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6화
“그대가 영흥제국의 국사, 능설의 양모 화약운인가?”
운청휘가 능설을 데리고 화약운에게 걸어갔다.
운청휘는 작은 세계에서 불패 남풍을 통해 능설이 화약운의 양녀가 된 것을 알았다.
화약운은 말하지 않았으나, 운청휘를 보며 보이지 않는 파동을 보였는데, 마치 운청휘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화약운이 어째서 실망했는지, 운청휘는 바람이 새지 않는 벽과 같이 그녀가 무엇을 하든 티를 낼 수 없었다.
운청휘는 자연스레 화약운의 정탐을 느꼈다.
게다가 화약운이 이전에 작은 세계 밖에서 ‘영조제천’을 사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대의 말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네.”
화약운이 은은하게 말했다.
화약운은 운청휘의 깊이를 살폈을 것이다.
“어?”
운청휘는 약간 의혹이 생겼다.
화약운이 말을 하기도 전에 운청휘 곁에서 팔짱을 낀 능설이 화제를 옮겨갔다.
“어머니께서는 영흥제국의 국사, 화약운이세요. 그런데 어머니는 양모가 아니라 제 친어머니랍니다.”
운청휘는 놀랐으나 곧 무언가를 깨달은 기색이었다.
“일찍이 생각은 했다만……”
“능설이 현재 무위를 갖추게 된 것은 물론 그녀의 진선 혈맥과 내가 그녀에게 전수한 ‘천녀옥황심경’ 덕분이기도 하지만 화약운이 소모한 자원도 무시할 수 없군.”
“능설의 몸에는 진귀한 영약의 기가 돌고 심지어 후천적으로 선근이 심어졌어.”
“친어머니가 아닌 이상 자원을 이렇게 아낌없이 주진 않겠지.”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선근의 진귀함은 헤아릴 수 없다.
선근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선인이 선근을 가지고 있다.
능설은 천부적인 재능이 못하지 않고 진선 혈맥을 가졌으나…… 그녀의 선근은 깨어나지 않았거나 선근이 없을 수도 있다.
“국사, 짐과 적이 되려고 하는 겐가?”
멀리서 갑자기 들리는 위엄이 가득하여 메아리치는 종소리처럼 온 천지에 울렸다.
“200년 전, 내가 그대를 천성성지에서 쫓아냈는데 그대는 나와 감히 대적하지 못했다. 지금 고작 후배 하나를 위해 나와 정면으로 맞서려는 것인가?”
이어서 또 구천 위에 전해지는 선음처럼 위엄이 넘치는 소리가 들렸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소리는 천성성주의 소리다.
흙보살은 대답 대신 바로 운청휘 앞으로 날아갔다.
흙보살과 화약운은 모두 입을 열지 않았지만, 두 눈은 모두가 먼 곳의 하늘을 쳐다봤다.
갑자기.
구름 한 점 없는 진공이 갑자기 터지더니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진공 속에서 무수한 힘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먼 거리를 두고 운청휘와 능설은 소용돌이가 가슴 떨리는 기를 내보낸 것을 똑똑히 느꼈다.
“공간 붕괴!”
운청휘의 눈에 무거움이 스쳤다.
공간 붕괴와 공간 균열은 두 가지 개념이다.
균열이란 그저 공간에 홈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공간 붕괴는 공간을 직접 붕괴시키는 것이다.
“천성대륙이 아무리 신비로워도 결국은 범인의 별이다…… 선인 급의 인물이 등장한다면 전체 공간 구조에는 붕괴가 나타나게 된다.”
운청휘가 속으로 말했다.
그는 흙보살, 화약운과 영흥황제, 천성성주가 싸우게 된다면…… 천성대륙 전체가 함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운 동포를 지키겠다고 약조했습니다!”
흙보살의 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운청휘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감히 둘째 황자를 폐했고, 제2성자도 폐하였는데, 바로 흙보살이 있기 때문이다.
“운청휘는 설의 정인입니다. 어머니로서 그를 지킬 것입니다.”
화약운도 천천히 말했다.
영흥황제를 앞에 두고 화약운은 자태든 말투든 신하의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녀와 영흥황제의 관계는 군신관계도 아니었다.
화약운은 국사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한 가문의 객경과도 같다.
공양을 즐기며 필요할 때는 모든 세력을 위해 힘을 낸다.
그러나 그 자체는 자유로운 신분이어서 언제든 그녀를 봉양하는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들!”
영흥황제의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작은 세계에서 나온 참가자들 중 시간이 멈춰서 같이 멈췄던 둘째 황자가 갑자기 깨어났다.
“부황!”
소무위가 놀란 가운데 하늘까지 치솟는 분노의 목소리가 울렸다.
소무위의 몸은 벌떡 일어나더니 잠시 후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곧 소무위와 또 하나의 중년인이 운청휘 등의 시야에 나타났다.
운청휘 등과는 1만여 리의 거리도 떨어지지 않았다.
소무위가 입은 황포와는 다르게 중년인이 입은 것은 용포인데, 용포에 수놓아진 오조금룡도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
중년인의 기는 헤아릴 수 없었고, 허공에 서 있는 느낌은 신명처럼 높았다.
이 중년인은 다름 아닌 영흥제국의 황제다!
“국사, 짐이 옛정을 생각하여 이치를 따지겠네!”
영흥황제가 허공에서 아래쪽 지면을 내려다봤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화약운과 마주칠 때 오히려 그 시선을 거두었다.
영흥황제가 말했다.
“국사, 짐은 그대에게 묻겠네. 만약 능설이 다른 사람의 무위를 빼앗고 자존심을 짓밟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구족을 멸하고 육신을 파괴하고 영혼을 사로잡아 천화로 9999년 불태워야죠!”
화약운이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영흥황제의 가설에 대답한 것인데, 사실은 그녀의 입장도 밝힌 것이다.
“그렇지. 국사께서 그렇게 대답하셨으니, 국사께서는 이치를 따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영흥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마치 화약운의 대답에 만족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짐은 지금 그대에게 묻겠네. 운청휘가 태자의 무위를 폐했고, 태자에게 무릎을 꿇으라 했고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짐은 부친으로서 어떻게 해야겠는가?”
“내가 왜 그의 무위를 폐했고 또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는지 그대는 소무위에게 먼저 물어봐야 하지 않겠소?”
운청휘의 냉소하는 목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응? 짐이 국사에게 말하는데 네놈이 끼어들 자리더냐.”
영흥황제하 운청휘를 흘겨보며 바라봤다.
영흥황제의 시선은 마치 사람의 심령을 사로잡는 것 같았는데, 눈빛 한 번에 빙고에 빠진 듯 두려움이 생기도 호흡조차도 힘들게 만든다.
운청휘는 신식으로 그 기를 몰아내려고 할 때 화약운이 갑자기 손을 써 그 압박을 날려버렸다.
“황제, 운청휘의 말이 맞소. 그대는 우선 소무위가 어떤 짓을 했는지 그에게 먼저 물어보시오.”
화약운이 입을 열어 말했다.
화약운이 그 말을 하는 것은 운청휘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영흥황제와 적이 될 것이다.
“본 황자와 운청휘 사이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땅강아지 따위가 본 황자의 무위를 박탈했을 뿐 아니라 본 황자의 존엄도 짓밟았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도 무사히 빠져나갈 생각을 말거라!”
소무위의 분노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부황이 이곳에 있고, 그는 작은 세계에서 그의 사부인…… 유영명황의 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화약운은 운청휘 쪽에 섰는데, 운청휘를 놀라게 했다.
어찌되든 지금의 화약운은 그와 능천진선의 관계를 모른다.
의외는 의외일 뿐, 결국엔 좋은 일이니, 운청휘의 배짱은 더 커졌다.
이것은 흙보살 외에 또 하나의 선인이 그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주!”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작은 세계의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시간 정지로 인해 몸과 사고가 멈춘 제2성자
행동력을 회복하고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성주’라고 공손히 외쳤다.
천성성지의 등급은 매우 삼엄하다.
부자간에도 존비의 예를 갖춰야 한다.
제2성자는 땅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그림자는 순간 이동하여 허공에 나타났다.
제2성자 곁에는 그와 닮은 젊은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제2성자보다 기질이 무수히 존귀했다.
마치 제천의 모든 강자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줬다.
이 청년은 다름 아닌 제2성자의 아버지이자 영흥성지의 성주 풍경양이다.
풍경양은 기를 숨기고 있으나, 운청휘의 신식은 그 몸속에 팽배하고 끓어오르는 기를 발견했다.
그는 허공에 서 있고, 분명 조금도 움직이지 않지만, 그 주위에 있는 공간은 때때로 금이 갔다.
이 공간은 이미 그의 육신을 간신히 견디고 있어…… 언제라도 그의 존재로 인해 붕괴될 수 있었다.
풍경양의 강함은 영흥황제의 위에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만약 영흥황제가 영흥제국의 국운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 강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풍경양은 제2성자에게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저 한 손을 제2성자의 이마에 얹었다.
갑자기, 제2성자가 작은 세계 안에서 겪었던 장면들이 전부 풍경양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2성자는 높은 위치여서 운청휘를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설령 소무위의 손에서 운청휘를 구했고 높은 어조로 ‘체면을 생각해서 봐주라’는 말을 했어도
풍경양이 보기에 모두 정상이었다.
그는 풍경양의 아들이니 오만할 자격도, 안하무인이 될 자격도 있었다.
그 다음에 그는 운청휘가 제2성자에게 마종을 심었고, 무릎을 꿇게 하고…… 개처럼 짓는 법을 알려주고 하늘을 뚫을 악한 기질이 풍경양의 몸에서 뿜어졌다!
풍경양이 비록 매정하지만 제 새끼는 예쁜 법인데, 어찌 자신의 아이가 이런 치욕을 당하게 허락하겠는가!
“운청휘, 위로는 구천십지(九天十地), 아래로는 유명황천(幽冥黄泉)까지, 누구도 네놈을 구할 수 없다!”
풍경양의 신분, 무위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가 진노했음을 말한다.
무시무시한 힘이 그의 몸에서 뿜어졌고 단번에 운청휘에게로 휘몰아쳤다.
이 힘이 가는 곳마다 공간이 모두 붕괴되어 한 줄 또 한 줄의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운청휘의 눈에 비친 무거움은 그의 지금의 무위로는…… 단번에 이 힘에 의해 소멸될 수도 있다.
“성주, 그는 제가 보호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흙보살의 소리가 울렸다.
흙보살은 원래부터 호인의 형상이었는데, 말을 할 때마다 상냥한 얼굴과 자상한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흙보살에게서 보기 드문 패기가 퍼져나왔다.
흙보살의 말이 떨어지자 손에 있는 깃털 부채를 부채질했고, 풍경양의 몸에서 운청휘를 향하던 공포스러운 힘이…… 갑자기 길을 되돌아 우르릉 소리와 함께 풍경양에게 부딪쳤다.
거대한 폭발로 반경 만 리 안의 공간을 파괴했다.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가 마치 우주 깊은 블랙홀과 같이 휘청거렸다.
갑자기 영흥황제도 공격을 했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창천의 큰 손이 거대한 용의 발처럼 공간을 직접 찢어 운청휘를 향해 돌진했다.
운청휘가 비록 신식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고 기의 영향을 받지 못하지만, 이 창천의 큰 손이 내뿜은 힘은 그의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힘들게 할 정도로 그의 등을 찌르는 것 같았다.
“소황(萧皇), 내 앞에서 내 여식의 정인을 공격하다니, 그대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화약운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곧, 그녀가 한 손가락을 허공에 휘둘렀다.
거룡의 발톱으로 허공을 찢은 창천의 큰 손이 ‘쿵’ 소리와 함께 불에 탄 백지처럼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국사, 그대가 공격했으니, 이것은 하늘 밖 전투군!”
영흥황제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와 화약운 급의 전투는 막주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영흥제국 전체를…… 나아가 천성대륙 전체도 파괴시킬 수 있다!
영흥제국의 황제로서 소황은 자연스레 이런 상황이 발생하길 허락하지 않는다.
사실 천성성주 풍경양도 흙보살로부터 하늘 밖 전투를 요청받았다.
천성성지의 존재는 천성대륙의 기운을 수호하기 위함인데…… 바꾸어 말하자면 천성성지는 온 천성대륙의 통치자라는 것이다!
풍경양은 그들의 격전으로 이 대륙이 소멸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