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66화 (166/254)

인기 급상승 (3)

현송 주류의 권택경 대리.

요즘 그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살맛 난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렸다.

작년부터 예쁜 여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했고 회사에서 그의 입지는 점차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행운의 시작은 18개월 전.

강원도에서 술을 빚는 젊은 오저당의 사장과 거래를 트면서 시작됐다.

거래 금액만 보면 아직 종합 주류 회사와 비교할 수 없으나 성장세가 엄청났다.

단순하게 계산 해봤을 때.

오저당의 술을 핸들링하며 그가 현송에 가져다준 수익만 거의 15억에 달했다.

거기서 프로모션 비용과 인건비 등을 제외해야 순수익으로 잡히지만, 그래도 작다고 말할 수는 없는 규모였다.

당연히 그 모든 수치는 자신의 업무 성과로 구분되기에 올해 연말에 권택경은 과장 승진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연봉도 덩달아 상승할 테니 잘하면 여자 친구와 결혼을 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올해가 중요한데···.’

아무리 작년에 성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올해 죽을 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적어도 평타 이상은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 뭔가 결정할 때마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애매한 제품의 런칭도 최소화한 뒤.

현재 관리하고 있는 몇 곳의 양조장 제품을 핸들링하는 쪽에 더 집중했다.

업무 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권택경 대리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애매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오저당에서 신제품을 직접 가져왔기 때문이다. 소담이란 브랜드 네임을 붙여서 내놓은 소주였다.

조금 전에 오저당의 황 이사님이 주고 간 제품을 받은 뒤에 그는 회의실에 앉아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소담의 출시는 몇 개월 전부터 예고되었던 일이었다.

당연히 발주도 준비해놨다.

문제는 얼마나 받냐는 것이었다.

기존에 그가 사장님의 결재를 받아서 주문할 양은 5만 병 정도에 불과했다.

한 짝에 이십 병이 들어간다.

그 정도면 오백 곳의 매장에 다섯 짝 정도만 넣어도 소진이 될 수준이다.

당연히 오백 곳이나 되는 곳에 새로 나온 제품을 넣는 것은 생각보다 쉽진 않다.

“아···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하지?”

조금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벽향주는 운이 좋았다.

현송의 컨택이 더 먼저 진행되었으나 어쨌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일이 술술 풀린 케이스다.

과연 또 그런 일이 생길까?

올해 품평회는 1월 무렵에 끝났다.

소담을 그곳에 제출하려면 거의 8개월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발주 수량을 조금 줄여야 하는 게 맞기는 했다.

반면에 느낌은 정반대였다.

다른 곳이 아닌 오저당이기 때문이다.

소담의 맛은 확실히 좋았고 최근에 너튜브를 통해 홍보도 진행 중이다.

그와 더불어 아까 방문한 황 이사님의 말에 의하면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10만 병씩 주문이 이미 들어와 있다고 했다.

혹시라도 또 품절이 터질 경우.

미리 수량을 확보하지 못한 것 자체가 실수로 비춰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주문량을 고민하던 그는 한숨을 쉬었다.

“땅 꺼지겠다. 뭐가 문제야?”

하필 그걸 도진학 사장이 봤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 사장실로 가던 그는 회의실에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는 권택경 대리를 발견하고 들어왔다.

“별거 아닙니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어서 털어놔 봐. 혹시 여자친구랑 싸운 거야? 그런 거면 내가 해줄 조언은 없고.”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권택경은 현재 고민 중인 내용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다른 거는 몰라도 이런 쪽에서 사장님의 혜안은 아직 그가 따라잡기 어려웠다.

한동안 이야기를 듣던 그는 권 대리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너 요즘 너무 몸 사리는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예전에 벽향주를 꼭 가져와야 한다며 패기 가득하던 모습이 그립다. 일단 내 질문에 네가 대답해봐.”

권택경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오래 생각하지 말고 곧장 대답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지금은 복잡하게 따지지 말라는 의미였다.

“소담 소주가 맛이 없어?”

“아닙니다. 확실히 수준급입니다.”

“그러면 소비자가 부담될 정도로 비싸?”

그 부분에서는 잠시 대답을 못 했다.

20도짜리가 만 이천 원이고 40도가 이만 이천 원이기 때문이다. 싸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비싼 편도 아니라 애매했다.

“다른 증류식 소주를 생각하면 선택에 크게 어려움이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오케이. 그러면 추가 발주 넣으면 언제든 받아올 수 있는 물건이야?”

“설비를 충분히 준비했다고 하는데 일단은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권택경은 유럽 수출 물량에 대해 들은 것을 도진학 사장에게도 전해주었다.

“미국 수출도 예정되어 있지 않아?”

“오저당에서 세운 현지 법인을 통해서 KR 마트와 바크모 매장 쪽으로 10만 병 이상 유통될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초도 물량에 한정해서 판촉물을 배포한다고 했지? 그것도 고려한 거 맞아?”

소매점에 소담 소주를 다섯 짝 납품할 때마다 전용 소주잔이 한 세트씩 나갈 예정이었다. 기존 그대로 주문하면 소주잔 세트 오백 개 정도는 확보 가능했다.

“지금까지 네가 한 대답에 답이 있잖아. 발주 한 번 잘못 낸다고 안 죽어. 그러니 쫄지 말고 평소에 하던 대로 일하자.”

도진학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권택경 대리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드려주었다.

거기까지만 말하고 나가는 이유는 발주 수량은 스스로 결정하라는 의미였다.

그래도 방금 느낀 게 있어서일까.

권택경 대리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곧장 다시 발주서를 작성한 그는 사장실을 노크한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책임지고 어떻게든 소진할 테니 소담 소주 10만 병 주문하고 싶습니다.”

*

소담의 출시를 앞두고,

주류 상사의 발주가 들어왔다.

처음부터 그리 큰 기대는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길고 가늘게 그리고 차근차근 단계별로 가는 수밖에 없다.

주류의 특징이 원래 그렇다.

시장에 자리 잡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 대신에 한 번 자리 잡으면 최소 십 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 동안 계속해서 판매하는 것이 주류 브랜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 브랜드.

이슬 같은 경우에는 중간에 리뉴얼이 몇 번이나 이뤄졌으나 벌써 25년 이상이나 긴 세월 동안 판매 중이다.

그래도 발주 수량이 작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뫼리스가 주문한 10만 병이 있었고 바크모에서도 카를로스가 10만 병을 주문한 상태였다.

확실히 매장이 백여 곳이 넘어가니 백여 병씩만 넣어도 그 정도 양이 나온다.

소주는 유통 기한의 압박이 없으니 벽향주와 비교하면 주문 단위 자체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거기에 KR 마트도 있었다.

이번에는 심양을 거치지 않고,

OGD USA를 통해 직접 꽂게 됐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 오저당까지 직접 와줬던 해외 소싱 부서의 필립 최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돈 레오넬이었다.

바크모와 독점 계약을 맺어놔서 당장 넣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내년에 소량이나마 넣는 조건이라 가능했다.

“문제는 국내 발주량인데···.”

아직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다들 눈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작은 규모의 주류 상사는 대부분 천 병 단위 미만으로 주문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오저당의 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문을 크게 넣어주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매출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증류식 소주라는 이유로 홀대받는 느낌이랄까.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었다.

현송에서 생각보다 많은 양을 주문했다.

우리가 거래하는 주류 상사 중에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현송이 그 정도 주문을 했으니 다른 곳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모든 발주서를 합치면···.

대략 40만 병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아직 주문을 넣지 않은 중소 규모의 주류 상사도 있기에 조금 더 늘어나겠지.

그 정도의 수량은 출고하는데 문제가 전혀 없었다.

설비는 현재 풀가동 중이다.

내일부터 병입을 시작하면 며칠 이내에 50만 병 정도는 출고가 가능했다.

이번에 소담만 내보내도 매출이 70억 이상 증가할 것이다.

“아··· 눈 아파.”

숫자를 계속 봐서일까.

눈이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몇 시인지 봤더니 어느덧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슬슬 자야 할 시간이었다.

내일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자기 전에 양치를 하려고 방을 나서자 거실에서 호세와 수호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또 술이냐? 안 피곤해?”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안 오더라. 너도 한잔할래?”

“한 캔 다 마시는 거는 조금 그렇고 한 잔만 따라줘.”

안 그래도 목이 마르기는 했다.

내 말을 들은 호세는 비어있는 잔에 맥주를 가득 따라서 내게 건넸다.

생소한 디자인의 캔이었는데 아마도 수제 맥주 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커지고 있는 중이다.

획일화된 맥주보다 조금 더 독특한 맛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덕분이었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라거보다는 스타우트를 좋아했고,

가장 최애하는 맥주는 인디아 페일 에일(IPA)이다. 당연히 얼마 전까지 국내에서 그런 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요즘은 중소 규모의 브루어리에서 정말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내놓고 있었다.

호세한테 맥주잔을 받아 크게 한 모금 마시며 소파에 앉아 눈을 비비자 수호가 왜 그러냐며 물었다.

“매출이 늘어나니 서류도 늘어나고 숫자 단위도 커져서 보는 게 쉽지 않네.”

“이 정도로 커졌으면 재무랑 회계 관리하는 직원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한계가 느껴져서 얼마 전에 황 이사님한테 헤드 헌터를 통해서 구인해달라고 부탁해놨어.”

작년이랑은 상황이 또 달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연 매출이 120억 남짓 될 거라고 여겼으나 그걸 훨씬 뛰어넘었고 올해는 전혀 예측조차 안 되었다.

거기에 미국과 멕시코 법인과 거래하고 자본금과 배당금을 주고받는 것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복잡해졌다.

내가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상당히 벗어났다.

“퍼플 라벨은 언제 작업 끝날 것 같아?”

“적어도 며칠 정도 더 걸릴 거야.”

“소담이랑 일정이 겹치겠네.”

“끌루소에 보낼 거는 거의 마무리돼서 내일모레 그쪽으로 인력 배치할 거야.”

퍼플 라벨을 끌루소의 선주문에 맞춰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몇만 병 정도는 여유분으로 마련해 놓았는데 그것들은 바크모에 보내기로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면 다시 벽향주를 빚는 거는 열흘 정도 후에 해야겠네?”

“아니, 나랑 호세는 소담과 별개로 벽향주부터 채울 생각이야. 하루라도 빨리 빚어야 출고하는 날이 단축되잖아.”

“그렇기는 하지.”

생산 일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수호가 계산해서 인적 자원을 배치하는 중이다.

알아서 잘할 거라 믿기에 그건 녀석의 판단대로 하기로 했다.

더구나 퍼플 라벨과 달리 소담은 모든 생산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기에 병입 과정에서 인력이 많이 필요하진 않았다.

오히려 공병 등의 생산 준비 과정과 병입을 마친 술을 옮기고 제품 품질을 확인하는 쪽에 인력이 더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간단한 운반 정도는 요즘 강진희 사원도 많이 돕고 있었다.

매일 호세와 붙어 다니더니 이제는 제법 지게차 운전 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도 상당히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말에 태백 시내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둘이 스스로 공개하기 전까지 다들 모른 척을 하기로 했다.

“어휴··· 졸려서 안 되겠다.”

남은 맥주를 단숨에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들어갔다.

잠시 뒤에 나오자 수호와 호세도 슬슬 자려는 건지 맥주잔을 치우고 있었다.

녀석들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자 한동안 안 보이던 향이가 날아와서 코앞에 멈췄다.

가끔 이럴 때마다 본능적으로 손이 올라가는 거를 알기나 할까?

시골에 살다 보니 나방이 싸대기를 때리는 일이 허다해서 생긴 버릇이다.

상체를 뒤로 기울이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향이가 반가운 소식을 알려줬다.

“새로운 요정들이 왔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