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2화
“법원의 불!”
가토왕이 그 틈을 타 포효하니, 쿵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날름거리는 화염은 그대로 번져 마종을 불태워 버렸다.
“마종이라니, 본왕이 높이 평가하마!”
마종이 이렇게나 쉽게 파괴되니, 가토왕의 눈에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또한, 다시금 전의가 불타올랐다.
“그래, 본왕이 네놈의 깊이를 가르쳐 주마!”
가토왕의 목소리가 하늘을 가르고, 그가 스쳐 나가니 하늘이 검게 찢어졌다.
콰르릉!
여름날의 벼락이 밤하늘을 가르듯, 온 천지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며 굉음을 떨어 울렸다.
멀리 수백만 장 떨어져 있는 능천진선, 묵안유, 묵해도 그 여파에 노출되었으나, 능천진선이 법력을 이용하여 둘을 보호했다.
“처…… 청휘 오라버니 괜찮겠죠?”
묵안유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운제 대인께서는 문제없을 거라네!”
능천진선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눈에는 희미한 걱정이 어려 있었다.
운청휘가 비록 강하다곤 하나, 아직 전성기의 무위는 아니다.
가토왕의 공격 하나하나는 능천진선이라도 전력을 다해 막았기에, 이 공격을 운청휘가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네, 네놈이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게냐!”
하늘에서 가토왕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번쩍이는 불빛이 흩어지니 운청휘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한 손이 가토왕의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운청휘가 주먹에 조금 힘을 준 순간…….
카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가토왕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능천진선이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봤다.
“운제께서…… 정말로 공적경의 무위로 가토왕을 격파하시다니!”
“너희의 천황에 대해 말하도록.”
운청휘가 건조하게 말했다.
참천신검이 전해준 소식에 따르면, 난쟁이족의 천황은 최소 반절 인황이었다.
최소인 만큼, 인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마, 말하면 나를 놓아주겠는가?”
가토왕의 목소리가 떨렸다. 비록 한 손을 잡혀 있을 뿐이나, 몸 전체가 으스러질 듯했다.
“네놈은 조건을 달 자격이 없다.”
운청휘가 단호하게 말했다.
카득!
다시금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아……!”
가토왕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알겠네, 말하지! 처, 천황폐하는 우리 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제일의 강자이시네. 300년 전에 반절 인왕이 되셨다네!”
“지금은?”
운청휘가 또 물었다.
“모, 모른다네……!”
가토왕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천황폐하께서는 여지껏 무위를 알리신 적이 없네. 그저 우리가 추측했을 때, 인황에 도달했을 거라 여기는 걸세!”
“이상하군. 너희의 천황이 반절 인황의 무위라면, 어째서 남‧북영의 침략에 실패해 왔지?”
운청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정도 경지라면 한 손으로 인왕을 죽일 수 있으니, 남북영에 난쟁이족을 상대할 자가 없어야 했다.
“그, 그건 영흥제국이 천성대륙에 영향을 퍼트려서, 모든 반절 인황과 인황이 ‘황자조약’을 맺었기 때문일세. 조약에 따라 반절 인황과 인황급의 무인은 그 경계 이하의 무인을 공격할 수 없게 되었네.”
가토왕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말했다.
“영흥제국이 그렇게나 강한가? 모든 대륙의 인황들에게 황자조약을 맺게 할 만큼?”
운청휘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국호만 들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영흥일세! 만 년이나 지속되었고, 천성대륙에 존재하는 오래된 세력 중 하나일세!”
영흥제국을 말하는 가토왕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인왕경의 강자라도, 영흥제국을 상대할 길이 없는 듯했다.
잠시 후, 가토왕이 운청휘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운청휘, 내가 아주 중요한 소식을 알고 있네. 하늘에 맹세컨대, 이 소식은 내 목숨보다 가치가 있으니, 부디 이 소식을 듣고 나를 살려주게나!”
운청휘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하도록. 정말 가치가 있는 소식이라면, 살려 주마.”
운청휘의 서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물론, 말하기 싫거든 네놈을 죽이고 영혼을 지배해 소식을 알아낼 수도 있다.”
“알겠네, 말하겠네!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네!”
가토왕이 다급히 남은 한 손을 흔들더니, 이를 악물었다.
“우리 사토…… 아니, 난쟁이족은 천황폐하가 계심으로써 영주 최강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저 두 번째 세력에 불과하네.”
가토왕은 무의식적으로 ‘고귀한 사토족’이라 말하려다 얼른 말을 바꿨다.
적어도 그는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에서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그저 두 번째 세력이라고?”
운청휘가 멈칫했다.
남영은 8대 인왕이, 북영은 3대 요족이 장악하고 있다.
서영의 상고 전쟁터에는 아무런 세력도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
만약 ‘황자조약’이 아니라면, 난쟁이족의 천황은 혼자서 영주 전체를 쓸어 버릴 수 있지 않은가?
“영주가 왜 영주인지 아는가?”
가토왕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영주 유일이자 숨은 세가가 영씨세가이기 때문이지. 영가의 가주는 십중십 진정한 인황일세! 휘하의 여섯 장로들마저 반절 인황이지! 영가에는 18명의 당주들도 있는데, 그들은 모두 인왕경이지. 지금 영주에 알려진 8대 공자라는 명칭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가? 영가의 소가주 영소(瀛苏)가 만든 순위네. 그는 약관의 나이지만, 이미 인왕경에 도달했다고 들었네. 영가는 이러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일세!”
운청휘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신식으로 가토왕이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았는데, 이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지금의 운청휘로서는 영가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천성대륙 전체를 봐도 왕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조합이 아니던가?
가토왕이 알고 있는 사실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영주가 왜 영흥제국의 강토에서 빠져 있겠는가? 영가의 존재 때문일세. 이렇듯 강한 영가는 줄곧 존재를 감춘 데다 외부 활동을 하는 이가 드물어, 그 존재를 아는 이가 거의 없지. 조금 전에 말했던 소가주 영소는 대외적으로 ‘부소 공자(扶苏公子)’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네. 내가 이 사실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8대 가문의 가주들도 영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지.”
이때 능천진선이 묵해 등을 데리고 운청휘 쪽으로 날아왔다.
“운청휘, 나는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했으니, 살려 주게!”
가토왕이 말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운청휘의 손에서 투명한 마종이 생겨났다. 운청휘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니, 마종이 가토왕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우…… 운청휘, 어, 어째서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게냐!”
가토왕의 안색이 변했고, 노발대발하며 운청휘를 바라봤다.
“착각하는군. 내가 언제 책임을 지지 않았느냐?”
운청휘가 마종을 낚아채며 유유히 말했다.
“살려 준다고 했으니, 살려 주었다. 하지만 네놈의 무위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은, 한 적 없다.”
운청휘가 손을 놓는 순간, 무위를 잃은 가토왕은 그대로 몇백만 장 아래의 지면으로 떨어졌다.
“축하드립니다, 운제. 또 하나의 인왕 마종을 얻으셨군요!”
능천진선이 잽싸게 입을 열자,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그리 말하지 않아도 된다.”
“네, 운제!”
능천진선이 얼굴을 붉혔다.
아부가 과했던 탓이다.
운청휘도 아부를 듣는 걸 싫어하지 않지만, 능천진선처럼 요령 없는 아부는 불쾌할 뿐이었다.
운청휘가 둔천사를 꺼내 일행을 둔천사에 태웠다.
“능천, 둔천사를 운전하여 원래의 길로 돌아가도록.”
그후 운청휘는 둔천사의 객실 하나에 들어 폐관한 뒤, 마종을 연화했다.
영가의 존재를 알고 나니 무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영가와 잘 지낼 수 있다면 다행이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찌 죽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인왕경 마종을 연화시켰건만, 공적경에 이른 지금은 아주 작은 발전만 있었다.
둔천사의 속도는 인왕경 못지 않았기에, 밤 무렵 가장 가까운 성 상공에 진입할 수 있었다.
운청휘가 한창 연화에 몰두하고 있는데, 능천진선이 밖에서 말을 걸어왔다.
“운제, 이미 왔던 성에 도착했는데, 둔천사에서 내려 전송진을 탈까요?”
“이 성을 돌고 다음 전송진이 있는 성에서 나를 부르도록!”
운청휘가 짧게 대답했다.
이제 마종을 연화하는 시간이 매우 빨라졌지만, 반나절이 걸렸음에도 마종의 삼 할밖에 연화시키지 못했다.
“네, 운제!”
능천진선은 곧바로 물러가고, 둔천사는 깊은 밤의 어둠을 가르고 질주했다.
묵안유와 묵해가 잠든 동안, 능천진선만이 깨어 둔천사의 운전에 힘썼다.
그렇게 여명이 밝아 올 무렵, 아침 햇살은 동쪽에서 번져왔다.
능천진선이 재차 운청휘의 객실을 찾았다.
“운제, 전송진이 있는 성 밖에 도착했는데, 이곳에 있는 큰 성은 남영으로 가는 전송진입니다.”
잠시 후, 객실 문이 열리더니 운청휘가 안에서 나왔다.
밤새 가토왕의 마종을 연화한 끝에, 공적경 7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곧 운청휘 일행은 둔천사에서 내려 남영으로 가는 전송진에 올랐다.
금빛 섬광이 그친 후, 그들은 남영의 한 성에 있었다.
운청휘가 신식을 뻗어 성을 덮어보니 이곳은 초왕성이었다.
초왕성(肖王城)!
8대 가문 중 초가의 본거지였다.
북영의 접경지에 위치해 전략지점으로 꼽히는 영주성.
남영 8대 가문과 북영 3대 요족은 영주성에 거점을 두었다.
개중 8대 가문은 남영에 각각 수도를 두었고, 초가도 마찬가지였다.
햇살이 따사로운 빛을 뿌리는 아침, 초가의 수도 초왕성은 떠들썩했다. 수레와 말, 인파가 끊이지 않아 아침부터 생기가 넘쳤다.
운청휘가 일행을 데리고 객잔 상공을 날아갈 때, 한 대화가 그의 신식에 포착되었다.
“초인왕이 이미 초왕성에 돌아왔다고 하네!”
“어? 일곱 왕은 영주성에 모인 거 아닌가? 초인왕이 초왕성에 무엇을 하려고 돌아왔지?”
“듣자 하니 운청휘가 붕성, 공작성, 나성을 궤멸시켰다는군. 다음은 초왕성이 될 수도 있으니 밤새 초인왕이 온 게지.”
“나성도 운청휘가 멸망시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