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57화 (57/254)

멕시코 y 테킬라 (1)

멕시코의 과달라하라.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 공항.

멕시코의 독립운동가 이름을 딴 그 공항에 도착한 것은 한국에서 출발한 지 거의 이십 시간 가까이 지난 뒤였다.

이것도 멕시코 시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비행기를 탄 덕분이었다.

그쯤 되자 당연히 피곤함이 밀려왔다.

비행기에서 조금씩 자기는 했으나 포근한 침대가 절실하게 그리웠다.

등이라도 잠시 붙이면 곧장 기절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반대로 호세와 라니의 텐션은 한껏 높아졌다.

한국으로 일하러 떠난 뒤.

처음 고향에 온 호세는 이해됐다.

하지만 라니까지 그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히스패닉계 미국인이고 친척도 멕시코에 산다더니 낯설지 않은 건가.

어쨌든 멕시코에 도착한 후부터.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의사 표현 정도는 할 수 있으나 냉정하게 보면 라니의 한국어보다 못한 게 나의 스페인어 실력이었다.

당연히 대화도 영어로 바뀌었다.

셋이 함께 있을 때는 굳이 한국어를 쓸 이유가 없었다. 한동안 공항 주차장에서 기다리자 곧 연식이 꽤 된 차가 다가왔다.

우리 앞에 멈춘 차에서 내린 이는 젊은 남자였는데 그는 곧장 호세를 포옹했다.

아마 호세의 형일 것이다.

공항까지 픽업을 나오기로 약속되어 있었기에 쉽게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두 형제는 격하게 얼싸안고 반겼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서 가서 쉬고 싶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호세는 그제야 자신의 형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었다.

“제 친형인 호르헤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어를 제법 하시네요?”

“아니요. 인사만 할 줄 압니다. 호세가 떠난 뒤로 많이 까먹었죠.”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를 배려해서일까.

호르헤는 꽤 능숙하게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고 그 덕분에 나는 편하게 소개를 주고 받으며 그의 차에 탈 수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보조석에 앉은 호세는 뒤를 돌아보며 제안을 했다.

“여기서 테킬라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데 시내에서 뭐라도 먹고 갈까요?”

할리스코의 테킬라.

그곳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다.

멕시코의 술로도 유명한 테킬라는 호세의 고향인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테킬라를 빚는 재료인 푸른 용설란은 그 주변 지역에서만 자랐고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이 술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먹고 가자.”

라니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기내식 퀄리티는 최악에 가까웠고 멕시코 시티에 도착한 이후에는 곧장 비행기를 갈아타야 해서 못 먹었다.

어디로 갈 건지 정할 필요는 없었다.

현지 주민인 호르헤와 호세가 알아서 정해주었기에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과달라하라에 들어선 차는 한적한 곳에 있는 레스토랑 앞에서 멈췄다.

메뉴 선택은 쉬웠다.

타코와 아보카도로 만든 과카몰리.

두 가지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라니와 함께 여러 멕시코 음식점을 다녔기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과카몰리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것인데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것을 먹지 못한 터라 무척 반가웠다.

주문을 한 후에 잠시 기다리고 있자 호르헤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테킬라까지 오셨는데 우리 마을의 자랑인 테킬라 한 잔은 하셔야죠? 여기 주인이랑 친해서 조금 특별한 술을 맛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꽤 솔깃한 이야기였다.

피곤한 상태라 많이는 못 마시더라도 한두 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자고 대답하자 그는 잠시 후에 메이플 시럽과 비슷한 빛이 감도는 병을 가져왔는데 그걸 본 호세는 반가워했다.

“아이레스(Aires) 테킬라 오랜만이네. 이거 아직도 만들고 있는 거야?”

“레오넬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이후에 거의 술을 빚지 못하고 있지. 요즘은 내가 거기서 일하면서 조금씩 빚고 있어.”

“형이 거기서 일한다고? 아가베 농사는 어쩌고?”

“누군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할아버지 빚이랑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잖아.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돕고 있어.”

두 사람의 대화를 정리해 보면,

아이레스라는 술은 두 형제의 먼 친척인 레오넬 할아버지라는 분이 빚는 술이고 지금은 생산이 거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이레스를 어디서 들어봤나 했는데 과거에 호세가 자신이 일하던 곳의 테킬라라며 알려줬었다.

참고로 아이레스는 공기라는 의미다.

그만큼 목 넘김이 좋아서 붙인 이름이라 들었는데 정말인지 상당히 궁금했다.

호르헤는 잔에 따라주며 1년 이상 숙성한 아네호(Anejo) 등급이라고 알려주었다.

프리미엄급의 술이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평소 접하는 레포사도 등급은 2개월에서 1년까지 숙성하는 술이다.

칵테일에 쓰는 용도인 무색의 블랑코는 발효 뒤에 곧장 병입을 할 정도였다.

“마시는 방법은 다들 아시죠?”

“당연히 알죠. 라니도 그렇고 나도 미국에서 테킬라 좀 마셔봤어요.”

“그럼 멕시코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건배를 할까요?”

호르헤의 잔에 건배를 한 후.

각자만의 방식으로 테킬라를 마셨다.

슈터 방식인 것은 같았으나 나는 잔에 레몬과 소금을 발랐고 라니는 손등을 택했다. 뭐가 맞다고 할 수는 없었고 그저 각자의 개인적인 취향 차이였다.

반면에 호르헤는 소맥처럼 탄산음료와 테킬라를 섞고 잔을 내려쳐서 거품을 만들어 마시는 슬래머 방식을 택했다.

테킬라를 마시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섹시한 방식은 상대방 몸에 묻힌 레몬과 소금을 핥는 거지.

당연히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바디샷은 정말 찐한 관계이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나도 보기만 했지 직접 그걸 해본 적은 아직 없었다. 어쨌든 호세 형제가 권한 아이레스의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호오··· 이거 정말 맛있네요.”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다.

숙성을 한 덕분에 위스키 못지않은 깊고 진한 풍미가 있었고 테킬라 특유의 아가베 향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숙성 기간은 길지 않으나 온도 영향 때문에 빠르게 숙성돼서 가능한 맛이다.

당연히 나와 동행하고 있는 향이와 라니도 그 맛과 향에 흠뻑 빠진 것처럼 보였다.

우리 둘의 반응을 지켜보던 호세와 호르헤 형제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호르헤가 직접 빚은 술인 것도 있으나 애초에 테킬라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두 사람이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혹시 이 술을 만든 증류소를 견학해보는 것은 가능할까요?”

“언제든지 가능하죠.”

“아이레스 외에도 인근에 있는 증류소 몇 곳을 형이랑 친척을 통해서 섭외해놨으니 걱정 마세요.”

호세가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테킬라라는 도시는 겨우 인구 5만 명에 불과한 작은 곳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들 아는 사이라는 뜻이었다.

호르헤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테킬라 관련 유적지도 책임지고 안내해드릴게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슬슬 이동할까요?”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곧장 이동했다.

테킬라로 가는 길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배가 부른데 술까지 들어간 터라 라니와 나는 곧장 곯아떨어졌다.

차가 요동쳐서 눈을 떠보니 차는 어느 사이에 작은 마을에 들어와 있었다.

바닥에 자갈을 깔아서 만든 도로를 지나고 있었는데 머지않아 작은 집 앞에서 멈췄다.

호르헤는 내리지도 않고 경적부터 울렸는데 그러자 안에서 이십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나와서 호세를 반겼다.

그들 모두가 호세의 가족이거나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다.

“와··· 대가족이네.”

“그런데 확실히 나이 드신 분 중에 한국인처럼 보이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

“호세가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분들 후손이니 당연하지.”

멕시코 이민 역사가 거의 120년 가까이 되었지만, 호세의 가문은 다소 뒤늦게 이민 와서 호세의 할머니는 이민 2세대다.

혈통만 놓고 보면 100% 한국인이셨다.

그래서인지 손자보다 오히려 나를 더 반겨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한국말이 능숙하진 않으셨다.

멕시코에서 태어나서 자라셨고 이 부근에 사는 한인도 없으신 탓에 한국말을 쓸 기회도 전혀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귀를 기울여서 들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꽤 많았다.

“하하! 우리 할머니가 오랜만에 보는 저보다 사장님을 더 애틋하게 보시네요.”

“그래서 섭섭해?”

“아니요. 오히려 안타깝죠.”

호세는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멕시코로 이민 온 증조할아버지부터 지금까지 4세대가 지났지만, 여전히 호세의 가족은 용설란 재배를 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아가베를 키우는 히마도르와 수확하는 호르네로스는 전문 인력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몇해 전부터 세계적인 테킬라 열풍이 불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테킬라의 재료인 푸른 용설란의 가격도 엄청나게 오르고 있었다.

불과 5년 전에 비해 kg당 가격이 거의 8배 이상 올라갔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졌다.

호세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버는 족족 다 가족들한테 보내줬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어쨌든 우리는 저녁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오풍리에 계신 어르신들처럼,

호세의 할머니도 계속 먹을 걸 주셨다.

다들 한국에서 온 나의 입맛에 맞는지 바라보고 계셔서 쉽게 사양하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라니는 그 시선에서 자유로웠다.

히스패닉이라 그런지 그리 큰 관심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먹다 보니 배가 터질 지경이라 결국에는 호세를 잡고 사정을 해야 했다.

“호세··· 제발 나 좀 살려줘.”

*

내가 어떻게 침실까지 왔더라.

어젯밤의 기억은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밤늦게까지 우리를 환영한다며 잔치인지 파티인지 모를 광란의 시간이 이어졌다.

호르헤와 친척들은 돌아가며 우리에게 온갖 술을 따라주었다.

나도 술이 약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에는 나와 라니 모두 취했고 마지막까지 신나서 곳곳을 활보한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향이였다.

[일어나셨어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아.”

[다른 분들도 방금 일어난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씻고 나오시죠.]

“어제 마신 술은 괜찮았어?”

[대부분 마음에 들었는데 낮에 마신 아이레스만큼 좋은 술은 없었어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제법 유명한 테킬라부터.

인근 지역 증류소의 메스칼까지.

상당히 많은 종류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레스만큼 퀄리티가 높고 맛이 좋은 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문을 열어 보니 나 못지않게 숙취로 고생한 것 같은 호세가 보였다. 하루 사이에 몇 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잠자리는 괜찮으셨어요?”

“덕분에 잘 잤어. 호텔에 가서 자도 되는데 민폐인 것 같아서 미안하네.”

“할머니가 절대 안 보내주셨을 테니 그만 포기하세요. 아! 그리고 테킬라 증류소 가시려면 지금 내려오시면 돼요.”

“고마워. 금방 내려갈게.”

가볍게 세수를 마친 뒤.

내려가니 라니와 호르헤가 보였다.

두 사람은 그나마 호세와 나보다는 훨씬 멀쩡한 느낌이었다. 출발 전에 가볍게 컵라면으로 해장한 우리는 호르헤의 차를 타고 몇 곳의 증류소를 들렸다.

테킬라를 빚는 과정은 꽤 신기했다.

아가베의 열매인 피냐를 스테인리스 탱크에 넣고 구워서 분쇄한 후에 아람빅(Alambique)이란 전통 증류기에서 발효를 하는데 나는 그 모든 것을 찍었다.

너튜브 채널에 올릴 용도였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쌍둥이가 부탁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것 때문인지 라니는 아침부터 풀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고 호세는 카메라를 잡고 있었기에 나만 초라하게 찍혔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몇 곳의 증류소를 보니 어느덧 오후 2시가 훌쩍 넘어서고 있었는데 스케줄이 꽤 빡빡한 터라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이레스를 빚는 곳만 들리고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테킬라의 도시 외진 곳까지.

차를 타고 달리니 허름한 건물이 하나 보였다. 지금까지 들렸던 증류소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역사가 가장 긴 곳이라고 봐도 되었다.

“이곳은 레오넬 가문에서 150년가량 운영하고 있는 곳이라 다른 곳보다 시설의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가장 오래된 곳이 호세 쿠엘보 맞죠?”

“거기는 벌써 220년이 넘어선 곳이라 비교하기 어렵죠. 그래도 이곳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는 확실합니다.”

호르헤의 말은 신뢰가 갔다.

그의 인품을 믿는 게 아니라 증류소 곳곳에서 150년이란 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물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레스 증류소는 최근 들어 잠시 닫아놨던 탓에 아무도 없었기에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테킬라를 빚는 과정은 다른 곳에서 설명을 많이 들은 탓에 안내를 해줄 필요는 없었다.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안으로 들어간 나는 잠시 멈췄다.

향이가 보인 반응 때문이었다.

[어라! 여기 요정이 있는데요?]

녀석이 가리킨 쪽을 바라보자.

향이와 비슷한 크기의 요정이 보였다.

확실히 일반 요정처럼 보이지 않는 사이즈였다.

무엇보다 멕시코에 와서 처음 본 요정은 너무나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허어··· 이 동네 요정은 개성 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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