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콰아앙!
그 소리에 양경의 무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아야만 했다. 선천경의 무인들마저 미간을 찌푸렸다.
영력화장이 일으킨 흙먼지가 가라앉은 후에야, 사람들은 설 당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지면에 패인 거대한 손자국 중심에 널브러져 있었다. 갓 도축한 고기처럼 선홍빛으로 물든 그의 몸에서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또 저 공격인가!”
지켜보던 이들이 기겁하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선천경 2단계의 반산 노조도 저 기술에 고기 반죽이 되었지.”
“말하지 않았나. 선을 넘는 자는 죽는다고. 한데 선을 넘을 뿐만 아니라 내 제자까지 해한다?”
공중에 뜬 운청휘가 실눈이 되어 물었다.
그의 선고와도 같은 말이 끝나자, 또다시 거대한 손이 모습을 드러내어 남은 당주를 향해 쇄도했다.
“이놈, 감히 설 당주를 죽이다니, 네놈의 목숨을 받겠다!”
호통을 치는 두 당주의 뒤에서 오행의 힘이 맹렬히 휘몰아쳤다.
“죽어라!”
두 오행의 힘이 뒤엉키며 동시에 운청휘를 향했다.
콰아앙!
순식간에 오행의 힘과 거대한 손이 부딪치며 지면까지 흔들거렸다.
그 여파에 비틀거리던 이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운가의 두 당주도 선천경 5단계의 강자야. 그들이 전력으로 오행의 힘으로 공격했는데…… 저 공격을) 당해낼 수 있을까?”
그들의 의문에도 일리가 있었다.
공중에서 세 가지 힘이 계속해서 충돌했으나, 그중 두 힘은 서로 힘을 합쳐 하나를 상대하고 있었다.
“저기 봐! 저자가 밀리는 모양이야!”
누군가 다급히 외쳤다. 과연, 그의 말대로 영력화장이 밀려나고 있었다.
영력화장이 차츰 밀려나며 허공에 덧없는 불빛을 뿌렸고, 차츰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영력화장이…… 완전히 사라졌다!
“운가의 두 당주가 이겼나 봐!”
누군가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또다시 거대한 손을 만들어 낸 운청휘가 공격을 이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손들’이었다. 운청휘는 쉬지 않고 거대한 손을 연거푸 만들어 내어 두 당주를 덮쳐들었다.
“하나는 막을 수 있어도, 10개, 20개, 30개는 어찌 막을 테냐!”
두 당주는 오행의 힘으로 맞섰으나, 금세 수십 개의 영력화장에 밀려 비틀거렸다.
콰르릉!
콰르릉!
콰르릉!
연거푸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세상이 끝난 듯이 이어졌다. 흑풍협곡만이 아니라 반경 수십만 장의 천지가 굉음에 흔들리며 몸살을 앓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진동이 가라앉고 대지가 잠잠해졌다.
뿌옇게 흩날리는 흙먼지가 사라지자 대지에는 삼백 평 넓이의 거대한 구덩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구덩이에서는 아직도 잔잔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간신히 눈을 뜬 이들이 구덩이를 들여다보며, 운가의 두 당주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낙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 두 사람은 시체마저도 남기지 못했군……!”
이어서 사람들이 운청휘를 무서운 눈으로 바라봤다.
“대체 저자의 무위가 얼마나 심오한 건가. 선천경 무인 4명을 연달아 죽이다니!”
“반산 노조의 죽음은 그렇다 쳐도, 운가의 당주들은 선천경 5단계가 아닌가! 그들을 어찌……!”
“게다가 두 명은 동시에 죽지 않았나!”
운청휘는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든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와, 운가의 사람들을 무미건조한 눈으로 응시했다.
“네놈들이 누구인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마. 이 선을 넘어오는 자는 죽여 주마.”
“포악하구나!”
“운가의 당주 3명을 죽였는데 이제는 운가 가주까지 협박하다니!”
사람들은 또다시 놀라며 발끈했다. 운청휘의 말은 운가를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대단하구나!”
운패천은 침울한 얼굴로 운청휘를 바라봤다.
“운가의 가주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껴 보았다. 4대 장로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공격하여, 반드시 저들을 죽여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가주!”
운패천의 명을 받은 이들은 8명의 호법과 9명의 당주, 직위가 없는 8명의 선천경 무인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살기를 흘리며 운청휘와 혈문전의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운패천이 방금 한 말은 운청휘뿐만 아니라 혈문전의 일원들도 공격하라는 뜻이었다. 순식간에 20여 개의 신형이 동시에 운청휘가 그려 놓은 선을 향해 다가왔다.
운청휘는 망설임 없이, 그러나 그들이 선을 넘는 순간까지 기다린 후에 영력화장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에 운역 운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오행의 힘으로 운청휘에게 맞섰다.
콰르릉!
수많은 오행의 힘이 수십 개의 영력화장과 맞부딪치며, 팽팽한 대치를 이루었다.
몇 번이나 부딪쳤을까, 영력화장이 허공에 흩어지자 그 기세를 빌어 오행의 힘이 운청휘를 휘감았다.
“저런 공격이라면 끝날 수밖에 없겠구만.”
사람들이 끝을 직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순간, 운청휘의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의 장막!”
그의 부름에 답하듯 푸른 화염 한 줄기가 운청휘의 앞에 피어오르더니, 마치 그를 지키듯이 막을 이루었다.
펑펑펑!
콰아아-
연달아 막을 두드리는 오행의 힘은 짙은 연기와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은 짙은 안개가 깔린 듯 자욱한 연기로 가득했고, 반경 삼백여 장의 지면은 보이지도 않는 지경이었다.
“죽었겠지?”
“쓸데없는 소리마. 오행의 힘이 25번이나 퍼부었다고. 저 정도면 아무리 거대한 산도 평지가 될 위력이라고.”
“개중 운가의 8호법이 내보낸 오행의 힘을 생각해 보라고. 운가의 호법은 최소 선천경 7단계의 무위를 지녀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 대단한 힘을 합쳐도, 이 정도더냐?”
이번에야말로 운청휘의 죽음을 확신하는 이들에게, 운청휘는 거만하고도 위엄 있는 음성으로 절망을 안겨 주었다.
“뭐라고, 죽지 않았다니……!”
자욱한 연기의 중심에서, 별안간 돌풍이 일었다.
후우우……!
연기를 걷어간 바람이 어찌나 세차던지, 비틀거리는 이들마저 있었다.
운청휘는 평소처럼 붉은 장포에 빈 검집을 짊어진 채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홀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듯 멀끔했고, 긴 머리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허리에 와 닿았다.
경악하는 시선들을 받으며, 운청휘는 백옥 같은 손을 내밀어 보였다.
“오는게 있다면 가는게 있지. 이번엔 내 차례로구나.”
말을 마친 운청휘는 백옥 같은 손을 단숨에 휘둘렀다.
이번에는 오행의 힘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손이 하늘을 뒤덮었다.
운가의 사람들은 짙은 먹구름 아래 맨몸으로 놓인 듯 막막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같은 선천경의 경지여도, 오행의 힘을 이리 공포스럽게 다룰 줄이야!
쿠르릉!
그들이 저항하지도 못하는 사이, 오행의 손이 운가의 사람들을 내리쳤다.
마치 거대한 유성군이 내린 듯했다. 일순 천지가 고요해졌다가, 온 천지를 찢어발길 듯한 굉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이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충격만으로도 온몸이 갈가리 찢겨나갔을 터였다.
많은 양경 무인들마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침음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들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운역 운가의 선천경 무인 25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머리카락 한 올, 살점 한 조각조차 세상에 남기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도대체 누구냐!”
운패천의 고함이 주변의 적막을 깨트렸다.
이때 운패천에게 더 이상 운청휘를 업신여기는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전에 없는 진중한 눈빛으로 운청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에게 알려줄 것은 한 가지뿐이다. 이 선을 넘는 자는 죽여 주마. 그게 전부다.”
운청휘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을 마쳤다. 그가 진관해에게 다가가 한 손을 그의 등에 얹자, 따스한 기운이 그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어서 영라반지에서 단약을 꺼낸 운청휘가 진관해의 입에 단약을 넣어주며 말했다.
“이대로 단약을 연화시키면 다 회복되겠군. 연화에 집중하도록.”
운청휘의 노골적인 무시에, 운패천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건방진 놈! 호법과 당주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 가주님마저 무시하고 있는데,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저자를 살려 둔다면, 우리 운역 운가의 위신이 바닥으로 떨어질 겁니다!”
“우리 다섯이라면 보통의 영단경 무인도 죽일 수 있으니, 저희가 저자를 죽이겠습니다. 가주!”
운가의 네 장로가 분노하며 운패천을 설득했다.
그들은 운역 운가 최강의 전력으로, 장로들은 선천경 9단계였으며 가주 운패천은 절반의 영단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데도 운패천은 어딘가 망설이는 듯 대답을 꺼렸다.
“설마 저자가 영단경의 무인일지 우려하십니까, 가주?”
운패천의 망설임을 발견한 듯 한 명이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가주. 저자가 정말 영단경의 무인이었다면 선을 긋기 전에 모두를 죽이고도 남았을 겁니다.”
저자는 영단경의 경지가 아님이 확실합니다. 저희가 연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운패천이 가만히 듣고 보니 그들의 말이 이치에 맞는 듯했다.
정말로 운청휘가 영단경의 강자였다면, 번거롭게 경고를 날리지 않고 바로 침입자를 죽여서 본보기를 세우면 그만이다.
“공격하라!”
운패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영단경의 힘이 무수히 허공을 채우며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선을 넘어갔다.
반절 선천이 오행의 힘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반절 영단도 영단경의 힘을 쓸 수 있다. 어디까지나 소량의 힘이었지만.
운패천에 이어, 운가의 장로들도 검은 선을 넘어오며 오행의 힘을 끌어올렸다.
지켜보던 이들은 이 광경에 마음이 요동치는 듯했다.
“드디어 가주와 장로들이 나서는군!”
“가주와 장로를 나서게 했으니, 저자는 곧 안양행성 전체에 알려지겠어.”
“이번에도 저자가 이길까?”
“허튼소리. 온 운역을 뒤져도 운패천과 운가의 장로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걸세.”
“쯧쯧. 뻔한 결과인데도 덤비다니, 저자의 오만함도 하늘을 찌르는군.”
운청휘는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운패천 등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동공에 분노가 어려 있었다.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선을 넘으면 죽이겠다고. 정녕 내 말을 듣지 못하느냐?”
“건방지구나! 헛소리 작작하거라!”
운가의 장로 한 명이 살기를 일으켰다.
“가주, 소인이 저자의 무위를 시험해 보겠습니다!”
운패천이 대답하기도 전에, 장로가 오행의 힘을 일으켜 운청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네놈이 그럴 자격이나 있고?”
운청휘가 냉랭하게 코웃음 쳤다. 그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