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67화 (167/254)

인기 급상승 (4)

새로운 요정의 출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보관 중인 술의 숙성이 끝나는 날.

요정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이미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언제쯤 요정이 나올지 예상이 되었다.

적어도 오늘 아니면 내일.

늦어도 이번 주중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이 들어맞진 않았다.

일단 시간대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보통은 새벽 무렵에 나타나던 녀석들이 이번에는 너무 빨랐다.

‘잠자는 거는 잠시 미뤄야겠네.’

졸음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지금 눕는다고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오저당의 생산량이 기존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기에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요정이 생겼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지금 가시려고요?]

“응, 궁금해서 잠이 안 올 것 같아.”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향이는 호언장담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녀석을 살폈다.

혹시라도 바뀐 곳이 없나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향이가 성장하는 것은 아직인 것 같았다. 입고 있는 복장도 예전 그대로였고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조금 아쉬웠다.

이번에는 성장할 줄 알았다.

3층에서도 벽향주를 빚고 있었고 소담의 생산량도 상당한 편이라 바뀌어야 정상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더 빚어야 성장하려나.’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청색의 곤룡포에서 더 나아가려면 적어도 종합 주류 회사쯤은 되어야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모습이 성장의 끝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향이가 해준 말이 있었다.

어쨌든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서자 방으로 들어서려던 수호가 멈춰서 나를 바라봤다.

“어디 가려고?”

“산책 좀 하고 돌아오게.”

“졸립다고 방에 들어간 녀석이 갑자기 야밤에 무슨 산책을 가겠다고?”

“잠이 깨버렸어. 너라도 어서 자라.”

수호를 뒤로 하고 문을 열고 나오니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운 좋게 별똥별도 보였는데 소원을 말할 틈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여기서 더 바라면 그건 욕심이겠지.

그저 오저당에 머무는 요정과 향이가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하는 게 전부다.

정원을 지나 창고 앞에 도착한 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보안 장치를 설치하는 것을 고민했었는데 그게 큰 의미가 없었다.

사설 보안 업체가 여기까지 오려면 오래 걸리고 창고마다 요정이 있으니 누군가 침입하면 향이가 알려줄 것이다.

잠도 자지 않고 24시간 감시하는 요정의 눈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드르르륵!

옆으로 열리는 문을 살짝 열은 뒤.

내부의 불을 켠 나는 안쪽을 살펴봤다.

그곳에서 나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규모의 요정들을 볼 수 있었다.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의 요정이 있었는데 천 단위는 넘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오저당의 요정 상당수를 이쪽에 배치해서 뒤섞인 상태였다.

“와··· 도대체 얼마나 늘어난 거야?”

[글쎄요. 한번 세보라고 할까요?]

“부탁할게.”

향이는 알겠다며 대답한 뒤.

하급 요정과 중급 요정을 불렀다.

그런데 그중에 낯선 요정도 있었다.

내가 역사 덕후가 아니라 정확한 것은 아니나 무관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은 중급 요정 같았고 포졸은 하급 요정이겠지.

심지어 무기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중급 요정은 활 같은 것을 등에 메고 있었고 하급 요정은 창으로 보이는 뾰족한 것을 쥐고 있었다.

요정들은 생각보다 무관 복장을 한 중급 요정의 말을 잘 들었다. 평소답지 않게 질서정연하게 줄을 설 정도였다.

그 덕분에 숫자 파악은 생각보다 쉽게 끝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요정의 숫자가··· 천삼백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와··· 요정이 정말 많아졌네.”

[그래도 저번에 미국에서 들렸던 버번 증류소에 비하면 아직 멀었죠.]

“거기는 넘사벽이었지.”

렉싱턴에서 방문한 증류소 중.

세계적인 곳들은 요정이 다수 있었다.

확실히 규모가 크니 우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숫자의 요정이었다.

하지만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그런 곳들에는 향이나 판초 그리고 중급이나 하급 요정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그 차이가 상당히 큰 편이었다.

쉬이잉!

그때 중급 요정 하나가 활을 쐈다.

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바닥에 파리 한 마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걸 본 향이는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기존까지는 향이와 다른 중급 요정 둘이 번갈아 가며 벌레를 처리했었다.

그런데 이 정도 실력이면 혼자 충분히 어느 정도까지는 처리 가능할 것 같았다.

“와··· 명사수잖아.”

[저 친구가 조금 깔끔떠는 스타일인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가지고 있는 능력도 그쪽이에요.]

“무슨 능력인데?”

향이는 중급 요정은 저마다 고유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과거에 오저당에 나타난 중급 요정은 오풍주의 유통 기한을 늘려주었다.

하지만 모든 중급 요정이 양조장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가지진 않는다.

[이게 설명하기 조금 애매한데 해로운 균을 제거하는 능력이라고 보시면 돼요.]

해로운 균이라···.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누룩이다.

누룩을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균일한 수준의 누룩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수호와 나 그리고 호세까지.

우리 모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술을 빚고 있으나 누룩만큼은 종종 실패했다.

당연히 누룩을 전담하고 있는 이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실패 확률이 많이 줄기는 했으나 종종 온종일 작업한 양을 모두 폐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폐기되는 누룩에 들어가는 재료보다 더 아까운 것은 시간이었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만큼.

누룩이 들어가는 양도 상당했다.

한 차례 누룩이 폐기되면 전체적인 생산 일정이 꼬이는 일이 제법 생겼다.

“아무래도 이번에 온 이 친구는 누룩을 빚는 쪽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

[그럼 그쪽으로 보낼게요.]

“나머지 중급 요정은 혹시 무슨 능력인지 알 수 있을까?”

이번에 생긴 중급 요정은 셋이다.

기존에 있던 둘까지 합치면 다섯이나 되기에 배치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머지 두 중급 요정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숙성 기간을 단축해주고 생산량이 조금 상승하는 효과가 있기는 한데 그리 눈에 띌 정도는 아닐 거예요.]

“괜찮아. 요정들을 관리해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라 여기고 있어.”

[대신 다른 중급 요정들도 해충을 잡아주는 역할은 충분히 잘 해낼 거예요.]

그것만 해줘도 고맙지.

산골에 있는 양조장이라 벌레가 문제다.

약간의 빈틈만 보여도 양조장과 창고 내부로 기어들어 오는 것이 벌레다.

그 덕분에 우리 양조장은 종종 여직원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졌고 벌레 때문에 노이로제 증상이 생기는 이도 있었다.

대부분 태백 출신이었으나 이런 산골 생활은 누구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 믿고 맡길게.”

*

새로운 중급 요정이 나타난 뒤부터.

오저당에 나타나는 벌레의 수가 줄었다.

정확하게는 입구컷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맞겠지. 무관 복장을 한 요정들은 하급 요정과 함께 열심히 사냥했다.

그 덕분에 직원들은 조금이나마 쾌적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요즘 건물 내부에 벌레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것 같아.”

“그러게. 얼마 전에는 지네가 나와서 기겁을 했는데 요즘은 나방 몇 마리 정도 보이는 게 전부네.”

“다행이죠. 저 정말 벌레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다니까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지 마. 여기만 한 곳이 있기나 해?”

본의 아니게 직원들의 대화를 듣게 된 나는 웃으며 슬쩍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직원들의 말처럼 요즘 오저당의 위생 상태는 확실히 좋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정원을 지나 사무실로 향하던 나는 한옥 앞에 주차된 차를 보고 서둘러 걸었다.

오늘은 헤드 헌터를 통해서 소개받은 직원을 면접보는 날이었다.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때맞춰서 왔네.”

사무실 입구에 있던 수호는 나를 발견하고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내가 너무 늦었나?”

“아니, 방금 들어갔으니 들어가 봐.”

“아참! 오늘 대구 쪽으로 나가는 소담 소주가 마지막 물량이지?”

“선주문한 곳은 오늘로 끝이고 나머지 10만 병은 언제 또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니 창고에 쌓아두고 기다려봐야지.”

매번 품절을 겪다 보니 그 정도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에 곧장 사무실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황 이사와 함께 4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가르마가 확실하게 나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OGD USA의 페레즈가 떠올랐다.

“이분이 오저당의 사장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서준석이라고 합니다.”

“멀리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나는 자리부터 권해주었다.

그런 뒤에 그가 가져온 이력서를 살펴보았다. 이 자리가 마련되기 전에 이미 확인했기에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력서에 적힌 경력은 제법 화려했다.

대기업에 가까운 물산 회사에서 재무 담당으로 15년 넘게 일한 능력자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많이 있었으나 시간 절약을 위해 곧장 본론으로 들었다.

“저희는 이곳 오저당의 재무를 꼼꼼하게 봐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이곳에서 일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현재 사는 곳에서 제법 걸리더군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오지 않았겠죠. ”

“하하. 그렇네요.”

현재 거주지가 분당이라고 했던가.

사전에 통화했을 때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 아예 이사를 올 생각이라고 들었다.

결혼을 상당히 빨리 한 터라 하나뿐인 아들은 올해 대학교에 갔다고 한다.

그러니 자녀의 교육 문제는 딱히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가 이곳에서 일하면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불필요하게 새어나가는 돈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너무 허리띠를 졸라매면 소화불량이 생긴다는 것은 아시죠?”

오저당의 특징이 재투자가 매우 활발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지출만 조일 생각이라면 우리랑 맞지 않았다.

“해외 지사가 있다는 점과 수출이 활발하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지원하게 된 거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신가요?”

“기존까지는 사장님과 직원 한 분이 경리를 담당하고 계셨다고 들었는데 적어도 경력직 두 명 정도는 필요합니다.”

경리 업무를 돕던 옥주윤 씨까지 합쳐서 네 명으로 팀을 꾸리고 싶다는 이야기다.

전체 직원의 숫자에 비해 재무팀의 비중이 너무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으나 무리한 요청은 아니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최소 400억.

그것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잡은 거다.

해외에 있는 법인까지 합치면 상당히 많은 금액이 오가고 있다.

이곳이 본사인 것도 감안해야 한다.

아직 규모는 중소기업 수준이나 글로벌 기업 형태에 가까워 일반적인 회사보다 돈의 흐름이 훨씬 복잡한 상태다.

문제는 인력을 구하는 일이다.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 서준석은 허락해준다면 자신과 같이 일하던 직원 두 명을 데려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황 이사는 가장 먼저 그들의 직급부터 물어봤다.

“직급이 어떻게 되나요?”

“둘 다 진급을 앞두고 그만두게 돼서 이번에 이직할 때 대리와 과장으로 맞춰주시면 둘 다 만족할 겁니다.”

“서준석 씨는 기존 직급이던 부장으로 그대로 가도 되겠습니까?”

“저는 상관없습니다.”

부장과 이사의 차이는 크다.

이사부터는 임원으로 구분되고,

부장은 중간 관리직으로 봐야 한다.

황 이사는 회사 자체를 흡수한 케이스라 조금 특이했던 거고 이직과 동시에 임원 자리를 주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대신 제 목표는 명확합니다.”

“그게 뭔가요?”

“제 손으로 전에 다니던 곳보다 훨씬 더 크게 회사를 키우는 겁니다.”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아니요. 개인적인 성취감 때문입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그리 복잡하진 않았다. 15년 동안 회사의 부품처럼 살아왔던 것에 대한 환멸이다.

이번에는 주도적인 입장이 되어 새롭게 모든 것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한가지 다행인 점이 있었다.

서준석과 황동선 이사는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합이 잘 맞아야 하기에 잘된 일이었다.

그 정도 되는 스펙을 가지고 강원도 산골로 오겠다는 이가 정말 흔하진 않았기에 그 자리에서 채용을 결정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채용을 맡긴 헤드 헌터도 서준석 외에 대안이 없다고 알려줬기에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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