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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36화 (36/230)

〈 36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27)

* * *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

검은 던진 자세 그대로 멈춘 애쉬가 생각했다. 검은 복면을 쓴 놈들과 싸우는 갱들.

마찬가지로 검은 복면을 쓴 놈에게 노려지고 있던 레이라.

적이 어느 쪽인지는 분명했다.

애쉬는 자세를 바로하며 검은 복면을 쓴 남자와 함께 서있는 덩치, 빌레이를 바라봤다.

“얘기 듣고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애쉬 론모어.”

빌레이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알고 왔냐는 듯.

하지만 애쉬는 시선을 다시 레이라에게 향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상처로 엉망이 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노리고 있던 검은 복면은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고 물러난 채 애쉬를 바라보기만 했다.

애쉬가 다가오자 레이라가 더없이 지쳐 흐릿한 눈으로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비서가 꽤나 믿고 따르는 것 같더라고. 전화로 난리도 아니던데?”

“…아.”

리엔. 레이라가 작게 비서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누구인지 감이 잡히는 모양이었다. 애쉬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벽에 날이 반 이상 박힌 검을 뽑아들었다.

삼십여 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던졌음에도 이 정도가 박혀 들어갔다.

저것에 들고 있는 단검이 부딪혔음에도 놓치지 않은 검은 복면은 애쉬 기준에서도 상당한 놈이었다.

애쉬가 그런 검은 복면에게 흥미를 가져 물었다.

“넌 뭐하는 녀석이냐?”

“…….”

검은 복면, 아뎀은 애쉬가 나타난 뒤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은 그뿐 아니라 빌레이와 함께 있는 검은 복면도 마찬가지였다.

레이라를 자신의 뒤로 둔 뒤, 어깨에 검을 대충 걸친 애쉬는 대답 않는 검은 복면을 유심히 살펴봤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녀석이다.

“너 어디서 나 보지 않았냐?”

“…….”

“대답 좀 해봐.”

검은 복면은 대답도 않고 복면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만 굴려댔다. 눈만 봐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보인다.

애쉬는 대체 이놈들이 뭐하는 놈들인지 싶었다. 방금 전까지만 레이라를 죽일 듯 몰아가고 있던 녀석이 아닌가.

실제로 애쉬가 검을 던져 멈추지 않았다면 레이라는 어디 한 군데가 덜컥 잘려나갔을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애쉬는 문득 짜증이 솟는 것을 느꼈다. 하룻밤 정도는 자신의 것이 될 사람인데 흠을 만들어 놓다니.

애쉬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검을 똑바로 들었다.

“뭐, 대답하기 싫으면 됐어. 일단 얼굴부터 까보면 알겠지.”

“……!”

애쉬의 말에 검은 복면이 놀란 듯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애쉬는 그를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얘기를 들어야 하니 죽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 놈이 레이라에게 그랬듯이 팔 하나, 다리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쏴아악!

순식간에 휘둘러진 그의 검이 살벌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수놓았다.

그러나 손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놈이 피한 것이다.

“…피해?”

정말 오랜만에, 어쩌면 이 세상에 떨어진 이후 처음일지도 상황에 애쉬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인사처럼 가벼운 느낌으로 휘두른 것이긴 했다. 하지만 여태껏 그 가벼운 공격조차 정면에서 피해내는 자는 없었다.

그 ‘폭군 오마르’마저도 정면에서 그의 검을 피하거나 받아내지는 못했었다. 물론, 그때는 처음부터 좀 강하게 치긴 했었지만.

“재밌네. 어디 이것도 피해봐.”

아무튼 그런 생소한 느낌에 애쉬가 다시 한번 같은 세기로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곳은 목이다.

조금 깊게 휘둘렀으니 반응이 조금만 늦어도 그대로 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검은 복면은 몸을 뒤로 물리며 그마저도 피했다.

“호오….”

애쉬가 묘한 감탄성을 흘리며 씩 웃었다. 진심으로 재밌어지려고 하고 있다.

검은 복면은 분명 애쉬의 검을 똑바로 보며 반응하고 있었다. 이런 놈은 처음이었다.

“저기서 쉬고 있어.”

흥미를 느낀 애쉬가 레이라에게 고갯짓하며 말했다. 지금이야 1:1로 놀고 있지만 여럿 끼어들어 총질을 해대면 여간 귀찮아지는 게 아니었다.

총탄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레이라까지 지킬 수는 없다.

“…알겠어.”

레이라는 그런 애쉬의 말에 순순히 자신의 부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물러났다. 그쪽도 상황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탁 트인 이곳에서 총질을 받는 것보단 나을 것이었다.

검은 복면은 자신의 목표물인 레이라가 물러나고 있음에도 그쪽을 어떻게 해보려는 기미를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의 정면에는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처럼 대기하고 있는 애쉬가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자신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검은 복면을 바라보던 애쉬가 말했다.

“그럼 좀 놀아볼까?”

*

일방적이다. 멋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애쉬와 검은 복면의 싸움은 전투라고 하기에도 모자랐다.

애쉬의 일방적인 칼부림을 검은 복면이 필사적으로 피한다.

레이라를 밀어붙이던 검은 복면이었지만 애쉬에게는 숨도 못 쉴 정도로 끌려다닐 뿐이었다.

“이건 어때?”

처음보다 조금 더 빨라진 검격이 어깨를 노리고 내려쳐진다. 검은 복면, 아뎀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것을 피했다. 그 다음은 옆구리, 그 다음은 허벅지를 찔러온다.

“이것도 피해? 그럼 이건.”

“…!”

애쉬는 기어를 올리듯, 상대방을 테스트하듯 차근차근 힘과 속도를 더해갔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피하던 녀석도 점차 벅차하더니 이제는 애쉬를 괴물 보듯 바라봤다. 눈빛만으로도 검은 복면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전해졌다.

하지만 애쉬는 그 눈빛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무언가 묘한 감정을 읽어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저건 단순히 애쉬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애쉬가 검은 복면을 몰아치며 반쯤 갖고 놀고 있을 때였다.

빌레이와 함께 있던 검은 복면이 품속에서 거무튀튀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크기가 사람의 팔목만한 대구경 권총이었다.

총을 꺼낸 그가 그것을 한 발 발포하며 외쳤다. 묵직한 발포음이 장내를 울렸다.

­ 투웅!!

“땅거미 부대! 집합해라!”

“응?”

목소리를 들은 애쉬가 고개를 까딱했다. 검은 복면이 말한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쉬가 그 정체에 대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애쉬에게 반쯤 가지고 놀아지던 검은 복면이 자리를 이탈해 다른 이들을 호출한 검은 복면에게 합류했다.

“어딜…?”

애쉬는 순간 도망가는 건가 싶어 뒤쫓으려다 모여드는 검은 복면 놈들의 기세를 보고 그것을 멈췄다. 저건 절대로 도망가는 놈들이 보일 기세가 아니었다.

레이라의 부하들과 대치하고 있던 녀석들은 호출에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었다.

그 공백에 ‘뱀파이어’측과 대치하던 배신자 측의 갱들이 죽어나갔지만, 그들은 그런 곳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배신자 측 갱들의 안위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땅거미 부대? 군 소속이냐?”

애쉬가 모여든 검은 복면들을 보고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도 않고 무기만 치켜들었다.

땅거미 부대라 불린 검은 복면들이 모여들자 그들을 호출한 익숙한 목소리가 지시했다.

“어차피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최우선 목표는 정면의 애쉬 론모어다! 놈을 먼저 처리하고 그 뒤에 나머지를 친다!”

“““예!!”””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나오는 우렁찬 대답. 움직임이나 대답이나 모두 군부대와 같은 느낌이 감돈다.

애쉬는 그런 그들을 보며 마주 검을 들었다.

숫자는 약 서른에서 마흔 사이. 분위기만 보면 잘 훈련된 군인들 같다.

전부 아까 갖고 놀던 그 검은 복면 같은 수준일까?

아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잘 훈련받은 군인들이라고 해도 개인의 재능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쉬가 데리고 놀던 검은 복면은 아마 저 안에서도 뛰어난 편일 것이다. 사이보그나 강화인간도 신체능력은 강화할 수 있어도 인간의 재능 자체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재밌겠네.”

레이라의 위치를 슬쩍 보니 거리도 제법 있다. 게다가 부하들은 검은 복면들이 빠진 배신자 측 갱들을 몰아붙이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겠지.

흥미진진하다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웃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저들이 먼저 달려들기를.

그리고 그의 기대대로 상대방은 주저하지 않고 애쉬를 향해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흐읍!”

검은 옷과 검은 복면을 쓴 수십이 단숨에 달려드는 것은 꽤나 장관이었다. 애쉬는 숨을 한 번 크게 삼키고는 검을 들고 놈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

“어떻게든 멈추게 해!!”

“그딴 게 가능했으면 진작했겠지!!”

땅거미 부대원들은 장비의 부족함을 처절하게 느꼈다.

개전 수십 초. 벌써 넷이나 되는 동료들이 죽었다.

그들은 어딜 가도 정예로 꼽히는 최고의 전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을 지닌 괴물에게는 너무도 무력했다.

힘도, 속도도 부족하다. 그들의 신체 능력으로는 상대의 그림자조차 제대로 쫓을 수 없었다.

즐겁다는 듯 날뛰는 괴물은 점차 그들을 쫓아왔고, 그것은 권총과 단검 따위로는 저지할 수 없었다.

“장비만 제대로 챙겨왔다면…!”

전쟁용 특수 장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자동소총이나 소형 폭발물 따위라도 있었다면 구도가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비밀 작전이랍시고 정말 가벼운 무장만 챙겨온 것이 문제였다. 일반 갱들이야 그 정도로도 차고 넘쳤지만, 저 남자에게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이렇게 된 이상, 목숨을 던져서라도 놈의 발걸음을 잡고 처치한다.

모든 부대원들의 마음이 같았다. 그들에게 작전 실패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모든 이들이 죽더라도 반드시 목적만큼은 이뤄야했다.

­ 타당! 탕! 탕!

“젠장! 저게 내츄럴이라고?! 개소리 하지 말라 그래!! 대체 어디 소속이지?!”

애쉬 론모어가 벽을 타고 달리며 총탄을 피했다. 자신을 똑바로 향하는 총탄이 많아지는가 싶으면 곧장 고무공처럼 튀어오르듯 움직인다.

바닥과 벽, 천장. 그 모든 것이 그의 무대였다.

보고 있기만 해도 어지러워지는 것 같은 입체기동의 진수.

땅거미 부대원들 또한 시가전에서의 공간을 활용한 전투를 훈련받은 이들이었기에 저런 움직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건 사이보그라 할지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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