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5화 (25/230)

〈 25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16)

* * *

­ 쿠우웅!!

실제로 그렇게 큰소리가 나지는 않았으나 굉음이 머릿속에 울리는 것 같다.

1층에 쌓인 돌무더기 위에 착지한 애쉬는 온몸과 골이 울리는 충격에 순간 비틀거릴 뻔한 것을 참았다.

사실 10층 높이에서 떨어진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잠깐 저릿하고,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괜찮아지는 정도.

일반인이라면 100에 99는 사망할 수십 미터 자유 낙하조차 12레벨의 신체 능력에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로 발밑에서 폭발물이 터진 것은 아무리 그라도 무시할 수 없었다.

폭발이 있던 순간에 반사적으로 뛰어오르며 값비싼 방탄, 방검 코트로 몸을 감싸서 망정이지, 그대로 직격 당했다면 하반신이 완전히 작살났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나마도 다른 사람이었다면 몸 전체가 터져나갔겠지만.

‘썩어도 거대 갱단의 보스라는 건가.’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애쉬가 생각했다.

이쪽에서도 ‘방화광 루이스’와 ‘베이론’을 가만히 둘 생각은 없었지만, 저쪽에서 이렇게 선수를 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방화광 루이스’, 그 자신의 방을 중심으로 건물 전체에 구멍을 뚫을 정도의 폭발물을 준비해뒀을 줄이야.

애쉬가 이곳 74구역에 들어온 것을 알아챈 게 몇 시간 되지도 않았을 텐데,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고 준비한 것이라면 확실히 심상치 않은 놈이었다.

‘몸 상태는 별로 좋진 않군.’

몸 상태를 점검했다.

폭발에 가장 가까웠던 양 다리가 좀 심하게 욱신거리는 것이 부러진 것 까진 아니더라도 금이 좀 간 것 같고,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울리는 게, 뇌진탕 증상도 약하게 느껴졌다.

최근 들어 느낀 몸 상태 중 단연코 최악이다.

하지만 애쉬는 돌무더기 위에 몸을 똑바로 세웠다.

‘방화광 루이스’가 준비한 것이 이걸로 끝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애쉬의 귀에는 수많은 발걸음 소리와 함께 고함이 들리고 있었다.

“돌멩이 하나까지 제대로 확인해! 놈의 시체라도 찾으면 엄청난 포상이 기다리고 있다!!”

“저리 비켜! 내꺼야!!”

“꺼져!!”

자신의 생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죽었다면 시체라도 찾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짐승들.

애쉬는 그 중에서도 제법 무거운 발소리가 많은 것으로 보아 무장을 한 놈들이 꽤 될 것으로 예상했다.

“…끝까지 제대로 준비하셨군.”

점차 흙먼지가 가라앉는다. 애쉬의 모습도 곧 갱들의 시야에 드러날 것이다.

놈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하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공격해 숫자를 줄여놔야 했다.

스르릉. 대장간에서 받아온 검이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폭발에 휩쓸려 부상을 입으며 추락했고, 추락한 곳은 무장한 수백의 갱들에게 포위당한 상태다.

갱들의 숫자도, 상황도 63구역에서 잡것들을 정리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런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지만, 흙먼지를 뚫고 나가는 애쉬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어디 한 번 제대로 날뛰어 보자고.’

*

“아 씨발, 누가 물 좀 뿌려봐! 아무 것도 안 보이잖아!”

“니가 가져와 이 새끼야!”

“뭐? 어떤 새끼가……꺼억!”

흙먼지 사이를 헤매며 소리치던 갱이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꼬꾸라졌다. 그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이 씹. 여기서 뭘 어떻게 찾으라는…컥!”

“어어?”

“뭐, 뭐야! 머리가…!!”

“아, 안에 뭔가가 있다! 바깥으로 나가!!”

“으아악! 내 팔! 내 팔이!!”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갱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비명소리. 옆에서 무너지는 동료의 시체에서 떨어진 머리.

그 모든 것이 몇 미터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흙먼지 속의 갱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었다. 당황한 몇몇 갱들은 자신의 아군이 맞는 것도 생각지 못하고 총을 마구 갈겨댔다.

타다다당!

“아악!!”

“어떤 새끼야! 사격 멈춰!! 멈추라고!!”

“씨, 씨발…! 일단 여기서 나가!”

“사격 멈추고 바깥으로 나가라고!!”

혼비백산한 갱들이 흙먼지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판단이 늦은 갱들은 그 안에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나자빠졌다.

“으아악!! 놈이 살아있다! 살아있다고!!”

“어, 어떻게…. 그 폭발 속에서 살았다고?”

“놈이 살아있다!! 바깥으로 나가!!”

계속해서 흙먼지 속에서 갱들이 뛰쳐나왔다. 무언가 이상함을 재빨리 눈치 채고 나간 이들과 달리 뒤늦게 나온 그들의 꼴은 처참했다.

팔이 하나 없는 자도 있었고, 동료의 사격에 맞아 옆구리를 붙잡고 있거나, 다리를 질질 끌며 기어 나오는 자도 있었다.

서서히 흙먼지가 가라앉는다.

바깥으로 나온 갱들은 가라앉은 먼지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인영을 발견했다.

“프흐, 좀 아쉬운데? 너무 빨리 눈치 챘잖아.”

건물 전체를 관통하여 뚫린 구멍 아래 오연히 서 있는 유일한 인간.

갱들이 비추는 조명을 받아 번뜩이는 칼날과 잿빛 은발, 그리고 진청색의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 남자야말로 갱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목표물, ‘애쉬 론모어’였다.

갱들은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드러난 광경에 긴장을 삼켰다.

“무, 무슨….”

폭발로 인해 쌓인 돌무더기와 그 주변을 가득 매우고 있는 수십의 시체들. 그 모든 것이 ‘베이론’ 소속 갱들의 것이었다.

불과 몇 분. 그 짧은 시간 동안 흙먼지 속을 탐색하던 수십의 갱들이 한낱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체밭 사이.

온몸에 피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며 홀로 서있는 남자, 애쉬 론모어는 자신을 둘러싼 채 침묵한 수십, 수백의 갱들에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들 그래? 아, 먹을 게 너무 많아져서 행복한가?”

그렇다고 너무 고마워하진 않아도 돼. 너희도 곧 이렇게 될 테니까.

수백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긴장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말투. 그가 덧붙였다.

그런 애쉬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갱들이 분노를 표하며 움직였다.

“뭐해! 저딴 소리나 지껄이게 둘 거야?!”

“놈이 대단해봤자 하나야! 그냥 사이에 두고 갈겨버려!”

“쏴!!”

투다다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총구를 겨눈 수백의 갱들이 애쉬를 향해 탄을 쏟아냈다. 순식간에 수백, 수천 발의 총탄이 그를 향해 빗발쳤다.

그에 애쉬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조준점을 피하며 자신을 향하는 탄환들을 검으로 쳐냈다. 그것을 본 갱들이 경악했다.

­ 채채채채채챙!

“뭐, 뭐야!!”

“놈이 총알을 쳐내고 있어!!”

“말도 안 돼!”

초당 쏟아지는 탄이 한 두 발도 아니고, 무려 수천 발이다.

아무리 재빨리 몸을 피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를 직접적으로 향하는 탄이 못해도 수십은 될 터인데, 그것을 모두 쳐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쉬는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며 갱들을 향해 다가갔다.

갱들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놈이 다가온다!!”

“다가오지 못하게 계속 쏴!!”

누군가 외쳤지만 탄은 결코 무한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런 전투가 성립될 줄은 몰랐고, 만약 전투가 일어난다고 해도 이만한 숫자의 차이였다.

당연히 순식간에 벌집으로 만들어버리고 끝날 줄 알았겠지.

기본적으로 총에 꽂아둔 탄창을 제외하고 탄을 더 챙긴 사람이 드물었다.

분당 수백 발 이상을 쏟아내는 총에 있어 기껏해야 수십 발이 들어가는 한 탄창은 너무도 적다.

매 초 시간이 흐를수록 탄막이 뜸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탄의 비가 완전히 끊겼다.

애쉬는 여전히 서있었다. 멀쩡히 서있는 그를 보고 갱들이 공포에 질렸다.

“괴, 괴물…. 놈은 괴물이야!”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처럼 애쉬가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후욱…. 후욱….”

이렇게 숨이 차오른 게 얼마만이던가. 과거 ‘오마르의 망치’와 전면전을 했던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아니, 그때도 이 정도로 숨이 차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 폭발로 얻은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아무런 엄폐물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 하나를 노리고 초당 수천 발의 탄환이 쏟아진다.

그것을 피하고 쳐내는 일은 멀쩡한 상태에서도 상당히 벅찰 일이었다.

하물며 부상을 입은 지금은 더욱 그렇다.

만일 이런 상황이 십여 초만 더 지속됐다면 아무리 애쉬라도 몸에 구멍 몇 개 정도는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계속됐다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벌집이 되어 쓰러졌겠지.

지금도 총탄이 스친 상처에서 피가 몇 줄기씩 흐르고 있었다.

극한의 상황. 하지만 숨을 헐떡이면서도 애쉬는 웃었다.

“하하핫, 이게 끝이야? 실컷 쐈으니 이제 내 차례지?”

그가 항상 원하던 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정말로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긴장감. 목숨이 오가는 스릴.

게임 속 세상에 떨어졌지만 이 짜릿함만큼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전신 어디 할 것 없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보다 진한 즐거움이 애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노, 놈은 괴물이야…!”

“탄! 탄을 더 가져와!”

“미친 새끼야! 계단이 다 무너졌는데 어디서 가져와!”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그의 말에 갱들 혼란하게 움직였다. 그가 보인 장면은 수백에 달하는 갱들조차 질려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한 발짝, 그리고 또 한 발짝. 그가 다가가면 수백에 달하는 갱들이 물러난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기세라는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저들에게 애쉬는 그야말로 침범할 수 없는 괴물과도 같은 존재로 보일 것이었다.

천천히 다가가며 숨을 고르던 애쉬는 다시 너덜너덜해진 몸을 움직여 갱들에게 뛰어들었다.

“오, 오지 마!”

“달려들어! 놈은 혼자라고!!”

“그럼 네가 먼저 가보던가!!”

“으아아악!!”

그야말로 아비규환. 탄이 떨어져 총이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갱들은 더 이상 애쉬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겁먹은 양들의 사이에 뛰어 든 늑대처럼 마음껏 날뛴다.

애쉬의 칼날이 번뜩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피의 비가 내렸고, 그것이 가까워지자 갱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몸을 타고 흐르는 피가 애쉬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갱들의 것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 된 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부 비켜라!

“보스!!”

목소리의 주인과 함께 나타난 이들을 발견한 갱들이 얼굴에 화색을 띄우며 외쳤다.

‘방화광 루이스’. 방열복과 방독면을 쓰고 자신의 주 무기인 화염방사기를 챙긴 ‘베이론’의 보스와 그 간부들의 등장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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