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7화
요족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그를 향해 돌진하거나, 한쪽에 숨거나, 피하지 않고 맞섰다.
그러나 숨지 않은 두 무리의 결과는 참혹했다. 붉은 검기는 그들을 집어삼키듯 할퀴며 중상을 입히고 떠나갔다.
이 광경에 안색이 변한 공련이 빠르게 하강함과 동시에 속사를 날렸다.
그러나 챙캉 하는 소리와 함께 검집에 가로막혔다.
“천인오쇠의 우리!”
공련과의 거리가 삼십여 장으로 좁혀졌을 때, 운청휘가 천인오쇠의 힘을 방출했다.
허공에서 난데없이 우리가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공련을 휘감아 가두었다.
“운청휘, 죽어라!”
이때, 운청휘의 왼쪽에서 붕비의 목소리가 울렸다.
붕비는 현철검을 쥐고 곧바로 내리쳤다.
캉! 우르릉!
운청휘가 검집을 들어 막아냈고, 허공엔 강한 충돌음이 일었다.
“자검식(刺剑式)!”
곧이어, 운청휘가 공련을 공격해 들어갔다.
그녀의 화살을 두 발이나 맞았으니, 마땅히 죽음으로써 갚아 주어야 했다!
“죽음의 회오리!”
진상상과 격전을 치르던 공원은 공련의 위기를 알아차렸다. 그는 진상상의 검에 몸을 내주는 한편 몸을 운청휘가 발동한 ‘죽음의 회오리’ 쪽으로 틀어 운청휘의 공격을 방해했다.
“푸……!”
운청휘는 순간 영력이 뒤흔들리는 걸 느끼며 입에서 피를 뿜었고, 허공에서 비틀거렸다.
공련은 그 틈을 이용해 천인오쇠의 우리 안에서 화살을 쏘아 댔다.
푸슉!
화살은 운청휘의 왼팔에 꽂혔다.
왼쪽 어깨를 관통당한 데다 팔에도 화살을 맞았으니, 한동안 왼손으로 싸울 수 없을 터였다.
운청휘의 눈에 깃든 살기가 더욱더 짙어졌다.
그는 부상을 무릅쓰고 다시 한번 자검식으로 공련을 찔러 들어갔다.
“풍의비애!”
그때, 또 다른 공격이 운청휘를 덮쳤다.
이대로라면 하흡이 공격에 노출되기에, 운청휘는 몸을 돌려야 했다.
운청휘는 침착하게 자검식을 멈추고, 몸을 돌리는 순간 뇌전술을 발동했다.
“오뢰연격!”
포연이 자욱했던 하늘이 다섯 줄기의 붉은 번개로 갈라졌다!
쾅! 쾅! 쾅! 쾅! 쾅!
오뢰연격에 맞은 영변경이 피를 토하며 휘청거렸다.
그때 수정처럼 반짝이는 구슬이 그에게 날아들었고, 손쓸 틈도 없이 그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운청휘가 손을 뻗자 강력한 흡입력이 마종을 끌어당겼다.
“아……!”
영변경 공작족이 비명을 질렀지만, 무의미한 몸부림이었다. 마종은 그대로 솟구쳐올라 그의 무위를 고스란히 담은 채 운청휘에게 날아갔다.
“이번에는 누구도 너를 돕지 않을 것이다!”
운청휘는 침착하게 공련에게 날아가며 마종을 튕겨서 쏘아냈다.
공련이 한궁을 당겨 화살로 마종을 뚫으려 했지만, 마종은 이지를 가진 듯 휘어지며 화살을 피했다.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공련은 신속하게 한궁을 거두고 아공간 반지에서 옥간을 꺼내 들었다.
“응?”
순간 불길한 예감에 운청휘의 안색이 변하며 급격하게 뒤로 물러났다.
공련이 꺼내든 옥간에서 인왕경의 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운청휘가 손쓸 틈도 없이 공련은 옥간을 부수었고, 옥간에서 거대한 손이 솟구쳐 올랐다.
쭉 뻗은 다섯 손가락 하나하나가 거대한 산봉우리를 연상케 했다.
슈아아아……!
거대한 손이 대기를 가르자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운청휘는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거대한 손에 휘말려 아래쪽 대지에 찍어 눌렸다.
인왕경의 옥간에 봉인된 이 손은, 진정한 인왕경의 위력은 내지 못하나 공적 9단계의 강자라도 막아내지 못하는 공격력을 담고 있었다.
때문에 운청휘는 단 한 번의 공격에 제압당해 전에 없는 중상을 입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기는커녕, 겨우 한 손만 움직일 수 있는 지경이었다.
온몸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입가에서는 피가 울컥울컥 솟구쳐 올랐다.
그가 중상을 입자 공련을 가두었던 천인오쇠의 우리는 자연스레 소멸하였다.
풀려난 공련은 붕비와 함께 날아와 운청휘를 사로잡았다.
“운 형제가 사로잡혔어……!”
이 광경을 본 진상상의 안색이 변했고, 짧은 순간 두 가지 선택지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운청휘를 구하러 간다.
바로 도망친다.
호기롭게 운청휘에게 말했던 것과 달리, 그는 전자를 선택했다. 그것이 그의 됨됨이였다.
“매희의 탈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운 형제를 도와 버티기만 하면 돼.”
진상상은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정혈 두 방울을 음혈광도에 떨어뜨렸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달리 포악하고 강렬하게 번득였다. 세상을 파멸시킬 마도의 수장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음혈광도는 상대의 피를 마심으로써 강해지지만, 진상상만이 아는 비밀이 있었다. 바로 진상상의 정혈을 마심으로써, 음혈광도는 최강의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음혈, 멸세!”
음혈광도를 휘두르니 휘몰아치는 핏빛이 직경 삼백여 장에 달했다.
진상상은 이 기술로 공적 1단계의 강자를 기습하여 죽인 전적이 있었다.
공원과 대붕족의 반절 공적은 대번에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코앞까지 닥쳐온 죽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주저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곧바로 자신의 정혈을 태웠고, 한계를 뛰어넘은 공격으로 핏빛 공격을 맞이했다.
다음 순간!
세 사람의 공격이 한 지점에서 맞부딪쳤다!
마치 천지가 새롭게 태어나는 듯, 거대한 빛의 해일이 세상을 뒤덮었다.
주변은 온통 고요하였는데, 그들의 청력이 들을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소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빛의 해일이 사라진 자리에는 거대한 구름 한 송이가 떠 있어, 수천 장 너머에서도 훤히 보였다.
푸! 푸우……!
공원과 대붕족의 반절 공적이 일제히 피를 뿜어내며 심각한 내상을 입고 휘청거렸다.
진상상도 못지않은 영력의 소모가 있었고, 이대로라면 매희에게서 탈출할 길이 없었다.
“음혈정도, 칼집에서 나와라!”
운청휘와 삼백여 장 떨어진 곳까지 날아왔을 때, 진상상이 별안간 다시 음혈광도를 뽑아들었다.
솟아난 핏빛은 두 갈래로 나뉘더니 붕비와 공련에게로 쇄도했다.
진상상이 비록 회복을 덜했다지만, 붕비와 공련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펑! 펑!
붕비와 공련은 단번에 공격에 맞아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운 형제, 괜찮은가?”
진상상이 운청휘를 부축하며 말했다.
“괜찮다, 아직 죽을 순 없으니.”
운청휘가 가까스로 웃어 보였다. 그러나 피범벅이 된 탓에 그의 미소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이때 하흡은 의식이 불분명했는데, 운청휘보다 더 큰 부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운청휘가 그녀를 붙들어 두지 않았더라면, 단번에 사망했을 터였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군.”
운청휘의 시선은 먼 곳을 향했다. 시선의 끝에는 매희가 갇힌 환진이 있었다.
우르릉!
이윽고, 천지를 찢을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환진이 억지로 열리며 사분오열되었다.
“진상상!”
진상상을 부르며 이를 가는 소리가 몹시도 섬뜩했다.
공적 9단계의 강자가 영변경 무인에게 당하여 환진에 무려 일 다경이나 갇혀 있었다.
무예를 익힌 이로서 매희의 분노가 어떠하겠는가?
“공작족의 태상장로가 풀려났어!”
줄곧 관전하고 있던 교룡족의 족인들이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
“진 형제, 운 형제, 나는 그대들을 도와줄 수 없으니, 스스로 살길을 도모하시게…….”
교룡족의 소주 용오천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소주, 운청휘는 절대로 열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교룡족의 반절 공적이 갑자기 말했다.
“어?”
용오천이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입니다. 저들이 처음부터 도주했다면, 그들이 얼마나 도망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교룡족의 반절 공적이 물었다.
“진상상의 무위는 내가 알고 있어, 공적 1단계의 강자도 죽일 수 있는데, 두 반절 공적의 손에서 도망치는 것은 쉬운 일이지.”
“그렇습니다. 게다가 운청휘는 혼자서 대붕족과 공작족의 영변경을 상대할 수 있으니, 그들이 마음먹고 도주하였다면 누구도 잡지 못했겠지요.”
용오천이 별안간 깨달은 듯 말했다.
“그렇다면 운청휘와 진상상이 일부러 남은 것인가?”
“아닙니다!”
교룡족의 반절 공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운청휘가 남으려고 고집을 부린 것이죠!”
용오천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그런 건가. 진상상이 환진으로 매희를 가둔 것이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던가. 그가 가지 않기로 한 것은 운청휘의 영향 때문이군.”
교룡족의 반절 공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가지, 소주께서 놓치신 것이 있습니다. 운청휘는 일부러 우리 교룡족을 만 장이나 물러나게 했습니다.”
“음? 그야 일단 물러나긴 했지만, 왜 그렇지?”
용오천은 운청휘에게 묻고 싶었지만, 상황이 급박하여 묻지 못하고 물러난 참이었다.
“소주께서는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진법?”
“십중팔구 그럴 것이지만, 구체적으로는 곧 아시게 됩니다.”
두 교룡족이 대화하는 동안, 매희는 환영을 만들어 운청휘와 진상상 앞에 내보냈다.
환영의 매희가 도착하자, 공작족과 대붕족의 두 반절 공적이 중상을 입은 채 그녀의 뒤로 날아들었다.
공련, 붕비와 다른 이들도 모두 매희가 방패인 양 그녀의 뒤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운청휘, 물건을 내놓으면 살려 주겠다!”
매희의 옆에 선 공련이 운청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운청휘는 그녀를 외면한 채, 매희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공유의 뜻이더냐?”
매희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그대가 우리 족장의 생명의 은인이니 스스로 물건을 내놓으면 죽이지 않고 살려 주겠네. 그러나 그대의 권토중래를 막기 위해 반드시 그대의 무위를 없애야 하지.”
“태상장로, 운청휘가 우리의 많은 족인을 죽였는데, 무위를 폐하는 것은 너무 가벼워요. 녀석의 두 팔과 다리를 자르는 걸 제안하고 싶네요!”
그때,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청휘에게 맞아 중상을 입은 공화가,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이 모든 일이 공유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운청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더불어, 그의 마음 속에서도 결단이 섰다.
운청휘는 곧바로 영라 반지에서 4개의 부적을 새긴 마종과 36개의 깃발을 꺼냈다.
마종과 깃발은 순식간에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진의 형태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