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흑풍협곡에서 수천 장 떨어진 하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모두 30여 명쯤 되어 보이는 이들은 전부 무인인 듯 철혈의 기를 뿜어내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중년인 한 명이 중후한 영력을 뿜어내며 날고 있었다.
“가주님, 저희가 저 샘을 차지하기는 다소 어려울 듯합니다.”
“가주님, 천검종에서 저희 운가로 보낸 소식대로라면 혈문전의 진관해가 장로로 진급했다고 합니다.”
“그의 무위가 선천경이라고 하나, 천검종 장로라는 신분은 꽤 버겁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무리의 중앙에 있는 중년인에게 끊임없이 보고했다.
“진관해가 장로가 되었느냐? 흥, 실속은 없으니 두려워할 것 없다.”
중년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더욱이, 우리의 목적은 샘이 아닐세. 샘 옆에서 자라는 청송과수라네!”
“청송과수요?”
의아한 시선이 중년인에게 향했다.
“아침에 고문을 해서 알아내었네. 협곡을 조사한 이들이 흉수의 공격을 받은 건, 청송과수에 접근했기 때문이지. 진귀한 천재지보가 성장할 땐 종종 흉수가 지키곤 한다네. 이토록 영기가 짙은 샘에서 자라는 천재지보가 평범할 리가 없으니, 서아(舒儿)에게 통지해 두었네.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도착할 테니, 진관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는가.”
중년인은 사뭇 시큰둥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말투에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옅게 배어났다.
“소가주께서 돌아오십니까?”
중년인의 말에 옆에 있던 이가 눈을 반짝였다.
중년인, 즉 가주가 말하는 ‘서아’는 운서(云舒)로, 그의 아들이었다.
10년 전, 천검종의 제자로 들어간 운서는 현재 천검종의 전수 제자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전수 제자가 되려면 각종 검증을 통과해야 할뿐더러 영단경의 무위를 전제로 하고 있으니, 그가 온다면 선천경의 장로 한 명쯤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어, 혈문진이 제법 하는군. 모든 이들이 협곡을 가로막고 있을 줄이야.”
“헤헤, 이렇게 딱 맞으니, 저희 몇 명의 힘을 아낄 수 있겠네요.”
협곡의 입구가 막혀 있는 장면에, 운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비웃음을 흘렸다.
협곡 부근에 있던 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운역 운가의 사람이다!”
“운역 운가의 4대 장로, 8대 호법, 10대 당주까지 모두 왔다니!”
“응? 제일 가운데 있는 사람은 운패천(云霸天) 같아!”
누군가가 운역 운가 일행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뭐라고, 운패천도 왔다고?”
그 이름이 울린 순간, 마치 폭뢰가 터진 듯했다.
운패천. 안양행성의 사람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는 운역 운가의 가주였고, 운역 운가는 안양행성의 지배자이므로.
“헤헤, 이제 재밌어지겠어.”
“협곡을 점거했던 혈문전도 이제 끝이야! 운역 운가의 힘을 어떻게 당해내겠나?”
“당연하지. 혈문전은 그저 안양성 최대의 세력이지만, 운가는 안양행성 전체를 주무르는 세력이야. 혈문전이 상대나 되겠어?”
“하지만 전주인 진관해가 천검종의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천검종과도 충돌하게 될 텐데?”
“멍청하긴. 운가는 운역의 패자가 아닌가. 이익 관계만 일치하면 천검종도 혈문전을 없애는 일을 눈 감아 줄 거라네.”
“맞아, 안 그래도 운가의 많은 일원들이 천검종에 있다고 들었어.”
“게다가 운패천의 아들 운서는 천검종의 전수 제자라고 하더군.”
사람들이 속닥거리고 있을 때, 운역 운가의 사람들이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협곡을 메우고 있던 이들은 마치 물살이 갈라지듯 길을 내주며 고개를 숙였다.
운역 운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그들이 내준 길을 따라 걸어들어갔다.
“응? 이 검은 선은 무엇인가?”
운가의 사람들은 협곡을 들어가기 전 화염에 휩싸인 검은 선을 발견했다.
“대인들께 아룁니다. 혈문전의 젊은 고수가 그린 것으로, 누구든지 선을 넘으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개중 용기를 낸 양경의 무인이 앞으로 나와 공손히 말했다.
“이 선을 넘으면 죽는다고?”
운역 운가 사람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범 없는 산에는 여우가 설친다더니, 고작 혈문전이 여기서 위세를 뽐내느냐.”
“흥, 그 위세도 얼마 가지 않겠군!”
“가주님, 혈문전을 협곡 밖으로 끌어내는 게 어떻습니까?”
누군가 입술을 핥으며 제안했다. 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흥분이 가득했다.
“하하하, 괜찮군. 우리 운가의 위풍을 드러낼 뿐 아니라 혈문전의 예기도 꺾을 수 있겠어.”
“이 선을 그었다는 자를 저희의 가랑이 아래로 기어 다니게 만들겠습니다.”
짙은 오만이 담긴 운패천의 얼굴은 이미 혈문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일행 중 한 명을 바라보았다.
“설(薛) 당주, 들어가서 혈문전의 사람들을 전부 나오게 하시오. 그 젊은 ‘고수’라는 자는 어떻게 처리하든 자네에게 맡기지.”
“감사합니다, 가주님! 반드시 녀석을 제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게 만들겠습니다!”
40대의 ‘설 당주’가 만면에 화색을 띠며 명령을 받들었다. 그가 곧장 협곡으로 들어가려 했다.
“멈춰!”
“운 공자의 명령이다. 선을 넘는 자는 죽는다!”
혈문전의 두 장로가 급히 날아와 협곡 입구를 가로막았다.
“응? 우리 운가의 사람을 봤는데도 감히 막는다고?”
설 당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즉시 두 장로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펑펑펑!
수십 합을 겨루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혈문전의 두 장로들이 피를 토하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역시 운역 운가야. 당주 하나가 이 지경까지 강하다니!”
“혈문전의 장로들은 선천경 4단계인데 동시에 저 둘을 격파했어. 설 당주는 적어도 선천경 5단계의 무인이 확실해!”
“운역 운가에선 가주가 제일 강하고, 장로, 호법, 당주 순으로 강하다고들 하지. 당주가 저만한 수준이라면, 그 위의 사람들은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구경하던 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충격을 받아 떠드는 와중에, 진관해가 수백 명의 혈문전도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운설(云薛), 감히 나 진관해의 사람을 다치게 했는가!”
비록 영신이 선천경의 경지라고 하나, 진관해는 수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의 본신은 영단경의 노괴가 아니던가.
자연스레 몸에 배인 기가 있었고, 기가 실린 호통을 내지르자 설 당주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무인 간의 싸움에서 기백에 밀리다니, 이만한 창피가 어디 있을까! 설 당주는 이를 바득 갈며 진관해를 노려보았다.
“고작 혈문전의 전주가 본 당주에게 기세등등하게 나오는구나. 네놈의 팔다리를 잘라 주마!”
말이 떨어지고, 설 당주가 진관해를 공격했다.
“응? 운가가 지금 천검종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냐?”
더 짙은 기가 진관해의 몸에서 나왔고, 순식간에 설 당주의 공격을 막아냈다.
“설 당주, 걱정하지 마시오. 저 장로가 천검종을 대표할 순 없으니!”
그때, 설 당주의 뒤에서 운패천이 소리쳤다.
“죽어라, 진관해!”
가주의 말을 들은 설 당주는 다시금 오행의 힘을 끌어 올려 진관해에게 달려들었다.
진관해의 두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더니, 아공간 반지에서 깃발을 꺼내들었다.
“나생문!”
진관해가 소리치자, 깃발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순식간에 도천살진을 형성했다.
무위에 있어, 진관해의 영신은 선천경 1단계에 불과하지만 그는 진법대사다.
진법으로 무위의 격차를 뛰어넘어 적을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진 밖에서 보니 나생문의 안에서는 번갯불이 번쩍였고, 설 당주는 곧바로 무수한 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
“가주님, 진관해는 진법대사입니다. 천검종의 장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진법에 조예가 깊은 까닭이지요. 저와 탕(汤) 당주가 설 당주를 도와도 되겠습니까?”
곧 당주 한 명이 나서서 운패천에게 말했다.
“그리하게. 여차하면, 진관해를 죽여도 되네!”
운패천의 눈에 살기가 번쩍였다.
“네!”
명령을 받은 두 당주는 다음 순간, 진관해의 코앞에 나타나 그를 공격해 들어갔다.
“당할까 보냐!”
진관해는 노련하게 또 다른 나생문을 펼쳐, 두 당주를 그대로 가두었다.
“흥, 진법은 신기하지만, 누가 펼쳤는지 봐야지!”
“겨우 선천경 1단계의 무위로 진법에 통달했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두 당주가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무위로 진관해의 진을 부수고 나왔다.
“연환화구술(连环火球术)!”
“지진술(地震术)!”
두 명의 당주가 거의 동시에 나생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진술!”
나생문 안에서도 설 당주의 호기로운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도 두 당주와 마찬가지로 오행의 힘을 끌어올렸다.
콰르릉!
3가지 오행의 힘이 동시에 몰아치니, 나생문은 순식간에 파괴되고 말았다. 그 순간, 진관해가 피를 울컥 토했다.
“전주!”
혈문전의 사람들이 전부 둘러서서 진관해를 부축했다.
“전주, 괜찮으십니까!”
진관해가 다시 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컥컥, 나…… 나는 괜찮다네.”
진관해가 힘겹게 대답한 순간, 협곡 안에서 붉은 장포를 입고 빈 검집을 둘러멘 청년이 훌쩍 날아 모습을 드러내었다.
청년의 두 눈은 싸늘한 시선을 담고 있었는데, 방향은 운가의 세 당주에게 향해 있었다.
“내 제자를 다치게 했으니, 살려 두지 않으마.”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력으로 만들어 낸 거대한 손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설 당주를 내리쳤다.
“영력 공격, 감히 내 앞에서 날뛰는 게냐?”
설 당주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토 속성 오행의 힘을 끌어올렸다.
“토룡포효(土龙咆哮)!”
설 당주가 딛고 있는 지면이 갈라지고, 흙더미가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형상을 갖춘 토룡은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운청휘의 영력화장에 맞부딪쳤다.
콰아앙!
천지를 떨어 울리는 폭음만이 쟁쟁하게 들렸다.
거대한 토룡은 따귀를 얻어맞은 듯 고개가 돌아가며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설 당주, 조심하십시오……!”
두 명의 당주가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그들이 손쓸 겨를도 없었다.
영력화장은 그대로 설 당주의 머리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