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46화 (146/254)

테킬라 웨이브 (1)

멕시코에서 연락받은 뒤.

나는 곧장 뉴욕행 티켓을 샀다.

돈 레오넬 샘플이 나왔으니 카를로스와 했던 내기를 마무리 지을 때가 되었다.

당연히 멕시코에서 보내기로 한 테킬라 샘플도 뉴욕 현지에서 받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뉴욕 지사 책임자인 루이스 슈미트의 도움을 다시 한번 받아야 했다.

국제 무역 전문가답게 샘플이 담긴 박스의 운송 정도는 손쉽게 처리됐다.

심지어 슈미트는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공항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인천에서 출발하기 전에 비행기 편이 뭔지 캐 물어서 직원을 보내나 싶었는데 그가 직접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지사장님께서 직접 나오실 필요는 없는데요. 안 바쁘신가요?”

“오저당이 제 업무 순위에서 가장 위에 놓인 거 모르십니까?”

“저희가요?”

“그럼요. 주 사장님이 우리 뉴욕 지사를 먹여 살리고 계시잖아요.”

5개월 만에 만나는 것이나 슈미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나도 잘 안다.

현재 그의 사무실은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엄청나게 성장 중이었다.

직원도 두 명에서 다섯 명으로 늘었다.

고작 세 명밖에 늘지 않았냐고 볼 수도 있으나 매출만큼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 덕분에 한국에 있는 심양 본사에서 그리 큰 기대를 받지 못하던 뉴욕 지사의 입지는 상당히 높아졌다고 한다.

벽향주와 바크모 덕분이다.

LA 지사가 납품하는 KR 마트보다 뉴욕에서 관리하는 바크모가 미국에서는 훨씬 볼륨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LA 지사에 견줄 정도는 아직 아니었다.

KR 마트는 바크모보다 매장 숫자가 작아도 한국의 술이 대량으로 들어가고 고정 고객도 있기에 회전율도 빠르다.

반면에 바크모는 희석식 소주는 이미 다른 업체를 통해 입점되어 있었고 그 외의 술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요즘 슈미트는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바크모에 한국 술을 입점시키는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오저당의 벽향주 외에는 관심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이더군요. 그래도 조만간에 증류식 소주 한 종은 들어갈 것 같아요.”

“어디 소주죠?”

“안동이요. 다른 술은 협상 중입니다.”

그나마 안동 소주라도 그 벽을 뚫어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오저당이 빚은 술은 아니나 진짜 소주가 미국 전역에 알려질 수 있는 기회라 반가웠다.

한국의 술이 유명해질수록,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오저당만 잘 나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면 전통주를 빚는 양조장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잘됐네요.”

“저는 그보다 오저당이 빚은 돈 레오넬 테킬라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하하! 직접 나오신 용건이 그거였군요.”

“저는 기존에 가져오셨던 테킬라도 너무 좋았는데 개량한 맛은 어떤지 궁금해서 참을 수 있어야죠.”

슈미트도 술에 대해서는 진심이었다.

나중에 유럽이나 미국에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증류소나 와이너리를 인수하는 게 꿈이라고 들었다.

“이왕에 나오셨으니 시간 되시면 저랑 같이 카를로스를 만나러 가시죠.”

“저도 동행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제가 먼저 카를로스에게 전화해서 말씀드려 볼게요.”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나를 픽업하러 나와준 슈미트와 같이 움직인다고 하니 카를로스는 흔쾌히 자신의 저택에 그도 초대해주었다.

“아참! 멕시코에서 보낸 테킬라 샘플도 차에 싣고 오신 거 맞으시죠?”

“당연하죠. 다시 시내로 들어갔다가 나올 필요는 없어서 아예 싣고 왔습니다.”

“다행이네요. 또 시내에서 한참 갇혀 있어야 하는지 알았어요.”

우리는 공항 주차장에서 차에 탄 뒤.

카를로스의 저택이 있는 롱아일랜드의 햄튼으로 향했다. 햄튼은 부자와 연예인 그리고 금융인이 많이 사는 부촌이다.

뉴욕에서 약 80km 정도 떨어져 있기에 그리 멀지는 않았다.

하지만 햄튼으로 곧장 가진 않았다.

중간에 한적한 휴게실이 보이자 나는 잠시 멈춰달라고 슈미트에게 부탁했다.

그가 차를 세우자 나는 트렁크에 넣어뒀던 캐리어를 꺼내 열어서 꼼꼼하게 포장한 몇 개의 술병이 꺼냈다.

“어쩐지 캐리어가 제법 무겁더라고요. 이걸 다 한국에서 가져오신 건가요?”

“네 병 중에 두 병은 비어 있는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일단 멕시코에서 보낸 테킬라부터 주시죠.”

슈미트는 알겠다며 트렁크 옆에 실려 있던 박스에서 돈 레오넬을 꺼냈다.

이번에 멕시코에서 보낸 술은 아직 아이레스 라벨과 술병에 담겨 있었다.

그사이에 포장을 풀어내 돈 레오넬 라벨이 부착된 병을 꺼내자 그걸 본 슈미트는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이해했다.

“이게 새롭게 만든 돈 레오넬 병이군요?”

“기왕이면 새로운 패키지에 담아서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챙겨왔죠.”

“병이 바뀌니 확실히 느낌도 달라지네요. 그런데 나머지 두 병은 뭔가요?”

“아··· 이건 오저당에서 5월쯤에 새롭게 출시하는 증류식 소주입니다.”

이번에 나는 소담 소주도 가져왔다.

기왕에 오는 김에 돈 레오넬과 함께 소담도 미국에 진출 가능 여부를 타진해 보고 싶었기에 챙겨온 것이다.

캐리어 안에 깔때기도 챙겨온 덕분에 비어있던 두 개의 병을 채우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몇 방울의 술은 내 몫이었다.

반 모금도 안 되는 양이었지만,

맛과 향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숙성을 하면 할수록 대부분의 술은 맛이 깊어진다. 테킬라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고 요정의 효과도 제대로 받았다.

돈 레오넬은 2개월 이상 숙성한 레포사도 등급이나 1년 이상 숙성한 아네호(Anejo) 등급과 거의 비슷했다.

호르헤가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확실히 이해가 가능했다.

흡족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자 슈미트는 빈 술병을 애절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운전을 해야 하는 그에게 술을 권할 수는 없었다.

“죄송하지만, 운전하셔야 하니···.”

“어쩔 수 없죠. 이러다가 음주 운전으로 의심받을 수 있으니 어서 가시죠.”

슈미트의 말이 맞았다.

괜히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음주 운전 단속은 세계 어딜 가나 있다.

미국에서는 공공 장소에서 음주를 하는 것이 불법인데다가 오픈된 술은 차 안에 두면 안 되고 트렁크에 넣어야 한다.

캐리어 안에 술병을 넣은 뒤.

우리는 다시 시동을 걸고 움직였다.

한동안 달리던 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슈미트는 슬쩍 테킬라의 유통에 대해서 물어봤다.

“멕시코에서 빚는 돈 레오넬의 미국 내 수입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슈미트가 맡아주시는 거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서 지금까지 따로 알아보지 않았는데요.”

“하하! 안 그래도 LA 지사가 아닌 저한테 맡겨달라고 어떻게 부탁드리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LA 지사 이야기가 왜 갑자기 나오죠?”

“그쪽에서 직접 핸들링하겠다고 중간에 가로챌 가능성이 있어서요.”

내 질문에 슈미트는 잠시 고민하다가 현재 심양의 상황에 대해서 말해줬다.

갑자기 뉴욕 지사가 급성장을 하고 있는 탓에 LA에서 견제가 들어왔다고 했다.

KR 마트의 동부 진출과 맞물린 탓에 대놓고 하지는 않았으나 물량 배분부터 운송 차량의 우선순위도 밀렸다고 했다.

그는 올해 LA 지사장으로 보내려다 무산된 심양의 후계자 때문이라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요?”

“뉴욕 지사를 만들며 저와 맺은 계약이 2년밖에 안 되거든요. 그 이후에는 성과를 봐서 연장 계약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변수가 생긴 탓이군요.”

그 변수가 바로 오저당이었다.

갑자기 뉴욕 지사의 가치가 치솟고 있으니 LA가 아닌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 같았다. 업적 쌓기는 확실히 지금의 뉴욕 지사가 훨씬 편하기는 했다.

“이런 말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꼭 심양에 있으셔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만약에 재계약이 되지 않는다면 저희 오저당과 같이 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슈미트도 우리와 심양이 2년 동안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그 이후에는 유통 업체를 바꿔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의 거래처는 심양이 아닌 KR 마트다.

어차피 심양은 KR 마트에 입점하기 위해 잠시 거치는 중간 단계에 불과했다.

운전을 하던 그는 잠시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혹시 미국에 지사를 만드셔서 직접 수입과 유통까지 하실 생각이신 건가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열어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필요하겠죠.”

확답은 지금 당장 줄 수 없었다.

대신 여지는 충분히 남겨 둬야 했다.

만약에 슈미트가 심양을 떠난다면 그를 고용해서 OGD USA를 설립할 생각도 있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심양에 수수료를 주고 오저당의 술을 수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전에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게 있었다.

“그러려면 오저당의 제품이 미국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아야겠죠.”

“OGD 멕시코에서 빚은 테킬라가 미국 시장에 어떻게 안착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하면 됩니까?”

“이번에 가져온 소담 소주와 벽향주도 포함입니다.”

소주의 이름을 들은 슈미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다시 확인했다.

“술 이름이 So Damn(제기랄) 맞나요?”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라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대신 나는 스펠링은 다르다며 거기서 N은 빼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소담이란 단어의 뜻도 설명해줬다.

“이거 진열해 놓으면 시선 좀 끌겠네요.”

“그래서 수출용은 이름을 바꿀까 하다가 한국 시장과 동일하게 표기하려고요.”

“언어의 차이에서 생긴 해프닝이군요. 어쩌면 그 이름 덕분에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랬으며 좋겠네요. 저기 앞에 있는 저택이 목적지인가 봅니다.”

도로변에 즐비한 나무 너머.

꽤 커다란 2층 저택이 살짝 보였다.

네이게이션도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알려줬는데 슈미트가 속도를 줄여 살피더니 저택의 입구로 핸들을 꺾었다.

거대한 철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는데 정원도 잘 꾸며져 있었고 심지어 분수도 있었다.

전형적인 미국의 대저택 모습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잘 예정이었다.

제대로 술을 마시려면 자고 가야 하지 않냐고 카를로스가 먼저 제안해줬다.

저택의 크기를 보면 슈미트가 잘 방도 있을 것 같았다.

저택 앞에 서서히 차가 멈춰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카를로스가 나와서 우리를 맞아줬다. 어쩌면 우리가 아니라 테킬라를 반기는 건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간 잘 계셨죠?”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저까지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슈미트 씨도 반가워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죠.”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한 뒤.

트렁크에서 캐리어와 술 박스를 꺼낸 뒤에 카를로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내부는 높은 천장고를 가진 집답게 공기는 서늘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바닥 모두 대리석을 깔아놨다.

[오··· 집이 엄청 크네요. 이런 집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요?]

두리번거리는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향이도 신기한 듯이 집안을 날아다니며 구석구석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이거는 조금 부럽기는 하다. 언젠가 재벌이 되면 이런 집에서 살 수 있겠지.

카를로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접객실이 나왔다. 상당히 비싸 보이는 푹신한 소파에 앉자 그는 곧장 예전에 했던 내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벌써 제품 개선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좀 놀랐습니다.”

“기존에 아이레스를 빚던 장인 분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죠.”

“이름이 돈 레오넬이라고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그분의 성을 따온 건가요?”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곧장 박스에서 돈 레오넬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새롭게 바뀐 보틀과 라벨 디자인을 본 카를로스는 제법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벽향주 때도 느꼈는데 오저당에는 실력 좋은 디자이너가 있는 것 같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겉 포장보다 내용물이 훨씬 더 중요한 거는 아시죠?”

카를로스는 접객실 한쪽 편에 있는 찬장에서 술잔과 레몬 그리고 소금까지 꺼내서 올려놨다.

일단 돈 레오넬의 맛부터 보자는 그의 행동에 나는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술병을 집어 들어서 빈 잔에 따라주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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