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66화 (66/254)

이삭 줍는 남자 (4)

인천 송도에 있는 작은 주점.

그곳은 오늘따라 왁자지껄했다.

제법 외진 곳에 위치한 곳이라 평소에는 이런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일 년 중에 단 한 번 동네 전체가 완전히 탈바꿈하는 날이 있다.

송도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

그 축제가 시작되면 동네 곳곳에 음악 소리가 울리고 송도 전체가 들썩거린다.

당연히 인근에 있는 술집과 숙박 시설도 호황을 누릴 수밖에 없었다.

4년 차 여성 밴드 ‘잠비안’.

작은 주점의 유일한 프라이빗 룸을 빌린 그들은 오늘 공연을 축하하고 있었다.

잠비안은 언더그라운드라고 하기에는 팬이 많고 대중적인 가수라 말하기는 조금 어려운 위치에 있는 밴드였다.

하지만 오늘 공연은 조금 달랐다.

관객들은 그녀들의 손짓과 리듬에 따라 뛰어올랐고 함성도 평소보다 컸다.

지금까지 수많은 라이브 공연을 해봤으나 이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경험한 것은 정말 드물었다.

“모처럼 무대를 찢어 놓은 소감이 어때?”

“와··· 오늘 다들 미쳤어요.”

“평소보다 반응이 엄청났던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큰맘 먹고 비싼 술로 주문했으니 오늘은 맘껏 마셔!”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화진의 외침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그들의 술자리에는 언제나 저가의 술인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만 가득했다.

비주류 밴드 그룹의 특성상 비싼 술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무대 위에서나 아티스트지 그곳에서 내려오면 다들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어렵게 밴드와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진도 멤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공연이 없을 때면 온갖 일을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맘껏 즐기고 싶었다.

잠시 후에 안주와 함께 들어온 것은 하얀 라벨이 붙여진 술이었는데 그걸 본 멤버들은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싼 술이라고 하기에 양주 같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았다. 화진은 멤버들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타박했다.

“이년들아. 이런 술집에서 양주를 찾는 게 말이 되냐. 이거 한 병당 이만 원이나 하는 건데 그냥 소주 시킬까?”

“아닙니당! 자아알 마시겠습니다.”

“와··· 이게 이만 원이나 해?”

“소주도 술집에서 파는 거는 가게보다 더 비싸잖아. 그런 거 따질 거면 편의점에서 소주 까야지.”

화진은 일단 병부터 땄다.

그러자 기분 좋은 향이 느껴졌다.

사실 그녀도 오늘 처음으로 마셔보는 술이었는데 기대가 되었다.

최근 들어서 벽향주라는 술이 계속 눈에 들어왔는데 쉽게 도전해보기는 어려운 금액대의 술이었다.

아기 새처럼 서로 먼저 술을 받겠다며 잔을 든 멤버들의 모습을 보던 그녀는 잠시 술병을 내려놨다.

“에··· 왜 또 그래요?”

“너희들 쥐고 있는 잔에 뭐가 쓰여있어서.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오졌다···오저당? 이거 뭐야.”

“언니가 쥐고 있는 그 술이 오저당 술이네. 거기서 만든 술잔 같아요.”

술병을 자신 쪽으로 돌리자.

막내가 말한 대로 오저당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시 한번 잔을 살피던 그녀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지금 그녀의 심정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오늘 우리 밴드 정말 오졌다.”

“그런 의미에서 건배는 오졌다로 해볼까?”

“좋아요!”

각자의 잔에 술을 따라준 화진은 조금 전에 제안한 것처럼 오졌다라고 외치려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자 또 뜸을 들인다고 멤버들이 난리 쳤다.

하지만 그녀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오늘 공개한 신곡 반응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다.

길고 긴 무명 시절 저 아래 밑바닥부터 함께 했기에 모두 그 심정을 이해했다.

서로 말은 안 하고 있으나 지금 중요한 전환점을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화진 외에 다른 멤버들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 찍었으면 이제 짠하자. 하나, 둘, 셋 하면 오졌다 하는 거야.”

“하나···둘···셋!”

“잠비안 오늘 오졌다아앗!”

네 명이 동시에 외쳐서일까.

아니면 가수라 목청이 남다른 걸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술집에 울렸고 그녀들은 지체없이 술을 마셨다.

“캬아아! 이거 짱이네. 너무 맛있어.”

“역시 비싼 술이라 그런지 술술 넘어간다. 우리 반드시 성공해서 이 술 박스로 사다 놓고 마시자.”

화진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어쩌면 한껏 들뜬 상태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녀 역시 벽향주라 적힌 술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화진은 더 취하기 전에 방금 찍은 사진을 잠비안의 SNS에 올렸다.

#잠비안 #우리 #오늘 #공연 #오졌다

#다음에도 #기대해 #벽향주

*

#오졌다

해시태그의 숫자는 인기를 반영한다.

누군가 언급을 할수록 퍼져나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게 된다. 실제로 SNS에는 오저당의 술잔 이야기가 많았다.

그중에는 인플루언서라 말할 수 있는 이도 있었고 밴드를 하는 이들도 보였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뭔가를 축하하거나 기념하고 있었다.

너튜브에 숏컷 영상도 여럿 올라왔는데 사람들은 건배하며 오졌다고 외치는 모습을 찍어서 올렸다.

샴페인은 축하의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뭔가 성과를 내거나 축하할 일이 있으면 일단 샴페인부터 찾는다.

괜히 샴페인을 터트린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술이 샴페인처럼 탄산이 폭발하진 않으나 그래도 그런 인식이 생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분위기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발 빠른 이들은 일종의 보물찾기처럼 우리 잔이 있는 가게를 찾아서 다닐 정도였다. 당연히 그 기세를 이어가야 했다.

우리도 서둘러 그와 관련된 콘텐츠 몇 가지를 준비해서 올렸는데 그게 또 은근히 조회수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댓글이 많은 것은 판촉물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 : 술도 안 마시는데 왜 저는 솜털이 잔 받침이 사고 싶을까요?

ㄴ###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음료수 마실 때 써도 좋을 것 같아요. 동그란 컵 자국 극혐하는 저한테는 필수템이죠.

### : 이거 어서 팔아줘요! 지갑 열고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ㄴ### : 저번에 너튜브에서 하는 이야기 들어 보니 조만간 팔 것 같아요.

ㄴ### : 아직 확실한 거는 아니래요.

### : 저기에 벽향주를 따라서 마시면 더 맛있으려나.

### : 연말에 파티할 예정인데 꼭 사고 싶어요. 근처 술집 돌면서 팔아달라고 부탁했는데도 싫다는 거 있죠.

ㄴ### : 부럽네요. 우리 동네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데···. ㅜㅜ

### : 여러분 그거 알아요? 오저당 글씨가 술 온도에 따라 색이 바뀌어요.

ㄴ### : 대부분 알 걸요.

ㄴ### : 여기 뒷북치시는 분 계시네요.

한동안 댓글을 읽던 나는 파티션 너머에 앉아 있는 심태섭 대리를 불렀다.

아무래도 물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으니 노를 저어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 힘을 쓸 노꾼은 라니가 아니 심 대리였다.

이미 디자인을 마친 시점에서 라니의 역할은 끝났다고 봐도 되었다.

“부르셨습니까?”

“현재 판촉물 재고가 어느 정도죠?”

“기존에 제작한 술잔은 대부분 주류 상사 쪽에서 배포하는 중이라 저희가 보유한 수량은 몇 박스 안 됩니다.”

“솜털이 캐릭터 들어간 잔 받침은요?”

“그건 거래처에서 서비스 형태로 찍어준 거라 너튜브 구독자 이벤트가 끝나면 거의 남지 않을 겁니다.”

나는 다시 주문하면 얼마나 걸릴지 물어봤다. 다행히 심태섭 대리는 이런 상황을 대비한 건지 곧바로 답을 주었다.

“오늘 아침에 통화했는데 적어도 일주일 이내에 맞춰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물량에 따라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주문 넣으세요.”

“저번에 말씀하셨던 대로 선물 세트와 함께 판매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래야죠.”

처음에는 잔만 팔아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황 이사를 비롯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 모두가 말렸다.

잔을 팔아서 남기는 것도 별로 없는데 희소성만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대신 그들은 세트로 팔자고 했다.

오저당의 술을 사는 사람들만 잔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기에 나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포장재도 준비하겠습니다.”

군더더기가 없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일 처리가 상당히 빨랐다.

이삭 기획 출신의 직원들은 한마디만 해도 나머지는 알아서 움직여줬다.

기존에 함께 일하던 오저당의 직원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건 라니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모처럼 손발이 맞는 직원들이 생긴 탓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때때로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논쟁을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지만,

막상 돌아서면 다 잊는 게 신기했다.

설득하는 과정 중에 생각이 다르다고 그게 틀린 거라고 여기지 않는 습관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스코틀랜드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린 택배는 어떻게 됐나요?”

이번에 나온 판촉물은 선물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연히 스코틀랜드로 보내는 택배는 테넌트 씨에게 가는 거다.

오졌다라는 문구도 그가 엉터리 발음으로 나를 웃겨준 덕분에 나온 것이다.

선물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당연히 그 택배에는 아직 그가 마셔보지 못했을 리뉴얼된 벽향주와 아직 출시 전인 소담 소주도 담아서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좋아하던 오풍주는 같이 담을 수 없었다.

“어제 보냈는데 도착하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택배도 다 나간 건가요?”

“네, 국내는 대부분 오늘 중에 도착할 겁니다.”

대구에 계신 선생님.

서울에 있는 삼촌과 지철이 형과 유나 누나를 비롯해 주류 협회 직원들까지.

지금까지 오저당을 도와주신 분들에게 술과 함께 판촉물을 보내드렸다.

하지만 멕시코는 거기서 빠졌다.

어차피 내가 이틀 후에 출장을 가니 가는 길에 직접 가져가면 될 일이었다.

호르헤를 비롯한 다른 멕시코 직원들도 엄연히 오저당 소속이니 챙겨야 했다.

이런 작은 것들 하나하나에 소속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심태섭 대리가 추가 발주를 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언제 들어온 건지 수호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녀석은 방금 나눴던 대화를 들었는지 땀을 닦으며 작년 연말의 일들을 회상했다.

“아! 그립네. 테넌트 씨가 계셨던 게 벌써 1년 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그러게 말이다. 너희가 산타 왔다고 쪼르르 달려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

“부끄럽게 왜 또 그래. 그래도 1년 사이에 내 영어 실력 엄청 늘지 않았냐?”

“그건 인정.”

라니의 한국어 실력만큼이나 수호의 영어 실력도 나날이 늘고 있기에 이제는 간단한 일상 회화 정도는 무리 없었다.

“그때 참 고생 많으셨어.”

“하필이면 숙성 창고 완공될 무렵에 계셔서 엄청 일 많이 도와주셨지.”

“그런데 우리는 언제 스코틀랜드 가는 거야? 테넌트 씨가 초청도 해주셨는데 계속 미룰 수는 없잖아.”

나도 가고 싶지!

그런데 시간이 안 나오잖아.

당장 내년 여름까지 할 일이 산더미였다.

준비하고 있는 리뉴얼과 런칭 등을 모두 마무리되어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쎄다. 언제 시간이 나려나 모르겠다.”

“멕시코는 몰라도 스코틀랜드는 나 빼고 가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렇게 가고 싶냐?”

“벽향주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술로 만들려면 나도 공부를 좀 해야지.”

수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역사 깊은 대형 증류소에서 배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녀석의 말대로 내년 여름 이후에 연수 프로그램 형태로 몇 명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했다.

우리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눴는데 그러던 중에 황동선 이사가 문을 열고 다급하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외부 일정이 많이 있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회의가 금방 끝나셨나 봐요.”

“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거는 아니고요. 혹시 조금 전에 올라온 뉴스 보셨어요?”

“왜 그러는데요? 전쟁이라도 터졌대요?”

“그런 거는 아니고, 일단 이것 좀 보세요.”

그는 내게 태블릿을 건넸다.

거기에는 우리도 전혀 모르고 있던 오저당의 소식이 기사로 실려 있었다.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한참이나 기다리고 있던 희소식이었다.

[역사 깊은 한국의 벽향주, 영국 총리 방한 청와대 공식 만찬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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