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2화
용오천이 재차 물었지만, 운청휘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저자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본래 운청휘는 낙건의 무위를 폐하려고 했지만, 용오천이 그보다 더한 일을 해 주었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게 되었다.
위경륜은 운청휘의 만류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낙건이 이 꼴이 되었으니 낙가가 가만히 있진 않겠지만, 적어도 그가 죽은 것보다는 나았다.
다만 위경륜은 운청휘의 속내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낙가를 통해 흙보살의 능력을 시험할 생각이었다. 낙가의 광기가 아직 남은 상황에서!
운청휘는 낙건의 몸에 신식을 주입한 후, 그를 날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위경륜. 시간이 늦었으니, 나를 당신의 스승께 데려가도록.”
운청휘가 고개를 돌려 위경륜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공자!”
위경륜이 공손하게 말했다.
“오천, 같이 가지.”
운청휘가 용오천을 봤다.
“응!”
용오천이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 낙가의 원한을 샀으니, 살고 싶으면 운청휘의 곁에 꼭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세 사람이 떠난 후, 길가는 요란하게 들끓었다.
“방금 그 남자는 누구지? 일장으로 낙가의 두 반절 인왕경을 날려버렸어!”
“그뿐 아니라 낙가의 직계 자제인 낙건도 폐했어!”
“저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옆에는 찬명사 위경륜이 있더군!”
“세상에, 위경륜이 미친 걸까? 그의 스승 흙보살이 막주성에서 덕망이 높은데……. 그렇다고 흙보살이 낙가와 맞설 능력은 없을 텐데!”
“게다가 흙보살이 낙가와 맞선다고 해도 위경륜을 위해 낙가를 건드리진 않겠지!”
“맞아, 흙보살의 제자는 위경륜 하나만이 아니잖아!”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동안, 낙건은 수하들에게 실려 낙가로 황급히 돌아갔다.
“공자, 아래쪽이 제 스승님의 저택입니다!”
한편, 느릿느릿 이 각여를 날아간 운청휘 일행은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저택 상공에 도착했다.
위경륜의 얼굴에는 아직 수심이 가득했다. 스승에게 낙가의 일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그의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한 지경이었다.
동시에 안내는 착실히 하고 있어서, 일행은 무사히 저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자, 제가 스승님을 모셔오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운청휘와 용오천을 연회장으로 안내한 후, 위경륜이 말했다.
운청휘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신식으로 저택 전체를 뒤덮었지만, 흙보살의 특징과 부합하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도리어 인왕경의 무인을 일곱이나 발견했고, 반절 인황경의 무인도 찾아냈다.
그들은 모두 폐관 수련 중이었다.
“응?”
운청휘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누군가 그의 운명을 염탐하고 있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군.’
운청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도 알 수 없거늘, 다른 이가 가능할까?
그는 저항하지 않고 마음껏 염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저택 어딘가에 있는 고요하고 신비한 밀실.
방 중앙에는 여덟 살 정도의 총명해 보이는 아이가 앉아 있었다.
특이하게도 새를 엮어 만든 깃털 부채를 들고 머리에는 푸른 실로 엮인 두건을 쓰고 있었는데, 복장은 40~50대의 복장이라 이질감을 자아냈다.
기이하게도, 아이의 두 눈망울에는 빠르게 회전하는 나침반이 떠올라 있었고, 무수한 별과 팔괘가 그 안에서 끊임없이 교차했다.
신비로운 눈을 지닌 아이는 몇 번의 숨을 내쉰 후.
푸흑 소리와 함께!
별안간 큰 피를 토해냈다.
“이럴 수가, 그의 운명은 나와 같다니. 혼돈으로 뒤덮여 있으니 염탐할 수가 없구나…….”
어린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됐어. 만나러 가 보자.”
어린아이가 입가의 핏자국을 닦고 일어섰다.
* * *
“스승님께서 곧 오실 테니 위 사형과 두 귀객들은 조금 더 기다려 주시길!”
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들고 대청으로 들어와 말했다.
“막안연(莫安然)? 응? 너도 스승님의 제자가 된 거야?”
소녀를 보자마자 위경륜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운청휘의 시선은 소녀가 들고 있는 과일에 홀린 듯이 머물러 있었다.
적염과(赤焰瓜)!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설마 막주성에서 적염과를 보게 될 줄이야.
우연히 명계에서 적염과를 먹었는데, 달고 뜨겁지만 과육 자체의 온열이었다.
운청휘는 당시 아비가 적염과를 소개할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적염과는 명계에서만 자라며, 명계의 분화구 부근에서만 자라난다는 것을.
막안련이라 불린 소녀가 가져온 과일은 그때 본 적염과와 똑같았다.
“맞아요, 위 사형. 저는 천찬학관에 들어와 스승님의 직속 생도가 되었죠!”
경국지색의 막안연이 선뜻 말하며 쟁반을 탁자에 두었다.
“자네는 영흥성원의 학생일 텐데?”
위경륜이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막안연이 가볍게 웃으며 위경륜을 봤다.
“위 사형, 손님이 있으니 나중에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 드릴게요.”
운청휘는 묵묵히 막안연이 손질한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두 입술이 과육에 닿는 순간, 운청휘의 가슴이 잔잔히 물결쳤다.
‘역시 적염과군!’
“막 소저. 이 운청휘가 무슨 과일인지 물어도 되겠나?”
운청휘가 한 조각을 먹고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운 공자시군요!”
막안연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 과일은 저도 처음 봤어요. 스승님께서 제게 운 공자에게 드리라고 특별히 분부하셨어요!”
“영사께선 댁에 계시나?”
운청휘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는 일찍이 신식으로 저택 전체를 살폈지만, 흙보살과 부합하는 인물을 찾지 못했다.
더욱이 눈앞에 있는 막안연만 해도 일각 전까지 밀실에서 폐관하던 인물이었다.
막안연은 영문을 몰랐지만 선뜻 답했다.
“댁에 계실 뿐 아니라 곧 오십니다!”
-공자, 제가 막주성의 두 숨은 가문을 말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위경륜이 갑자기 운청휘에게 음을 보냈다.
-기억한다. 막가와 백가!
운청휘가 음으로 대답했다.
-설마 막안연이 막가의 구성원?
-그렇습니다. 막가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지위가 가장 높은 직계 구성원 중 한 명이죠. 열일곱이지만 이미 인왕경에 도달했고, 영흥제국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는 기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경륜이 음을 운청휘에게 보내며 말했다.
-다만 그녀는 영흥성원의 학생이었는데, 왜 지금 스승님의 문하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경륜, 막연!”
그때, 앳된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곧, 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운청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어린아이가 그의 신식을 속이고 소리소문없이 들어왔단 말인가?
“스승님!”
“스승님!”
위경륜과 막안연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특히 위경륜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격동했는데, 황급히 달려가 어린아이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불효하여 이별한 지 여러 달, 스승님을 걱정시켰네요!”
“괜찮아, 돌아왔으니 다행이죠!”
어린아이는 마치 부모라도 된 양 위경륜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자애롭게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위경륜의 스승이자 천성대륙 제일의 찬명사라 불리는 흙보살이었다!
“운 동포, 우리가 마침내 만났군요!”
흙보살이 운청휘에게 걸어와 싱긋 웃었다. 커다랗게 예쁜 눈망울이 운청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복제, 어찌하여 그대가……?”
운청휘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고, 얼굴에는 전에 없는 놀라움이 떠올라 있었다.
복제, 운청휘의 옛 친구이자 선계 10대 선제 중 한 명. 동시에 선계 제일의 찬명사였다!
“복제?”
흙보살이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운 동포, 소인 흙보살, ‘복제’는 아니올시다!”
“복제가 아니라고?”
운청휘는 믿을 수 없었다.
그는 한 번 만났던 사람이나 겪었던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더욱이 눈앞의 흙보살은 복제와 똑같은 외형을 지녔을뿐더러, 그의 영혼이 주는 느낌이 복제와 다르지 않았다.
이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운청휘의 신식은 흙보살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인간이 맞는 건가?”
운청휘가 갑자기 물었다.
“하하, 제 몸에 어디가 인간이 아니라고 보시는 거죠?”
흙보살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실례했군! 생김새가 옛 친구와 너무 똑같아서…….”
운청휘는 서둘러 감정을 추스르며 예의를 갖췄다.
아무리 살펴도, 눈앞의 흙보살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옛 친구인 복제는 인간이 아니라 반석족(磐石族)의 선제였다.
흙보살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의미심장하게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그보다, 나를 알고 있는 건가?”
운청휘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흙보살은 그를 보자마자 동포라 불렀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지 않았던가.
“하하, 엄밀하게 말하면 당신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일찍이…… 당신이 운 동포라는 것을 들었죠!”
흙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손에 있는 깃털 부채를 느긋하게 흔들었다.
보아하니 어린아이의 행동거지가 아니었다.
운청휘는 묵묵히 흙보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운 동포께서 적염과를 보고 제가 명계에 갔던 것을 연상하셨겠죠?”
흙보살이 깃털 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당시 명계에 운 동포를 만나러 갔는데…… 일이 좀 생겨서 미뤄졌지요.”
운청휘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허원선부가 세상에 나올 시간을 추산한 찬명사가 설마 당신인가?”
“맞아요!”
흙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