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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6화 (26/230)

〈 26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17)

* * *

보스의 외침에 일방적으로 도살당하던 갱들이 도망치듯 물러났다. 애쉬도 움직이던 몸을 멈추고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방화광 루이스’가 방독면 너머로 말했다.

­ 그 폭발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다니, 대단하군.

“하, 그래. 그 선물은 잘 받았지. 이건 내 선물인데, 어때?”

사실 그렇게 멀쩡하지는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은 애쉬가 들고 있는 검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흙먼지 속에서 나자빠진 수십과, 그 바깥으로 나와 처리한 백여 명의 시체.

애쉬의 주변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시체로 매워져 있었다.

처음 나설 때만 해도 400에 가깝던 갱들의 숫자는 이미 절반 가까이 줄었고, 그것은 보스인 루이스에게 있어 뼈아픈 손실일 것이다.

‘베이론’ 쯤 되는 대규모 갱단의 일원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특히 전투 인원들은 나름 고르고 고른 인재들에게 훈련까지 꾸준히 시킨 것일 텐데, 단 한명을 상대로 완전히 작살이 나버렸다.

하지만 루이스는 애쉬가 가리킨 시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한심한 놈들이지. 분명 네가 살아있다면 접근하지 말고 원거리에서 처리하라고 했을 텐데.

“뭐, 그렇긴 해.”

미리 경계하라고 주의를 줬던 것 같은데, 보조 탄창도 없이 가벼운 무장으로 몰려온 것을 보면 저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사실 한 명을 상대로 수백이 나온다면 방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은 맞았다.

루이스의 차가운 말에 애쉬는 그와 간부들의 무장 상태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구경하다 직접 처리하러 나오셨구만?”

­ 저런 머저리들이라도 내 부하니까 계속 보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말이지.

루이스가 대답했다. 말단 갱들과 달리 그와 간부들의 무장은 척 봐도 심상치 않았다.

루이스의 경우에는 그의 방에서도 봤던 화염방사기와 폭발물을 이어놓은 띠로 무장하고 있었고, 다섯의 간부들은 보기만 해도 살벌한 중기관총을 손에 들고는 거기에 이어진 몇 개의 탄통을 매고 있었다.

미리 이곳의 광경을 봤을 테니 탄은 부족할 일은 없겠지.

‘저건 어설프게 튕겨내려다 검이 부러질 수도 있겠군.’

간부들이 찬 중기관총을 본 애쉬가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중기관총이란 탄의 구경이 12mm이상인 기관총을 말한다.

그러니까 탄 하나하나의 크기가 1cm가 넘는다는 것이다.

구경이 일반 소총의 2배에 가깝기 때문에 그 파괴력 또한 비교를 불허했다. 저런 중기관총은 바위기둥도 갈아버릴 정도로 파괴력이 어마어마하다.

만전의 상태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몸 상태로 총탄을 쳐내는 곡예를 펼쳐 보이다 자칫 미세한 실수라도 한다면 검이 부러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저쪽도 문제인데.’

루이스가 들고 있는 화염방사기. 그나마 중기관총 쪽은 피하기가 수월한 편이지만, 화염방사기는 아니었다.

쏘아지는 총탄과 달리 저것은 점이 아닌 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공간 점유력 자체가 달랐다. 화염방사기에 공간을 제한당하고, 중기관총의 세례가 쏟아진다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것이다.

“좀 더 부를 걸 그랬군.”

­ 뭘 말이지?

“의뢰금.”

대답한 애쉬가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며 다리의 상태를 점검했다. 심하게 욱신거리는 게, 빨리 끝내지 않는다면 회복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그런 애쉬를 바라보던 루이스가 말했다.

­ 그래? 그럼 숨 고를 시간 정도는 준 것 같으니 슬슬 시작하지. 그걸 꺼내라!

­ 예!!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방독면을 쓴 간부들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검은 구체.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애쉬에게 결코 좋은 결과를 불러다 줄 물건은 아닐 것이다.

애쉬가 금방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온몸의 근육에 긴장을 더했다.

그에 루이스가 외쳤다.

­ 으하하핫! 시작은 역시 화려하게!

그의 외침과 동시에 루이스와 간부들의 손을 떠난 검은 구체가 애쉬를 향해 날아왔다.

자신을 향해 무언가 날아오자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던 애쉬의 눈에 루이스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검은 구체를 던진 놈의 손이 어느새 화염방사기를 들고 있었다.

­ 가라!!

화염방사기가 불꽃의 기둥을 뿜어냈고, 그에 닿은 검은 구체들이 새빨갛게 작열했다.

‘또 그 빌어먹을 폭발물이군.’

­ 콰과과과광!!

땅에 떨어지기 직전 폭발한 검은 구체들이 일으킨 흙먼지들이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

“망할.”

충격파에 귀가 먹먹하다. 애쉬가 일반인이었다면 고막이 찢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거기에 불평이나 내뱉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 하하하하! 불타 죽어라!!

­ 푸화아아악!!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불기둥이 그를 덮쳐왔기 때문이다.

앞서 열 개 층이 무너지며 일어난 흙먼지와 달리 지금의 것은 다소 옅었기에 바깥에서도 애쉬의 위치를 특정할 수가 있었다.

­ 뒈져!!

화염방사기의 불기둥이 스쳐간 뒤에는 대기를 꿰뚫는 중기관총 탄환들이 쏟아진다.

저건 일반 탄과 달리 방탄 코트 위로 받아내도 충격에 몸이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무조건 피한다. 그런 생각으로 몸을 움직여 탄착군을 피했다.

­ 쇄애액!

공기를 찢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대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데.’

바삐 몸을 움직이며 불기둥과 탄환들을 피하던 애쉬가 생각했다.

루이스와 간부들은 앞서 상대했던 갱들과 달리 무척이나 지능적으로 움직였다.

탄통을 여러 개 매달고 있는 중기관총이라도 탄에 한계는 있었기에 절대로 낭비하지 않으며, 애쉬가 접근하려고 하면 화염방사기의 불꽃이 그것을 제지한다.

또, 화염방사기의 불꽃이 시야를 가리면 그것을 뚫고 탄환이 쏟아졌다.

애쉬가 단순히 신체능력만 뛰어난 인간이었다면 진즉 그런 합공에 말려들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쉬에게는 그 신체능력보다도 믿음직한 감각이 있었다. 전투에 있어서는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직감이.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애쉬와 루이스, 간부들의 전투가 시작함과 동시에 몇몇 갱들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두면 외부의 지원이 오거나 어디선가 탄을 구해온 갱들이 다시 탄막을 쏟아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 이봐! 겁먹었나?! 아까처럼 날뛰어 보시지!

‘어떻게 하지?’

어느 간부의 도발을 들으며 애쉬가 생각했다. 혹시 모를 위험을 무릎 쓰고 총탄을 쳐내며 앞으로 나가볼까? 아니면 코트를 믿고 화염방사기를 아주 잠깐만 견뎌봐?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뭔가 없나?

변수를 찾기 위해 눈을 굴리던 애쉬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거다.’

­ 파바바바방!!

다시 한번 공기를 찢는 격발음과 함께 중기관총의 탄환이 쏟아졌다. 애쉬는 몸을 던지며 구석 어느 시체에 매달려있던 그것을 집어 들었다.

진한 초록색. 손잡이를 원형 고리가 고정하고 있는 주먹만 한 물건.

그것은 세열 수류탄이었다. 이 수류탄 하나가 이 상황을 바꿔줄 것이다.

수류탄의 사용법은 지구의 군대에서 배웠었다.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를 놓으며 던진다. 그것으로 끝.

애쉬가 가장 거슬렸던 루이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며 외쳤다.

“내 축포도 받아라!!”

그 외침과 함께 던져진 수류탄에 루이스가 몸을 피했다.

아마 외치지 않았더라도 알아서 피해냈을 것이다. ‘베이론’이란 거대 갱단의 보스 타이틀은 딱지치기로 얻은 게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애쉬가 굳이 외치며 시선을 끈 이유가 있었다.

처음부터 그는 수류탄으로 루이스를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접근을 막던 화염방사기에 잠깐의 공백을 만들기 위함.

­ 이딴 걸로!

‘지금!’

루이스가 수류탄을 피해 몸을 움직인 순간 애쉬도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여태껏 화염방사기 때문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먼저 노린 것은 가장 가까이 있던 간부 하나였다.

­ 흐흐! 그럴 줄 알았다!

애쉬가 달려드는 것을 발견한 간부가 허리춤에서 심지가 바깥에 달려있는 폭탄 하나를 꺼내들었다.

애쉬가 수류탄을 던진 순간 자신에게 달려들 것을 직감하고 있었는지, 심지는 이미 절반 넘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간부가 그것을 던졌다.

‘이쯤이야.’

하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쉬의 청안이 빛을 발했다.

­ 슥.

불과 몇 밀리미터. 불이 폭탄을 터뜨리기 직전 빛살같이 그어진 애쉬의 검이 심지의 불꽃을 잘라냈다.

뒤늦게 그것을 목격한 간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것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다. 연달아 뻗어진 칼날이 들어 올린 간부의 팔과 목을 동시에 베어냈다.

방독면을 쓴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목 위가 사라진 몸뚱이가 무릎 꿇으며 쓰러졌다.

­ 커어…!

­ 제이슨! 이 개자식이!!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다른 간부들의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쏘는 총에 맞을 애쉬가 아니다. 욱신거리는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 스프링처럼 몸을 튕겼다. 간부들이 쏘아낸 총탄이 허공만을 꿰뚫었다.

“프흐, 하나 처리했네. 다음은?”

­ 흐하하! 애쉬 론모어!!

어느새 돌아온 루이스가 그의 이름을 외치며 화염방사기에서 불기둥을 뿜어냈다.

이런 식으로 두어 번만 더 반복하면 된다. 중기관총도 숫자가 있을 때나 위협이지, 하나, 둘 정도로는 경계할 수준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루이스 측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 그럼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불기둥에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검은 구체의 폭발물을 던진다. 그리고 구체가 애쉬에게 가까워지면 그것을 화염방사기로 폭발시키는 것이다.

저런 식의 공격은 애쉬도 미리 차단할 수가 없었다.

콰아앙!! 곁눈질로 시체들을 살피던 그의 근처에서 몇 개의 검은 구체가 폭발했다.

“크흡…!”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지만, 부상 입은 다리로는폭발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애쉬의 몸이 폭발에 휩쓸려 붕 떠올랐다. 10층에서 폭발과 함께 추락한 뒤 처음으로 허용한 유효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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