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네놈들, 모조리 죽여 주마!”
운청휘의 두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되더니, 스릉 소리와 함께 등에 맨 참천검집을 뽑아내었다.
“선제진해 제1식, 횡추팔황!”
직경 일만 장의 붉은 검기가 검집에서 솟구쳐 올랐다.
깊은 바다 한복판에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듯, 홍가와 풍가의 반절 인왕경을 휩쓸었다!
도심종마대법을 수련한 운청휘 앞에서 그들은 그의 무위를 배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제 운청휘는 그들에게 마종을 심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을 세상에서 지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 맙소사…… 저 저건 무슨 기술인 거냐?”
“검기라고? 일만 장의 검기라니, 소인왕도 받아칠 수 없을 거야!”
“제, 젠장! 이게 운청휘의 진정한 무위였어!”
“오…… 오지 마!”
두려움에 가득 찬 비명만을 남긴 채, 홍가와 풍가의 일원 십여 명은 그대로 잿더미가 되었다.
스산하게 흩날리는 잿가루 사이에서.
운청휘는 기령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
수십만 장을 사이에 두고, 운청휘는 다시 횡추팔황을 시전했다. 붉은 검기가 뿜어져 나와 수만 장 바깥의 대지를 함락시켰다.
검기가 뿜어져 나온 구역을 중심으로, 반경 삼만 장 내의 모든 것이 증발했다.
그 결과, 거대한 웅덩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시에, 기령과 소인왕, 성령안에 숨어 있는 능천진선의 영혼까지 노출되었다.
“이런 강력한 공격이라니. 인왕경이 강림한 것인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휩쓸린 소인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능천진선이 추측을 뒤엎었다.
-이곳은 상고 유적 안이다. 인왕경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으니, 인왕경의 무인이 아니라 운청휘가 온 게 분명해!
능천진선의 소리가 울렸다.
그는 선계에서 운제를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운청휘가 운제라는 사실은 모르는 터였다.
“운청휘?”
소인왕이 놀랐다.
“그의 전투력은 공적경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무리 소인왕이 믿지 못한다고 해도, 이것은 운청휘가 가한 공격이었다.
무수한 현력이 운청휘의 몸에서 휘몰아쳤고, 굉음이 이어졌다.
펑펑펑!
단번에 기령을 감금한 금색 광채가 밀려났다.
곧바로 손을 뻗은 운청휘가 피범벅이 된 기령을 끌어당겼다.
“천지정법!”
운청휘는 선제의 정혈을 한 방울 태웠고, 금원초의 약력을 곧바로 기령의 몸에 이동시켰다.
중상을 입고 영혼의 절반이 찢겨진 기령의 몸에 5만 년의 힘이 담긴 영약이 주입된 것이다.
상처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아물었고, 찢어진 영혼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는 임시적인 조치였고, 기령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사흘 이상의 요양이 필요했다.
“고생했다. 다음은 내게 맡기도록.”
운청휘가 기령을 보며 말했다.
“응!”
기령이 운청휘를 향해 믿음이 담긴 눈을 반짝였다.
“운청휘, 저들을 쉽게 죽이지 마. 저들의 영혼을 남겨 둬. 내가 혼돈지화로 저들을 태워 죽이고 말 거야!”
운청휘와 기령의 대화를 듣고 있던 능천진선의 영혼이 화들짝 놀랐다.
비록 운제임을 알아차리진 못했으나, 운청휘가 방금 사용한 수단을 알아본 것이다.
-처…… 천지정법……! 저, 저것은 전설 속에 있는 금지된 술법일 텐데?”
“능천진선, 방금 금지된 술법이라고 말한 거요?”
소인왕이 물었다.
-영약의 약력을 순식간에 혼돈영수의 몸에 이동시키지 않았나. 선계에서도 전설로 내려오는 금지된 술법일세! 다만 본선이 알기로 저 술법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거늘, 운청휘는 어찌하여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은 게지?
운청휘가 선제의 정혈을 사용한 것을 알 리 없는 능천진선은 경악할 뿐이었다.
능천진선의 말을 들은 기령은 더욱더 분노했다. 그는 운청휘가 선제의 정혈 한 방울을 대가로 지불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소인왕과 능천진선을 제압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기 전까지, 운청휘가 선제라는 사실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미안해, 운청휘! 너무 큰 대가를 치르게 했어!
기령은 운청휘에게 음을 전하며 사과했다.
-신경쓰지 말도록. 선제의 정혈 한 방울쯤은 아무렇지 않다.
운청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운청휘에게 선제의 정혈 한 방울은 매우 진귀한 것이었다. 소모할 때마다 회복하기가 매우 힘들었고, 이는 보통의 가축도 영수로 진화시킬 수 있는 고귀한 것이었으므로.
이런 정혈을 사용했으나, 기령에게는 어떠한 분노도 일지 않았다. 기령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정혈 한 방울이 아니라 정혈 전부를 썼더라도 그는 인상 한번 쓰지 않을 터였다.
-네놈이 어떻게 그 술법을 아는 게지? 그 술법으로 무슨 대가를 치는 게냐!
어느새 성령안에서 나온 능천진선의 영혼이 운청휘를 기이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궁금하더냐?”
운청휘는 실눈을 뜬 채 능천진선을 노려보았는데, 그 순간 능천진선은 영혼마저도 위축되는 감각을 느꼈다. 천지를 호령하는 존재가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듯했다.
다음 순간, 참천검집이 검기를 뿜는 게 아닌가.
“건방지구나, 범인 따위가 감히 능천진선에게 손을 대다니!”
그 순간 소인왕이 코웃음을 쳤고, 허공에서 검집이 뿜어낸 검기를 잡아냈다.
-저 검기는……!
소인왕의 경멸하는 태도와 달리, 능천진선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 검기는 법력보다 위에 있네!
“그래? 이 빈 검집은 예사롭지 않다는 거군?”
소인왕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운청휘를 향해 혀를 낼름거린 그가 곧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운청휘는 이에 검집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소인왕의 일장을 맞받아쳤다.
콰르릉……!
거대한 폭파가 일어나고, 가공할 충격파가 몰아쳐 사방팔방을 휩쓸었다. 웅덩이가 있던 대지는 재차 갈라져 뿌연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때, 거리조차 짐작할 수 없는 먼 산봉우리에서는 십여 개의 인영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들은 천지를 굽어보는 패기를 뿜어내며, 운청휘와 소인왕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왕경 다음으로 제일이라더니, 소인왕은 굉장하구나! 우리가 그를 상대하려 해도 세 번 이상 공격해야 하는데!”
“운청휘의 실력도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군. 소인왕의 저 공격은 적어도 칠 할의 힘을 썼을 텐데.”
“저 빈 검집을 쓰고 있는데, 기이하군. 빈 검집일 뿐인데 저리 강한 위력을 뿜어낼 수 있단 말인가?”
“잠깐만, 저 빈 검집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홍가 가주, 설마 전에 보았던 그 검집 없는 신검을 말하는 건가?”
“그래. 본왕이 수복하려 했지만 실패했지. 그대들도 다 해 봤지 않은가?”
“저 빈 검집이 그 신검과 짝이 맞다면, 운청휘는 그 신검을 수복하는 방법을 알지 않을까?”
그들이 수런거릴 때, 소인왕은 이를 악물었다.
“운청휘, 네놈은 본왕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러니 이제 본왕은 모든 힘을 동원하겠다!”
소인왕의 공격이 재차 이어졌다.
“어디 이 공격도 받아내 보아라!”
코웃음을 친 운청휘는 재차 검집을 휘둘러 소인왕의 주먹과 맞부딪쳤다.
이번에는 충돌로 인한 폭발이 이전보다 강력했으나, 두 그림자는 팽팽하게 대치했다.
소인왕이 뜻밖이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력을 쏟아부은 공격도 받아내다니, 의외로군. 그렇다면 이 기술은 어떻게 받아내겠느냐?”
두 사람이 다시 맞붙었다.
소인왕은 일장을 날렸고, 운청휘도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마주했는데 그의 손에는 수정처럼 투명한 마종이 들려 있었다.
퍼엉!
두 손이 부딪치자 운청휘의 그림자가 먼저 뒤로 밀려났다.
비록 전투력이 폭증하여 반절 인왕경도 날려보낼 수 있다고는 하나, 성령안을 지닌 소인왕에게는 여전히 상대가 되지 않는 터였다.
밀려난 후 운청휘는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내뿜었다.
“범인은 범인이구나, 맨주먹으로도 본왕의 공격을 받아치지 못하다니!”
소인왕이 깔보는 시선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방금의 공격은 오 할의 힘을 썼을 뿐이다. 그런데도 당해내지 못하느냐?”
“멍청아!”
가부좌를 틀고 요양하던 기령이, 조소하는 눈빛으로 소인왕을 힐끗 보았다.
“짐승, 뭐라고 했느냐?”
소인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기령을 노려보았다.
기령온 오히려 비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멍청아, 네놈의 손바닥을 봐라!”
“뭐?”
소인왕이 고개를 숙이자, 손바닥에 박혀 있는 투명한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투명한 구슬의 정체를 알아차린 능천진선이 황급히 소리쳤다.
-소인왕, 어서, 팔뚝을 자르시게!
“자르라뇨?”
소인왕은 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쿵!
소인왕이 주춤거릴 때, 능천진선이 성령안을 직접 제어해 금빛 광채를 내보냈다.
다음 순간, 마종이 스며든 소인왕의 팔뚝에 금빛 광채가 쏘아졌다.
소인왕의 무위라면 쉽게 기습 공격을 피해낼 수 있겠지만, 능천진선의 의도인 만큼 그는 팔뚝을 맡겼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팔뚝과 어깨가 분리되었다.
“능천진선, 무슨 짓입니까?”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비록 능천진선을 믿는다고는 하나, 견디기 힘든 고통에 소인왕은 포효하듯 물었다.
-이것은…….
능천진선이 대답하기도 전에, 절단된 팔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인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마종?! 운청휘가 도심종마대법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마종을 알아차린 소인왕은 등골이 절로 서늘해졌다. 만약 능천진선이 제때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는 전신이 마종에 통제되었을 터였다.
“횡추팔황!”
그 틈을 노린 운청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붉은 검기가 소인왕을 덮쳤다.
지금의 소인왕은 팔을 잘렸으니, 일신의 무위를 전성기의 칠 할 정도만 발휘할 수 있는 상태였다.
더욱이 운청휘의 횡추팔황은 기습의 성질을 지니고 있어, 소인왕은 횡추팔황의 검기에 걸려 허공으로 밀려났다.
‘푸’ 하는 소리와 함께 소인왕이 크게 피를 토했고, 단번에 심한 내상을 입었다.
운청휘는 멈추지 않고 기세를 몰아 또다시 검집을 휘둘렀다.
성령안에서 머무르던 능천진선은 다급히 성령안을 제어했다. 온 하늘에 금빛을 내뿜어, 거대한 그물을 짜내었다.
운청휘가 내뿜은 붉은 검기는 금빛으로 짜인 그물에 맞부딪쳤다.
콰르릉!
금빛 그물과 붉은 검기가 쉴 새 없이 부딪치며 요란한 폭음을 내었다.
그물에는 셀 수 없는 구멍이 뚫렸고, 검기도 많이 약화되었다.
운청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검집을 휘두르려는 찰나, 능천진선의 소리가 울렸다.
-후배여, 용서할 것은 용서하거라. 소인왕이 이미 다쳤으니, 이 싸움은…… 여기까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