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29화 (229/254)

더도 덜도 말고 5년 (4)

중국 진출은 순조로웠다.

궈상 그룹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제안에 세부적인 내용은 빠져 있었기에 당연히 조율이 필요했다.

궈상 그룹은 계약을 위해 이사 한 명과 직원 몇 명을 오저당으로 보내왔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명확했다.

우리가 제시한 연간 500억의 거래를 가능한 인기 제품으로 채우는 것이다.

오저당의 대표 제품인 벽향주도 당연히 거기에 포함되었다.

문제는 굿밤과 ASAP였다.

아직 궈상 그룹은 중국 내에서 두 제품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건 RJ의 광고 하나로 손쉽게 해결되었다.

RJ가 직접 미팅 자리에 나와서 곧 광고 촬영을 하기로 계약했다는 말을 직접 해주니 그들로서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동남아에서 보내온 ASAP의 판매 자료도 꽤 효과를 보였다.

“휴우··· 이번 계약은 쉽지 않았어.”

오저당을 떠나는 궈상 그룹의 실무진을 보며 나는 모처럼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수호도 나와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엄청 꼼꼼하더라. 법무법인 해국 분들 아니었으면 끌려다녔을 것 같아.”

“그래도 너 은근히 딜 잘하던데.”

“나도 이제 오저당 이사직만 4년차야. 사람이라면 발전을 해야지.”

수호는 별거 아닌 듯이 말했지만,

이번 협상에서 녀석의 활약이 상당했다.

우리 쪽에서 내놓은 비장의 무기는 오저당 역사상 가장 오래 숙성시킨 벽향주 옐로우 라벨이었다.

3년 동안 숙성한 제품이 이제 곧 출시를 앞두고 있었고 궈상 그룹의 실무진은 그걸 맛보더니 완전히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옐로우 라벨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을 조건으로 꽤 많은 것을 양보했다.

그들에게도 충분히 이유가 있었다.

오저당에서 3년 숙성한 거면 거의 30년 이상의 숙성과 같은 효과를 보이는데 그 정도 수준의 술을 찾기는 어려웠다.

중국의 백주도 20년에서 30년쯤 숙성해서 제법 비싸게 파는 술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신뢰다.

짝퉁 술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중국에서는 명품 술이라 불리는 브랜드의 공병을 사다가 짝퉁 술을 채워서 파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벌써 감저의 빈 병을 이용해서 짝퉁을 만들어 파는 이들이 하나둘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대규모 카피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일도 있겠지.

괜히 오저당이 직접 중국에 들어가지 않는 게 아니다. 외국 회사가 아무리 애쓰고 발악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다 카피하면서 정작 그걸 지적하면 무시한다며 화를 내는 게 우스운 일이지.’

이 문제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개싸움에 직접 끼어들 필요가 없다.

독점을 가진 궈상 그룹이 사전에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고소 같은 것 정도는 해줘야지.

괜히 1년 계약을 맺은 게 아니다.

만약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거나 우릴 기만하는 행동을 한다면 독점을 풀고 모든 유통 회사에 뿌릴 생각이다.

“그런데 정말 옐로우 라벨을 15만 원이나 받아도 되는 걸까?”

“그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고 아직 확정은 아니라고 했잖아.”

“얼마쯤 생각하고 있는데? 솔직하게 말해봐.”

“적어도 12만 원은 받아야지.”

화이트 라벨과 1년 숙성한 퍼플 라벨은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다.

기존에 우리가 그렇게 가격을 책정한 이유는 국내외 시장에서 오저당의 점유율을 빠르게 올리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그게 통했다고 봐야 한다.

지금껏 벽향주는 가성비 술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제는 제대로 값을 받아도 된다.

3년 이상 숙성되는 옐로우 라벨부터는 고급 라인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모든 양을 풀진 않을 거다.

5년 이상 숙성한 제품도 내놓으려면 일부는 남겨놔야 한다. 앞으로 2년 더 숙성할 그 제품이 최종 목표에 가까웠다.

프리미엄 벽향주 ‘블랙 라벨’.

오저당에서 5년을 숙성할 경우.

다른 증류소에서 50년 숙성하는 것과 거의 엇비슷한 수준의 술이 나온다.

그 정도 퀄리티의 위스키는 최소 천만 원에서 거의 억 단위로 판매된다.

물론, 그렇게 받을 수는 없다.

그 가격에는 50년이란 시간에 대한 보상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숙성 기간을 공개할 수 없고 오롯이 술의 퀄리티만 가지고 승부를 봐야 하는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품평회 등에서 퀄리티만 인정받는다면 최소 수백만 원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때부터 오저당은 한 병을 팔 때마다 남기는 수익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냐고?

이미 그 맛을 보았기 때문이지.

오저당 초창기 당시에 빚어놨던 벽향주가 어느덧 5년 가까이 숙성되었다.

최근에 그걸 꺼내서 마셔봤는데···.

정말이지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런 맛이랄까.

애초에 내가 50년쯤 숙성한 엄청나게 비싼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다.

비교할 대상이 전혀 없었다.

오죽하면 투자 개념으로 비싸더라도 몇 개의 술을 사볼까도 고민 중이었다.

다른 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테이스팅해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지금껏 마신 술 중에 가장 비쌌던 게 600만 원짜리였던가.’

그것도 엄청 고민하다가 산 것이었다.

OGD 그룹이 내 소유인 것은 맞는데 정작 주머니에 들어와 있는 돈이 없으니 재벌 행세를 하고 싶어도 어려웠다.

슬쩍 그 이야기를 꺼내자 수호는 군침을 삼켰다. 거의 파블로프의 강아지가 보인 조건 반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수호도 블랙 라벨에 거는 기대가 상당히 컸다.

“아···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안 그래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미친 척하고 맛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다고.”

오저당에는 비밀의 공간이 있다.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이는 수호와 나 그리고 호세 정도가 유일했다.

그 공간 안에는 예전에 숙성 테스트를 위해 빚었던 현재 오저당에서 가장 오래 숙성 중인 벽향주가 보관되어 있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수십억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수호가 말한 대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마시는 직원이 있을지 모르기에 따로 관리해야만 했다.

“아는 맛이 더 무서운 거지.”

“우리 내일모레 창립기념일이잖아. 그때 기념 삼아서 한잔하는 거는 어때?”

“기왕에 마시는 거 한 병씩 까자.”

“뭐?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5주년이면 기념할만하잖아. 근속 5년 차가 되는 직원들도 테스트 용도로 빚어놨던 블랙 라벨 한 병씩 주자고.”

그래봐야 몇 병 안 나간다.

올해는 나와 수호 그리고 이모님이 전부고 내년쯤은 되어야 라니와 쌍둥이를 비롯해 십여 명이 그 조건에 맞는다.

그 이후부터는 직원의 숫자가 제법 많아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숙성을 끝내는 블랙 라벨의 숫자도 비례한다.

수호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벌써 10년 차를 기대했다.

“그러면 근속 10년 차에는 뭘 주려고?”

“글쎄다. 10주년에 맞춰서 줄 수 있을 벽향주가 남아 있을까.”

“하긴 그렇기는 하겠다.”

그때쯤이면 아마 8년 숙성한 벽향주 정도가 최선일 것 같았다. 초창기에 빚어서 보관해 놓은 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3년 전쯤부터 퍼플 라벨과 별개로 숙성 중인 게 꽤 많으나 그마저도 옐로우 라벨로 대부분 빠질 것이다.

이게 증류소와 양조장의 딜레마다.

가지고 있는 원액을 어떤 제품으로 얼마나 숙성해서 내놓냐에 따라 모든 것들이 달라지게 된다.

가진 술이 한정적이니 어쩔 수 없다.

옐로우 라벨로 많이 팔수록 블랙 라벨의 수량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퍼플에서 블랙으로 뛰어넘기도 애매했다.

먼 훗날에 블랙 라벨이 안착하기 전까지는 고급화의 입문 단계인 옐로우 라벨이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몇만 원 대의 제품에서 곧장 수백만 원대의 고가로 점프할 수는 없다.

“처음에 벽향주를 빚을 때는 언제 5년 동안 숙성하나 싶었는데 신기하네.”

“계속 일하다 보면 네가 바라던 10년 숙성한 벽향주도 언젠가 맛볼 수 있겠지.”

“10년이 문제겠어? 나는 오저당에서 40년 숙성한 벽향주를 빚는 게 목표야.”

오저당에 뼈를 묻을 기세였다.

수호도 올해 오풍리에 집을 짓기로 했다.

그 덕분에 현재 사는 집의 좌측 편에 녀석의 집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열심히 일해라. 나는 목표를 이루면 파이어족이 되련다.”

“파이어족? 조기 은퇴하려고?”

“언젠가는 쉬어야지. 계속 이렇게 일하면 은퇴고 뭐고 그전에 과로사 확정이야.”

“그래서 목표가 뭔데?”

내 목표는 한결같았다.

국내 최고의 주류 회사와 글로벌 순위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주류 회사다.

꿈은 크게 꿀수록 좋다지만, 글로벌 1위까지는 엄두가 안 났다.

지난해 글로벌 1위 업체인 오션의 매출은 무려 30조를 넘어섰다. 국내 1위 업체와 비교해도 15배 정도의 격차다.

도무지 거기까진 자신이 없었다.

“하하! 네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는 것도 있다니 놀랍네.”

“인간적으로 30조를 어떻게 찍냐.”

“그런데 오션도 1997년에 설립된 회사잖아.”

“우리처럼 아예 바닥에서 시작한 게 아니잖아. 기존부터 잘 나가던 맥주 회사가 합병한 회사에 컨소시엄에서 15억 달러나 투자해서 만들어진 공룡이야.”

그걸로 투자가 끝난 것도 아니다.

오션은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 합병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0년부터 오션은 매년 한 곳 이상의 주류 브랜드를 사고팔았다.

만드는 술도 엄청 다양한 편이다.

위스키와 보드카 그리고 테킬라 같은 메인 주류 외에도 터키의 라키와 리큐어 그리고 중국의 백주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욕심이 아예 없진 않았다.

내가 바라는 OGD의 최종 목표와 가장 흡사한 것은 국내 1위인 로하트가 아닌 글로벌 1위인 오션이었다.

국내 1위로 만족할 거였다면 미국과 스코틀랜드에 투자할 돈으로 희석식 소주를 만들어서 팔았을 것이다.

그게 어느 정도 성공했다면 지금보다 매출 순위도 더 높았겠지.

“친구여! 꿈을 크게 가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어.”

수호는 덩치 큰 근육질의 몸뚱아리로 어울리지도 않는 응원을 해줬다.

이게 호세가 아이를 돌볼 때마다 곁에서 같이 있더니 점점 더 유아틱해져 갔다.

참고로 호세의 딸은 제수씨의 성을 따라서 강 씨가 되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제수씨에게 딸은 하나뿐인 혈육이다.

그걸 감안해서 호세가 배려해줬다.

“조심해라. 너 그러다가 멕시코로 영영 보내버리는 수가 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거기서 먹었던 음식 대부분 맛있더라.”

“고작 며칠 다녀온 거로는 감이 안 오지? 네가 거기서 몇 개월 동안 삼시세끼 타코를 먹어보면 아차 싶을 거다.”

간혹 먹는 것과 매일 먹는 것은 차이가 크다. 나도 처음에 멕시코 출장갔을 때는 수호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돌아올 때가 되니 질리고 말았다.

물론, 멕시코에도 다른 음식이 제법 많으나 생각보다 비슷한 편이었다.

예를 들어 타코와 케사디아 그리고 브리토는 재료와 준비 방식의 차이가 있으나 맛은 대체로 흡사했다.

“호세는 언제 멕시코 갈 거래?”

“아직 멀었지. 갓난아기를 데리고 멕시코까지 가는 것도 어렵잖아.”

요즘 호르헤를 비롯해 멕시코에서 호세에게 연락을 자주 하고 있었다.

특히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증손녀를 그렇게 예뻐하셨다.

“아마 호세보다 내가 먼저 멕시코에 가야할 것 같아.”

“거기는 갑자기 왜?”

“멕시코 안 간지 반년쯤 됐잖아. 슬슬 한번 가서 문제가 없는지 봐야지.”

오저당에는 아직 감사팀이 없었다.

해외 법인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워낙 사건과 사고가 잦은 곳이라 더 신경이 쓰이는 곳이 OGD 멕시코였다.

하지만 용건이 그것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벽향주 옐로우 라벨을 내놓듯이 멕시코에서는 1년 이상 숙성한 아네호(Anejo) 등급을 한참 준비 중이었다.

“잘됐네. 이번에 멕시코로 연수 가는 직원들 네가 데리고 가라.”

“왜 그걸 나한테 시켜?”

“이번에 뽑힌 직원들이 3년 차가 대부분인데 전부 해외가 처음이란다. 그 녀석들끼리 보내기는 불안하잖아.”

회사의 평균 연령이 낮으니 생기는 일이었다. 아직도 오저당은 평균 연령이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다.

보육원 출신과 고등학교 실습을 나온 이들이 매년 채용되고 있는 덕분에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었다.

“이젠 보모 역할까지 내게 맡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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