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것들 (2)
이른 아침에 올라온 추도 게시물.
그 게시물이 만들어낸 여파는 상당했다.
오저당의 너튜브만 하더라도 70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가 있는 채널이다.
그들은 수많은 추모의 댓글을 달았는데 그 숫자가 무려 몇만 개에 달했다.
심지어 RJ는 별스타그램 게시글에 직접 댓글까지 달아줬을 정도였다.
장례식장은 대구가 아니었다.
선생님을 모실 곳은 삼척이었다.
아드님이 대구에 정착한 것은 꽤 오래됐으나 정작 선생님을 기억하시는 분은 삼척에 훨씬 많이 계셨다.
대구에서 사신 날이 30개월이다.
평소에 만나시는 분도 거의 없으셨다.
당연히 장례식장 예약부터 필요한 모든 절차는 오저당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선생님을 모신 구급차와 함께 삼척에 있는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자 황동선 이사와 라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니는 유족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에 미리 마련해둔 곳으로 안내해드렸다.
그리고 황동선 이사는 나와 수호한테 다가와서 한번 얼굴을 살피더니 잠시 쉬고 오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긴 거의 밤을 새웠다고 봐도 될 정도로 정신없던 시간들이었다.
“사장님. 안색이 안 좋으신데 잠시 쉬었다가 오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그보다 다미안을 조금 재워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조금 눈을 붙였는데 이 친구만 운전하느라 한숨도 못 잤거든요.”
이번에 가장 고생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다미안이었다. 수호와 나는 선생님의 병실에서 꼼짝도 안 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다미안의 손을 빌려야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장례식이 금방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회사 이름으로 호텔에 방 몇 개 미리 잡아놨으니 가서 조금 자.”
황동선 이사도 떠밀듯이 다미안을 밀어냈다. 참고로 이번 장례식 기간 동안 오저당은 잠시 문을 닫기로 했다.
술을 관리해야 하는 최소한의 인력을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선생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내가 강요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다.
오히려 삼척에 도착해 보니 직원들끼리 결정해서 내게 통보하다시피 했다.
생산 일정이 조금 밀리는 것은 추가 작업을 해서라도 맞추겠다는 말에 딱히 내가 어떤 말을 하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백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장례식장에 계속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정도 인원이면 정작 조문오신 분들이 앉을 자리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3교대로 조문을 와서 이것저것 도와드릴 예정입니다.”
“3교대면 서른 명이 넘는 숫자인데 그렇게 사람이 많이 필요할까요?”
“사장님. 오저당이 이 지역에 끼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 겁니까. 아마 상상하신 것 이상일 겁니다.”
황 이사는 장담하듯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장례식장의 자리를 하나 더 추가해서 조문객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닐 거라 했지만,
불과 한 시간도 안 돼서 나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홈페이지에 장례식장의 정보를 기재한 탓인지 조문객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중에는 오풍리를 비롯한 인근 마을의 어르신 분들과 이장님도 계셨다.
“멀리서 모시고 오느라 수고 많았다.”
이장님은 나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드려준 뒤에 이모님과 함께 어르신들을 모시고 장례식장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죽음이 일상처럼 느껴진달까.
뭔가 달관한 분들처럼 어르신들은 고인이 되신 선생님의 생전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웃고 떠들었다.
그런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다.
분명 슬퍼해야 하는 일이 맞으나 덤덤하게 임종을 앞두고 이야기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게 더 맞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음식을 더 많이 주문해야 할 것 같아. 이걸로는 이따가 저녁에 터무니없이 부족할 거야.”
이모는 오저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몇 분과 함께 손님들 대접하는 일부터 음식의 양까지 체크하며 관리를 해주셨다.
확실히 이런 경험이 많으신 건지 순식간에 일 처리를 하셨기에 생각보다 빨리 손님을 맞을 준비를 마치셨다.
그 뒤로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셨다.
태백 물산의 심재필 사장님은 물론이고 삼척과 태백에서 오저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은 거의 다 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저녁 무렵에 되자 삼척 시청의 소정우 주무관을 포함해서 여러 공무원이 유명석 시장과 함께 조문을 오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맥주 공장 때문에 조만간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는데 이런 날에 일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조금 그렇네요.”
“장례식이 마무리되면 조만간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유명석 시장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후에 가볍게 식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떠났다. 원래 따로 일정이 있었는데 잠시 들린 거라고 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근조화환을 입구에 세워줬다.
문제는 그 숫자가 장난 아니었다.
직접 오지 못하는 이들은 멀리서나마 근조화환을 보냈는데 더 이상 세워둘 곳이 애매할 정도라 로비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해외에 있는 뫼리스와 카를로스 그리고 슈미트까지 근조화환을 보내왔다.
한국의 장례식에 대해 누군가 조언을 해줬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조문객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는데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에게는 모두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상주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에 하나 같이 내게 와서 애도를 표한다는 것이다.
여러 조문객이 권하는 술을 한두 잔씩 받아 마신 탓에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오자 황동선 이사가 따라 나왔다.
“그것 보십쇼.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사장님은 이미 삼척과 태백에서 지역 유지 그 이상이라니까요.”
“저보다는 선생님 손님이 더 많을걸요.”
“한 번밖에 못 뵈었으나 평소에 주변 분들에게 덕을 많이 쌓으신 것 같네요.”
“그리고 제게 숙제 하나를 주셨죠.”
나는 돌아가시기 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황 이사에게도 전달했다.
한동안 이야기를 듣던 그는 어느 사이에 거뭇해진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공생을 하라는 유지(遺志)신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네요.”
“소규모 양조장의 수출을 돕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분들의 술을 오저당이 유통해주는 것도 조금 이상하죠. 당장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끌루소와 바크모에 전통주를 소개해주는 것이 전부라고 봐도 된다.
더구나 끌루소는 이미 한국의 전통주에 손을 대고 있기에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바크모의 카를로스는 개인적인 부탁 정도는 흔쾌히 들어줄 사람이나 사업적인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아마 그만큼의 댓가를 바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 쪽에 페레즈나 슈미트가 있기에 그들이 유통을 뚫으면 되니 그쪽에 맡기면 될 것 같았다.
“우리가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따로 만드는 것은 어떤가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은 맥주 공장에 들어가는 투자금도 상당히 크고 F&B도 본격적으로··· 아!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황동선 이사는 내게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다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한 차례 손뼉을 치며 나를 바라봤다.
“우리한테는 오저당 F&B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오저당 술 외에도 다른 양조장의 술까지 팔자는 이야기인가요?”
“이미 주점 내에서 다른 회사의 맥주나 소주 같은 것도 파는데 전통주가 더 들어간다고 달라질 것은 없잖아요.”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오저당의 술을 주로 파는 곳이나 다른 술을 팔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지금 당장 선생님이 원하셨던 대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우리가 보유한 매장의 숫자가 아직은 많지 않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많은 양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간에 이뤄야 하는 목표는 아니기에 지금은 그 정도 수준이 적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삼촌에게 연락하진 않았다.
어차피 저녁에 직원들이랑 함께 조문을 올 거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은 F&B 직원들과 함께 삼척까지 내려왔다.
매장 직원은 가게를 닫을 수 없어 같이 못 왔는데도 그 숫자가 거의 열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 사이에 직원이 더 늘어나셨네요.”
“프랜차이즈 진행하는 게 생각보다 인력이 많이 필요하더라. 옥주가 같이 못 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했어.”
“대신 사장님이 오셨으니 충분해요.”
어느덧 오저당 F&B의 매장은 여섯 곳까지 늘어난 상태다. 현재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곳도 세 곳이나 되었다.
모든 매장은 서울 내에 자리를 잡았는데 생각보다 매출이 잘 나오고 있었다.
적어도 적자가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확실히 고객을 상대하는 장사 쪽은 나보다 삼촌이 훨씬 능숙했다.
선생님과 상주에게 인사를 한 뒤.
직원들과 함께 자리를 잡은 삼촌 옆에 앉으니 곧장 일 이야기부터 꺼내셨다.
요즘 맥주 공장 때문에 바빠서 이쪽에 신경을 크게 쓰지 못한 탓이었다.
“이제 슬슬 가맹점도 받아볼 생각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삼촌이 판단하셔서 진행하시면 돼요. 대충 언제쯤 시작하시려고요?”
“글쎄, 아직 진지하게 논의하진 않았는데 적어도 여름쯤에 두어 곳 정도 해보려고.”
이미 어느 정도 예고되어 있던 일이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
“무슨 조건이요?”
“지금 이대로 술값을 받으면 수익성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가맹점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삼촌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술의 가격을 약간이라도 올리자고 제안했다.
내가 그 부분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삼촌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요즘 가게에 들어와서 안주는 가장 저렴한 거를 시키고 술만 마시고 나가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 그렇게 되면 매장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하거든.”
“하긴 안주와 칵테일로 이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인데 문제가 많이 있겠네요.”
“거기다가 이제 맥주까지 판매하게 되면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질 거란 말이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나도 그쯤에서 아까 황 이사와 나눈 이야기를 슬쩍 꺼내기로 했다.
“그러면 다른 양조장의 술도 파는 거는 어때요? 그거는 다른 주점처럼 값을 받으면 어느 정도 커버 가능하겠죠?”
“오저당의 주점에서 다른 양조장의 술을 팔겠다고?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는 거 아니야?”
“사실은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부탁한 게 있어서 그래요.”
그때부터 나는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을 삼촌에게도 전해드렸다. 그제야 삼촌은 내가 왜 이런 말을 꺼낸 건지 이해하셨다.
“우리가 직접 수출하는 것까지 도와주는 거는 조금 그렇고 황 이사님 말대로 주점부터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네.”
“그럼 동의하시는 거죠?”
“돌아가신 분의 소원인데다가 월급쟁이 사장이 무슨 힘이 있겠어.”
“대신 맥주 공장 공사 비용을 마련하는 거 마무리되면 추가 투자 들어갈게요.”
그제야 삼촌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졌다.
안 그래도 여유 자금이 거의 바닥이 났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여섯 개의 매장 대부분에서 흑자가 나왔다고 해도 아직은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더구나 직원들 월급으로 나가는 돈도 적지 않을 테니 꽤 부담되셨던 것 같았다.
그쯤에서 삼촌은 한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면 어느 양조장의 술을 가져오면 되는 거야? 전국의 모든 전통주를 다 우리 매장에서 팔 거는 아니잖아.”
“기준은 간단해요.”
나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봤다.
그런 뒤에 삼촌에게 그 기준이 뭔지 알려드렸다.
“저기 뒤쪽에 조문오신 어르신들 있죠?”
“응. 어디서 오신 분들이야?”
“보국 양조 사장님이랑 해창 막걸리 사장님이에요. 그리고 저쪽에 계신 분이 백련 와인 사장님이고요.”
주변 사람부터 챙기는 게 당연했다.
선생님을 배웅하기 위해 직접 시간 내서 조문오신 분들부터 챙겨드릴 생각이었다.
거기에 화환을 보내주신 곳까지 포함하면 십여 곳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만 말해도 삼촌은 금방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하나씩 하자고요. 대량 생산 여건이 되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돕는 것도 한계가 있겠죠.”
일단 손은 먼저 내밀 생각이다.
하지만 그걸 잡는 것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었다. 만약에 그 기회마저 놓친다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선생님의 부탁이 있었더라도 성장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들까지 내가 멱살 잡고 캐리할 이유는 없었다.
‘선생님, 그 이상은 저도 어려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