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39화 (239/254)

술에도 궁합이 있답니다 (1)

올해 결혼식을 몇 번 갔더라.

적어도 수십 번은 되는 것 같았다.

해가 지날수록 점차 더 늘어나는 추세다.

그걸 보면 이제 내 나이가 결혼 적령기가 됐다는 것이 실감 났다.

중고등학교 동창부터.

군대 선후임과 동기들까지.

하나둘 결혼하는 이들이 생겼다.

더구나 오저당을 운영하며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이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이번 봄 시즌은 정말 대박이었다.

지난 4월에 간 결혼식만 일곱 곳이다.

일부는 양해를 구하고 황 이사와 수호를 보냈는데도 그 정도다.

청첩장을 받았다고 다 갈 수는 없지.

아마 그랬다간 주말이 사라질 것이다.

어쨌든 그 덕분에 매달 지출되는 비용도 꽤 많은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5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를 내면 좀생이로 볼 게 분명했다.

심할 때는 경조사비로 나가는 돈만 한 달에 몇백만 원을 넘기기도 했다.

그나마 대부분 비용 처리가 가능해서 다행이지.

어쨌든 연예인의 결혼식은 처음이었고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꽤 많았다.

일반적인 결혼식과 많이 달랐다.

입구부터 많은 카메라가 즐비하게 서 있었고 스타들이 오면 열심히 찍었다.

누구나 알만한 스타들이 많았다.

확실히 긴 시간 연예계 활동을 하며 쌓은 인맥이 상당한 것 같아 보였다.

그게 내게도 꽤 도움이 됐다.

은근히 인맥도 많이 쌓였다.

RJ와 함께 감저를 빚은 것부터 시작해서 오저당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이들이 제법 많았던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관심은 벽향주 옐로우 라벨에 쏠렸다.

“며칠 전에 출시된 옐로우 라벨을 따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죄송하지만, 저도 딱히 방법이 없어요.”

“아··· 안타깝네요.”

“3개월 후에 추가로 소량이나마 물량이 풀리니 그때 구하시면 됩니다.”

없는 걸 구해줄 방법은 없다.

옐로우 라벨은 출시와 동시에 사라졌다.

국내 시장에 내놓은 물량이 고작 2만 병 남짓에 불과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건 해외 시장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해외로 나간 물량도 순삭 당했다.

기존에 화이트와 퍼플 라벨을 통해 벽향주를 접했던 이들이 옐로우 라벨 소식을 듣고 애타게 기다린 덕분이었다.

그 이후의 상황은 돈 레오넬 퍼플 라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부는 경매 시장에서 몇 배나 되는 가격에 올라왔다.

한 마디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그래서 유통 방식도 바뀌었다.

기존에 공급하던 주류 상사는 제외하고 대형 마트와 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통하는 방식을 택해야만 했다.

‘물론,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벽향주 옐로우 라벨의 가격대가 제법 높은 편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부 주류 상사의 일탈이란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이유였다.

우리한테 술을 공급받은 뒤.

고객에게 팔지 않는 일이 있었다.

물량을 숨겨 놓고 뒤로 몰래 웃돈을 받으며 판매하는 일이 여러 번 발각됐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쨌든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다.

함께 서울로 올라온 RJ는 멤버와 함께 뒤풀이를 갔고 연우는 서울에 있는 집에 데려다준 뒤에 나는 성근 선배를 만났다.

처음에는 딱히 갈 곳이 없는 라니도 같이 움직이려고 했으나 녀석이 거절했다.

꽤 피곤했는지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선배와 만나서 나눌 이야기는 라니와 연관성이 전혀 없었다.

“어이쿠! 회장님 오셨습니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결혼식장 인근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난 성근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과장된 표정과 몸동작으로 나를 반겨줬다.

이번에 회장으로 명함을 새로 판 뒤에 처음 만나는 거라 놀리고 싶었나 보다.

나도 이십 대에 회장 소리를 듣는 게 썩 반갑지는 않았다.

갑자기 나이를 먹은 느낌이랄까.

하여튼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실제로 선배가 회장님이라고 부르자 그걸 들은 카페의 몇 안 되는 손님이 내 얼굴을 보며 의아해했다.

“됐거든요. 그냥 저희끼리 따로 이야기 나눌 때는 편하게 하죠.”

“나야 그러면 좋지.”

“준비는 잘 되고 있죠?”

“물론이지. 인력 세팅은 다 끝났고 다음 주부터 출근할 예정이야.”

서울에서 근무할 M&A 부서는 모두 합치면 여섯 명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는데 어차피 이합집산이 자주 벌어지니 핵심 인력만 구성해 놓으면 된다고 했다.

게다가 법률문제는 따로 법무법인 해국의 변호사들이 맡게 될 예정이다.

그러니 법률 전문가는 채용할 필요가 없었다. 성근 선배는 그 문제에 대해서 살짝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줘도 소속이 다르니 나중에 급박한 일이 생겨서 스케줄이 꼬이면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당장은 어쩔 수 없어요. 실적을 올리기 전까지는 선배가 일하던 대기업처럼 그룹 내부에 법무팀을 구성하기는 어렵죠.”

“그냥 알아만 두라고.”

“새로 얻은 사무실은 어때요?”

원래는 법무법인 해국이 있는 빌딩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빌딩이 아니라 다른 곳에 사무실을 구했다.

평수도 작았고 제시한 임대료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인테리어 공사까지 모두 끝났으니 직접 가서 볼래?”

“지금 당장이요?”

“어차피 네가 쓸 업무 공간도 거기 마련되어 있잖아. 미리 확인해줘야 바꿀 거는 바꾸지.

“카톡으로 사진 보내주셨잖아요.”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다를 수도 있잖아.”

나는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길로 곧장 향한 곳은 7호선 학동역 부근에 있는 5층 높이의 빌딩이었다.

지어진 지 25년 이상 된 곳인데 제법 관리가 잘 된 느낌이었다.

1층에는 승마용 유니폼을 파는 명품 매장이 있었고 우리는 그 건물에서 2층을 통째로 사용하기로 계약되어 있었다.

밖에서 잠시 건물의 외관을 보던 나는 문득 이곳은 얼마쯤인지 궁금했다.

“오래된 건물치고는 상당히 깔끔하네요. 이런 빌딩은 얼마쯤 하려나요?”

“왜? 관심 있어?”

“제가 월세보단 자가를 선호해서요.”

“안 그런 사람도 있냐. 형편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거지.”

아··· 선배도 월세에 산다고 했지.

독일에 있는 본사에서 일하다가 한국 법인 쪽의 컨설팅을 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시기에 우리와 합류했다.

그래서 급하게 집을 찾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월세 집을 구했다고 했다.

형수님도 한국으로 들어왔기에 계약 기간이 남은 독일 집은 가까운 지인이 에어비앤비로 돌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게 뭐 저를 위한 건가요. 가능하면 우리 오저당 이름이 걸린 건물에서 일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하는 말이죠.”

“완전히 느낌이 다르기는 하지.”

“그래서 얼마인데요?”

“여기는 150억 정도 한다더라.”

생각보다 꽤 비쌌다.

대충 100억쯤이면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위치가 조금 애매한 느낌이었다.

가능하면 대로변이 더 좋잖아.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선배는 어림도 없다며 고개 저었다. 자신도 얼마인지 궁금해서 부동산에 물어봤다고 했다.

“여기가 한블럭 안쯕으로 들어와 있고 25년 이상 된 건물이라 그 정도야.”

“대로변은 얼마쯤 하는데요?”

“케바케지만, 여기랑 비슷한 크기가 대충 400억에서 550억 사이더라.”

“당분간은 감성 소비보단 실리를 쫓죠.”

빌딩 그딴 게 당장 필요하진 않잖아.

그런 내 모습을 본 선배는 큭큭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훗! 그럴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총알을 모으고 있는 중인데 지금 사옥 사는데 돈을 쓰는 것도 어불성설이지.”

400억 정도 쓰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요즘 오저당은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올해만 하더라도 감저와 굿밤의 매출이 크게 늘어났고 중국과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수출량도 대폭 늘었다.

감저의 경우에는 설비를 풀 가동시키는 것으로 부족해서 한 층을 더 늘려서 생산 설비를 거의 두 배 이상 증설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확보한 자금만 300억 가까이 된다.

하지만 지금 그걸 쓸 수는 없지.

첫 출근하기도 전에 준비 중인 M&A 부서의 모든 이들이 실직자가 될 거다.

자금도 없이 M&A를 할 수는 없잖아.

일차적인 목표는 천억 원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있어야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주류 회사를 사 올 수 있다.

그나마 요즘은 크게 투자할 일이 거의 없어서 그리 어렵지 않은 목표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성근 선배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입구에 세워진 투명한 문 너머에 데스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뒤로는 가벽이 있어서 내부의 모습을 밖에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법 긴 비밀번호를 누른 뒤.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인원수보다 넉넉하게 세팅된 업무용 데스크가 있었으나 남아있는 여유 공간이 제법 넓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통유리로 구획된 공간 두 곳이 세팅되어 있었다.

넓은 곳이 내가 일할 장소였고 비교적 작은 곳이 선배의 개인 공간이었다.

“네 말대로 나눠놓긴 했는데 괜찮아?”

“충분해요. 오저당 사무실 봤잖아요. 이것도 기존에 제가 쓰던 공간보다 몇 배나 넓은 거예요.”

“그때랑 지금은 다르잖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다.

하지만 회장의 권위 같은 쓸데없는 것을 가오랍시고 강조하고 싶진 않았다.

고리타분한 비싼 가죽 소파 같은 것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인테리어도 그런 내 취향이 반영됐다.

내부에는 딱히 특별한 것도 없었고 북유럽 스타일의 심플한 형태를 가진 것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신경 쓴 게 있었다.

내가 쓰는 공간의 한쪽 벽면 전체에 장식장이 세워져 있었다. 앞으로 그 안에 여러 술을 채울 생각이었다.

현송 사장님처럼 비싼 컬렉션을 바라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적어도 각국의 술을 모아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었다.

이미 어떤 걸로 채울지 구상도 끝냈다.

모든 게 내 취향만은 아니었다.

향이의 취향도 꽤 많이 반영되었다.

양조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잠시 참아달라는 뇌물에 가까웠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과하니 더 건드릴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밖에 쌓아 놓은 서류는 뭐에요?”

내 시선이 닿은 곳은 회의용으로 놔둔 대형 테이블 위에 쌓인 서류들이었다.

그쪽으로 슬쩍 바라본 선배는 앞으로 체크해야 할 업체들에 대한 자료라고 대답을 해줬다.

“저렇게 보관해도 되는 거예요?”

“중요한 거는 따로 보관 중이지. 저건 업계 동향 리포트와 비슷한 수준이야.”

“설마 오션에서 나오면서 가지고 온 자료는 아니죠?”

“나도 양심이란 게 있거든. 일부는 내가 개인적으로 조사했던 것들이고 나머지는 저번에 말했던 리서치 회사 자료야.”

모든 조사를 직접 하는 것은 무리다.

현지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여기서 살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했다.

리서치 회사도 그중의 하나다.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우리가 잠재적인 타깃으로 삼은 곳의 소식을 보내줬다.

그런데 들어간 돈에 비하면 자료의 양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돈을 받고 이렇게 많이 보냈다고요?”

“예전에 내가 담당하던 곳들이라 그렇지. 어떻게 보면 새로운 거래처를 뚫는 거라 꽤 신경 써서 보냈을 거야.”

“아··· 그렇겠네요.”

“하지만 이게 다 진짜라고 보면 안 돼. 99%는 헛소리와 추측에 불과해.”

“나머지 1%가 진실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선배의 대답은 약간 두리뭉실했다.

절대라는 것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떨 때는 말도 안 된다며 배제했는데 그게 진실이었을 때도 많다고 했다.

“판단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지. 물론, 고급 정보를 따로 받을 수도 있어.”

“비용은 그만큼 비싸지겠죠.”

“당연하지. 정보는 곧 돈이거든.”

“혹시 염두에 두고 계신 곳이 있나요? 오션과 경쟁할 생각은 없으니 거기서 노리고 있는 곳은 제외하고요.”

갑자기 맡은 업무가 아니다.

기존에 오션에서 일하며 선배가 염두에 뒀던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선배는 몇 장으로 요약된 리스트를 내놨다.

대략 십여 곳 정도 되려나.

업체를 선정한 기준은 간단했다.

M&A를 거쳐 내부의 문제를 정리하고 다시 재구성해서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곳만 추려내야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준비한 예산 범위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거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금이 새어 나가는 일은 허다하게 벌어진다.

그걸 줄이는 게 선배와 직원들이 할 일이기도 하다. 빠르게 리스트를 넘기던 나는 마지막 장에 올라온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 선배를 바라봤다.

“정말로 여기가 가능하다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