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본색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은우의 껍데기를 벗겨낼 시간이었다. 약에 억눌리지 않은 은우의 본성을 불러 깨울 시간이었다. 미안하게도 다소 거칠고 강압적인 방법이 되겠지만, 승현은 더욱더 알파의 페로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성기에 집중했다.
내부의 공기에 은우의 페로몬이 묻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숨을 깊게 폐 깊숙하게 마시며 은우의 페로몬을 담아 느꼈을 텐데….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느리게 감았다 뜬 승현은 얼굴에서 지금까지 넉살 좋고 무해했던 선량한 가면을 벗어던졌다. 혈관을 타고 도는 호르몬이 반응을 일으키며 은우를 향해 페로몬을 흘려보냈다. 알파의 페로몬을 억제하지도, 조절하지도 않은 승현은 자신의 낼 수 있는 모든 몸의 호르몬을 조금씩 풀었다.
“……헉!”
은우는 알파의 페로몬이 코끝에 닿자 자동으로 헉 소리가 나왔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알파의 페로몬은 은우에게 공포였다.
놀란 자신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여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은우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승, 승현아.”
분명 농도가 짙어지는 알파의 페로몬을 뿜어내는 건 승현이었다. 은우는 그를 멍청하게 바라봤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승현의 몸 곳곳에서 피어나는 알파의 페로몬은 독과 같았다.
알파가 오메가를 부르고 있었다.
“…도, 도착했어…? 그럼 나… 갈게.”
자신의 본능이 그에게 달려갈 것 같아서 겨우 누르고 은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몸을 일으켜 짐 하나 챙길 겨를도 없이 승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적당히 승현과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좁은 선내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천천히 뒤로 승현을 경계하며 은우는 문 쪽으로 향했다. 발뒤축을 들지 못하고 질질 끄는 모양새로 미끄러졌다. 손을 뒤로 뻗어 더듬거리며 손잡이를 잡았다. 고리형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어 문을 빼꼼하게 여는 순간이었다.
쾅-!
승현의 행동이 더 빨랐다. 커다란 손이 살짝 열리는 문을 거칠게 밀어 닫으며 은우에게 몸을 가까이 밀착시켰다.
“와- 형…….”
은우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그보다 훨씬 큰 승현을 바라보았다. 해맑았던 승현의 눈빛은 짙어져 은우에게 고정한 채 내려다보던 얼굴이 가까워지며 말을 이었다.
“…이 냄새 뭐예요?”
“어…? 아니…….”
단번에 승현의 목소리가 흥분에 잠식되어 갈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은우는 알아차렸다. 승현의 눈빛 또한 형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직하게 귓가에 승현은 감흥이 담기지 않은 감탄을 내뱉었다.
“…아니…….”
결국 은우는 킁킁 숨을 들이켜는 승현을 피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 숨을 훅 들이켜더니 바들바들 떨었다.
제발 그만…….
승현이 멈추기를 바라고 있는데 오히려 그는 조금 더 자신에게 가까이 얼굴을 가져왔다. 이윽고 승현은 목덜미에 코끝을 대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승현의 숨소리가 소름 끼쳐서 은우의 고개는 더 옆으로 돌아갔다.
“야… 하, 하지 마.”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가까워진 승현의 몸에서 피어나는 알파의 페로몬이 미칠 듯이 감미롭게 다가왔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떠는 숨을 후우 뱉었다.
악순환이었다. 승현에게서 피어나는 알파의 페로몬으로 저 자신의 몸이 달아오르며 이 몸뚱이는 더욱 오메가의 페로몬을 발산하고 있었다. 원하지 않던 일이 일어나 버렸다. 알파인 승현이 자신의 페로몬에 자극받아 반응하며 진하고 진한 알파의 페로몬을 내뿜었다. 그날에 겪었던 몸의 제어를 빼앗기는 치명적인 향기였다.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이 돌고 돌았다. 무섭게 은우는 몸의 컨트롤을 하나씩 그에게 빼앗겨 갔다. 처음에는 도망가려던 다리가, 밀어내려던 손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자, 장난치지 마.”
은우는 굳세게 마음과 정신을 다잡으며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고 있는 승현의 몸을 밀어내려 손을 들어 올렸는데 그의 음산한 목소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게… 소문으로 듣던, 오메가의 페로몬인가? 그… 황홀하다는… 아니, 형의 향기인가.”
은우는 처음 듣는 승현의 음성이었다. 평소에도 낮은 톤이었지만 그래도 쾌활하던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산하게 바뀌어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승현의 낮은 억양에 겁이 났다.
은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변했다. 상처받은 얼굴이 된 건 은우 자신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승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다가온 승현을 믿었는데, 결국… 승현도…. 아몬드 모양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며 흔들렸지만, 그는 아주 편안하게 웃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 맞다. 형… 약을 안 먹었지?”
“노, 농담하지 마!”
“농담은요…. 은우 형, 또 하나 너무 궁금한 게 있어서 질문해도 돼요? 이건 형 밖에 답을 해줄 수가 없어요.”
“…….”
은우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귀를 양손으로 막을 수만 있다면…. 차갑게 입꼬리만 올려 웃는 승현의 웃음이 자신의 귓가와 시야에 닿았다.
“그래서… 은우 형, 오메가는 약이 없으면 어떻게 되나요?”
믿을 수 없어서 은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 뭐?”
그리고 승현의 말과 목소리가 정말로 은우 자신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나… 내려 줘…. 갈래, 응?”
두려움을 고스란히 내비친 억양이 마치 꼬리를 말아 숨은 고양이처럼 되었다.
“제발…….”
승현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비, 비켜!”
최대한 단호하고 차갑게 은우는 말을 내뱉는다고 내뱉었지만, 승현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듯했다. 승현은 콧방귀를 끼며 자신의 무릎과 무릎이 맞닿아 스치며 몸을 가까이 붙였다.
승현은 자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았는데, 지금의 승현은 거리낌 없이 나에게 몸을 밀착했다.
완전히 밀착한 승현의 페로몬이 은우 자신에게로 쏟아져 몸을 뒤덮었다. 은우는 그 페로몬을 느끼지 않으려고 양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다고 막아질 일은 아니었지만, 단순하고 원초적인 행동이었다.
“큭큭…. 형… 나한테서 나는 페로몬은 어때요? 좋아요?”
승현은 은우의 행동을 보며 소름 끼치게 웃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의 향기는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아까부터 줄곧 좆이 터질 거 같거든요. 그런데 형은 어때요?”
노골적으로 승현은 은우가 싫어할 법한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형, 너무 좋아서 막 뒷구멍이 녹아서 물이 질질 흐르나? 아니면….”
은우가 페로몬은 거부하며 틀어막은 손목을 승현은 억지로 양손을 잡아 풀어냈다. 힘으로 보나 체격으로 보나 은우는 자신을 이길 수가 없었다. 입술이 살짝 벌어져 선명하게 붉은 은우의 입술이 떨면서 숨을 쉬고 있었다.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승현에게서 멀어지려고 은우는 그에게 몸이 닿지 않으려고 등 뒤로 닿은 벽으로 더욱 몸을 밀착했다. 벽으로 몸을 통과해 빠져나갔으면 싶을 정도로 그렇게 물러났다
“아아, 그러니까… 형. 약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억지로 천진난만한 말투를 승현은 만들어냈다. 하나도 어리숙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면서 말투만 그랬다.
조롱인 건가?
은우는 승현의 가벼운 음성에 등골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점점 원하지 않아도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턱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날 정도로 은우는 떨기 시작했다.
“가, 갈래…. 비켜 줘… 응?”
승현 손에 잡힌 양손을 비틀어 벗어나려고 했다.
“에이, 형….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은 하고 가야죠. 뭐 벌써 간대. 근데 형, 그거 알아요…? 점점 더 향기가 진해지고 있는 거… 느껴져요? 어떡하지?”
“…그만…해. 모… 몰라!”
그 순간 은우는 언젠가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꿈속에서 승현에게 유린당하고 흥분했던 꿈이었다. 지금처럼 그에게 양손이 붙잡힌 채 꿈속에서 섹스했다. 그의 양손에 붙들린 손목이 화끈거리며 얼굴도 빨갛게 달아오르게 됐다.
승현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은우의 얇은 손목을 놓아줌과 동시에 허리를 팔로 감아서 자신의 몸쪽으로 당겼다.
“아… 안 돼.”
팔의 강한 힘에 몸이 살짝 들려 은우는 까치발을 하며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하복부가 밀착하게 닿았다. 옷 위로 느껴지는 승현의 성기가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 고스란히 전해지자 보기 좋은 은우의 눈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하, 하지 마아….”
다시 그 꿈이 생각났다. 닿은 승현의 성기가… 이 커다란 성기가 애널을 꿰뚫는 쾌락의 꿈이… 현실감을 얻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승현을 밀어내면서 머릿속에 뿌연 안개처럼 가득한 꿈을 떨쳐냈다.
“형은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이런 페로몬만으로 나를 이 정도까지 흥분시킬 수 있다는 게 엄청난데요?”
승현은 자신의 품에 갇혀 떠는 은우에게 향했다. 스스럼없는 미소가 잔인한 빛을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싫어하면 반칙이죠, 형. 다 알면서 엉큼하게 일부러 따라온 거… 아니에요?”
“아니야, 아냐….”
극구 그의 말을 부정하며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은우는 심장이 철렁했다.
승현을 나는 믿었는데, 그라면 절대……?
내면에서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나는 생각을 못 한 것인가? 사실…….
아니었다.
승현이 내민 손을 잡은 건 나였다. 그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아서 잡은 것이었다. 싫다고,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럼 그와 연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승현과 함께하기를 원한 건 결국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아니긴.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순순히 따라왔는걸요?”
“하지 마…. 스, 승현아….”
은우가 처음인 것처럼 승현을 향해 이름을 불렀다. 은우의 부드러운 로 톤이 마치 초콜릿으로 코팅된 혀가 승현의 귓가를 핥는 것 같았다.
“와… 형. 지금 형이 내 이름 부를 때마다 소름 돋게 좋아요. …형이 내 이름 부르는 게 좋고, 달콤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죠?”
승현은 이렇게까지 은우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은우를 내려다보았다. 알파의 페로몬을 뿜어내고 있는데, 여전히 은우의 몸에서는 어떠한 페로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만 은우는 스스로 오메가의 페로몬이 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충격에 몸을 떨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은우에게서 페로몬을 뽑아낼 수 있을까.
초조해졌다.
조금 더… 괴롭혀 볼까? 그 페로몬이 나올 수 있게…….
승현은 말랑한 은우의 말랑한 몸을 느끼며 단단하게 반응하는 성기를 알아차렸다. 여유 있게 은우를 향해 히죽 웃었다. 알파의 페로몬을 더욱 그를 향해 쏟아냈다.
그 순간 은우는 폭우 속으로 걸어 들어가 흠뻑 젖는 기분이 들었다.
“…하, 지마…. 안 돼!”
여유가 있어 보이는 승현과 반대로 은우는 여유가 없어졌다. 몸의 열기를 발산하지 못해 은우는 뜨거운 숨을 내쉬면서 몸을 지탱하는 다리에 힘이 점점 풀리고 있었다. 그때 겪었던 것과 똑같았다. 알파의 페로몬에 농락당해 몸이 늘어지던… 그 기억이 무서워서 승현에게 매달렸다.
승현의 향기는 향기로운데… 내 몸에서 나오는 냄새는 역겨웠다.
자신의 몸의 통제권을 놓고 본능과 싸우고 있었지만, 그가 뿜어내는 알파의 페로몬에 점점 빠져들었다.
“사, 살려 줘…. 형….”
은우는 멍한 눈으로 정윤을 불렀다. 위기에 봉착하면 정윤이 구해 주었으니 지금도 구해 주지 않을까 여겼다.
“누구요?”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리는 승현은 은우의 파르르 떠는 볼을 쓰다듬으며 나긋함 속에 숨긴 위협감으로 물었다. 은우의 입에서 나오는 낯선 이의 정체에 험악하게 눈썹이 구겨졌다. 일단은 다정하게 묻는다고 물었지만, 배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형이 누구예요?”
“…형, 살…. 혀…. 무서워, 정…윤 형….”
은우는 자신을 구해 주는 정윤을 애타게 불렀다. 이곳에 없을 정윤이었지만 자신에게 든든한 지원군이고 방패였다. 승현은 은우가 애타게 찾는 사람이 그의 친형이라는 것을 알자 험악하게 구겨졌던 인상이 풀어졌다.
“은우 형, 괜찮아요….”
바들바들 떠는 은우가 살려 달라고 했다. 승현은 단지 은우를 향해 알파의 페로몬을 좀… 뿌렸을 뿐이었는데 은우는 살려 달라고 한다.
“하아… 하아…. 형.”
은우의 입술을 비집고 달뜬 숨이 새어 나왔다. 뜨거운 숨결이 승현의 목선에 끼쳤다. 승현은 기분 좋은 소름에 휘감겨 은우의 등허리를 길게 쓰다듬었다. 붉은 입술을 가르고 나온 이름의 정체를 파악하자 급격하게 안도했다.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면서 은우를 인형처럼 안아 입구와 반대로 들어갔다.
“괜찮아.”
다독이며 잔잔한 목소리로 안심시키며 승현은 선실 내부의 안쪽에 있는 침실로 향했다. 완전히 저항할 힘을 잃은 은우는 승현의 발걸음에 휘청이며 걸었다.
“뭐, 뭐를 할… 생각…인 거야….”
정신은 아직 완전히 잠식되지 않아 입을 열었다.
“음, 그냥 형이 지금 너무 힘들어해 보이니까요. 조금 쉬면 좋을 듯해서요.”
“싫, 어…. 그냥 갈래…. 응? 비켜… 줘….”
“하지만, 형 간다는 사람치고는 갈 생각이 없어 보여요.”
은우는 힘이 없이 늘어져 자신에게 의지해 있어서 승현은 노골적으로 혀를 빼 보드라운 그의 목선에 닿게 했다.
“아아! 야……!”
예민해지는 은우의 몸이 이 작은 터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승현은 숨을 헐떡이는 은우를 침대에 걸터앉혔다.
은우는 지금 들어와 있는 곳이 아까 확인한 침대 위라는 사실에 흠칫 떨었다. 놀라는 것보다 당장 은우는 뜨겁게 달아오른 몸 때문에 고통스러워 가슴 위로 손을 올려 옷을 구기며 움켜쥐었다. 주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셔츠에 수백 줄의 주름이 생겼다.
승현의 페로몬에 침범당해 당연하다는 듯이 달아오른 몸이 뜨거워져서 침대에 엎드리듯 몸을 숙였다. 앉은 다리에서 무릎을 모아 서로 비비며 문지르며 주체하지 못하는 몸을 다스렸다.
“하아… 으으….”
가는 숨소리가 승현의 귓가에 퍼졌다. 신음에 가까운 숨소리에서 승현은 알 수 있었다. 은우는 분명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작은 손을 가슴 위에 올려 반듯하게 다림질되어 있던 연한 청색의 스트라이프의 셔츠를 한 움큼 쥐며 은우는 흥분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기 중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은우의 숨결에서는 아직 은우의 오메가 페로몬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은우 형… 페로몬이 참을 수 없이 나와서 힘들어요?”
승현은 확인차 괴로워하는 은우의 손을 가볍게 쥐며 물었다.
“…으으…….”
덜덜 떨면서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아, 역시 은우는 착각하고 있었다.
소위, ‘상상 임신’ 같은 것이었다.
약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페로몬을 뿜어낸다고 생각했고, 본능을 자극하는 알파의 페로몬에 반응하는 몸에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었다. 조금만,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테지만, 그조차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은우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그 착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고통스럽게 애달픈 몸의 울음소리를 자아내는 은우의 신음이 승현의 귓전을 울렸다.
“하아… 으응….”
은우는 이제 이성의 끈이 얇아지고 있었다. 페로몬에 의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저릿하게 울리는 성적 자극을 받았다. 은우는 이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승현에게 달려들고 싶은 것을 일말로 살아 있는 이성으로 붙잡았다.
반쯤 힘겹게 엎드린 채 은우는 하얀 침대의 시트가 뜯어질 정도로 부들부들 떨면서 쥐었다. 손가락의 구부러진 마디마다 하얗게 변해 버릴 정도였다.
“하아, 하아… 흐음….”
“은우 형, 도와줄까요?”
승현을 밀치고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더욱이 그의 페로몬에 자극을 받아 은우는 포근한 침대에 이마를 대고 바들바들 떨었다.
자신의 몸이 보이는 이상한 반응을 참고 있었지만, 몸의 증상이 오메가의 발정기라는 것을 알았다. 겪어 본 적이 없어서 자신의 몸인데 불구하고 낯설었다.
“그냥 도와…….”
“꺼, 꺼져…! 그딴… 거 피, 필요… 없어! 흡….”
마치 선심 쓰듯이 승현이 말했지만, 자존심에 그의 말을 싹둑 자르고 은우는 겨우 몇 마디를 내뱉고 입술을 봉쇄했다. 지금 다시 입을 열면 천박한 말을 쏟아낼 것 같았다. 입술에서 피가 날 듯이 깨물다가 엎어진 침대에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승현을 응시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은우의 눈동자가 애처로웠다.
“형, 힘들죠?”
고통스럽다는 듯이 울상인 얼굴로 은우는 눈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흥분을 억제하지 못해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은우는 파리하게 떨었다.
“…무, 무서워. 승…현아….”
은우는 다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침대 시트를 붙잡은 손이 힘겹게 사투를 벌였다. 다시 침대에 등을 둥글게 말아 엎드린 은우가 온몸을 휘감은 자신의 페로몬을 느꼈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승현이 뽑아내며 발산하는 알파의 페로몬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보기 좋게 구겨진 하야 시트 끝을 은우는 입술에 물었다.
“흐읏… 으응….”
은우의 입안에 고인 침이 목구멍으로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입에 문 시트를 조금씩 적셨다.
“형, 내가 필요하지 않아요?”
은우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내가 필요할 거 같은데….”
자신의 페로몬에 반응했으면서도 은우에게서는 그 어떤 오메가의 페로몬도 배어 나오지 않았다.
“필요할 때 말해요.”
침실의 입구를 지키고 선 승현은 은우를 지긋하게 관찰했다. 야릇하게 들리는 은우의 간드러진 신음 소리를 이렇게 듣고 있자니 이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그의 고운 미성은 잘 부르는 노랫소리처럼 듣기 좋았다.
다만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페니스가 해소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 아주 작은 흠이었지만.
도련님은 도련님이었다.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은우는 어지간한 오메가와 달랐다. 이쯤 되면 그렇고 그런 오메가들은 알아서 옷을 벗어 엉덩이를 잡고 벌려 구멍을 드러낸 채 제발 단단하고 커다란 성기로 쑤셔 달라고 애원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은우의 자존심은 허락하지 않았다.
“안 돼…. 무서…워….”
은우는 힘겨워 보이는 눈으로 느릿하게 깜박이며 어지러운 시야 속으로 나가는 문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몸에 느껴지는 흔적은 그날의 역겨웠던 페로몬의 흔적인 건지, 꿈속에서 느꼈던 승현의 손길인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이를 앙다물고 다리에 힘을 주어 문으로 은우는 뛰어갔다. 뛰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걸어가는 것이었다. 도망갈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형… 지금 나한테서 도망가는 거예요?”
미소를 머금은 승현은 너무나도 쉽게 은우를 안쪽으로 다시 밀쳤다.
“예쁘네. 나 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도망도 치고. 반항도 하는 건가?”
“…….”
아직 은우의 입에서 그 어떤 대답이 나오지 않아 그만큼 무의미한 시간이 흘렀다. 승현은 예전 같았으면 초조할 법도 했지만 초조하지 않았다. 바다 위에서 은우가 도망갈 곳은 전혀 없다는 것이 든든한 마음의 안식이었다. 대신 초조한 기색보다 이렇게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흠…….”
승현은 다시 시계를 들여다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무심한 눈길이었다.
각오하고 계획한 일이었다. 그동안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은우를 여기까지 꾀어내서 궁지로 몰아넣었다.
“으으…….”
이 침실을 채우는 얇은 신음 소리가 승현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은우는 괴로운 듯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엔간한 고집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건 은우가 아니라 승현이었다.
“형…….”
참고 있는 은우가 안쓰러워서 결국 승현이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맑은 눈물을 닦아 주려 손을 뻗었다.
승현도 알고 있었다. 알파에게도 이따금 러트가 스스로 조절이 불가능할 정도로 거세게 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하지 못한다.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은우는 힘겹게 참고 있었다. 승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가 감히, 이런 은우를 두고 엉덩이가 가볍고, 알파를 잡아먹는다고 했는가….
“형… 참으면 아파. 알잖아…. 한 번… 하고 나면… 편해져.”
은우는 무섭다고, 싫다고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온몸을 흔들어 마음마저 흔들리게 할 정도로 덮은 승현의 페로몬은 자신을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살려 줘, 제발…. 나를… 나를… 안아 줘….
몸이 그렇게 울고 있었다.
은우는 머리는 안 된다고 했지만, 이제는 극심한 고통까지 느꼈다. 양 무릎을 서로 비비며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손가락이 관절 인형처럼 뚝뚝 끊어지는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손을 아래로 뻗어 승현을 상상하며 자위했던 것처럼 손으로 해소시켜 볼까 했지만, 자신을 앞에서 서서 지켜보는 승현에게는 절대 보일 수가 없었다.
“하아… 읏.”
미묘한 줄다리기 팽팽하게 이어져 힘겨루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랬듯, 먼저 지고 다가간 건 승현이었다.
“형…….”
승현은 은우를 향해 허리를 숙여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은우는 움칫 상체를 들어 파르르 떠는 몸으로 승현의 목에 양팔을 둘러 안으며 몸을 내던졌다.
“하아… 사, 살려… 줘. 제발… 아파, 무서워…. 스, 승현아… 으읏.”
열과 페로몬에 잠식된 젖은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은우의 나긋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안긴 은우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회심의 미소로 승현은 씩 웃었다.
드디어.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것이 피가 한 번에 쏠린 기분을 받으며 승현은 천천히 온몸을 떠는 은우를 끈적하고 욕정이 담긴 손으로 쓰다듬었다.
“한 번 하고 나면… 금방 풀어져요. 그러니까… 가만히, 괜찮아요…. 내가 좋게 해줄 테니까. 안 아프게 해줄게.”
“……저, 정말?”
약해진 은우는 정확하게 머리로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승현의 말에 의지했다. 차라리, 그 말에 숨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그래서인지 은우의 되묻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고 바보처럼 울렸다.
“응, 그럼요. 이렇게 아픈 거… 없어져. 내가… 형, 배 속에 만족할 만큼 채워 줄게.”
“…채, 채워? 하아….”
승현은 입술을 혀로 적시며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응, 내 뜨거운 정액으로 채워 줄게. 그럼… 금방 나아요.”
“저, 정말? 네, 네… 정…액이… 채, 채워지면… 아, 안 아파?”
은우의 작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승현은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럼- 내가 이제 앞으로… 평생… 채워 줄게.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가느다란 은우의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감기는 감촉은 황홀했다. 아주 잠시 승현은 은우가 너무 어리고 어리숙한 소년 같았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은우는 속았다. 한 손에 쥐어 감출 수 있을 것 같은 머리통과 한 손에 잡힐 듯한 허리와 체형을 가진 은우가 여리기만 했다.
“…승…현아….”
“왜요?”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