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교두보 (1)
모든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거의 폭주에 가까운 속도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성 창고에 3단 팔렛트렉 설치였고 그 이후에 추가로 옹기 수십 개를 이천에 주문 넣었다.
그렇게 생산량이 늘어나자,
당연히 요정도 그만큼 증가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숙성하는 기간도 한 차례 더 변화가 생겼다. 벽향주는 기존의 절반인 15일까지 줄일 수 있었고 오풍주도 이제는 21일이면 완성됐다.
하지만 그 이상은 줄지 않았다.
마지막에 양조장 내부의 사무실을 허물고 오풍주 숙성을 위해 6kl 탱크 두 대를 넣었는데도 변화는 전혀 없었다.
아마도 이게 한계인 것 같았다.
덕분에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생산량이 두 배 이상이 된 상태다.
이제는 벽향주의 월간 생산량이 8만 병이 넘어갔다. 석 달 전에 만 병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였다.
옹기가 더 많아진 것도 있으나 숙성 주기의 단축이 이뤄낸 성과였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설명하냐는 것이다.
호세나 쌍둥이는 어차피 내 지시대로 움직일 뿐이고 고객은 맛에서 차이를 느끼지 못할 테니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수호는 조금 달랐다.
“진짜 2주만 숙성해서 내보내도 되는 걸까? 예전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잖아.”
녀석도 오저당의 디스틸러다.
나 없이 술을 빚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 데다가 처음에 선생님께 전수 받았을 때부터 나와 함께 배웠다.
대충 얼버무린다고 납득할까?
“내가 설마 제대로 숙성도 안 된 술을 내보낼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너도 맛을 봐서 알겠지만, 기존의 벽향주와 지금 거랑 차이가 있어?”
“아니, 전혀 없지.”
수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것 보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녀석은 잠시 잊고 있던 것을 지적했다.
“스토어에 올라가 있는 이미지에 벽향주는 한 달 동안 숙성된 술이라고 적혀 있는 거는 어떻게 할 거야?”
아하!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
한동안 스토어를 신경 못 쓴 탓이다.
온라인 판매 비중은 오프라인에 비해 비중이 매우 낮기에 생긴 실수였다.
“당장 수정하라고 할게. 그리고 숙성 주기를 바꾸는 거는 선생님께 품질이 같은지 확인까지 받은 거니 걱정 마.”
“응? 언제?”
“병입하기 전에 보내드려서 확인했어. 선생님한테 안부 전화 자주 안 할래?”
“안 그래도 오늘 전화드리려고 했어.”
그걸로 수호는 해결되었다.
선생님이 오케이했다면 그걸로 끝이다.
대구에 계신 선생님은 우리가 누룩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더니 벽향주의 숙성이 단축이 된 것이라고 알고 계셨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누룩은 술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그로 인해 숙성의 기간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더구나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그 이후부터 선생님은 우리가 하는 일에 더는 간섭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셨다.
우리의 성과를 인정하신 것이다.
“그래도 숙성 주기를 줄인 덕분에 공급 문제는 많이 해결됐잖아.”
이제는 안정권에 들어섰다.
여전히 주문량이 생산량을 웃돌고 있으나 예전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온라인의 경우에는 예약만 해놓으면 일주일에서 보름 이내에 받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당연히 그 대부분의 주문은 우체국 쇼핑몰에서 이뤄졌다. 우리가 만든 스토어도 있으나 작업량이 문제였다.
하루에 수백 개 이상의 택배를 처리할 인력이 부족했다. 우리가 직접 판매하는 수량은 여전히 한정적이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지.’
오프라인 판매량이 늘고 있었다.
현송과 태백 같은 주류 상사들의 프로모션이 이어지고 있는 덕분이었다.
현재 우리와 계약된 주류 상사는 모두 일곱 곳이었고 적어도 광역시 대부분은 공급되고 있다고 봐도 된다.
그중에서도 현송이 압권이었다.
확실히 수도권이 조금 다르기는 했다.
주류 상사에게 나눠주는 물량 중에 가장 많은 양을 현송에서 핸들링하고 있었다.
매번 가져갈 때마다 과하게 주문하는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아직 부족하단다.
“선생님한테 전화는 조금 이따가 하고 저 위에 옹기 확인해야 하니 받침대나 같이 옮겨줘. 저건 너무 무거워서 나는 혼자서 못 옮기겠더라.”
“오케이!”
수호와 내가 향한 곳에는 특별히 주문해서 제작한 철제 받침대가 있었다.
팔렛트렉이 3단까지 쌓인 탓에 위에 올라가 있는 옹기를 확인하려면 필요한 장치였다.
사다리는 쓸 수 없었다.
자칫 넘어지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이건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방식이고 난간도 있어서 안정적이었다.
그 덕분에 위에 올려져 있는 옹기를 내리지 않고 확인하는 게 가능했다.
호세가 지게차로 옹기를 움직이는 것은 숙성이 끝난 후가 유일했다.
‘진짜 도움이 되는 거는 따로 있지만.’
그건 옹기 바닥에 놓인 받침대였다.
역시 사람은 불편한 것을 못 참더라.
호세가 지게차를 제법 잘 모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종종 옹기를 깰뻔한 위기 상황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통로가 협소한 탓이었다.
그래서 모두 함께 고민한 결과.
옹기 바닥에 바퀴를 달아서 필요할 때 옆으로 밀어 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옹기에 직접 바퀴를 달 수 없기에 두툼한 나무판자에 여섯 개의 바퀴를 달아서 무게를 버티게 만들었다.
“만약에 이거 없었으면 우리 허리가 남아나질 않았을 거야.”
“옹기를 옮길 엄두도 안 났겠지. 여기 술을 가득 채우면 얼마나 무거운데.”
“여기 몇 개만 더 옮기면 되겠다.”
옹기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공간을 어느 정도 마련한 뒤.
나는 철제 받침대를 놓고 상단에 놓인 옹기 내부를 확인했다. 요정이 관리를 해주고 있다지만,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이렇게 직접 봐야 안심이었다.
그런 내 곁에는 향이가 있었다.
그리고 향이 뒤에는 요정 하나가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중이다. 내가 하급 요정이라 이름을 붙인 특별한 녀석이다.
갑자기 요정이 폭증했을 당시에 나타난 하급 요정은 관리자 역할을 하는 중이다.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요정들에게는 상하 관계가 있었다.
하급 요정의 지위는 일반 요정과 향이 사이쯤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내가 지시를 내릴 수는 없으나 향이를 통해 세세한 지시는 할 수는 있었다.
그것들을 창고와 양조장에 각각 하나씩 배치한 덕분에 향이와 나는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 자리를 비우면 향이도 함께 나가야 해서 요정들 관리가 안 됐다.
요정들은 1차원적이다.
시킨 일만 무한 반복을 한다.
자율적으로 판단을 해서 움직이는 것은 바랄 수 없었다. 하지만 하급 요정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알았다.
이해력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슬슬 미국에 한 번 가보긴 해야 하는데.’
벌써 전역한 지 9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부모님도 못 뵙고 있었다.
말년에 면회를 한 번 오셨으나 얼굴을 못 뵌 지 벌써 1년쯤은 되는 것 같았다.
세상 쿨하신 어머니가 괜히 불효자식 운운하는 게 아니었다.
이러다 호적에서 파일 각이다.
한편으로는 어느 사이에 그렇게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난 건지 신기했다.
숙성 주기가 길었을 때는 벽향주를 한 사이클을 돌릴 때마다 한 달이 지나갔다.
작년에 전역할 때만 하더라도 겨울까지 여기서 맞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역시 인생은 종잡을 수 없는 거야.
“너희만 믿고 한 번 가볼까?”
혼잣말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래서 대답이 들렸다.
고개를 내려보니 아래서 작업을 하던 수호가 자신에게 말한 건 줄 알고 어딜 가냐고 물었다.
“응? 어딜 간다고?”
“미국 말이야. 살아있다고 부모님께 신고는 하고 와야 할 거 같단 말이지.”
“아! 안 그래도 어머님이 서운해하시는 것 같은데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다녀와.”
“너도 집에 좀 가라. 악덕 사장 만나서 쉬는 날도 안 주는 줄 알겠다.”
“어차피 다음 주가 설날이잖아. 그때 가면 되지.”
맞다. 다음 주가 설날이지.
그러면 가고 싶어도 못 가겠네.
긴 연휴를 맞아서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아서 당장 표를 구하기 어렵다.
팬데믹이 끝난 후로 보상 심리가 생긴 것인지 예전보다 해외 여행하는 이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긴 했다.
그러니 나는 날이 좀 풀리면 가야 할 것 같았다.
“설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벽향주 선물 세트는 안 파냐고 문의 전화가 제법 많이 오는 것 같더라.”
“나도 듣긴 했는데 아직 거기까지 신경을 쓸 틈이 없잖아. 그거는 지금 말고 올해 추석 되기 전에 미리 준비해서 팔자.”
“평소에 팔아도 될 것 같은데. 벽향주를 선물하려고 사는 사람도 제법 많잖아.”
“하긴 나도 그런 말 많이 듣긴 했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포장재만 준비하면 되는 일이다.
아니지··· 디자인이 나와야 가능하잖아.
이거 미국으로 한번 가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는걸. 이번 기회에 벽향주 패키지도 아예 싹 바꿔버릴까.
현재 판매 중인 벽향주의 병과 라벨은 기존에 작은할아버지가 쓰던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오풍주와 비교하면 너무 고리타분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벽향주가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술이라지만, 구닥다리 느낌이 가득한 외모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그대로 썼던 이유는 당시에는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매달 십만 병이 출고되어 수많은 이들이 접하고 있지 않은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기왕이면 예쁜 게 좋잖아.
“선물 세트 이야기는 다들 모였을 때 이야기를 해보자. 포장하는 작업도 있으니 다 같이 논의해서 정해야지.”
참고로 오저당의 식구는 대폭 늘었다.
현재 이곳에서 같이 일하는 이들은 모두 합쳐서 열한 명이 되었다. 연초만 하더라도 여섯에 불과했던 걸 생각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연말에 쌍둥이를 고용했지만,
생산량이 대폭 늘어난 상황이다.
그만큼 일손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술은 빚는 것부터 병입하는 작업과 택배 쪽도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도움을 준 것은 이모님이었다.
인근 마을의 부녀회에 소식을 돌려서 일할 수 있는 분들을 직접 수소문하셨다.
그렇게 면접을 본 분들은 다들 이모님과 비슷한 연세셨으나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래봤자 40대 초중반이다.
병입은 단순한 반복 노동이라 힘을 쓸 필요가 없었고 택배도 다를 바가 없었다.
더구나 오저당에는 젊은 장정이 많기에 고된 일은 우리가 다 처리하면 되었다.
거기에 보육원 식구들도 추가되었다.
유성과 우주보다 일 년 먼저 사회에 나갔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곤란한 처지였던 두 명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식구가 많아졌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오저당은 선생님과 우리 둘이 전부였는데.”
“도찬아, 이러다가 우리 곧 중소기업이 되는 거 아닐까?”
“아니, 기준이 생각보다 높아.”
“중소기업 되는 것도 기준이 있어?”
“물론이지. 업종마다 조금 다르지만, 오저당은 매출이 120억은 넘겨야 소기업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어.”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수호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누구보다 매출에 대해 잘 아는 내가 안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만 15억 이상의 매출을 찍었다.
계속 지금의 매출을 유지하면 연말에 120억은 넘길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아니, 3년 평균으로 계산해서 120억을 넘겨야 해.”
“오저당은 인수한 거니 재작년하고 작년까지 합치면··· 당연히 못 넘겠구나.”
“작은할아버지가 운영하실 때도 그리 잘나가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아예 방법이 없지는 않다.
올해 매출을 500억쯤 찍어서 평균을 바짝 끌어 올리면 된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숙성주기가 1주일 미만이 되어도 지금의 생산 시설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머지않아 중소기업에 오를 거라는 기대감은 가지고 있었다.
한동안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오는 게 느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주류 상사에서 전화가 오기에 그쪽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한 주류 협회의 전화였다.
품평회가 끝난 후에도 수상자에게 약속했던 베네핏 때문에 종종 전화를 줬기에 놀랍지는 않았으나 궁금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
[안녕하세요. 나태영 대리입니다. 올해 예정되어 있던 바이어 초청 상담회 일정이 잡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