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15화 (215/254)

회생 (1)

출장 일정은 곧장 잡혔다.

갑작스러운 것은 전혀 아니었다.

숙성 과정은 매주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예상했던 날짜보다 열흘 정도 차이가 생겼을 뿐이었다.

숙성의 완료는 케이티가 결정한다.

아마 지금쯤이면 버번을 당장 제품으로 내놓아도 될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출장은 다미안 외에도 쌍둥이가 동행했다.

첫 제품이 나오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 생생한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야 했다.

당장 벽향주와 돈 레오넬만 하더라도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성장했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규모가 되었는데 그런 탓에 초창기에 찍은 영상은 상당히 귀한 취급을 받았다.

당시의 모습은 이제 영상으로만 남아있을 정도였다.

파사데나 버번도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오저당이 발전하는 것처럼 직원들의 성장도 요즘 눈에 띌 정도였다.

쌍둥이만 하더라도 처음 해외 촬영을 하러 멕시코에 갔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비행기 타는 것만으로도 흥분한 표정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준까지 도달했다. 분기마다 최소 한 번 이상 해외 출장을 가니 당연한 건가.

“파사데나 일정이 끝나면 LA로 간다고?”

“네, F&B LA 지점 촬영이 있어서요.”

“하긴 거기도 한 번쯤 찍어야지. 그런데 F&B의 해외 직영점까지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지 않아?”

“괜찮아요. 채널 관리랑 댓글 모니터는 다른 직원이 해주잖아요. 더구나 바쁠 때는 프리랜서도 고용하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미디어 부서는 다섯 명으로 이뤄져 있다.

우주와 유성 아래에 프로듀서 역할로 경력직 한 명이 붙었고 신입 두 명이 댓글 등을 관리하며 서포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역할은 둘 중에 친화력이 뛰어난 유성이 차지했다.

내가 누굴 지정한 것이 아니라 둘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예전에 비해 자신만의 세계에 살던 우주의 증상은 조금 나아졌으나 아직 직원과 적극적인 의사소통은 어려웠다.

그러니 스스로 형인 유성에게 양보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주의 능력은 대단하긴 했다.

매번 영상을 찍을 때마다 기획 능력이 발휘된 덕분에 요즘은 기본적으로 너튜브 조회수가 수십만 회에 달할 정도였다.

“언제든 촬영에 필요한 인력이나 장비가 더 필요하면 말해.”

지원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오졌다, 오저당> 채널의 구독자 수는 마침내 백만 명을 돌파했다.

조만간 골드 버튼이 온다고 했는데 주류 회사로서는 독보적인 위치였다.

종합 주류 회사 1위와 2위인 회사도 너튜브 구독자는 10만 명 내외이다.

대기업에서 큰 자본을 들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쌍둥이가 해낸 것이다.

‘그러니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겠지.’

이게 최근 들어 가장 고민이었다.

슬슬 오저당의 존재가 위협이 된다고 느낀 건지 아니면 능력을 본 건지 사람을 빼가려는 시도가 자주 벌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이직한 케이스도 있었다.

지난해 연말에 세 명이나 떠났다.

직급과 연봉도 올려주는 데다가 서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과연 거기서 만족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오저당의 기본적인 연봉은 결코 낮지 않고 성과급도 상당한 편이다.

이런저런 혜택을 모두 합치면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은 연봉을 주는 셈이다.

그러니 쌍둥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옮겨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두 명의 형제는 자신들이 일궈낸 오저당 너튜브 채널에 대한 애정이 생각 이상으로 상당한 편이었다.

거기에 지난 3년 이상의 세월이 담겨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혹시 시네마 카메라도 가능할까요?”

“필요하다면 뭐든지 상관없어.”

“그게··· 가격이 천만 원 단위가 넘어가는 수준이라서요. 하지만 화질은 확실히 다를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영화 촬영도 가능한 수준의 물건이었다. 유성은 그게 왜 필요한 건지 설명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너튜브로 나오는 수익도 상당하다.

그걸 고려하면 천만 원 정도는 충분히 써도 된다.

“서준석 부장님에게 말해 놓을 테니 결의서 올려.”

흔쾌하게 허락을 해주자 유성은 물론이고 우주도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가 탄 비행기는 루이빌에 도착했고 밖으로 나오자 페레즈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파사데나 증류소는 OGD USA 소속이니 당연히 슈미트와 페레즈도 와야 했다.

지금껏 유통으로 올린 수익 상당수가 버번 증류소에 들어갔으니 회수하는 것에 상당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증류소만 짓는다고 끝이 아니다.

버번은 새 오크통을 써야 하기에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상당히 큰 편이었다.

당연히 용도를 다한 오크통을 리사이클 돌리면 어느 정도 회수는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데 팔 이유가 없다.

기존에 구상했던 대로 오크통을 멕시코로 보낸 뒤에 일정 기간 사용하고 다시 한국으로 보내는 루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미트가 안 보이네요? 같이 온 거 아닌가요?”

“아··· 저희는 일정이 변경돼서 어제저녁에 왔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이동하죠.”

우리는 곧장 페레즈가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 건장한 남자 다섯에 짐도 상당히 많았으나 차가 커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루이빌에서 출발한 차는 한참을 달려서 렉싱턴에 도달했다.

파사데나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증류소를 배회하는 사람이었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그들은 증류소 밖을 거닐며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아직 버번을 시장에 내놓기도 전인데 증류소를 찾아오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요정 동상과 벽화로 이뤄진 테마파크 같은 아웃테리어 덕분이었다.

그리고 몇 명의 아이들의 손에는 오저당에서 판촉물로 만든 굿즈 몇 가지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대부분 향이와 판초의 디자인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흐뭇해지는 풍경이었다.

아이들이 향이를 좋아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먼 미래에 우리 고객이 될 아이들이란 게 포인트다.

10년쯤 뒤면 10대 중반이 넘어갈 아이들에게 미리 우리 브랜드를 알린다는 것은 상당히 큰 매리트라고 생각되었다.

패션은 유행을 타는 반면에 주류는 오래될수록 더 알아주는 업종이잖아.

“파사데나 샵에서 방문객 대상으로 오저당 굿즈를 제법 판매하나 봅니다?”

“최근에 유의미할 정도의 수준까진 올라온 것으로 보입니다.”

“잘됐네요.”

“혹시 입장료 같은 것은 염두에 두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다른 증류소도 투어를 하면 돈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페레즈는 하루라도 빨리 파사데나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기를 바랐다.

이번에 버번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당장 대박을 바라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작 6개월 숙성만으로는 8년 정도를 숙성한 버번 삼대장과 비벼볼 생각을 하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요정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늘 요정이 나와줘야 할 텐데.’

아직 파사데나 증류소에는 요정이 없는 상황이다. 향이가 직접 1개월 동안 숙성했을 때도 요정은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6개월이란 시간 동안 더 숙성해야만 했다.

설마, 그걸로도 부족하진 않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오늘은 나올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향이와 검이의 반응만 봐도 대충 감이 왔기 때문이다.

[킁킁! 아~ 향이 너무 좋아요. 잘하면 돈 레오넬이나 벽향주 퍼플 라벨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겠네요.]

6개월 동안 숙성한 탓일까.

향이는 버번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서인지 검이와 함께 쏜살같이 증류소 내부로 날아갔다.

그걸 말릴 생각은 없었다.

고작 몇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향이의 손길이 닿을수록 지금 빚고 있는 버번의 맛이 더 좋아질 것이다.

“저희는 증류소 주변 스케치부터 따놓겠습니다.”

우주와 유성은 각각 카메라를 들고 증류소 외부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완공된 이후에 한 차례 촬영하긴 했으나 사람들이 있으니 그때와는 분위기가 제법 많이 달라 보이기는 했다.

참고로 증류소는 그때보다 더 넓어졌다.

기존에 사들인 땅 외에도 인접한 곳까지 15헥타르 정도 더 사들여 지금은 30헥타르 정도까지 넓어진 상태다.

“파사데나 증류소 인근의 토지를 추가로 사들이는 거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다음 달 내에 계약을 끝낼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어느 정도입니까?”

“에이커당 10만 달러쯤 될 것 같습니다.”

증류소 위치가 렉싱턴에서도 조금 외진 곳에 있으나 도심에서 멀지 않기에 가격은 생각보다 조금 나오는 편이었다.

평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80달러쯤 되려나.

미국의 깡시골이었다면 에이커당 삼천 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OGD USA에서 부담을 느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대신 그만큼의 혜택도 주었다.

올해는 본사로 보내는 배당금을 전혀 책정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버번 증류소에 들어간 투자금이 상당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차피 한국에서도 크게 돈이 들어갈 곳이 당장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맥주 공장을 빚으며 소비된 예산은 지난해에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

그 덕분에 지금은 다시 사내 유보금이 무서운 속도로 쌓이고 있었다.

이대로면 1년 후에 맥주 공장 수준의 생산 설비를 하나 더 세워도 될 정도다.

하지만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이건 판매량의 추세를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였다.

“오셨습니까? 직원들을 소개해드릴 테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때 홍진구와 슈미트가 나왔다.

우리는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파사데나에서 일하는 직원의 숫자는 그사이에 꽤 많이 늘어 있었다.

대략 십여 명 정도쯤 되려나.

케이티와 제품 개발 부서까지 합친 숫자였으나 크게 부족하진 않아 보였다.

아직 본격적으로 출하하는 제품이 없기에 계속 술만 빚으면 된다.

이번에 병입하는 6개월 숙성한 버번위스키도 맛보기로 제품을 내놓는 거라 수량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나머지는 추가로 18개월쯤 더 숙성해서 최소 2년 정도로 맞출 생각이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파사데나가 최고의 버번이 될 수 있도록 미스터 홍과 케이티를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직원들을 향한 내 인사는 짧았다.

하지만 그렇게 밋밋하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이들에게 한 가지의 약속을 해주었다.

그건 바로 인센티브였다.

내가 정한 목표는 그리 높진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 사용되는 인센티브는 본사 차원에서 넉넉하게 지급할 생각이라고 하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 말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파사데나가 뒤늦게 시작하는 것이나 돈 레오넬과 벽향주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밀어줄 거란 의미였다.

내가 할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그 뒤부터는 슈미트의 몫이었다.

나는 그에게 자리를 양보한 뒤에 곧장 홍진구 사무실의 금고부터 열었다.

[역시 아직이네요.]

혹시나 싶어서 다급하게 상자부터 열었으나 아직 그 안에 들어있는 요정의 모습은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향이는 물론이고 나도 실망하진 않았다.

아직 타이밍이 되지 않은 거겠지.

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고 홍진구와 슈미트 그리고 페레즈와 함께 간단하게 회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병입하는 설비가 가동하자 다들 현장으로 나갔는데 뒤따라 나가려던 나는 향이의 만류로 잠시 멈추어 섰다.

[잠시만요!]

녀석의 시선은 상자 속에 누워있는 요정에게 꽂혀 있었다. 그곳에서는 이미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쩌어억!

마치 알에서 깨어나듯 요정을 감싸고 있던 돌덩이 같은 껍질이 서서히 깨져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속에서 요정 하나가 나타났다.

그 녀석의 외모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얀 모자와 박차가 달린 부츠 그리고 옆구리에는 권총이 꽂혀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카우보이의 모습과 상당히 닮았다.

마치 오랜 시간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처럼 기지개를 켜고 날개를 천천히 파닥이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향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돌처럼 굳어있던 요정의 회생이었다.

[다행이에요, 다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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