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98화 (198/254)

잊지 말아야 할 것들 (1)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때가 떠올라서일까.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근 경색으로 선생님이 쓰러졌던 것이 어느덧 30개월 전이다. 당시의 일만 떠올리면 아직도 떨리는 기분이다.

그때는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누군가 내 눈앞에서 쓰러져서 위급한 상황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옆에 이장님과 수호가 있어 줘서 다행이었지 혼자였으면 우왕좌왕하다가 이송할 시기를 놓쳤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향이가 알려줘 제때 발견한 덕분에 선생님이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고 퇴원하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에 몇 번 찾아뵀을 때도 상당히 건강하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다시 쓰러지셨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위독하신 건가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잖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의사가 말하더라.]

“지금 바로 갈게요.”

[알았어. 하지만 서두르다 사고 내지 말고 조심해서 운전해.]

알겠다고 대답한 뒤.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자 다미안이 무슨 일인지 물었다. 바로 옆에 있었기에 당장 가겠다는 내 말을 들은 탓이었다.

“지금 당장 대구로 가야 하는데 장거리 운전 괜찮겠어요?”

“물론이죠. 그 정도는 가뿐합니다.”

“그러면 30분 후에 출발할 테니 준비해서 만나죠. 참고로 대구에서 며칠 정도 머물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미안은 알겠다는 대답을 한 뒤에 곧장 짐을 챙기러 한옥으로 향했다.

위독하신 상태고 의사도 마음의 준비를 하란 말을 했다지만, 일부러 검은 정장을 챙기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당연히 나도 챙기지 않을 생각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돌아가실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로 했다.

[히잉··· 어쩜 좋아요.]

향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검이는 물론이고 오저당의 요정들까지 침울해하며 활동량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돌아가신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네가 슬퍼하면 요정들이 힘들어해.”

내 말을 들은 향이는 입술을 꽉 깨물며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나는 곧장 수호부터 찾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와 같이 선생님께 벽향주를 빚는 것을 배운 녀석한테는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야 했다.

잠시 후에 벽향주 퍼플 라벨의 숙성을 살피고 있던 수호가 내 전화를 받고 곧장 한옥 앞으로 달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님이 왜?”

“나도 아직 정확하게 듣지 못했어. 시간이 없으니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자.”

“알았어. 금방 준비해서 나올게.”

“20분 후에 출발할 테니 여기로 와.”

“10분이면 충분해.”

수호는 그렇게 말을 한 뒤.

곧장 자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실제로 10분도 안 돼서 커다란 가방 하나를 메고 다시 돌아왔다.

나처럼 녀석도 며칠 정도는 거기서 머물 생각인 것 같았다.

그걸 말릴 수는 없었다.

오저당에는 호세와 쌍둥이는 물론이고 수호 밑에서 일을 배운 직원도 이제는 꽤 많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호세만 하더라도 수호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굳은 표정으로 허머에 올라타서 마을 밖으로 빠져나갈 무렵에 이장님이 우리에게 멈추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우리는 이장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희 지금 대구로 가는 거지?”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방금 전화 받았어. 5분만 기다려 옷만 갈아입고 나올 테니 같이 가자.”

“알겠어요.”

그렇게 이장님까지 포함해서 네 명과 요정 둘은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이미 다미안도 어느 정도 내용을 들어서 그런지 주행 속도가 평소보다 빨랐다.

보통은 내가 먼저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정반대로 더 빨리 갈 수 없겠냐며 재촉하고 싶었다.

하지만 과속을 권유할 수는 없었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달리자 오후 무렵에 대구에서 가장 커다란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곧장 문자로 전달받은 병실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선생님의 아드님인 정석우가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우릴 맞아주었다. 아직 이곳에 계신다는 것은 우리가 늦지 않았다는 의미기도 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선생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진통제 처방 받고 잠시 주무시고 계셔.”

“그런데 왜 중환자실이 아니라 일반 병실에 계신 거예요?”

“의사 소견으로는 이미 치료가 가능한 단계는 지났다는 거지. 그리고 아버지도 연명 치료를 반기지 않고 계셔.”

고통만 더 길어질 뿐이라며 마다했다고 정석우는 한숨을 길게 쉬며 한탄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님의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다. 심장에도 문제가 있고 노환이 겹쳐서 합병증도 왔다고 했다.

“그렇군요. 일단 병실부터 옮기죠.”

“병실은 왜?”

“저희도 계속 여기 머물러 있을 텐데 인원수가 많으니 다인실에 계시면 다른 분에게 폐가 되잖아요.”

뭐 이건 변명에 불과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최대한 정중하게 선생님의 병원비를 오저당에서 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갑자기 오저당을 물려받아서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신 것이 선생님이다. 지금의 오저당이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그 정도는 해드리고 싶었다.

더구나 선생님 댁의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고 병실을 업그레이드하면 치료비까지 우리가 부담하기 편했다.

수호와 이장님까지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어주자 정석우도 그런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었는지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염치없지만, 부탁할게.”

“선생님은 충분히 자격 있으신 분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병실 옮기는 거는 제가 가서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다미안이 원무과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조용히 병실로 들어서니 선생님이 누워계셨는데 몇 개월 전에 뵀을 때보다 확실히 많이 마르신 느낌이었다.

그렇게 잠시 곁을 지켜드리고 있으니 얼마 되지 않아 1인실로 옮겨드리겠다며 병원 사람들이 들어왔다. 우리도 짐을 들고 함께 움직였는데 1인실에 가보니 확실히 좋기는 했다.

“여긴 저희가 있을 테니 석우 형님은 가서 식사라도 하고 오세요.”

이장님은 초췌해진 정석우부터 챙기려 애를 썼다. 내가 봐도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은 것 같았다.

그나마 아내 되시는 분이 새벽까지는 같이 계셨다는데 아직 어린 딸을 챙겨주러 잠시 집에 가셨다고 했다.

“입맛도 없고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멀리 가실 것도 아니잖아요. 이럴 때는 보호자가 잘 먹고 기운 내야 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연락드릴게요.”

다들 한마디씩 거드니 그제야 정석우는 잠시 씻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그날부터 병간호는 계속 이어졌고 삼척으로 돌아간 이장님을 제외한 우리는 옆에서 번갈아 가며 병상을 지켰다.

하지만 병환은 점점 더 깊어지셨다.

하루 중에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눈도 못 뜨고 계셨는데 그만큼 우리의 체력도 서서히 빠져나갔다.

육체적인 부담은 버틸 수 있었으나 그보다 정신적인 부분이 더 힘들었다.

이건 마치 피니쉬 라인이 없는 마라톤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몇 개월씩 병간호를 하는 보호자를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나흘쯤 지날 무렵에는 병원 바로 앞에 방을 잡고 두 명씩 번갈아 가며 병실을 지키기로 했다.

그날도 병실에는 나와 다미안이 함께 자리를 지켰는데 밤이 늦어 새벽에 가까워질 시간에 작은 소리가 들렸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고 있었기에 무슨 소리인지 곧장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도찬아.”

[일어나세요. 선생님 깨어나셨어요!]

향이가 머리카락을 당기며 외치자.

그제야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선생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껏 사경을 헤매고 계셨던 탓에 여기 와서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바쁜 사람이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까 건강하셨어야죠. 저번에 백 살까지 사실 거라고 장담하시더니 이게 뭡니까.”

“우리 아들은?”

힘겹게 옆을 살피던 선생님은 정석우부터 찾았다. 그리고는 곧 1인실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너한테 또 신세 졌구나.”

“그런 말 마세요. 아드님은 잠시 눈을 붙이러 가셨어요.”

“미안한데 불러줄 수 있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뭐랄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깨어나신 것부터 시작해서 평소 상태와 너무 다른 모습이셨다.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니 어느 사이에 다미안이 깨어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전화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에 다급하게 병실을 나갔다. 아무래도 선생님 앞에서 통화할 내용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선생님은 내 손을 잡으며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너와 수호 덕분에 사장님과 내가 평생을 꿈꾸던 것들을 죽기 전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건강하게 퇴원하셔서 수호 녀석한테 지방무형문화재 전수해주셔야죠.

“미안하지만, 그건 조금 힘들 것 같구나.”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계시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늦기 전에 빨리 아드님이 오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때 다미안이 들어와 손가락 다섯 개를 펼치며 입 모양으로 ‘5분’이라 말해줬다.

병원 정문 앞에 잡은 숙소라 뛰어오면 그 정도 걸릴 거란 의미였다.

“그래도 여한은 없어. 토끼 같은 손녀와 2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벽향주의 명맥도 너희를 통해 이을 수 있었잖아.”

“제가 장담하는데 세계 어딜 가나 선생님의 술을 마실 수 있게 할 겁니다.”

“그것도 좋지. 하지만 혼자 걷는 길보다 같이 가는 게 더 보람찰 거다.”

종종 뒤도 돌아보란 의미였다.

꽤 긴 시간 벽향주를 빚으며 여러 양조장과 쌓은 친분이 깊으셨는데 그런 이들도 챙겨달라는 당부이기도 했다.

벽향주로 세계 최고가 되기보다는 한국의 전통주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셨다.

종종 찾아뵐 때마다 하시던 이야기라 어떤 의미인지는 곧장 알 수 있었다.

“그게 내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이야. 들어줄 수 있겠니?”

“물론이죠.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내 방에 있는 서랍을 열면 벽향주 제조법 등을 정리해놓은 게 있으니 가져가거라. 너희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아직 배울 게 많으니 그런 말 마세요.”

한동안 대화를 하고 있는 중에 문이 벌컥 열리며 수호와 아드님이 동시에 뛰어 들어왔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것을 보면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았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아내 되시는 분과 작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손녀가 눈을 비비며 뒤따라 들어왔다. 혹시 모를 일이기에 억지로 깨워서 온 모습이었다.

그쯤에 우리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지금은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시간을 주어야 했다. 그런 우리 모습을 본 당직 간호사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문 앞에서 안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10분쯤 시간이 지났을까.

병실 안에서 아버지를 외치는 정석우의 외침과 울음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제야 간호사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고 이내 몇 명이 더 들어갔으나 선생님을 살려내는 것은 실패했다.

“제길···!”

그날 나는 수호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하지만 나 역시 녀석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은 다미안이 전부였다. 그 뒤에 해가 떠오를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멍하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나는 이 사실을 삼촌과 라니에게 전화해서 알려줬다.

라니는 새벽에 전화를 받았음에도 뭔가 예감이라도 한 듯이 차분했다.

“조금 전에 돌아가셨어. 그러니···.”

[여긴 걱정하지 마. 장례는 어디서 치루기로 하셨어?]

“아직 정해지진 않았어. 하지만 삼척에서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 같아.”

통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오저당의 너튜브와 별스타그램 같은 SNS와 홈페이지에 하나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하얀 국화 이미지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벽향주 지방무형문화재 정춘용 보유자 향년 78세의 연세로 별세. 선생님께서 전수해주신 모든 것을 잊지 않고 계승하겠습니다. -오저당 전 직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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