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32)
* * *
‘이 남자는, 대체.’
레디엄은 상상도 못한 반응에 말을 잃었다. 지금 이 남자는 진심이었다.
같잖다는 듯한 저 눈빛, 그리고 자신들이 노리겠다고 한 대상을 돌아보지도 않는 태도.
그는 이 순간 진심으로 인질의 생사를 포기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적에게 끝없이 되뇌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무슨 일이 생기든 너희를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잡아 죽여 버리겠다고.
그런 각오는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으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 무게감에 억눌리게끔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기세에서부터 짓눌려 자신도 모르게 애쉬의 눈을 피한 레디엄이 생각했다.
이미 임무는 실패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뎀의 생환.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는 그조차도 힘들 것이 분명했다.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불가해??한 초인이 그를 용납할 리가 없었으니까.
돌아서서 정신을 잃고 있는 아뎀을 바라보던 레디엄은 불과 일 년 전, 처음 만났던 아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뎀은 ‘회사’의 지옥 같은 실험실에서 평생을 보내며 자란 실험체였다.
실험실에서 처음 나온 아뎀의 모습은 저렇게 밝지도, 그렇다고 말이 많지도 않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을 실험쥐와 같이 살아온 녀석이다.
그 지옥과도 같은 실험실에서 온갖 고통, 실험, 목숨을 건 훈련을 다 겪은 녀석이 지금처럼 밝았다면 고통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미쳐버린 건 아닌가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기계처럼 무기질적인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뎀은 그들, 땅거미 부대와 함께 활동하며 점차 변해갔다.
언제나 죽어있던 검은 눈에는 생기가 돌았고,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의견을 내는 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주는 땅거미 부대원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법도 깨달았다.
실험실에서 막 나온 녀석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학습된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였지만, 계속된 감정의 교류와 관심을 받으며 성장한 현재에 이르러서는 순수하고 활기찬 어린아이가 되었다.
레디엄을 비롯한 모든 땅거미 부대원들은 그런 아뎀을 귀찮게 생각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아껴주었다.
그들이 하는 임무는 결코 깨끗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이에서 언제나 순백의 도화지처럼 깨끗하게 존재하는 아뎀은 그 존재만으로도 일종의 안도감을 전해주는 녀석이었다.
이런 더러운 일을 하는 우리도 하나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각자의 사정으로 ‘회사’에 절대복종하는 그들에게 뒤늦게 합류한 아뎀의 존재는 어쩌면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땅거미 부대의 대장인 레디엄에게도 같았다.
아니, 오히려 녀석과 항상 함께하며 그 모든 성장과정을 지켜봐왔던 레디엄은 더욱 그 감정이 애틋했다. 자신의 피를 이은 아이처럼 느껴질 때마저 있을 정도로.
‘살려야 해.’
실험실에서 나온 지 겨우 일 년 밖에 지나지 않은 녀석이다. 평생을 고통 받다 이제 막 인간으로서 살아가려 하는데, 이렇게 생의 마침표를 찍게 할 수는 없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아뎀. 그를 바라보던 레디엄이 명령했다.
“아뎀을 깨워. 어서.”
“대장….”
“아뎀, 일어나라. 아뎀.”
그의 명령에 다른 대원이 기절한 아뎀을 깨운다. 잠시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레디엄은 다시 돌아서서 애쉬를 바라봤다.
애쉬는 차가운 눈으로 조소하고 있었다.
“왜, 이번엔 너희까지 끼어서 같이 싸워보게?”
아뎀과 부딪칠 때까지는 기분이 꽤나 좋아보이던 그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지금의 그에게선 즐기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레디엄, 그가 어쭙잖게 한 협박 때문이었다.
‘지금 다 같이 달려든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애쉬 론모어. 그에게선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상이라곤 아뎀의 가슴장갑을 쳐부수며 금속 파편 따위가 박혀 피가 좀 흐르는 손이 전부.
완전히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사소한 부상 하나로 전세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레디엄의 생각이었다.
당장 도망쳐도 생존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레디엄은 자신의 대구경 권총을 다시 들어올렸다.
아뎀이 지닌 데이터의 가치?
‘회사’에 있어서의 아뎀의 중요성?
그런 건 어디까지나 두 번째다. 지금 그가 다시 한번 싸우려는 마음을 먹은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으, 으으….”
“이봐, 아뎀. 정신이 들어? 어서 일어나.”
아뎀이 고통의 신음소리를 흘리며 일어났다. 저쪽도 정신은 차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레디엄이 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땅거미 부대.”
“““예!!”””
레디엄이 낮게 호령하자 대기하고 있던 부대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 순간 레디엄과 땅거미 부대원들의 마음이 통했다.
그들은 레디엄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이제부터 자신들이 할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아뎀, 저 망할 꼬맹이 녀석을 살린다.
그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마음 먹은 일.
대장인 레디엄을 따라 그들 또한 각자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애쉬는 가만히 서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레디엄은 부하들과 함께 애쉬를 노려보며 뒤를 향해 말했다.
“아뎀, 돌아가라.”
“…네?”
“시간은 우리가 끌 테니 넌 무조건 복귀하는 데 집중해.”
“대장님…?”
“어서!!”
레디엄의 고함에 아뎀이 움찔 놀랐다. 아뎀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지금 그가 말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는 지식이 부족한 아뎀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땅거미 부대원들은 모두 죽는다. 바로 아뎀, 본인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서.
“안돼요, 대장님…!”
아뎀이 극렬하게 치밀어 오르는 거부감에 레디엄을 불렀다. 그가, 레디엄이 죽는다?
아뎀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생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대원들이 죽을 때는 태연히 있을 수 있던 아뎀에게도 레디엄은, 레디엄 만큼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소중한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아버지.
“어리광 부리지 말고 당장 꺼져!!”
“아뎀! 대장의 명령이다!!”
아뎀이 주춤주춤하며 발을 떼지 못하자 땅거미 부대원들이 역정을 냈다.
그들과 아뎀의 눈이 지나치며 마주쳤다. 말은 거칠었지만, 그들의 눈빛이 담고 있는 뜻은 아니었다.
살아라. 여기서 벗어나서 어떻게든 살아라.
“큭큭. 인간을 밥 먹듯이 죽이던 놈들이 신파를 찍고 있네.”
애쉬가 그런 그들을 보며 들으라는 듯이 킥킥 웃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정말 웃긴 일이었다.
임무랍시고 인간을 도살하던 놈들이 지들 중 어린 놈 하나 살리겠다고 목숨을 던지는 꼴이라니.
그것은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코미디에 가까웠다. 애쉬는 굳은 표정의 땅거미 부대원들을 보며 웃다가 천천히 웃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뭐. 도망치면 잡지는 않을게.”
모처럼 재밌게 해준 녀석이다. 아뎀, 저 어린 녀석 하나 정도는 보내줄 의향도 있었다. 언젠가 또 만나서 놀 수도 있겠지. 그때도 지금처럼 살려 보내줄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애쉬의 말에 레디엄이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그럼. 난 너희처럼 더럽게 사는 놈은 아니라 거짓말은 안 해.”
그 물음에 애쉬가 대답했다. 애쉬는 거짓말을 싫어했고, 그만큼 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냥 보내주는 건 저놈 하나 뿐이야.”
너희는 모두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들 모두를 살려 보내기엔 너무도 기분 나쁜 짓거리들을 많이 했다.
그런 애쉬의 말에 레디엄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 녀석은 아직 죽기엔 어리거든요.”
“감사하긴. 넌 여기서 죽을 건데.”
애쉬가 가볍게 죽음을 논했다. 그리고 바닥에서 적당한 단검 하나를 주워들었다. 죽은 땅거미 부대원이 떨어뜨린 물건이다.
그가 무기를 주워들자 땅거미 부대원들 모두의 몸이 긴장에 굳었다.
그가 검 하나만 들고 어떤 짓을 벌였는지 직접 겪은 게 그들이었다. 날이 다소 짧은 단검이었지만 저것만으로도 끔찍한 흉기가 되어 날아들 것이다.
그런 애쉬를 바라보던 레디엄이 아뎀에게 말했다.
“아뎀, 우리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지 마라.”
“대장님…!!”
투웅!!
레디엄의 대구경 권총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그들의 처형식이 시작됐다.
*
퍼억!
꽂힌다기보다는 때려 박는다는 표현이 맞을 둔탁한 소리. 단검이 목이 박힌 땅거미 부대원이 바닥을 굴렀다.
아뎀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바라봤다.
죽는다.
모두가 죽는다.
“저 녀석처럼 특별한 놈은 더 없네.”
푸확!
애쉬 론모어. 그의 태평한 목소리와 함께 또 하나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이번엔 단순한 주먹질이었다. 그의 몸짓에는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인간의 두개골 정도는 쉽게 부술 힘이 담겨있었다.
투웅!!
“아뎀!! 당장 가라니까!!!”
레디엄이 지닌 권총 특유의 발포음과 함께 그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고함쳤다.
그러나 아뎀은 아교에 발이 눌어붙은 듯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여기서 모두가 죽어? 이런 식으로?’
또 하나가 죽었다. 이번에는 손아귀에 쥐인 목이 꺾이다 못해 뜯겨 나갔다. 그 참혹한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뎀!!”
레디엄의 목소리가 재촉했다. 이제 남은 땅거미 부대원들의 숫자도 한 손으로 다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어졌다.
애쉬 론모어는 그들에게 약속했지만, 단 둘이 남게 되면 마음이 변할 지도 모른다. 그런 레디엄의 마음이 담긴 재촉이었으나 아뎀은 그저 멍하니 그들의 최후를 눈에 담을 뿐이었다.
‘다 죽었다.’
아뎀에게 있어 레디엄을 제외한 다른 대원들은 그저 직장 동료 수준에 불과했다. 나름의 정은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닌.
하지만 지금 자신을 위해 죽어나가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그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차올랐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커억!”
또 하나가 쓰러지며 다른 대원들이 모두 죽었다.
단검이 꽂힌 채, 자신의 권총을 빼앗겨 머리에 구멍이 난 채, 어중간하게 그인 목에서 피를 마구 뿜어내며.
제각기 다른 사인으로 사망했다.
이제 애쉬 론모어에게 맞서는 이들 중 남은 건 레디엄 하나뿐이었다.
틱, 틱.
“하, 하하.”
레디엄은 탄이 모두 떨어진 것인지 공이 소리만 울리는 권총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제는 마지막, 그의 차례였다.
애쉬 론모어의 청안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곧 찾아올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도 말했다.
“약속은….”
퍼억!
알아챌 수도 없을 정도로 빨리 휘둘러진 주먹에 머리가 터져나가며 피와 뇌수, 살점, 뼛조각이 비산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결국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전부 듣지도 않은 애쉬가 대답했다.
“내 입으로 한 말은 지킨다니까.”
“아…….”
아뎀이 무언가 말하려다 가슴 속에서부터 치솟아오르는 무언가에 입을 닫았다.
뭐지, 이건?
가슴이 너무도 답답하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뭐해. 안 도망가고.”
애쉬 론모어. 아뎀의 친구들, 동료들,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존재를 죽인 그가 말을 걸었다.
까드드득.
그 순간 아뎀은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에 집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끄드드득.
다시 한번 그 소리가 울렸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뎀은 그 소리가 어디서 난 것인지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아뎀 자신이 이를 가는 소리였다. 어찌나 이를 악물었던지 부서진 치아가 입 안을 굴렀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의 눈앞이 흐려졌다. 눈에서부터 흐른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흘렀다.
그 정도까지 와서야 아뎀은 자신의 가슴 속을 치고 오르던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분노였다. 그의 생에 있어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분노.
그리고 또 그것은 슬픔이었다. 세상을 다 적실 정도로 큰 슬픔.
바닥에 달라붙은 듯 떼어지지 않던 아뎀의 발이 움직였다.
‘아뎀, 우리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지 마라.’
레디엄의 목소리가 한 순간 아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그것으로는 지금 아뎀의 충동을 멈출 수 없었다.
아니, 지금 그의 가슴 속에서 폭발하고 있는 감정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어.”
아뎀은 한 때 자신이 동경한다고 생각했던 애쉬 론모어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리고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죽어어어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