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33화 (33/254)

나만 빼고 다 재능충 (3)

요정이 원래 이렇게 많았던가.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이렇지 않았다.

정확하게 숙성 창고에는 팔십 마리의 요정이 거주했다. 향이에게 부탁해서 이쪽으로 옮긴 것이라 확실했다.

양조장과 숙성 창고.

두 곳의 요정 숫자는 동일했다.

각각의 장소에서 술을 숙성시키고 있기에 요정의 적절한 배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수백 마리가 넘어가는 요정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적어도 삼백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렇다면 거의 서너 배 넘게 늘어났다는 것인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향이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옷도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아주 큰 차이는 아니었다.

숨은그림찾기도 아니고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어내긴 어려웠다.

심지어 요정들 사이에서 조금 특이한 녀석들이 두엇 정도 보였다.

일반 요정과 향이의 절반쯤 되려나.

크기도 조금 더 컸고 복장도 특이했다.

그 녀석들도 향이처럼 관복을 입고 있었는데 우리를 뒤늦게 발견한 건지 곧장 달려와 향이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였으나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다.

“뭐지? 갑자기 왜 늘어난 거지?”

당연히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술을 빚는 양과 요정의 숫자는 비례하는 것 같았다.

벽향주의 숙성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서 나타났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막걸리를 처음 빚기 시작했을 때.

그때도 지금 상황과 조금 비슷했다.

당시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벽향주만 빚다가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던 시기에 생겼던 일이었다. 확실히 생산량과 연관성이 없진 않아 보였다.

그래도 조금 든든한 기분인걸.

돈과 요정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게 내가 가진 신념이 되어가고 있었다.

실제로 요정의 증가로 인해 오저당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잠깐만···.

요정이 더 많아질 경우.

그만큼 숙성 기간도 짧아지지 않을까.

아직 추측에 불과하나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요정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숙성 타이밍이 미묘하게 짧아졌다.

“안 들어가고 여기 서서 뭐 하고 있냐?”

창고 문을 열고 그대로 서 있는 나를 보고 수호는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에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녀석의 뒤로는 호세와 쌍둥이가 서 있었다.

“이걸 언제 다 끝내나 계산하고 있었지. 그게 나와야 현송이랑 태백에 언제쯤 오면 된다고 배차 요청할 거 아니야.”

“그래도 새로 들여놓은 설비가 있어서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것 같지 않냐?”

“비싼 돈 주고 산 거니 잘 작동했으면 좋겠다.”

숙성 창고의 한쪽 구석.

그곳에는 새로운 설비가 놓여 있었다.

기존의 방식 그대로 여기 있는 것을 내보내자면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대단한 것을 들인 것은 아니다.

4구짜리 주입 설비와 뚜껑을 잠가주는 캡핑기로 구성된 형태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이 제법 많이 나갔다.

면적은 많이 차지하지는 않았다.

완전한 자동화 설비가 아닌 탓인데 그 대신 인력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기존까지 벽향주는 모두 수작업으로 했기에 예전보다는 확실히 빨라질 것이다.

반면에 오풍주는 상황이 달랐다.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화 설비가 있기에 그쪽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원래는 그 설비를 활용해서 벽향주도 돌려볼 생각을 했으나 쉽지 않았다.

병의 형태도 달랐고,

병입기 탱크 청소도 어려웠다.

평소에도 청소는 자주 하는 편이나 노즐 같은 곳에 영향을 줄 게 분명했다.

서로 다른 술을 병입할 때마다 설비 전체를 완벽하게 닦아낼 방법은 없었다.

“호세랑 우주는 미리 라벨 작업해 놓은 병들 꺼내와. 그리고 유성이는 나랑 같이 병입하는 거 시작하자.”

수호는 앞장서서 일을 지시했다.

실장 타이틀을 달게 된 후부터 작업 지시는 주로 녀석을 통해서 내려졌다.

생각보다 잡다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업무를 분담해야만 했다.

“오늘도 화이팅! 아자아자!”

호세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자,

쌍둥이도 마지 못해서 따라 했다.

이제 겨우 아침 7시인데 기운 넘치는 호세는 내가 봐도 너무 과할 정도였다.

도대체 저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신기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시작된 작업은 점심 무렵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 사이에 병입된 벽향주는 박스에 담겨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파손 위험 때문에 높이 쌓을 수 없기에 양조장 앞까지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오래 방치되진 않았다.

태백에서 온 화물차가 오전 작업량을 모두 싣고 떠나갔고 오후에는 현송에서 보낸 화물차가 와서 나머지를 가져갔다.

그걸 보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달 동안 고생해서 빚은 술이다.

그런데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창고 안에 들어 있는 술이 모두 사라지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수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진이 빠진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왜 이리 허무하냐. 한 무리의 도적떼가 쳐들어와서 싹 쓸어간 기분 같아.”

“글쎄다. 통장에 찍힌 금액 보면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싹 사라질 거야.”

“어차피 그거 빚 갚는 데 쓸 거잖아.”

“갚을 거는 빨리 갚아야 발 뻗고 자지.”

숙성 창고의 벽향주를 모두 팔면 대략 8천만 원 이상의 돈이 수중에 떨어진다.

세금 낼 돈을 제외한 게 그 정도였다.

예전에 비해 들어가는 재료는 점차 줄어드는데 생산되는 양은 늘고 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거기에 오풍주까지 합칠 경우.

매달 내 손에 떨어지는 순수익은 1.5억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벽향주보다 오풍주가 숙성하는 기간은 조금 더 길지만, 생산량은 이쪽이 훨씬 안정적인 덕분에 나오는 수치였다.

어머니! 저 억대 연봉자가 됐어요.

아직 미국의 대기업 임원이 된 어머니와 비벼볼 수준은 아니나 그래도 내 나이를 생각하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부자가 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직은 갚아야 할 빚이 4억이나 된다.

삼촌과 아버지.

그리고 은행에서 빌린 돈이다.

안타깝게도 숙성 창고를 짓는데 삼촌과 아버지가 빌려준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옹기도 주문해야 했기에 벌어 놓은 자금을 모조리 넣었는데도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품평회에서 천오백만 원이나 되는 상금이 나와서 다행이지.

“은행 빚부터 갚을 거지?”

“그래야지. 설비 때문에 은행에 대출도 받아보고 할 거는 다 해보네.”

“나는 솔직히 은행에서 그렇게 쉽게 대출을 해줄지는 생각도 못 했다.”

“걔들도 다 계산기 두드려 보고 빌려주는 거잖아. 오저당 계좌로 입출금되는 돈이 얼마인데 고작 5천만 원 정도는 껌이지.”

다음 차례는 삼촌과 아버지다.

돈을 벌고 있을 때 정리해야 했다.

언제까지 이런 판매량이 유지가 될지는 아직 예상하기 힘들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적어도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

기존 생산량 1만 병.

거기에 추가된 2만 8천 병.

합쳐서 거의 3만 8천 병을 한 달 동안 생산했으나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겨우 닷새 만에 완전히 소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의 멘탈은 부서졌다.

닷새라는 기간도 우리가 병입하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순차적으로 내보낸 탓에 생긴 것이다.

만약, 한꺼번에 보냈다면,

이틀도 버티지 못했을 거란다.

우리 술을 사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알았으나 이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수호도 그쯤 되자 좌절감이 가득한 얼굴로 자포자기했다.

“이게 말이 되냐? 어떻게 그 많은 술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조금 두려울 정도였다.

밑 빠진 독에 술을 붓는 기분이다.

30일 동안 고생해서 빚은 술이 며칠도 못 가다니!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최소 10만 병 정도는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걸 만들려면 도대체 옹기를 몇 개나 더 들여놔야 하는 거야?

“지금 비어있는 옹기가 몇 개야?”

“아직 절반도 못 채웠어. 어제까지 계속 병입하느라 정신없었잖아. 옹기가 비워져야 술을 빚어서 숙성시키지.”

“일단 오늘은 그것부터 작업하자.”

“또 한 달 동안 시달리게 생겼네.”

“그래도 열흘 후에 오풍주가 나오잖아. 그거 풀리면 조금 잠잠해질 거야.”

“과연 그럴까? 오풍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그게 있는 게 어디야.

잠시나마 한숨 돌릴 수는 있을 것이다.

오풍주는 이번에 18,000리터가 나올 예정인데 그걸 병입하면 13,500병이다.

이번에 내보낸 벽향주의 절반밖에 안 되는 양이나 그 뒤로도 일주일 단위로 비슷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다.

“아무래도 네가 예전에 말했던 대로 파렛트렉을 설치해야 할 것 같아.”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바닥은 이미 옹기로 가득 찬 상태다.

여기서 더 옹기를 넣으려면 위로 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3단으로 쌓으면 지금 생산량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거다.

3단인데 왜 두 배냐고?

지게차가 움직일 공간은 있어야지.

사람의 힘으로 200리터 크기의 옹기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누가 지게차를 사용해서 옮기는 작업을 하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사 전에 우리 둘 중 한 명이 지게차 모는 거 배워야 할 것 같아.”

대형 지게차를 쓸 거는 아니다.

그러면 면허증은 필요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안전에 관련된 것이라 별도로 교육은 미리 받았으면 했다.

옹기 몇 개를 깨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다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너 지게차 몰아본 적 있어?”

“나는 당연히 없지.”

“그런데 무슨 깡으로 교육을 안 받겠다는 거야? 그러다가 사고 나면 어쩌려고.”

“나 말고 호세가 몰 줄 알아.”

“뜬금없이 호세가 왜 여기서 나와?”

“그 녀석이 한국에 와서 처음 다녔던 직장이 연화 건설 말고 다른 곳이랬잖아.”

그건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연화 건설에서 일한 거는 우리를 만나기 반년 전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다른 곳에서 일을 했다고 들었다.

“그곳이 물류 창고였다네. 그래서 틈틈이 지게차 모는 걸 배웠다고 들었어.”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일까?”

“그건 나도 모르지. 일단은 할 줄 안다니까 맡겨 보는 수밖에 없잖아.”

녀석의 말처럼 방법이 없긴 했다.

그런데 왜 소외감이 느껴지게 나만 빼고 다들 숨겨 놓은 재능이 하나씩 있는 건데?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장사에 소질 있는 삼촌.

영상 제작에 재능을 보인 쌍둥이.

사진과 칵테일에서 성과를 낸 형과 누나.

요리 실력이 뛰어난 이모와 만능 재주꾼 이장님까지 이걸 인복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수호가 보였다.

녀석을 보니 이유 모를 위안이 되었다.

그렇지, 네가 있었지!

오늘따라 평범해 보이는 네가 좋다.

지금 모습 그대로 곁에 있어 주길 바라.

제발 부탁이야. 너마저 재능충으로 밝혀지면 내가 너무 초라해지잖아.

‘아니야! 부럽지 않아.’

내게는 향이와 요정이 있잖아.

이건 재능의 영역을 넘어서 신이 내린 축복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정들은 품절의 굴레에 갇힌 오저당의 해결책이 되어 주었다.

대폭 늘어난 요정이 답이었다.

내가 했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확실히 숫자가 늘어난 후부터 술을 숙성하는 기간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기존에 한 달 동안 숙성하던 벽향주는 거의 20일 만에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

오풍주도 다르지 않았다.

기존에는 6주 숙성 기간을 잡았지만, 이제는 4주 만에 숙성이 완성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다.

요정이 더 늘었다고 벽향주나 오풍주의 맛이 더 좋아진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하긴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지.

아마 요정이 늘어난 만큼이나 숙성 중인 술의 양도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오저당에 상주 중인 요정의 숫자는 400마리가 넘어섰고 그만큼 숙성 중에 변질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술을 빚는 양부터 늘려야 한다.

술을 많이 빚을수록 요정이 늘어난다.

요정이 늘면 숙성 주기가 짧아지게 된다.

생산을 두 배로 늘리면 실제로는 세 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간단하고 단순한 이치였다.

한편으로는 오기가 살짝 생겼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 계속 품절이면 어디까지 가나 도전해보고 싶었다.

10만 병을 만들어도 벽향주가 계속 품절일지 두고 보자고!

“무조건 생산량을 늘린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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