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화
1번 무대의 용오천이 분노하며 말했다.
“용오천, 말조심하게. 시합 규칙에 공작 깃털을 쓰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네!”
그러자 한 공작족이 반박했다.
“꺼져라, 네놈 따위가 뭔데 본 소주의 말에 끼어드느냐!”
잔뜩 분노한 용오천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반박하고 들자 곧바로 호통을 쳤다.
“네놈……!”
호통을 들은 공작족은 입을 벙긋거리다 곧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무위든 지위든 그는 영원히 용오천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감히 헛소리를 또 하면 당장 네놈을 소멸시키겠다!”
용오천의 독살스러운 시선이 공작족에게 향했다.
공화는 먼저 공작 깃털을 동원하여 운청휘를 압박해 들어갔고, 그 기세는 모든 영변경 5단계를 억누를 수 있었다.
운청휘는 기세에 억눌렸지만 패배를 선언하지 않았기에 지켜보는 이들은 뜻밖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 보이는 운청휘는 피하기 급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청휘의 주의력은 공화와 공작 깃털에 있는 게 아니었다.
피하는 와중에도 운청휘는 신식을 발휘하여 수십만 장 바깥의 구름 속에 숨어 있는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오다니……!”
운청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익숙한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윙윙윙……!
그의 등에서 참천검집이 끊임없이 진동했다. 어서 공작 깃털을 먹여 달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거라.”
운청휘가 참천검집을 안정시켰다.
“상황이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군. 조금만 더 지켜보자꾸나.”
구름에 숨어 있는 익숙한 사람을 제외하고.
운청휘가 또 아는 사람을 발견했는데, 그녀는 공작족의 태상장로인 공적 9단계의 매희였다.
‘진정한 공적 9단계는 반절 공적에 비하면 그야말로 대어지.’
지금의 무위로는 구천주선살진을 발동하면 많아야 반경 일만 장밖에 덮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운청휘는 줄곧 매희가 이 범위 안에 들어온 후에 대진을 발동할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공작 깃털을 든 공화가 아무리 날뛰든, 운청휘의 주의 밖이었다.
운청휘는 인내심을 가지고, 매희가 진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이곳에는 50여 명의 영변경, 20여 명의 반절 영변, 80여 명의 현경, 3명의 반절 공적이 있다. 여기에 매희를 더하면 진정한 공적 9단계가 추가되는 셈이군.’
운청휘의 기준에 이들은 이미 그의 무위를 증가시킬 마종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매희는 그중에서도 무위를 폭증할 수 있게 만들어 줄 특급 마종이었다.
‘세 명의 심판 중 교룡족 심판은 제외하자. 그는 괜찮은 자였으니. 교룡족 소주 용오천도 선의를 베풀었으니, 그도 살려 주마. 그 두 사람의 체면을 보아, 다른 교룡족의 목숨도 보전해 주지.’
전체 인원에서 교룡족을 제외하면 30여 명의 현경, 12~3명의 반절 영변, 60여 명의 현경이 남는다. 용오천도 교룡족 심판도 알지 못할, 운청휘만의 선의였다.
교룡족을 제외한 공작족과 대붕족은 운청휘의 마종이 되어 그의 행운이 될 터였다.
이는 그가 천성대륙에 돌아온 이래 가장 큰 횡재였다.
“정말로 끈질기군, 운청휘! 일각이 지났는데 아직도 버티고 있어!”
“확실히 의외지만 이렇게 가면 운청휘는 조만간 패배하겠지!”
“만약 공화가 파렴치하게 공작 깃털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운청휘는 이미 승리했을 거야!”
“파렴치? 그게 뭐 어때서? 인간은 원래 가장 파렴치한 생물이고 공화는 이제 힘에는 힘으로 맞서는 거지.”
“맞아, 인간과 의리를 따질 게 뭐가 있어. 하물며 시합 전에 운청휘도 공작 깃털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래, 운청휘도 어리석었어!”
일부 요족들은 공화의 몰염치한 행동을 지적했으나, 일각여가 지난 뒤에는 판세가 바뀌었다. 많은 요족들이 시합 전에 조건을 달지 않은 운청휘를 어리석다 여기게 된 것이다. 심지어 태생적으로 인간을 적대시하던 요족들은 공화가 운청휘를 죽이지 못하는 걸 원망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15분? 오래도 끌었구나!”
운청휘가 중얼거렸는데, 등에서 참천검집이 튀어나왔고, 곧.
“선제진해 제1식, 횡추팔황!”
직경 수천 장에 이르는 붉은 검기가 마치 종말을 고하는 태풍처럼 산을 뒤엎고 천지를 뒤흔들며 공화에게 쏘아져 들어왔다.
공화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그저 빈 검집인 줄 알았건만, 이리 두려운 기세를 뿜어낼 줄이야!
공화는 서둘러 공작 깃털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냈다.
콰르릉!
허공에서 두 힘이 충돌하며, 마치 두 개의 별이 부딪친 듯 강대한 진동이 일었다.
폭발로 인한 충격파는 반경 수십만 장을 휩쓸었고, 공화는 선혈을 흩뿌리며 하마터면 깃털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현천급 법보는 사용하기 나름이다. 네놈은 그저 영변경 5단계일 뿐인데, 이 법보의 위력을 얼마나 발휘하겠느냐?”
운청휘는 시큰둥하게 말하며 또다시 붉은 검기를 내뿜었다.
여전히 위협적인 검기는 직경 수천 장을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공화의 안색은 이제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방금은 가까스로 막았다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칠장로, 살려 주시오……!”
공화가 비명을 지르며 제일 먼저 공원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공원이 신형을 날렸지만, 한발 늦었다.
붉은 검기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고, 공화의 몸으로 폭풍처럼 몰아닥쳤다.
“푸, 푸푸……!”
공화는 연거푸 피를 토해내며 밀려나던 끝에 손에 쥔 공작 깃털을 놓치고 말았다.
공화를 향해 날아가던 공원은 그 광경을 보고 급히 방향을 바꾸어 공작 깃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의 동시에, 운청휘도 손을 뻗어 공작 깃털을 잡았다.
“꺼져라!”
공원이 노기등등한 얼굴로 운청휘를 공격해 들어왔다.
반절 공적과 공적 9단계의 강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원의 힘. 그 힘이 운청휘에게 쏟아져 들어오자, 운청휘는 순간 뒤로 삼천여 장을 물러났다.
“그에게 넘겨줘야겠군.”
운청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운청휘가 말하는 ‘그’란 구름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와 동시에 또 하나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온 천지에 퍼졌다.
“나는 진상상, 영주 8대 공자 중 하나이고 별호는 진도왕이지!”
흰옷을 입고 풍채가 걸출한 진상상이 하늘에서 홀연히 나타나며 공작 깃털을 잡아챘다.
“인간 후배여, 공작 깃털을 내려놓아라!”
공원이 노발대발하며 호통을 쳤다.
“예의 없는 늙은이, 이 몸은 진상상이지, 인간 후배가 아니다.”
진상상이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공작 깃털을 아공간 반지에 넣어 버렸다.
“죽어!”
공원이 차가운 눈빛으로 진상상을 공격했고, 그의 뒤에 천지를 뒤덮은 공원의 힘이 나타났다.
“나이만 많은 줄 알았더니 성격이 불같구나. 이 몸이 오늘 선심을 써서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 가르쳐 주마!”
진상상이 말과 함에 등 뒤에 차고 있던 진한 핏빛의 거대한 도를 뽑아 들었다.
슈릉!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음혈광도가 튀어나왔고, 공원의 힘과 맞부딪치며 팽팽하게 대치했다.
이윽고 공원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강한 압력을 느끼며 도신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겨우 이거밖에 피가 안 나?”
진상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음혈광도는 이름 그대로 한 번 휘두르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되는 도였다.
그러나 지금 공원이 보인 피는 음혈광도의 이름에 부끄러운 수준이 아닌가?
푸슉!
별안간, 또 한 줄기 피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속도가 매우 빨라 공원이 손조차 쓸 수 없었다.
“푸……!”
공원이 피를 토하며 신형이 부르르 떨렸다.
“이 정도면 괜찮군!”
진상상은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음혈광도를 거두었다.
“공작족의 공원이 상대가 되지 못하다니, 역시나 영주 8대 공자로군!”
“인간이 비록 더럽고 비열하다지만, 어쩔 수 없어. 8대 공자는 전부 당대 최고의 기재들이니!”
“더구나 저 진상상은 공적 9단계의 강자를 죽인 적도 있다고 하지 않나!”
진상상은 등장하자마자 모든 요족의 시선을 끌었고, 비록 인간을 싫어하는 요족들이라 할지언정 그에게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영주 8대 공자란 그런 위치였다.
“운 형제, 또 만났구려!”
음혈광도를 거둔 진상상은 운청휘를 향해 날아오더니 그를 와락 껴안으며 반갑게 말했다.
그러나 운청휘가 묵묵부답으로 응하자, 진상상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부러 구름에 숨어 있던 게 아닐세. 매희, 그녀가 어찌나 쫓아오던지, 어쩔 수 없이 숨어 있었다네!”
운청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진상상이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운 형제. 나는 그 공작 깃털이 꼭 필요하네. 원래 그것을 가지러 왔는데, 공작보루를 아무리 뒤져도 공작 깃털의 기를 찾지 못했지. 그러다 공작족 장로를 한 명 붙들고 물어서야 겨우 공화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온 걸세.”
진상상이 이토록 해명이 긴 것은, 그가 공화가 격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 모습이 운청휘에게 어부지리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진상상은 필사적이었다.
이는 운청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영주 8대 공자인 진상상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는 단지 운청휘가 마음에 들어, 그를 친구로 여기기 때문에 오해를 풀고자 함이었다.
“네가 진법으로 매희를 가두었느냐?”
운청휘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묵묵히 있었던 것은 주의력이 수십만 장 밖에 있는 매희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환진(幻阵) 하나면 그녀를 일 다경 정도 속일 수 있다네.”
진상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진을 바로 거둘 수 있겠느냐?”
운청휘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어, 바로 거두라고?”
진상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되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네. 운 형제, 우리 그 틈에 떠나세. 내가 공작족의 장로를 잡았을 때, 자네의 호송을 받아 돌아온 공작족 족장이 자네를 배신했다는 것을 들었네.”
애초에 진상상의 목적은 공작 깃털이었고, 목적을 이루었으니 이곳에 더 남아 있기 싫었다.
“떠나자니?”
운청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진상상을 바라봤다.
“나를 믿는다면, 내가 이 사람들을 상대할 테니…… 매희가 탈출할 때까지 남아 있거라.”
“무슨 소린가, 운 형제! 그녀는 공적 9단계에서도 9단계라네! 내 비록 음혈광도가 있다고 하나 겨우 도망쳤네. 조금의 자신도 없으니 자네를 데리고 도망가려 하는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