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24화 (124/254)

아메리칸 드림 (3)

미국의 KR 마트.

그곳의 최근 성장세는 엄청났다.

미국 서부권의 어지간한 도시에는 KR 마트가 하나씩은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는 서른 번째 지점이 뉴욕에 오픈하면서 동부까지 영역을 차근차근 넓히고 있는 중이다.

KR 마트의 포지션은 독특했다.

체인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아시안 마트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의 식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처음부터 잘나가진 않았다.

시작은 LA의 작은 마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3대에 걸쳐 차근차근 발전하며 수십 년이 지나자 어느덧 대표적인 아시안 마트 체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류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수년 전부터 한국의 제품을 찾는 이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었다.

기존에는 한인 교포와 아시안 계열의 사람들이 주로 찾던 곳이었으나 요즘은 그 비중이 절반쯤으로 줄어들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에드워드 킴이 있었다.

5년 전에 할아버지가 세운 KR 마트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그는 절호의 찬스임을 깨닫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주먹구구식의 경영 시스템을 청산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성공 비결은 따로 있었다.

제품과 시대의 흐름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 온 두 개의 술병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뒤.

해외 소싱 부서장이 호출됐다.

그가 들어오자 에드워드 킴은 곧장 자신이 가지고 온 벽향주와 오풍주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걸 본 부서장은 자신을 왜 부른 건지 금방 알아챘다.

“이걸 입점시키면 되는 겁니까?”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오풍주와 벽향주입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걸 KR 마트에 가져오세요.”

“혹시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이거나 미리 계약에 대해 언질을 주셨던 거는···.”

“그런 거는 아닙니다.”

이런 일이 흔한 편은 아니었다.

직접 아이템을 물어다 주는 경우가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 정식적인 경로를 통해서 부서에 전달되고는 했다.

이번처럼 다이렉트로 물건을 꽂으라는 지시를 내린 적은 거의 없었다.

에드워드는 왜 이걸 KR 마트에 입점을 시켜야 하는 건지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이 술에 대해 들은 바가 있습니까?”

“아니요. 주류 담당 직원은 알 수도 있으나 저는 처음 보는 술입니다.”

“그럼 설명부터 드려야겠군요.”

무턱대고 가져오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이해를 시켜야 일의 효율이 높아진다고 여겼다.

에드워드는 두 가지의 술이 왜 KR 마트에 필요한지 설명을 해주었다.

첫째, 품평회에서 수상한 술이다.

둘째, 스피릿 포인트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으며 미국 내 관심이 높아졌다.

셋째, 한국의 술 판매량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니 경쟁 중인 아시안 마트보다 빠르게 제품군을 늘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세 번째 이유다.

현재 KR 마트에서 한국 제품의 매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주류의 약진이 상당한 편이었다.

술은 생수와 함께 구매 빈도가 매우 높은 제품군 중의 하나이기에 그만큼 매출에 큰 영향을 주는 효자 상품이기도 했다.

에드워드의 말은 일리가 있었기에 부서장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한국 막걸리가 미국에 진출을 한 게 15년 전인데 확실히 달라지긴 했죠.”

“그때는 파는 것보다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게 더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다 옛날 일이 되었죠.”

미국에 진출한 여러 기업 중에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막걸리 회사는 벌써 누적 판매량이 1,500만 병에 달할 정도였다.

막걸리 열풍이었던 시기가 지났음에도 한 해 판매량이 거의 200만 병이나 되었다.

그리고 그 매출의 대부분이 KR 마트를 통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요즘은 멀리서 온 이들이 술을 싹 쓸어가는 일도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서 한국의 술을 접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이야기는 그걸로 끝났다.

이제부터는 실무진의 영역이었다.

부서장은 대표실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주류와 음료를 담당하는 직원인 필립부터 자신의 방으로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한국으로 출장 가는 날이 언제지?”

“3일 뒤로 잡혀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정 당겨서 내일 출발해. 그리고 이번에 갈 때 오저당이란 곳도 들려서 제품 좀 살펴봐.”

“오저당이요?”

필립은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오저당은 여러모로 관심이 가는 곳이라 유심히 지켜보던 곳이다.

KR 마트의 해외 소싱은 대부분 한국에서 오는 것이었고 당연히 트렌드 정도는 계속해서 살펴야 한다.

“아는 곳이야?”

“물론이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주류 분야에서 가장 핫한 곳이거든요.”

“그런데 왜 우리 KR 마트에는 거기 물건이 안 들어오고 있는 거지?”

“벽향주는 공급이 불안정하고 오풍주는 유통기한이 짧았습니다. 한 마디로 수출할 여력이 안 되는 작은 양조장이죠.”

여러모로 분석도 해봤고 한국에 있는 관련 업체를 통해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뒤로는 더는 알아보고 있지 않았다.

당장 올해 입점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음료와 주류 브랜드가 산더미 같았다.

한국에서 미국 진출을 원할 경우.

가장 먼저 고려되는 루트가 KR 마트일 수밖에 없다. KR 마트가 들어서는 곳은 한인 교포가 밀집한 곳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맛과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안정적인 소비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한국 기업들은 일단 KR 마트에 물건을 넣고 반응부터 보는 것을 거의 미국 진출의 루트처럼 여겼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필립 같은 담당자들 대부분은 업무량이 상당했다.

“그래서 아예 불가능한 거야?”

“직접 가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정확하겠죠.”

“대표님 지시니까 신중하게 판단해.”

“그러면 라벨 등록과 주류담배무역국(TTB) 관련 절차도 제가 어시스트를 해줘야 하는 건가요?”

필립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일거리가 엄청날 것 같았다.

덩치가 어느 정도 되는 기업은 알아서 모든 절차를 해결해서 오는 편이었다.

그런 회사들은 문제가 생길만한 것들만 옆에서 지적하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업체 규모가 작고 수출 경험이 없는 회사는 신경 써야 하는 게 많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차질을 빚는 일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뒤를 봐줄 필요는 없고 만약에 입점이 진행되면 라이센스를 가진 수입업자 끼고 들어와야 하잖아.”

“심양 머천트에 토스하면 되는 거죠?”

“그렇게 해.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연방 면허를 가지고 있는 그쪽이 문제가 생겨도 잘 해결할 수 있잖아.”

KR 마트에 입점한 물건의 숫자만 수천 개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폭넓다.

그래서 가능하면 현지 총판을 끼고 납품을 받는데 심양 머천트는 그중에서도 주류를 주로 다루는 총판이었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그쪽에 맡기면 수입 절차와 모든 것을 핸들링해주었다.

KR 마트는 차질 없이 물건을 받을 수 있고 업체들은 직접 미국에 진출하지 않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 바로 출장 준비할게요.”

*

공장이 가동된 이후부터.

오저당은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10만 병에 머물던 벽향주의 생산량은 몇 배 이상이 되었고 전국에 공급이 되면서 당연히 매출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제는 일반 음식점뿐만 아니라 동네 마트에서도 오풍주와 벽향주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오저당의 생산은 멈추지 않았다.

일단은 계속 빚어놔야 했다.

끌루소의 판매량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리뉴얼 전에 벽향주를 만 병이나 주문해서 가져갔는데 벌써 가져갔던 물량 대부분이 판매되었다고 했다.

[어느 정도 약속을 지킨 것 같아 마음이 놓이네요. 조만간에 대량 주문이 들어갈 예정이니 마음 단단히 먹고 계십쇼.]

누구보다 뫼리스가 가장 기뻐했다.

그가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종종 전화해서 현재 상황을 설명해줬다.

직접 관리하는 술만 수백 종에 달하는데 우리한테 그 정도의 정성을 쏟는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뜻이었다.

“얼마나 많이 주문하시려고요?”

[프랑스 남부 쪽에 있는 마트 체인에 벽향주를 넣는 계약을 맺어서 그에 대한 물량까지 합치면 몇 배쯤 될 겁니다.]

“잘됐네요.”

끌루소는 온라인 주류 플랫폼이지만, 그와 별개로 오프라인 유통도 병행했다.

굳이 온라인만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들의 창고로 술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최대한 빨리 그걸 내보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지난 계약 당시에 끌루소는 오프라인에서도 벽향주를 총판할 권리를 가져가길 원했고 나는 거기에 사인했다.

우리 쪽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한 병이라도 더 많이 팔면 나쁠 게 없었다.

[최근에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을 듣기는 했는데 문제 될 만한 이슈는 없습니까?]

“전혀요. 지금 당장 주문해도 2만 병 정도는 바로 선적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좋네요. 그럼 안심하고 발주 수량 뽑아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알겠다는 답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프랑스에 있는 마트에 벽향주가 진열된다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머지않아 프랑스로 여행 가면 마트에서 우리 술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걸!

마음 같아서는 조만간 한 번 유럽에 가서 그 장면을 직접 보고 돌아오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서 그건 뒤로 미뤄야 했다.

‘언제쯤 성장하려나···.’

마음이 조금씩 급해지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벽향주가 해외로 나갈 때 오풍주도 같이 보내고 싶었는데 요정들의 성장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벌써 400종이 넘어가는 막걸리를 요정들에게 주었으나 변화가 없었다.

만약에 향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다면 사기로 고소했을 것이다.

설마··· 내가 당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향이가 슬며시 나에게 다가왔다.

낮부터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볼빨간 상태였고 심지어 비틀거리고 있었다.

술의 요정이라고 안 취할 줄 알았는데 향이는 일반 요정과는 달리 취하기도 했고 은근히 주사도 있는 편이었다.

왜 그걸 예전에는 몰랐을까.

아마도 내가 잘 때 오저당에 요정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든 향이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 머리카락을 쥔 채로 당기기 시작했다.

[마아스퉈! 따라 오셧···요.]

그것도 하필 구레나룻 주변의 머리카락인 터라 통증이 상당했다.

이게 어느 순간부터 아픈 곳만 골라서 잡아당기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았다.

“아프니까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해.”

[어서 오세욧! 보여드릴 게 이써요.]

“알았으니 앞장서.”

못이기는 척 향이를 따라나서자,

녀석은 오저당의 한쪽 구석으로 갔다.

그곳에는 하급 요정들이 모두 모여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은 안 하고 놀고만 있다니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한다고 월급을 받아 가는 것도 아니고 도움을 받는 쪽은 전적으로 나였다.

게다가 하루라도 빨리 승급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는 않았다.

안주라도 주고 싶었으나 요정들은 술 외에 다른 거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하급 요정 중에 옷의 색이 달라진 녀석이 둘이나 섞여 있었다. 기존까지는 녹색이던 옷이 청색으로 바뀌었다.

“설마 중급 요정으로 성장한 거야?”

[드디어 성공했답니다.]

“혹시 우리가 원하던 그 능력이 생겼어?”

[자아··· 이제부터 잘 보세욧.]

향이가 손짓을 하자,

요정들이 주변으로 날아왔다.

그러더니 오풍주가 담겨 있는 저장고 위에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이 마치 강강술래를 하는 것 같았다.

한복을 입고 그러고 있으니 너무 잘 어울리잖아! 그리고 그 중심에 청색의 관복을 입은 중급 요정 하나가 섰다.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는데 잠시 후에 날개에서 빛나는 가루가 소복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먹는 거에 장난치는 거 아니야.’

이걸 말려야 하나 고민되었다.

요정들의 아래 있는 저장고는 숙성을 끝내고 내일 병입이 예정된 오풍주다.

그걸 그냥 버리자니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향이도 뭔가 생각이 있겠지.

잠시 기다리자 오풍주에 빛이 감돌았다.

마치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떠다니는 것 같아 보였는데 그제야 향이는 내게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이제 이 술은 한 달간 숙성이 완전히 멈춰있을 꺼어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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