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37화 (37/230)

〈 37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28)

* * *

‘재밌네.’

애쉬가 정면의 한 검은 복면, 땅거미 부대원에게 달려들며 웃었다.

‘베이론’에서 함정에 빠졌을 때와 지금은 컨디션이 명백히 달랐다. 상대방의 수준도 달랐지만, 그마저도 몸이 대부분 회복된 애쉬와 비교한다면 부족했다.

검을 베어 가까워진 땅거미 부대원 하나의 팔을 떨어뜨린다.

팔의 절단면 사이로 치직거리는 전류가 보였다. 그 내부의 부품도.

‘이걸로 다섯 명.’

불구로 만들거나 완전히 죽여 버린 숫자였다. 팔이 떨어진 부대원은 그 와중에도 반응해 단검을 들어 올렸지만, 기본적인 속도가 그와 애쉬 정도로 차이나면 근거리 무기는 의미가 없어졌다.

팔이 떨어진 부대원을 빠르게 마무리하려던 애쉬는 자신에게 겨눠진 몇 자루의 총구를 보고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 타앙! 탕!

반 박자 늦게 총탄들이 그가 있던 위치를 꿰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뒤이어서 뛰어오른 애쉬에게 총구들이 따라왔다.

일반적으로 공중에 뜬 상태에서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건 애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실내다. 그것도 층고가3~4미터 정도에 불과한.

뛰어오른 애쉬는 단순히 공중에 뜬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천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몸을 뒤집으며 천장에 착지한 애쉬는 총구들이 재빨리 자신을 쫓아오는 것을 확인하고 발을 박찼다.

천장에 일순간 천장에 달라붙은 듯 보였던 그의 몸이 다시 한번 쏘아져 나갔다.

목표는 바로 직전에 노리던 팔 떨어진 부대원.

“미, 미친…!”

일순간 그어진 회빛 선. 짧은 욕설과 함께 놈의 목이 떨어졌다.

피가 쏟아진다. 땅거미 부대원들은 몸의 대부분이 기계화 된 사이보그들이었지만, 역시 목 위로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이보그고 뭐고 죽는 건 같았다.

“제롬! 이 개자식!!”

동료의 목이 떨어지는 걸 목격한 다른 놈이 애쉬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애쉬의 격차를 생각하면 자살행위와 같은 짓.

하지만 애쉬는 그것을 곧장 물지 않고 천천히 눈빛을 읽었다. 분노에 찬 목소리와 달리 침착한 눈동자는 예리함을 품고 있다.

저건 절대로 격분해서 이성을 잃은 자의 눈이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 노리는 게 있다. 그게 뭘까.

주변을 살피는 애쉬의 감각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거다.’

뒤쪽에서 허리가 토막 나 바닥을 구르고 있는 사이보그. 움직이지 않아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뒤늦게 꾸물거리며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낀 애쉬는 즉시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놈을 무시하고 죽은척하던 상반신을 처리하기 위해 뛰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애쉬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죽은척하며 기회를 노리던 놈의 동공이 확대됐다.

“어떻…!”

경악과 의문에 가득 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날이 머리를 가르고 지나간다. 반으로 쪼개진 머리에서 핏물과 뇌수가 쏟아졌다.

정면에서 달려들던 놈은 자신의 노림수가 이미 들켰다는 것을 알아채고 다시 물러났다.

그것을 보며 애쉬가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목이나 머리를 노려야겠군.’

어디서 온 놈들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슬럼 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슬럼에서 주로 제조되는 깡통로봇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슬럼에서 만들어진 놈들은 제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상, 하반신이 분리되면 죽기 일쑤였는데, 이놈들은 진짜 제대로 된 시술을 받은 것인지 목이나 머리를 베어내는 게 아니면 죽을 생각을 않았다.

두 번씩 손을 쓰는 수고를 하긴 귀찮으니 다음부턴 한번에 끝낼 생각이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괴물이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건가?”

“이봐,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지 말라고. 그냥 감각이 조금 좋은 것뿐이니까.”

애쉬가 적들 중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에 대꾸했다.

사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저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아무런 시술도, 수술도 거치지 않은 순수 인간이었다.

트레이너나 치트로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린 건 수술이 아니니까.

그런 짧은 잡생각을 한 애쉬는 자신을 둘러싼 채 경계하는 땅거미 부대원들에게 말했다.

“더 안 덤벼? 아까 전까지만 해도 죽일 듯 달려들더니 기세가 죽었잖아.”

도발적인 어조. 그러나 상대는 함부로 그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달려든 동료들이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직접 보았기에.

누구도 함부로 덤비지 못하고 가만히 대치만 하길 몇 초. 한 줄기 목소리가 애쉬에게 말했다.

“…애쉬 론모어 님. 확실히 대단하십니다. 전에도 보긴 봤었는데, 직접 겪어보는 건 다르네요”

“뭐?”

그 목소리에 애쉬가 반응했다.

목소리가 귀에 익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어디선가 봤던 놈인가?

그런 의문이 담긴 애쉬의 말에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땅거미 부대원이 뒤집어쓰고 있던 복면을 벗어던졌다.

“이제 이런 거추장스러운 건 그냥 버리죠.”

“아, 그럼 저도!”

뒤따르는 앳된 목소리. 애쉬는 그것마저도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땅거미 부대원들이 검은 복면을 벗었다. 곧 그들 모두의 얼굴이 드러났다.

애쉬는 그 얼굴들을 보고 왜 그들의 목소리가 익숙하게 들렸는지 깨달았다.

“너희는.”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저들과 만나고 헤어진 지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애쉬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장 먼저 복면을 벗은 남자가 인사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회사’ 소속 땅거미 부대의 리더인 레디엄입니다.”

빌레이를 ‘뱀파이어’의 배신자들과 함께 본사를 습격하고 수백은 될 갱들을 학살한 검은 복면들.

그들의의 정체는 애쉬와 함께 63구역의 갱단을 소탕했던 경찰 특수진압대원들이었다.

애쉬는 자신이 오가는 차량을 몰던 대원, 자신을 레디엄이라 밝힌 남자와 자신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내던 어린 대원, 아뎀을 한 차례 둘러봤다.

그리고 비아냥거렸다.

“확실히 요즘은 공무원들도 사정이 안 좋긴 한 모양이야. 투잡도 뛰고.”

“슬럼의 공무원들은 대체로 부업을 갖는 편이긴 합니다. 강도라던가.”

애쉬의 비아냥에 레디엄이 장난으로 맞받아쳤다. 제 딴에는 재밌는 얘기라고 한 모양인데, 전혀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때 특수진압대인가 뭔가 하던 얘기는 거짓말이었나?”

“뭐, 본래 소속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63구역 경찰청 내에 임시로 만들어졌던 팀이고, 소속까지 올라갔었으니까요.”

“그 ‘회사’라는 곳이 대단한 곳이긴 한가보네. 공권력도 마음대로 부리고.”

“아마 상상하시는 이상일 겁니다.”

복면을 벗은 땅거미 부대의 리더, 레디엄은 애쉬의 물음에 이상할 정도로 순순히 대답했다.

포기라도 한 건가? 그럴 놈들 같아보이지는 않는데.

궁금증에 애쉬가 물었다.

“그래서, 얼굴을 보이고 친절하게 대답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지? 설마 내가 아는 얼굴이라고 봐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닐 테고.”

만약 그렇다면 그건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일단 적으로 확정된 이상 애쉬는 그게 누구라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는 않는다.

그런 태도가 기저에 깔려있는 애쉬의 물음에 레디엄이 마침 잘 물었다는 듯 대답했다.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안?”

“예. 솔직히 지금 저희의 전력으로는 애쉬 님을 상대하기는 벅차다고 느꼈습니다. 저희도 나름 손꼽히는 정예 중의 정예인데, 창피하게도 말이죠.”

레디엄은 애쉬와 그의 주변에 널부러진 시체들을 바라봤다. 예리하게 잘려나간 내부를 훤히 보이고 있는 사지와 목, 머리.

모두 그들의 것이었다. 반면 애쉬가 받은 피해라곤 옷깃이 살짝 뜯어진 정도가 끝.

누가 봐도 현재 그들이 지닌 무장 수준으로는 이 이상의 결과를 내기는 힘들어보였다.

그렇다고 지금 애쉬가 지친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서 드리는 제안입니다. 이번 일과 연관된 모든 것을 잊고 돌아가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그럼 ‘회사’ 측에서 사례를 할 겁니다. 또, 후에 저희의 보고가 올라간다면 스카웃 제의가 갈 수도 있구요.”

땅거미 부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레디엄이 속해있는 ‘회사’가 지닌 재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들과 같이 제대로 된 사이보그는 하나를 육성하는 데 정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슬럼에서 만들어지는 싸구려와 달리 첨단 기술이 적용된 사이보그 신체와 그것을 이식할 때 들었을 기술력, 노동력.

그리고 그들이 받았을 훈련과 장비까지.

모르긴 몰라도 땅거미 부대원 하나하나에 들어간 금액은 애쉬가 레이라의 의뢰를 받으며 책정했던 금액, 천만 크레딧보다도 한참은 클 터였다.

도시의 공권력조차 손에 넣고 굴리고 있으며,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재력과 기술력까지 지닌 그들이 지급할 사례금.

그리고 그들에게 스카웃된다면 함께 일하며 받을 돈까지.

과연 그것들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한두 푼은 아니겠지. 욕망에 가득 찬 인간들에게는 대단한 유혹일 것이었다.

“싫다면?”

“예?”

그러나 애쉬에게는 아니었다. 그에게 어디까지나 돈은 부차적인 것. 이미 정한 생각을 꺾을 계기는 되지 못했다.

애쉬의 말에 레디엄이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죠. 수천만 크레딧은 될 금액의 사례가 갈 겁니다. 그리고 ‘회사’ 측에 스카웃까지 된다면 그 계약금과 함께 일할 때마다 받는 돈은…….”

“그래도 싫다면?”

“그, 무슨.”

레디엄의 반응을 본 애쉬가 애쉬가 픽 웃었다. 돈이면 뭐든지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들은 돈으로 해결되긴 했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애쉬 론모어라는 인간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제안을 하던가. 찔러보고 안 될 것 같으니 그제서야 제안한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런 걸 받아줄 정도로 애쉬의 정신은 욕망에 썩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또 뭘 믿고 저런 제안을 받는단 말인가.

지금이야 무장이 허름해 쉽게 압도하고 있었지만, 저런 수준의 사이보그들이 수백씩 완전무장으로 찾아오면 아무리 애쉬라도 멀쩡할 자신은 없었다.

물론, 그런 대규모의 일이야 함부로 벌일 수 없겠지만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 검을 내리고 있던 애쉬가 그들을 향해 다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희들. 어차피여기서 도망쳐도 '회사'인지 뭔지에서 가만두지 않겠지?그러니까 그냥 싸우고 여기서 죽어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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