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급상승 (2)
반응은 국내에 한정되진 않았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유명한 구지노다.
유럽과 미국 쪽에서 반응이 제법 나온 덕분에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해외에서만 15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찍었다.
거기에 우리 구독자도 더해졌다.
어느덧 25만 명이 넘어간 탓에 평균적인 조회수가 15만 회 이상이던 채널이다.
그들까지 합쳐지니 30만 회는 금방 넘어설 정도로 조회수가 상당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시리즈로 올라가는 영상이라 다음 편을 요구하는 이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당연히 다음 영상의 조회수는 첫 영상보다 확실하게 더 올라갔다.
“이 정도의 수치라면 며칠 머물면서 추가로 몇 편을 더 찍고 싶을 정도네요.”
구지노도 꽤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금방 지루함을 느끼기에 비슷한 영상을 많이 올리기는 애매했다.
그녀도 그걸 알기에 기존에 협의된 7편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일이면 오저당도 안녕이네요.”
“벌써 열흘이나 시간이 지났다니 저희도 믿어지지 않아요.”
“오저당의 직원분들 덕분에 좋은 추억 많이 쌓고 가는 것 같아요.”
“언제든 환영할 테니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구지노의 방문이라면 다들 환영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지 않았다. 원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고 매번 진심을 담아 행동했다.
처음에는 할리우드 배우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던 직원들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식구들 모두 그녀의 열렬한 팬이 된 것은 확실했다.
“정말 또 올 거예요. 그러니 나중에 모른 척하시면 안 돼요.”
“그건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네요.”
“호호. 걱정마요. 그리고 시사회 일정 잡히면 꼭 와주시고요.”
“물론이죠.”
이번에 꽤 좋은 소식이 있었다.
국내에서 구지노의 인지도가 갑자기 상승하자 배급사가 개봉관의 숫자를 늘리고 시사회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기존까지는 독립 영화인 탓에 국내 개봉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당연히 구지노도 그걸 알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고마우시면 나중에 오저당에서 모델 제안을 하면 받아주세요.”
“물론이죠.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엇! 농담한 건데 진심이신가요?”
구지노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출연료는 자신이 정할 수 없으나 최대한 저렴하게 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열심히 일해야겠네요. 아직 오저당이 TV 광고를 할 규모는 아니라서요.”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던데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까 선물로 주신 벽향주 잘 마실게요.”
오늘 마지막 촬영을 마친 뒤.
우리는 벽향주 한 병을 선물했다.
상당히 피곤할 텐데 너무 열심히 촬영에 동참해준 그녀에게 무엇을 줄까 고민한 끝에 결정한 선물이었다.
당연히 보통 벽향주는 아니었다.
2년 가까이 정성 들여 숙성한 술이다.
현재 오저당에서 가장 오래 숙성한 술이라 백여 병도 안 되는 귀한 것이었다.
‘위스키로 따지면 17년산쯤 되려나.’
요정의 효과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가 공짜는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천사의 몫이라 불리는 증발되는 양이 생각보다 늘어났다.
처음에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까지 주로 팔던 술은 길어야 1개월 정도만 숙성하기에 변화가 적었다.
하지만 1년 이상 숙성한 벽향주를 보니 최소 10%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경우.
매년 2~3% 정도가 증발한다.
그걸 생각하면 상당한 양이었다.
거의 대만의 위스키 증류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증발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애초에 같은 양의 재료로 술을 빚어도 다른 양조장보다 많은 양이 나온다.
그걸 따져보면 오히려 이득이 더 많았다.
“오디션이 다음 주라고 했죠?”
“네, 이제 열심히 준비해야죠.”
“쉬실 때마다 연기 연습하시던데 아마 잘 되실 거예요.”
“휴우··· 그러길 바랄 뿐이죠.”
내가 해준 말은 진심이었다.
구지노라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었다. 그만큼 연기에 진심이란 것을 옆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재능은 노력을 이기지 못한다.
술을 빚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정성을 들여 술을 빚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오저당에도 그런 이들이 몇 명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윤가람 과장이다.
소담의 레시피를 개발할 당시.
그는 거의 양조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일주일 중에 사나흘은 소담이 숙성되는 것을 밤새 몇 차례나 오가며 지켜보고 있었을 정도였다.
“다들 언니만 찾고 있는데 여기서 뭐해요. 어서 와요.”
고개를 돌려서 뒤를 바라보자,
라니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도 술을 꽤 마셨는지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쪽으로는 왁자지껄한 소리 들렸다.
오저당 식구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한옥 앞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작게나마 파티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내일 이곳을 떠나는 구지노를 위한 자리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퍼플 라벨과 소담 소주의 출시를 자축하는 자리였다.
구지노가 떠나는 바로 다음 날.
그러니까 내일모레 일 년 동안 숙성 중이던 벽향주를 마침내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다.
벽향주 작업을 마친 뒤에 숙성 과정이 끝나는 소담 소주도 작업해야 한다.
아마 앞으로 2주 정도는 오저당 역사상 가장 바쁜 시기가 될 것이다.
“으하하! 드디어 해방이구나.”
한옥 앞으로 돌아가자 1년간 관리하던 벽향주를 내보낼 예정인 수호는 속 시원한 표정으로 직원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반면에 옆자리에 있는 윤가람 과장은 부담이 상당히 심한 것 같아 보였다.
소담 소주의 출시를 앞둔 탓이었다.
올해 오저당에서 가장 기대를 가지고 있는 술이 소담이었고 지금껏 투자한 비용도 상당히 큰 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 정식 출시를 하기 전이나 이미 소담의 반응은 확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너튜브를 통해 새로운 소주의 출시를 예고했는데 보틀과 라벨 디자인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는 중이다.
라니와 마케팅 부서에서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여러 종류의 판촉물을 살짝 공개했더니 사람들의 기대가 꽤 컸다.
“어디 갔다가 오는 거예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몰래 도망가시면 안 됩니다.”
“어서 와서 앉으세요.”
“마셔라! 마셔라, 쭉 쭉 쭉쭉 쭉!”
마당으로 들어서니 내가 원래 앉아 있던 자리는 이미 다른 직원이 앉아 있었다.
모두들 한 자리만 계속 있지 않고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마시고 있기에 나는 곧장 다른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그 테이블은 우주와 유성.
그리고 호세가 앉아있는 자리였다.
세 사람은 멕시코와 스페인어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디어를 전담하기로 결정한 후부터 둘은 꽤 노력 중이었다. 해외 출장이 예정된 탓에 회화 공부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주가 편집 때문에 바쁜 터라 회화는 유성이 맡아야 했다.
“H는 발음하지 않아. 아예 없다고 생각하면 돼.”
“그래도 그것 하나를 제외하면 있는 그대로 읽으면 되니 편해요.”
“혀 굴리는 거는 쉽지 않을 거야.”
그런 그들 옆에 앉으며 나는 다음에 등록될 영상에 대해 물었다.
“네 번째로 등록되는 영상이 로데오점에서 찍었던 거지?”
“맞아요. 거의 편집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으니까 이틀 후에 올라갈 거예요.”
영상 등록은 사흘 단위로 하고 있었다.
편집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있었고 너무 빠르게 콘텐츠를 소진하는 것도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이런 콘텐츠가 언제 다시 가능할까.
우연히 얻은 기회 덕분에 진행할 수 있었던 거지 연예인과 협업한다는 것이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수익은 얼마 정도야?”
“1편부터 3편까지 합치면 오백만 원 정도인데 아마 계속 늘어날 거예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번 시리즈를 다 합치면 천만 원은 무조건 넘기겠네.”
“아직 장담하긴 어려워요.”
우주는 변수가 너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금액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얻는 너튜브 수익은 모두 기부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구지노와 했던 약속 때문이다.
그녀는 너튜브에 출연을 약속하면서 출연료를 받지 않는 대신에 수익을 난민 구호 단체에 기부하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오저당도 사회 환원을 하기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파는 것이 술이기 때문에 세상의 시선이 그리 곱진 않았다.
알코올은 중독자를 만든다.
그리고 온갖 나쁜 일에도 연관된다.
뉴스에서 음주 운전 같은 술과 관련된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
다음 날 오전 일찍.
직원들은 좀비처럼 모였다.
어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여파가 작진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9시가 되면 되살아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거기에는 이모가 만들어주신 해장국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구지노도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녀는 아침 일찍 펜션에서 오저당으로 왔는데 든든하게 황태국을 한 그릇 먹은 이후에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아니었던 몰골이 다시 사람의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촬영하다 보면 밤샘도 자주 한다고 들었는데 회복력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촬영할 때마다 아침마다 해주셨던 이 뽀얀 국물은 자주 생각날 것 같아요.”
“요즘 레토르트 제품으로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 마트에서 잘 찾아보세요.”
“미국에서도 파나요?”
“KR 마트 같은 곳에는 있을 거예요.”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메모를 해놓고 매니저에게도 말해놓았다. 혹시 마트에서 비슷한 거를 보면 사다 달라는 의미였다.
한국에서나 혼자 다닐 수 있지 미국은 경호원을 달고 다녀야 하기에 맘 놓고 어딜 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을 좋아하는 거겠지.
적어도 국내에서는 해가 저문 이후에 돌아다니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녀를 못 알아봤다.
“엄청 불편할 것 같아요.”
“저 대신에 매니저가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해줘야 해요. 그래서 매니저랑 마음 맞지 않으면 꽤 불편한 일이 생기죠.”
“지금 매니저랑은 상당히 친해 보이던데요.”
“그 친구가 저한테 잘 맞춰주는 거죠. 흐음···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고개를 돌려 보니 구지노의 매니저가 슬슬 가자며 차 앞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느덧 오저당의 직원들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다음에 또 놀러 와요.”
“오디션 꼭 성공하길 바라요. 화이팅!”
“시사회에서 뵐게요.”
다들 구지노와 인사할 무렵.
나는 허머의 운전석에 앉아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황동선 이사 앞으로 다가섰다.
“이사님이 수고해주세요.”
이곳에서 서울에 있는 거처까지.
황동선 이사가 운전해주기로 했다.
구지노는 고속버스를 타도 된다고 했으나 그렇게 보낼 수는 없지. 그리고 어차피 황 이사도 서울에 볼일이 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광고가 집행된다.
TV 같은 거창한 광고는 아니고 두 곳의 월간 잡지에 실리게 되는 광고였다.
오늘은 그것 때문에 서울에서 미팅이 있다고 했다.
“가는 길에 내려드리는 건데요. 무사히 모셔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현송 주류에 보내줄 샘플도 챙기셨죠?”
“네, 말씀하신 대로 소담 소주랑 판촉물 그리고 선물용으로 드릴 퍼플 라벨까지 넉넉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번 출장에는 현송 주류도 포함되어 있었다. 판촉물을 동원해서 프로모션을 하려면 주류 회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미 사전 협의된 것도 있고 소담도 몇 개월 전에 선보여줬으나 최종 버전을 공유해줄 필요가 있었다.
잠시 황 이사와 이야기 나누는 사이.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끝마친 구지노가 차에 탔다. 어차피 나와 라니는 5월 중에 프랑스에서 다시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니 길게 인사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그녀를 태운 허머가 출발한 뒤.
수호는 손뼉을 치며 한자리에 모여있는 직원들의 시선을 모은 뒤에 부서별로 업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그동안 밀린 일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