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8화 (18/254)

와! 여름이다 (4)

평소답지 않은 모습 때문일까.

삼촌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데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뒤따라 사람들이 내렸다.

유나 누나와 지철이 형.

다른 식구들까지 대부분 보였다.

모두 합치면 무려 여덟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강북에 있는 2호점을 맡아서 운영하는 지배인님은 오지 않으셨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그분은 아이와 가족이 있으시다.

금쪽같은 휴가를 가족과 보내기로 하신 것 같았다. 뒤늦게 삼촌을 보고 이모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셨다. 손님인 줄 알고 재료부터 확인하신 것 같았다.

“이게 얼마 만이에요?”

“작은아버지 모시러 왔을 때 봤으니 반년쯤 되었으려나요. 형수님은 어째 뵐 때마다 더 고와지시는 것 같아요.”

“호호. 다들 멀리 오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와서 앉아요.”

“저번에 왔을 때와는 또 다르네.”

지철이 형은 신기한 듯 주변을 살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전에 사진을 찍으러 왔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지긴 했다.

수호가 장담했던 대로 꽃이 피니 꽤 화사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고 밋밋하던 마당도 그사이에 제법 잘 꾸며놨다.

“수호가 생각보다 실력이 좋아요. 그러고 보니 사진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때는 서울에서 봬요”

“쉿! 그건 아직 비밀이야.”

“뭐가 비밀인데?”

불쑥 유나 누나가 끼어들었다.

얼굴이 예전보다 많이 헬쑥해 보였다.

요즘 대회 준비를 하느라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들었는 데 안쓰러울 정도였다.

만약에 수호가 이 자리에 같이 있었다면 아주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별거 아니에요.”

“치사하게 나한테도 비밀이야?”

“지금 말고 나중에 말해줄게.”

“됐거든요. 도찬아, 나 목마른데 마실 것 좀 줄래?”

“막걸리와 벽향주 뭣부터 마실래요?”

“당연히 둘 다 줘야지. 센스 없게 왜 이래. 맥주도 주면 더 좋고.”

확실히 누나다운 대답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술이 센 사람을 찾는다면 다들 어김없이 누나를 지목할 것이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미스테리한 주량을 가진 것이 유나 누나였다.

하지만 술을 곧장 내오진 않았다.

취한 상태로 힘쓰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시원한 음료부터 내가자 다행히 이장님과 수호는 적당한 타이밍에 왔다.

그 덕분에 어반 스카이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오크통을 쉽게 옮길 수 있었다.

장정이 여섯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이장님이 도와주셨더라도 우리끼리 옮겼다면 최소 반나절은 걸렸을 것이다.

그쯤 되자 맨파워가 부족하다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그나마 전통주라 다행이다.

위스키는 숙성 과정이 복잡하다.

같은 숙성 창고에 있다고 하더라도,

오크통을 놓는 위치와 높이에 따라서 술의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그런 양조장은 시기에 맞춰 오크통을 옮긴다.

그게 바로 노하우라 할 수 있다.

괜히 양조장의 술을 총괄하는 이가 마스터 디스틸러라 불리는 게 아니다.

다행히 현재 판매 중인 벽향주는 숙성 기간이 짧은 편이라 그 정도로 민감하진 않았다.

“조카님아, 모처럼 쉬러 왔더니 일을 시키는 거는 너무 한 거 아니니?”

모처럼 몸을 써서일까.

삼촌은 땀을 상당히 많이 흘렸다.

선풍기 앞에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투덜거리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운동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평소에 운동 좀 하셔야겠어요.”

“이게 노동이지, 운동이냐.”

“대신 오늘은 제가 한턱 쏠게요.”

“오오! 사장님이 되더니 통이 커졌어.”

“술은 공짜 아니에요.”

도저히 그것까지 약속할 수는 없었다.

워낙 술을 잘 마시는 이들이라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버릴 수 있다.

아무리 식구라도 그건 좀 아니었다.

다행히 오늘따라 다른 손님은 거의 없었기에 오저당의 주막은 어반 스카이 식구들이 거의 다 차지할 수 있었다.

어느덧 휴가 시즌도 거의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낮술의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진짜 레이스는 저녁에 시작된다.

지금은 그저 마중물을 대는 정도였다.

진짜 술꾼은 한 번에 취하도록 마시고 뻗는 게 아니라 긴 시간 꾸준히 술을 마시는 이들이다.

그렇게 오후 3시쯤이 되자,

다들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는 계곡에 발을 담그러 갔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방에서 잠을 잤다.

다들 올빼미형 인간들인데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여파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도 똑같이 쉴 수는 없었다.

월요일인 터라 주말 사이에 주문 들어온 벽향주를 택배로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박스 작업을 한참 하고 있는 중에 이모는 수호와 함께 빈 옹기를 닦고 있는 유나 누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에 있는 예쁘장한 친구가 수호가 짝사랑한다는 그 사람인가 보네.”

“어떻게 아셨어요?”

“수호가 저렇게 티를 내는데 모를 수 있나. 그런데 정작 저 친구는 다른 사람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네.”

슬쩍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누나를 바라보고 있는 형이 보였다.

가끔 시선이 마주치면 둘 다 묘한 미소를 지었는데 누가 봐도 두 사람의 사이가 크게 발전했다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수호만 눈치채지 못한 거 같죠?”

“콩깍지가 끼면 그 사람만 보이잖아.”

“당분간은 비밀로 해주세요.”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2박 3일만 무사히 보내면 될 일이었다.

사람 사이의 일은 모르기에 두 사람이 언제까지 커플일지 알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둘을 응원했다.

누나는 활달하고 형은 진중했다.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지지 않아서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한동안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끝내자 삼촌이 다가와서 곁에 앉았다.

“바쁜 일은 다 끝난 거야?”

“택배차에 이거 실어주면 끝이요.”

“그건 우리 애들한테 부탁하면 되니 너는 나랑 잠시 이야기 좀 하자.”

“그러시죠.”

대신 일을 해준다는데,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삼촌의 표정을 봤을 때.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아마 술을 진탕 마시기 전에 해야 하는 내용이겠지. 아무리 삼촌이 술을 좋아해도 그 정도의 구분은 할 줄 안다.

삼촌과 함께 향한 곳은 오저당 내부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한옥에는 자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 애매했다.

집안을 제외하면 에어컨이 설치된 유일한 장소라 이곳이 가장 적당했다.

에어컨부터 켜고 자리에 앉으니 삼촌이 의자 하나를 반대편에 놓고 앉았다.

“나한테 제대로 해볼 생각이라고 했잖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는 거냐?”

“목표로 삼은 매출에 도달했으니 적어도 내년까지는 더 해보려고요.”

“그 이후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연말까지 잡은 목표가 2억이었다.

하지만 오래전에 그 목표는 달성됐다.

추가로 옹기를 들여놓고 벽향주의 생산량을 늘린 데다가 막걸리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지난달에 올린 매출만 합쳐도 1억에 달할 정도로 오저당은 급성장 중이었다.

내 의중을 확인한 삼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학업은 마치는 게 좋지 않을까?”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겪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되던데요.”

“나중에 후회할지도 몰라. 형님이나 형수님도 가능하면 졸업하길 바라실 텐데”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버지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잘 설득하면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버지가 좋아하는 숫자로 증명할 수도 있었다.

아직 부족한 경영에 대한 지식은 밤마다 개인적으로 공부하면 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영문 원서도 손쉽게 구하는 시대라 산골에 있는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삼촌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많이 고민해봤는데 네가 원한다면 형님이랑 내가 투자를 해볼···.”

“사양하겠습니다.”

“이야기도 안 들어보고?”

“제가 두 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돈을 주실 분들이 아니다.

삼촌은 사업가이고 부모님은 누구보다 미국식 마인드가 깊은 편이다.

괜히 미국으로 이민가신 게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별종 오브 별종이셨을 것이 분명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고 유산이 자동으로 내 손에 들어올 거라 생각지도 않았다.

평소 보았던 두 분의 성향을 보면 어딘가 기부하실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런 분들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돈을 쾌척하진 않으실 거다.

분명 바라시는 게 있겠지.

그게 뭔지는 너무나 뻔한 게 아닐까.

아마도 일정량의 지분을 가져가고 그 대신에 투자금을 주실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주식회사 형태로 바뀌는 게 좋지 않겠어? 투자금을 받으면 인력도 더 보충할 수 있고 술도 지금보다 많이 빚을 거 아니야.”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벽향주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이때에 적어도 안정적인 생산량을 뽑아내길 바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얼마를 투자하시게요?”

“형이랑 나랑 합치면 3억 정도 될 거야. 더 필요하다면 상황 봐서 해줄 수도 있고.”

“그 정도면 차라리 은행 빚을 질래요. 3억에 지분을 내주는 거는 손해니까요.”

“이자는 생각 안 해?”

차라리 이자가 낫죠.

여기는 제가 상속받은 거랍니다.

그걸 피자 조각 떼가듯이 가져갈 생각은 하덜 마십쇼. 솔직히 그 정도 돈이면 1~2년 정도 빡시게 모으면 그만 아닙니까.

현재의 오저당이면 가능한 금액였다.

그렇다고 돈을 아예 안 받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삼촌이 저한테 하셨던 약속이 있었는데 그냥 입 닦으실 생각은 아니죠?”

“내가 무슨 약속을 했는데?”

“벽향주를 빚으면 모두 사들일 거라는 약속이요.”

“생산량이 부족해서 맨날 간신히 주문하는 수량을 맞추는 거는 너잖아.”

“그러니까 원래 오저당과 저에게 투자하려던 돈은 무이자로 빌려주시죠.”

막무가내로 우길 생각은 없었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고 삼촌에게 출력해 놓은 현금흐름표를 건네주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보여주지 않을 민감한 자료였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야! 너 생각보다 많이 벌고 있구나.”

“그러니 당장 돈이 급하진 않아요.”

“필요 없다면서 돈은 왜 빌려달래?”

“기왕에 이야기 나온 김에 창고 하나 지어보려고요.”

현재 가장 큰 문제가 공간이다.

오늘 오크통을 비웠고 그 자리에 옹기를 채워놓을 예정이나 그걸로는 부족했다.

생산량이 늘어나며 너무나 협소해졌다.

매달 사용하는 공병과 박스 그리고 술을 빚을 쌀의 양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제 더는 쌓아둘 곳도 없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새로운 창고를 세우면 된다.

그러면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된다.

당연히 벽향주의 생산량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보조해줄 인력 한두 명만 더 충원하면 지금의 두세 배도 가능해질 것이다.

“여기에 허가가 나올까?”

“담당 공무원하고 통화를 해봤는데 쉽지 않겠지만,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하던걸요.”

“그 애매한 말만 믿고 진행하려고?”

“돈이 있어야 더 정확하게 물어보죠. 저는 적어도 2년 후에나 가능할 거라 생각해서 깊게 파고들 이유가 없었는데요.”

나의 플랜에 삼촌의 제안은 없었다.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밟아서 올라가려고 했는데 단숨에 치고 올라가게 생겼다.

일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불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흥분되었다.

과연 오저당은 어디까지 갈까.

이왕에 시작했으니 적어도 국내에서 최고의 자리까지는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종합 주류 회사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매출 2조 단위는 넘사벽이잖아.

“좋아, 내가 빌려주는 1억 5천만 원은 무이자로 해줄게. 형님이 투자하는 돈은 네가 알아서 조건을 조율해봐.”

“저에게는 전지전능하신 엄마 찬스도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뭐··· 실패하면 미국으로 멱살 잡고 끌고 가시겠지만요.”

“대신 계약서는 써야겠지?”

“물론이죠.”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확실한 게 좋지.

수백만 원도 아니고 억 단위가 넘어가는 금액이니 기본적인 것은 지켜야 했다.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다.

삼촌에게 돈을 빌리고 3년이란 기간 내에 갚는다는 것이 전부였다.

“창고 크기는 어느 정도 할 생각이야?”

“적어도 100평은 되어야겠죠.”

“너무 큰 거 아니야?”

“그 정도는 되어야 해요. 창고를 지은 뒤에 좁다고 또 지을 수 없잖아요.”

마음 같아서는 더 크게 짓고 싶다.

하지만 공간상의 여유가 별로 없었다.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지게 지으면 해결될 문제이나 효율의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산을 깎을 수도 없었다.

공사비도 많이 나올 게 분명하고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았다.

“서울이라면 소개해줄 건축 사무소가 몇 곳 있는데 여긴 너무 멀고 외져서 맡아줄 만한 사람이 안 떠오르네.”

삼촌이 뭘 걱정하는지 잘 안다.

이왕에 지을 거면 제대로 지어야 한다.

술을 숙성시킬 창고라 보온과 환기 모두가 중요하다. 강원도의 매서운 추위를 쉽게 봐서는 절대 안 되었다.

“그건 제가 직접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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