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03화 (203/254)

OGD USA (2)

미국 시장이 온전히 OGD USA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법무법인 해국과 관련 계약서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검토했고 어떤 문제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심양도 쉽게 포기하진 않았다.

그들은 미국에서 귀국한 나를 만나고 싶다며 몇 차례나 오저당까지 찾아와 사람을 귀찮게 만들었다.

“이제 더는 안 오겠지?”

수호는 신물이 난다며 고개 저었다.

생각보다 심양의 직원들은 끈질겼다.

그 사람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 매몰차게 내쫓기도 애매해서 우리는 매번 도망 다니느라 바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 위에서 계속 압력을 넣으니 그러는 거잖아.”

“정작 그쪽 임원은 와보지도 않네. 고작 마 팀장이 직접 온 게 전부잖아.”

“견적 보니 안 될 것 같다고 느낀 거겠지. 그렇다고 손 놓기도 애매하니 직원들만 고생하는 거고.”

안 봐도 그림이 그려졌다.

수호도 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며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슈미트는 곧장 출근하는 거야?”

“아니, 당장 옮기는 것은 조금 그렇지. 사직서는 냈다고 하니 인수인계 절차를 끝내고 한 달 후부터 일할 거야.”

“원래 그렇게 오래 걸리나?”

“이번 기회에 조금 쉬라고 했어. 이직할 때 아니면 언제 그렇게 쉬겠어.”

시간이 촉박한 일도 아니었다.

증류소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고,

심양의 문제도 페레즈가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술이 하루 이틀 만에 운송되는 게 아니라 20일 이상 걸리는 터라 계약이 끝날 무렵에 옮겨지는 것들은 애매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은 계약 기간이 남았어도 심양에 술을 주지 않는 것이다.

심양의 입장도 우리와 같았다.

오저당에서 물량을 받고 유통이 안 된 상태로 OGD USA가 수입을 시작하면 중간에 화물이 붕 뜨게 될 수 있다.

그걸 다시 우리가 회수하는 방법도 있으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거라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심양도 그걸 알기에 추가 발주는 넣지 않고 미국 내에서 보유하고 있던 남은 물량을 KR 마트 같은 곳에 밀어 넣었다.

“일정이 꽤 꼬이겠네.”

“어쩔 수 없어. 잠시 품절이 생겨도 페레즈가 계약 종료와 동시에 화물을 띄우면 한 달 이내에 정리할 수 있다니 믿고 기다려야지.”

“뭐가 이리 복잡하냐. 아무래도 술 빚는 게 훨씬 마음 편한 것 같아.”

수호는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하라며 손을 휘저었다. 이사 자리에 앉아 있으나 녀석은 이런 쪽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반면에 술에 대해서는 이제 나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매일 술을 빚는다고 실력이 올라가진 않는다. 수호는 그만큼 책도 많이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많이 시도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그러고 있으니 당연히 다른 담당자들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분위기는 도움이 됐다.

소담의 경우에는 작년에 처음 빚었던 술과 지금을 비교하면 차이가 꽤 있었다.

숙련도와 이해도가 높아진 탓에 맛이 더 좋아졌는데 요정들의 반응만 봐도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덜컹! 드드드드!

한동안 이야기하며 걷고 있자,

이제 슬슬 중장비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오풍리는 매일 공사 소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면 사방에서 땅을 헤집어 단지를 만들고 있는 게 보였다.

주류 특화 단지는 유명석 시장의 주도하에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연화 건설은 포함되지 않았다.

회사 소재지가 태백인 탓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삼척시는 공사를 가능하면 삼척에 소재한 회사에 맡기려고 했다.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공장 크기가 상당히 넓을 것 같아.”

“막상 지으면 그렇게 안 느껴질걸. 저기에 주차장이랑 창고 같은 것도 들어가야 하니 그리 크진 않을 거야.”

“그런데 우리 정말 매달 3천만 리터씩 팔 수 있을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500ml 맥주 뚱캔 기준으로 무려 6천만 캔을 팔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화이트 라벨 생산량의 60배 가까이 된다.

“처음부터 잘 나가진 않겠지. 그러니 네가 열심히 벽향주 빚어서 팔아줘야 해.”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흐르냐?”

“당분간 적자가 나와도 다른 제품이 버텨준다면 결국에는 자리를 잡을 거란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오히려 이걸로도 부족할까 싶어서 토지를 추가로 알아보고 있었다.

지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느낀 점이 뭘 하더라도 땅이 있어야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풍리 쪽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다. 지형적인 여건상 대형 공장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삼척 지역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조금 더 인력 확보가 수월하고 물류가 원활한 곳에 세우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다만, 한 가지 염려가 되는 점이 있다면 수원 확보인데 물의 요정이 있는 땅이 어디 있을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에는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땅을 보는 수밖에 없지.’

당장 땅을 사서 그 자리에 뭘 세우려는 것은 아니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천천히 알아봐도 되는 일이라 시간을 두고 다닐 생각이었다.

그나마 향이가 있어서 물의 요정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아직 물의 요정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몰라도 여기 근처에 있는 물의 요정은 용소 바닥에 있다는데 거길 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그것도 덕월 계곡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고 알려진 용소라 앞으로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았다.

“그래도 동남아 지역에서 ASAP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다행이야.”

“생산량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아직은 문제없지.”

ASAP에 들어가는 벽향주와 소담의 생산량이 제법 되었기에 아직은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지금은 설비에서 생산하는 속도가 머지않아 소비량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더 컸다.

“설비 업그레이드는 언제 되는 거야?”

“공장장님이랑 논의 중인데 적어도 더위가 찾아오기 전에 끝내려고.”

“조금이라도 개선해야 할 곳이 있으면 언제든 건의해.”

“내가 언제 그런 거 망설이는 거 봤어? 그것보다는 맥주 공장이 지어지면 누구한테 맡길 생각이야?”

꽤 민감한 질문이었다.

규모와 투자 금액을 고려하면 생산직 중에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는 자리다.

당연히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

“이사진 회의에서 나중에 정해야 하겠지만, 벽향주 화이트 라벨을 맡고 있는 조택훈 공장장님을 생각 중이야.”

“그러면 화이트 라벨은 어떻게 하려고? 설마 정영재 대리에게 맡기려고?”

“아니, 따로 사람을 뽑아야지.”

정영재 대리는 아직 그 정도의 깜냥이 되지 않았다. 오저당에 함께 들어온 윤가람 과장과는 캐릭터가 달랐다.

맡은 일은 차질 없이 잘하는 편이나 하나의 파트를 맡기기에는 불안하달까.

멘탈과 적극성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부족한 편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차분하게 해결하기보다는 패닉에 빠져서 해결하는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그렇다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아니라 다른 직원보다 진급이 뒤처졌다.

“하긴 오저당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맥주 공장을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 맡기면 그것도 조금 애매하긴 하다.”

내가 조택훈 공장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유는 직원들의 사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외부에서 공장장을 데려와 생산직의 이인자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조택훈 공장장님이 일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화이트 라벨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입증했다.

나는 오히려 이번이 기회라 여겼다.

오저당의 설비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조택훈 공장장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맥주 공장을 맡기고 이사 자리까지 올릴 생각이었다.

“잘됐네.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공장장님이 이사 자리에 어울리긴 했어.”

“조금 늦기는 했지.”

“그래도 공장장님이 이사진으로 들어오면 일이 조금 덜어질 것 같아서 다행이야.”

생산 라인에 사람이 많아질수록,

수호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졌다.

그나마 퍼플 라벨은 빚어 놓은 이후에 관리 위주로 돌아가니 가능한 일이지 만약에 다른 술이었다면 불가능했다.

그건 사무직을 총괄하는 황동선 이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무직의 숫자는 생산직에 비해 적으나 업무량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까지 늘어났다.

요즘 대학교 졸업생이 꽤 들어와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서포트를 해주는 쪽에서도 과부하가 걸렸을 거다.

한동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마을을 걷자 어르신들이 반겨주었다.

“이리 와서 식혜라도 한잔해.”

“혹시라도 김치나 반찬 부족하면 언제든 우리 집으로 와.”

“잠깐만 기다려. 두릅나물 줄 테니 가져가서 먹어.”

마을에서 3년쯤 사니 이제는 어르신들이 손자처럼 우리를 대해주셨다.

계절마다 한 차례씩 이런저런 핑계로 마을에서 잔치를 열어드린 덕분일까.

“감사합니다. 지금은 일해야 해서 돌아가는 길에 가져갈게요.”

적당하게 사양하며 마을 초입에 있는 화이트 라벨 공장으로 가자 낯선 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와 그 앞에서 멈췄다.

외부에서 온 손님인 것 같기에 우리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다가갔다.

“오저당에 찾아오신 건가요?”

“네, 여기가 아닌가요?”

“맞긴 한데 양조장은 저 안쪽에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주도찬 사장님 맞으시나요?”

차에서 내린 남자는 내 얼굴을 알아봤는데 누군지 물으니 얼마 전에 OGD USA에 입사한 홍진구라고 밝혔다.

“아! 이야기는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사직서 처리하고 짐을 챙기려고 들어온 김에 본사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인사를 올 필요는 없었지만,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었다.

홍진구가 유통과 경영에 뜻을 두고 상당히 열심히 일하기는 했으나 증류소를 맡는 것은 생각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오저당과 현지에 있는 여러 증류소를 견학한 뒤에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살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수호는 흡족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네요.”

오저당의 핵심은 다른 곳이 아닌 오풍리에서 빚는 벽향주에 있다고 여기는 녀석답게 자부심이 상당했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하는 바였다.

지금 당장은 테킬라가 벽향주의 판매량을 압도하고 있으나 오저당의 중심축이 전통주라는 것은 변함없었다.

“이미 파사데나에 실력 좋은 디스틸러가 일하고 있으니 술을 빚는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슈미트 지사장님한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솔직히 엄두가 나질 않았거든요.”

“저도 처음에 여길 물려받았을 때 그랬었는데 결국에는 적응하더군요. 버번이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은 충분히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 역시 그랬다는 말을 하자,

홍진구는 빤히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솔직한 현재 심정을 털어놨다.

“제가 상상하던 오저당의 사장님과는 조금 다르신 것 같습니다.”

“상상하시던 것이 머리에 뿔이 달리거나 악마 같은 뭐 그런 쪽이었나요?”

“하하, 절대 그런 쪽은 아니었습니다.

홍진구는 웃으며 자신이 상상했던 나의 모습에 대해 말해주었다. 카리스마 넘치고 저돌적인 그런 이미지였다나.

실제의 나와는 거리가 조금 멀었다.

하지만 심양과의 최근 일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파사데나는 언제쯤 가실 건가요?”

“3일 뒤에 출국해서 곧장 증류소에 출근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보름이나 한 달 정도 쉬어도 된다고 슈미트에게 말했는데 못 들으셨나요?”

“제게는 새로운 시작이자 도전이라 설레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군요.”

“어! 그날 너도··· 아니 사장님도 미국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수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국한 지 3주도 지나지 않았으나 다시 한번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며칠 전에 나는 케이티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내게 전한 말은 파사데나 매시빌 복원에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다는 것과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걸 확인해야만 했다.

“맞아. 이번에 가면 케이티가 버번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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