쓸 만큼, 운청휘는 한가하지 않았다.
그가 다락방에 틀어박힌 지 벌써 7일이 흘렀다.
그동안 내원 대항전이 종료되었고, 정식으로 학관 대항전이 개최되었다.
“아이고, 공 부원장님, 또 오셨습니까. 운 형제는 여전히 문을 잠그고 있습니다만.”
그동안 소도도는 중상을 입은 몸으로 운청휘의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소도도. 이 일은 절대 사소하지 않네. 운청휘가 지급 신병을 돌려주지 않으면, 운해의 노여움만 사게 될 걸세.”
공휘 또한 매일 운청휘의 방을 찾아왔는데, 운해의 지급 신병을 돌려받을 목적이었다.
“헤헤, 공 부원장님, 그 말에 다른 사람은 놀라겠지만, 운 형제가 눈썹이라도 까딱할 것 같습니까?”
소도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글맞게 말했다.
“공 부원장님, 운 형제에 대해 내가 아는 한 확실히 말할 수 있지요. 지급 신병을 돌려준다? 불가능합니다!”
공휘의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그는 소도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한동안 침묵하던 공휘가 무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운청휘가 나오면 바로 나를 찾아오게나. 이미 운해가 움직이고 있다네.”
“이미?”
소도도의 얼굴에 실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