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241화 (241/430)

제241화

하호는 말을 끝내자마자 살기를 숨기지 않고 기령과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부귀를 위해 가문의 여식까지 파는 소인배가, 명분은 그럴듯하군.”

운청휘가 하호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배, 뭐라고 했는가?”

운청휘의 말에 하호의 살기가 더욱더 짙어졌다.

“귀먹었냐? 소인배라고! 아니, 하흡을 제외하고 하가 전체가 소인배야!”

기령이 잽싸게 대답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렇게 오래 말했는데, 말이나 하고 있을 때야?”

“이제 됐다. 둘 다 죽여 주마!”

하호는 손을 뻗어 기령을 잡으려고 했다.

기령이 비록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늠름하고 총기가 있어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충분한 외모였다. 그럼에도 하호는 기령에게 살기가 더 일었다.

“바보!”

기령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역시, 하가에 인왕경 가주가 없으니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지금 영주에서 운청휘는 제법 소문이 자자했다.

홍가의 둔천사를 뺏고, 둔천사를 몰아 인왕경 2명의 추격을 따돌리지 않았는가?

그러나 하호는 운청휘가 누군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들을 죽이겠다 살기를 피우고 있었다.

무림에서는 여인과 노인, 아이를 조심하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럼에도 하호는 기령을 죽이려 들었다.

기령은 말을 내뱉은 동시에 손바닥을 휘두를 뿐이었다.

콰직!

다음 순간, 하호는 몸 절반이 내리꽂힌 채 사지가 모두 부러지고 말았다.

이것은 기령이 일 할도 되지 않는 힘을 사용한 결과였다.

전력을 다했더라면 하호는 진작 죽어 있을 터였다.

“하호……!”

하흡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란이 눈을 부릅떴다.

“금수 같은 놈이! 네놈을 죽이겠다!”

하란이 고함을 내지르더니 하흡을 제쳐두고 하늘을 뒤덮을 공원의 힘을 내뿜었다.

“땅강아지 같은 녀석아!”

기령이 눈을 부릅뜨더니 하란을 노려보며 반격했다.

콰득!

이번에는 하란의 사지가 박살났고, 하호와 마찬가지로 몸 절반이 지면에 꽂히고 말았다.

입에서 피를 토한 하란이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대여섯이나 보이는 기령의 전투력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이럴 수가, 하가의 장로가 꼬마에게 당했어!”

주변의 사람들이 전부 기겁하며 소리쳤다.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 기령에게 쏟아졌다.

“꼬맹이? 말조심하시지!”

“이런 심오한 전투력이라면 엉덩이로도 알 수 있을 거야. 상대방은 인간이 아니라 변신한 영수라구!”

“그리고 어린…… 신동의 옆에 있는 사람은 바로 영주의 절반을 흔든 운청휘라구!”

사람들의 술렁거림은 일파만파로 퍼져, 하묘 등의 무리에게까지 닿았다.

하가의 일원들은 경악하더니 곧바로 분노했다.

“젠장, 하란과 하호가 모두 당했어!”

공적경의 일원 한 명이 이를 갈았다.

또 한 명의 일원이 하묘를 바라보며 물었다.

“태상 장로, 저 꼬맹이의 무위를 알아보시겠습니까?”

하묘는 분개했으나 분노로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공적 8단계는 되겠군. 그 이상이었다면 하란과 하호는 중상이 아니라 즉사했을 테니.”

하묘의 분석은 제법 일리가 있었다.

두 사람을 단번에 죽이려면 보통의 상황에서 적어도 공적 9단계의 무위가 필요하니까.

“그 영수의 무위는 둘째치고, 하가의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하묘가 두 눈에 살기를 띠었다.

“어서 가자!”

“모든 영주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위엄을 보여줘야겠군!”

“아무리 이빨이 빠졌어도 호랑이는 호랑이지! 감히 땅강아지 같은 것이 능욕하게 둘까 보냐!”

하묘는 하가의 일원들을 이끌고 직접 운청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피해다녔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은 하묘의 기세에 휩쓸려 하나둘 입에서 피를 토했다.

“어린 신동?”

기령이 눈을 빛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기까지 했다.

“응? 하묘라는 녀석이 왔군!”

기령은 기세등등하게 다가오는 하묘 일행을 발견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이윽고 기령이 운청휘를 올려다보았다.

“운청휘, 내가 저 녀석들을 처리해도 돼?”

운청휘가 대답하기도 전에, 기령이 말을 이었다.

“넌 영주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졌잖아. 홍가의 둔천사를 빼앗고 대붕왕과 공작왕의 추격을 따돌린 걸로. 난 네 아우나 다름없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운청휘는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기령이 비록 그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예전처럼 냉혹하게 생명을 유린하진 않았다.

다만 뼛속에 새겨진 본능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탐욕스럽고 게걸스러우며 공명심이 있는 모습이 그러했다.

기령은 ‘어린 신동’이라는 말을 영주 전체에 알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결국, 운청휘가 입을 열었다.

“네게 줄 몫은 챙겨 줄 테니, 너무 낭비하지 말도록.”

운청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 지었다.

“당연히 낭비하지 않지! 하란과 하호, 두 땅강아지를 살려 두었잖아?”

기령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들이 말하는 낭비란 자연스레 상대의 무위를 가리킨다.

기령이 바로 삼켜버리든지, 운청휘가 마종을 심든지 수단은 상관없었다.

훌쩍 날아온 하묘 일행이 운청휘와 기령을 둘러쌌다.

“어디서 온 천한 것이 하가를 건드리는 것이냐. 남영의 일원을 건드리면 어찌 되는지 알려 주마!”

하란과 하호가 당했으니, 난쟁이족이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되었다면, 하묘의 입장에선 운청휘와 기령을 죽이는 게 나았다.

그에게는 하가의 위세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업이 남아 있지 않았던가?

하묘는 박력 넘치게 외치며 커다란 손을 환화시켜 기령을 직접 잡으려 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놀라 뒤로 물러섰다.

반절 인왕이 나섰으니,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만으로 보통의 무인을 다치게 할 수 있었다.

기령은 반격하는 대신 곧바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콰아앙!

거대한 손은 지면에 던져졌고, 대지에는 다섯 손가락 자국이 깊이 파였다. 그 길이만 수천 장에 이르렀고, 깊이는 어찌나 깊은지, 고랑마다 하천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일격으로 깊이가 수천 장에 이르는 구덩이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기세등등한 힘인가?

그러나 그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저 꼬마가 공격을 피한 게 맞아?!”

“역시나 어린 신동이야. 반절 인왕경의 공격도 피할 수 있다니!”

“비록 저 손이 진짜가 아니라지만, 공적 9단계라도 쉽게 피할 수 없는 공격이야!”

“나는 저 꼬마가 공적 8단계인 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공적 9단계는 되는 모양이야!”

“쯧쯧, 아쉽게 됐어. 저런 신동이 하필 하가의 사람을 건드리다니.”

놀라움과 아쉬움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기령의 외모는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피부는 갓 내린 눈처럼 새하얗고, 두 눈에는 총기가 넘쳤다. 통통한 볼은 꼬집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누구든지 기령의 인간 모습을 본다면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뛰어난 실력까지 있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기 충분했다.

물론 영수라는 사실도 드러났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어떤 이들은 기령의 장래성을 점치며 그가 미래의 네 번째 요왕이 되지 않을까 떠들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하가의 핍박을 받고 있으니 그 위기를 넘기지 못한다면 모두 허황한 일이겠지만.

“하가가 인왕경 가주를 잃었다지만, 아직 반절 인왕경과 수십의 공적경, 셀 수 없는 영변경이 남아 있어!”

“저 꼬마의 힘으로 혼자서 막아낼 수 없는 규모야!”

“하가의 태상 장로는 어린 신동의 명성을 빌리려는 게 분명해!”

“하가의 가주가 죽은 후 하가는 몰락하고 있어. 심지어 많은 가문들이 8대 가문의 자리를 노리지 않나? 이 기세에 떠오르는 어린 신동을 꺾어 위엄을 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기령은 도리어 의기양양했다.

이 상황은 오히려 기령이 원하는 바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가 열세에 몰렸겠지만, 막판에 대역전하여 하묘와 하가를 집어삼킬 심산이었다.

그렇게 해야 ‘어린 신동’이라는 별호가 영주 전체에 울려 퍼질 터였다.

기령이 하흡 앞으로 훌쩍 뛰어가 입을 열었다.

“하흡, 네 일가가 너를 난쟁이족에 팔아넘기려고 하고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흐음. 내가 저들을 없애는 걸 원하진 않겠지?”

하흡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가문의 일원들이 자신을 팔아넘기다니, 누구든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흡이 천천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묘 일행은 기령이 하흡에게 다가가 하는 말에 분노가 치밀었다.

“젠장, 이런 순간에 감히 하흡을 건드리다니!”

하묘는 이 순간 난쟁이족의 오해를 살까 두려웠다.

그는 단숨에 기령에게 일장을 날렸고, 기령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통통한 손바닥을 내뻗으며 기령과 맞섰다.

“저 꼬마가 미친 건가! 하묘와 정면으로 맞서려고 해!”

“미쳤다고? 내가 보기에는 어린 신동이 죽을 바에는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것 같은데?”

“목숨을 걸고? 큰 오판이야. 반절 인왕경의 강대함을 보통 무인이 어찌 상상하겠어!”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저 꼬마가 피하면 유적이 열릴 때까지 시간을 끌지도 모르지.”

“상고 유적의 제단이 열리려면 반 시진도 남지 않았어. 잘 피한다면 살 기회가 있을 거야!”

“그나저나 운청휘는 실망스러운걸. 어린 신동과 일행인 것 같은데 구경만 하다니.”

누군가 갑자기 화제를 운청휘에게로 돌렸다.

“뭐라고, 운청휘? 저 젊은 남자가 운청휘라고?”

그 순간, 기령의 안색이 급변했다.

하묘는 이미 몇 달 전, 하가의 가주에게서 운청휘에 대해 들은 터였다.

당시 하가의 가주는 운청휘를 8대 공자 이상으로 평가했고, 하묘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오 할도 되지 않은 힘을 쓰던 하묘였지만, 지금은 기령의 무위를 공적 8~9단계로 평가했기에 더 높은 힘을 쏟아 부었다.

하묘의 손과 기령의 통통한 손이 맞부딪혔다.

두 손이 부딪힌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고, 주위의 지면은 단번에 갈라지며 한 겹의 단단한 흙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우드득!

팔뚝에서 뼈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나자, 하묘의 안색이 변했다.

기령을 힐끗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평온한 기색이었고, 손을 마주치고도 흔들림 하나 없었다.

이 순간, 하묘의 그림자가 빠르게 뒤로 밀려나갔다!

“태상 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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