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68화 (68/254)

돈 레오넬(Don Leonel) (2)

멕시코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저번처럼 일정이 빡빡한 편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당시에는 보름 동안 무려 여섯 번이나 비행기를 탔었다.

그때 다시는 그런 식으로 일정을 잡지 않을 거란 다짐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라니가 없으니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영어가 되니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었고 향이도 있어서 심심하진 않았다.

녀석은 다시 멕시코로 간다고 하니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향이는 판초 요정과 재회하는 것에 기대하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일반 요정보다 훨씬 애착이 있는 것 같았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는 판초 요정이 유일하니 더 그런 것 같았다.

[요정들이 얼마나 늘었을까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많이 되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게 항상 궁금했다.

요정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예측 불가였다.

호세가 요정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직접 가서 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긴 시간 이동한 끝에 도착한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 공항은 이번이 세 번째라 그런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새벽이라 그런지 밖의 공기는 무척이나 차가운 편이었다.

일교차가 크다고 미리 호세가 알려주긴 했는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래도 낮에는 저번에 왔을 때보다 선선하다니 그것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가방에서 가디건을 꺼내 입자,

밝은 헤드라이트를 뿜으며 차 한 대가 다가왔다. 따로 어떤 신호를 준 것은 아니었으나 누군지 곧장 알아차렸다.

저번에 호르헤가 타고 온 차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내린 것은 호세였다.

이곳에서 떠난 지 두 달쯤 된 것 같은데 그사이에 호세는 제법 살쪄 있었다.

심지어 콧수염도 길러서 인상이 많이 바뀐 느낌이었다.

“어서 오십쇼. 사장님.”

“두 달 사이에 많이 바뀐 것 같다.”

“어리다고 깔보는 느낌이라 제 딴에는 콧수염도 기르고 나름 노력한 거예요. 한국에 가기 전에 깎을 거니 걱정마요.”

“계속 길러도 상관없어.”

“제가 싫어요. 일단 짐부터 주시죠.”

호세는 트렁크부터 열었다.

그런 뒤에 내 캐리어를 실었다.

차가 그리 크지 않은 탓에 캐리어 두 개가 간신히 들어갔다. 호세가 트렁크를 닫자 호르헤는 뭐 하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네가 아니라 호르헤가 마중을 나올 줄 알았어.”

“일이 조금 있어서 제가 나왔어요.”

“이 새벽에 무슨 일?”

“자세한 이야기는 도착한 뒤에 해드릴게요. 그래도 괜찮죠?”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차 때문에 머리가 멍한 느낌이었다.

가는 길에 잠시 잘 생각이라 이야기가 길어지는 거라면 나도 사절이었다.

실제로 호세의 차에 탄 나는 거의 기절한 것처럼 곧장 잠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나는 테킬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막 해가 떴기에 저번처럼 환영을 해주기위해 사람들이 나와 있진 않았다.

하지만 호세의 할머니와 몇 명의 가족은 아침 식사를 준비해두고 나를 맞아줬다.

할머니는 마치 예전에 호세가 몇 년 만에 돌아왔을 때처럼 격하게 반겨주셨다.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걱정했으나, 이렇게 빨리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의 앞일은 알 수가 없다니까.

그 덕분에 비몽사몽 하는 와중에도 차려주신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입맛이 없었으나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해주셨을 노고를 생각하면 남길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나는 호세와 함께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모두 꺼내왔다.

내 짐이 담긴 것은 저번에 썼던 방에 넣어두고 나머지 하나는 호세에게 줬다.

“이거는 할머니 드릴 한복이랑 가족들 선물이니 네가 직접 나눠드려.”

“이거 전부 다요?”

“거기에 네가 그렇게 원하던 햇반이랑 라면도 들어있어.”

호세는 무엇보다 햇반에 환호했다.

다른 거는 어떻게 구할 수 있는데 멕시코 시티도 아니고 시골 마을인 탓에 햇반은 찾긴 어려웠나 보다.

선물을 나눠주러 호세가 들어간 사이에 이제 막 고개를 내밀고 있는 볕을 쬐었다.

그렇게 잠시 쉬고 있자 피곤에 쩔은 얼굴로 호르헤가 나타났다.

충혈된 눈과 헝클어진 머리만 봐도 밤사이에 잠을 자지 못한 티가 역력했다.

의자에 앉아서 손을 흔들자 좀비처럼 자신의 방으로 터덜거리며 걸어가던 호르헤가 뒤늦게 나를 발견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아침에 돌아오는 건가요?”

“아직 호세한테 듣지 못하신 건가요?”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 다 피곤한 것은 맞으나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기에 자리부터 권했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인지 듣겠다는 의사 표시였기에 호르헤는 마른 세수를 하며 내 앞에 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그게 말이죠···. 테킬라를 빚기 시작한 후부터 밤마다 좀도둑이 극성입니다.”

“좀도둑이요?”

“네. 밤에 몰래 증류소에 들어와서 술을 훔쳐 가는 사람들이요. 처음에는 소량이라 몰랐는데 나날이 심해지는 중입니다.”

“그래서 지키고 있었던 건가요?”

호르헤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은 뭐하고요?”

“직원들이 저지른 짓일지도 몰라서요.”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는 했지만,

이런 일은 보통 내부 직원이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더구나 밤에 증류소를 지키는 일은 꽤 위험하다.

50만 원에 불과한 월급을 주고 목숨까지 걸라고 하는 것은 무리였다.

“차라리 경비를 뽑아서 상주시켜 놓는 게 더 현명한 선택 아니었을까요?”

“총을 들고 다니는 도둑도 많아서 그냥 도망칠 게 뻔하니 의미 없습니다.”

아··· 맞다. 여기는 멕시코지.

갱단이 자동화기를 들고 다니는 나라다.

술을 훔치는 밤손님이라고 총을 가지고 있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그러면 호르헤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보통은 호세랑 같이 야간에 증류소에서 머무는데 오늘만 저 혼자 지킨 겁니다. 당연히 지킬 수 있는 수단도 있고요.”

그는 상의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바지춤에 찔러 넣은 총이 보였다.

밀리터리 덕후는 아니라 어떤 총인지 알 수 없으나 그리 큰 사이즈는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구한 총인지 물어보아도 호르헤는 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손실된 양은 얼마나 되나요?”

“죄송하지만, 알 수 없습니다.”

“네? 그런데 어떻게 도둑이 든 거라 확신하죠?”

“흔적은 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나 훔쳐 간 건지 확인이 안 됩니다. 어찌 된 일인지 생산되는 양이 매번 달라집니다.”

호르헤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상당히 난처한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술을 빚을 때마다 생산량이 다르다고 했는데 그 차이가 작지 않았다고 했다.

정확하게 생산되는 양을 알 수 없으니 훔쳐 간 양도 추정에 불과했다.

적어도 어느 정도 손실이 나는 건지 확인해야 했는데 그게 불가능했다.

하루 이틀 정도 살핀 뒤에 보고를 하려고 했는데 그 무렵에 내가 출국했기에 도착하면 보고하려고 기다렸다고 했다.

‘요정들이 꽤 많아졌나 보네.’

호르헤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요정들 때문에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오저당도 같은 양의 재료로 빚어도 생산되는 양이 달라지니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 효과가 여기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좀도둑을 근절해야 확실하게 생산량을 알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당연히 그 문제에 대해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빚는 술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수준의 것들이었다.

요정을 늘리기 위한 용도의 술이다.

대부분은 거의 원가 수준으로 인근 도시와 테킬라에 뿌리고 있을 정도였다.

몇 개월 이상 숙성하는 것은 개량 작업이 마무리되어야 시작할 수 있기에 값어치가 비싼 술은 없었다.

하지만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나중에도 같은 일이 생기면 답이 안 나온다.

차라리 지금 뿌리를 뽑아야 했다.

일단은 호르헤를 들여보낸 뒤에 나는 호세와 함께 곧장 증류소로 향했다.

한동안 말없이 운전하고 있던 호세는 숨기려고 했던 거는 아니라며 내게 사과부터 했다.

“늦게 알려드려서 죄송합니다. 멕시코로 출발하시기 전에 보고드리려고 했는데 잃어버린 게 얼마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

“양이 많지는 않았나 봐?”

“저장고를 통째로 털어갔으면 당연히 경찰도 부르고 그랬을 텐데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어요.”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수십 상자쯤 되는데 그 이상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대충 계산하면 삼백만 원은 넘지 않을 것 같았다. 많다면 많고 작다면 작은 수준의 금액이었다.

“직접 지킨 거는 언제부터였어?”

“이틀 전부터요. 그전에는 의심만 하고 있었는데 그때쯤 확실하게 티가 날 정도로 많이 사라져서요.”

“그 뒤로 증류소에 온 도둑은 없었고?”

호세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수백만 원쯤은 잃어도 되나 누군가 다쳤다면 손해가 막심했다.

호르헤를 제외하면 OGD 멕시코를 믿고 맡길 사람도 없었고 호세는 오저당의 핵심 직원 중의 하나다. 잠시 후에 증류소에 도착하자 전과 달라진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더 높아진 철조망과 커다란 자물쇠.

그리고 밤에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개의 조명까지.

호르헤와 호세가 나름대로 여러 방안을 강구했던 것이 확실하게 보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증류소 안으로 들어가자 꽤 많은 숫자의 요정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두 달 전에 내가 떠났을 때를 생각하면 몇 배 이상은 늘어난 것 같았다.

[다행히 여기도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향이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생산량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다. 내가 오저당을 처음 맡았을 때보다 요정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의미였다.

그중에는 판초 요정도 있었다.

여전히 녀석은 시큰둥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향이와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외로워하는 느낌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전에 왔을 때보다 확실히 깨끗해졌네.”

새롭게 설비가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깔끔해졌다.

일단 허름해 보이던 곳곳을 손을 본 티가 확실하게 났다. 페인트칠도 다시 했고 불필요한 것들은 싹 다 치웠다.

“제가 오저당에서 배운 게 있잖아요. 술 빚는 곳은 내 방보다 청결하게!”

“누가 가르쳤는지 잘 배웠어.”

“흐흐. 감사합니다.”

“설비 들여놓는 거는 알아봤어?”

“주문 넣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주 이내에 설치까지 가능하답니다.”

생각보다 꽤 빨랐는데 이곳이 테킬라를 빚는 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상당히 많은 증류소가 밀집되어 있기에 설비 관련 업체도 여럿 있다고 했다.

“리뉴얼 작업이 끝나면 곧장 주문하자.”

“벽향주도 몇 개월 걸렸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번에 다 끝낼 수 있을까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경우.

기존의 레시피대로 숙성해서 판매하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인건비가 나가는데 더 지체할 수 없다.

카를로스와 내기는 아직 시간이 있기에 내년 봄까지만 끝내면 된다.

하지만 오래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가능하면 이번에 끝내고 돌아가야지.

테킬라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에 여기서 한 달 가까이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만약에 일을 끝마치지 못하면 일단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두 달 정도 후에 다시 오는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이 출근한 것 같네요. 잠시만요.”

호세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다급하게 향이가 내게 날아왔다.

녀석은 이곳의 요정과 판초에게서 들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판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여기서 일하는 직원 소행은 아닌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네.”

[여기는 저희한테 맡겨주세요.]

“뭘 맡겨달라는 거야?”

[판초랑 제가 도둑을 잡겠어요.]

향이는 비장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판초마저 권총을 뽑더니 손가락을 넣어 빙글빙글 돌렸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귀여웠으나 그래도 둘 다 진심인 것 같았다.

[감히 술의 요정이 빚는 신성한 술을 훔쳐 가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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