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33)
* * *
애쉬는 가만히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뎀을 바라봤다.
아직 벽에 처박히며 머리에 가해진 데미지가 전부 해소되지 않은 탓인지 발걸음에는 힘이 없었고, 또 발을 내딛다 휘청거리기도 했다.
일반인보다도 못한 속도와 균형. 머리에서는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눈빛만큼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악과 분노로 가득하다.
누군가 보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기가 질려버릴 모습이었으나, 애쉬는 작게 혀를 찰 뿐이었다.
“쯧.”
도망가면 살려준다니까.
저런 상태의 녀석에게는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애쉬가 가볍게 손을 놀렸다.
“…찜찜하게.”
휘릭.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리고, 이내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미간에 단검이 꽂힌 아뎀의 머리가 넘어갔다. 무너지듯 몸이 쓰러진다.
거기엔 작은 고통의 신음조차 없었다. 아마 녀석은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갔을 것이다.
애쉬는 자신을 중심으로 바닥을 매우고 있는 수십의 시체들을 쭈욱 돌아봤다. 중얼거렸다.
“끝이 지저분하긴 했는데, 그래도 나름 재밌었다.”
부대의 지휘관, 레디엄과 아뎀을 비롯한 땅거미 부대 전원은 한날한시에 같은 곳에서 몸을 뉘였다.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애쉬는 곧 발걸음을 옮겨 아직 전투중인 레이라 측으로 움직였다.
*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무너진 땅거미 부대.
애쉬 론모어의 합류를 본 빌레이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의 합류로 인해 간신히 유지되던 전선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썩은 나무로 지은 집이 무너지듯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단 한 명.
한 명의 남자 때문에 그의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빌레이는 아직도 기운이 빠지지 않았는지 미친 듯 날뛰는 잿빛 은발의 남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애쉬 론모어.”
함정을 파고 기다리던 거대 갱단 ‘베이론’도, ‘회사’ 소속의 최정예 부대도 놈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시시각각 그의 부하들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빌레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에 적을 겨누고 있던 무기를 손을 떨어뜨렸다.
모든 게 끝이었다. 그의 모든 꿈, 야망, 욕망. 모든 것이 박살나고 이제는 그 자신의 목숨까지도 경각에 달했다.
빌레이는 생각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베이론’이 놈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을 때?
아니면 레이라와 놈이 의뢰 계약을 맺었을 때?
그것도 아니라면 녀석이 일과 관계되기 시작한 처음부터인가?
‘아니, 어느 쪽이든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언제부터 일이 틀어졌든 지금은 모든 일이 끝난 상태. 이제 그에게 남은 건 파멸밖에 없었다.
빌레이는 천천히 눈을 돌려 건너편의 레이라를 바라봤다. 마침 그녀도 빌레이 자신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레이라의 눈동자는 시리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빛을 머금고 있었고, 빌레이는 그런 그녀의 눈빛을 받으며 몸을 떨었다.
“…큭.”
두려운 게 아니다. 빌레이의 몸을 떨리게 만든 것은 분노였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그리고 모든 일을 망친 애쉬 론모어에 대한 분노.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분노에 몸을 떠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억!”
“비, 빌레이! 살려…!”
점차 부하들이 쓰러지고 애쉬 론모어가 가까이 다가온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도 거의 없다. 마지막이 가까웠다.
빌레이는 점차 줄어드는 부하들과 가까워지는 애쉬 론모어를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늘어뜨린 팔에 시선을 향했다. 정확히는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권총에.
“차라리….”
갱단의 복수는 집요하고 끔찍하다. 배신자가 나오면 그 자는 결코 쉽게 죽지 못했다.
한참 동안이나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문을 가하다가 최후에는 공개 처형하는 것이 갱단의 방식.
레이라가 이끄는 ‘뱀파이어’는 운영을 회사처럼 변경하며 다소 느슨해진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배신자에 대한 처분은 언제나 같았다.
빌레이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권총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애쉬 론모어를 노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런 게 의미 없다는 것은 이미 몇 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차라리 이대로 죽는다.’
그러니까 향하는 곳은 자신의 머리.
어떤 방법을 찾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몇 번이나 배신자에 대한 고문을 직접 집행했던 빌레이였기에 지금 당장 죽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꼴이 될 지는 잘 알았다.
끼릭.
방아쇠가 천천히 당겨졌다. 빌레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라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았다. 부하들에게 부축 받던 그녀가 재빨리 뛰었다.
그러나 지친 그녀의 움직임보다는 빌레이 자신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한참은 더 빠를 것이었다.
“흐흐, 망할. 잘 있어라.”
내 죽음은 내가 결정한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다.
각오한 빌레이가 눈을 감고 방아쇠를 꾸욱 당겼다. 그러나,
파악!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끄아악!!”
빌레이 자신의 고통에 찬 목소리만이 터져 나왔을 뿐.
감고 있던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뜬 빌레이가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바닥을 굴렀다.
“내, 내 손이…!!”
총구를 관자노리에 겨누고 있던 손목은 총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고, 손목이 있던 자리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뚜벅, 뚜벅.
위가 사라진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고통에 신음하던 빌레이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발걸음을 발견하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에 발걸음의 주인이 말했다.
“어딜 쉽게 가려고.”
잿빛 은발과 빛나는 청안.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애쉬 론모어.
일방적으로 사냥 당하던 빌레이의 부하들은 어느새 모두 붙잡히거나 피를 흘리는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너도 그 회산가 뭔가 하는데랑 이어져 있겠지?”
그럼 그렇게 쉽게 죽으려고 하면 안 되지.
애쉬 론모어가 그에게 말했다. 빌레이는 그런 그의 목소리에 욕지거릴 내뱉었다.
“씨발…!”
잘려나간 손목을 꽈악 붙잡아 지혈하고 있던 손을 놓는다. 생존에 대한 본능을 저버리는 행위.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지난다면 과다출혈로 편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쉬는 그것조차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콰악!
“으아악!!”
“허튼 짓 하지 마라.”
피로 젖은 애쉬의 신발이 빌레이의 잘려나간 손목을 콱 짓밟았다. 충격에 한 차례 피가 튀었지만 그 뒤로는 빌레이 자신이 하던 것보다도 효과적으로 출혈을 막았다.
“날 죽게 내버려 둬…!!”
“싫은데?”
“이 개자식!!”
“프흐. 배신자 주제에 개자식은.”
빌레이의 처절한 외침에 애쉬가 웃었다. 그리고 그런 웃음소리에 뒤이어 빌레이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했던 발소리가 다가왔다.
탓, 탓.
“아, 왔어?”
“…….”
빌레이가 자결을 결심하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 순간부터 힘겹게 달려온 레이라였다.
그녀는 애쉬에게 한 차례 눈인사 한 뒤, 손목이 짓밟힌 채 산채로 박제된 곤충처럼 꿈틀거리는 배신자를 불렀다.
“…빌레이.”
“흐, 흐흐. 그래, 보스. 내 꼴을 보니 어떠신가. 아주 기분이 좋겠지? 응? 이 망할 년아!!”
동요에 정신이 반쯤 나간 빌레이는 비꼬다가도 갑자기 욕설을 내뱉는 등 발작하듯 소리쳤다.
그러나 레이라는 조용히 그런 빌레이를 내려다보며 그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처절한 몸부림, 분노와 울분에 찬 목소리.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눈빛.
그녀가 조금이나마 의지했던 인간의 밑바닥. 그 본성이 바로 여기 있었다.
“레이라! 레이라 플로리스!! 내가 밉겠지?! 널 배신한 내가 밉지 않냔 말이다!! 어서 죽여! 날 죽이라고!!”
빌레이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침착한 눈빛에 더없는 치욕과 굴욕을 느꼈다.
계획만 제대로 실행 됐다면. 모든 것이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면 지금쯤 서로가 있는 위치는 정반대였을 것이다.
‘뱀파이어’는 그의 손에 들어왔을 테고,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이 그의 소유가 되었겠지.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실패로 끝났다. 그의 계획은 무너졌고, 그가 믿고 있던 배후 세력은 패배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죽음을 구걸하고 있는 자신.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레이라.
이 모든 것이 애쉬 론모어라는 하나의 오차에서부터 시작된 결과였다.
잠시 빌레이를 바라보던 레이라. 잠시 그의 추악함을 눈에 담던 그녀가 제안했다.
“…묻는 말에 하나만 똑바로 대답한다면 편히 보내줄게.”
“편히 보내준다고? 흐흐. 그래, 좋지. 뭐가 궁금하지?”
‘회사’에 대해서?
아니면 그들이 제작하던 ‘전자마약’에 대해?
네 약속이 사실이라면 뭐든 다 대답해주겠다, 라는 듯한 빌레이의 반응.
어차피 죽을 거라면 알고 있는 것을 나불나불 떠들어대서라도 고통 받지 않고 편히 죽는 게 나앗다.
그러나 레이라가 입을 열어 물은 것은 그의 모든 예상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모든 걸 다 가졌을 텐데, 왜 배신했어?”
“…왜 배신했냐고?”
“그래.”
“…….”
빌레이가 입을 잠시 다물었다.
실리를 철저하게 따지는 레이라에게서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빌레이, 그는 어째서 오랜 시간 함께한 보스를 배신했는가.
‘뱀파이어’에서 그의 입지는 레이라가 말한 대로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지배자와 같았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레이라와 달리 누구보다 외부 활동이 활발했던 빌레이는 부하들의 인정을 받는 상급자였으며, ‘뱀파이어’만한 거대 갱단의 2인자인 만큼 금전적으로도 차고 넘쳤다.
또, 그런 위치에 있는 그에게 여자가 부족했겠는가. 구역 내에서 내로라하는 미녀조차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 품에 안을 수 있었고, 오히려 그와의 잠자리를 즐기는 여자들도 많았다.
돈, 직위, 여자.
모든 곳에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다.
그런 그가 무엇이 부족하여 배신했을까. 그의 배신을 깨달은 순간부터 레이라의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었다.
단순히 1인자, 보스의 자리가 탐났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크흐흐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빌레이가 웃었다. 결국 너도 인간이었구나, 레이라 플로리스.
누구보다 철저하고, 실리를 따라 움직이던 너도 한 명의 인간이었어.
배신을 알아채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그녀도 자신에게 나름의 정을 주고 있었기에 물은 게 아니겠는가.
한 차례 유쾌하다는 듯 웃은 빌레이가 말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다면 알려줘야지. 아까 내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했나?”
“…….”
“하지만 그건 틀렸어. 내가 갖지 못한 게 있잖아. 잘 생각해 봐. 너라면 알 거다, 레이라 플로리스.”
“…네가 보스 자리를 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뭐? 크흐흐. 흐하하핫!!”
빌레이의 말에 레이라가 대답했다. 그에 빌레이는 다시 한번 크게 웃어보였다. 진심으로 웃기다는 듯이 말이다.
한참을 웃던 그는 기분이 나빠진 애쉬가 잘려나간 손목을 다시 한번 짓밟아 통증을 가하고서야 웃음을 멈췄다.
그는 여전히 웃음기가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게 아니야, 레이라. 보스 자리?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진심으로 갖고 싶었던 건 보스 자리에 앉아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지. 흐흐, 잘 모르겠다면 알려주마.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 그게 뭔지.”
웃는 얼굴로 말하던 그가 욕망으로 눈을 번뜩이며 진짜 대답을 내놓았다.
“그건 너다, 레이라. 다른 모든 걸 가져도 너 만큼은 내가 가질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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