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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74화 (74/230)

〈 74화 〉 4. 유성 그룹(18)

* * *

“네가 그 쓰레기장에서 이름 좀 날린다며? 나도 ‘게이트’에서 한번 봤던 것 같은데.”

애쉬를 둘러싸고 있던 용병 중 하나가 뒷세계의 커뮤니티를 언급하며 먼저 앞으로 나섰다.

껄렁껄렁한 듯 하면서도 몸의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제 실력에 꽤나 자신감이 있는 모양.

다른 용병들은 뒷짐 지고 구경하는 것이 먼저 싸움 붙여 실력이라도 볼 생각인 것 같다.

그 가소로운 행동에 한 차례 웃은 애쉬가 오히려 그들의 포위망 안쪽으로 몇 발짝 나아갔다.

“‘게이트’에서 내 얘기를 봤는데 혼자 덤비겠다고?”

“그래. 그 잘난 실력 좀 보자고.”

허리춤에 권총 두 자루, 등 뒤에는 최신식 라이플 한 자루를 매고 있으면서도 굳이 단검을 꺼내드는 상대방.

지금 애쉬에게 드러난 무장이라곤 검 한 자루 뿐이며, 설령 그의 품속에서 권총 따위가 나오더라도 지켜보는 동료들이 제지해줄 것을 믿는 것 같았다.

‘그럼 그 착각을 깨줘야지.’

애쉬가 느긋하게 검에 손을 가져갔다. 몇 걸음 앞까지 다가온 상대방은 그가 검을 완전히 뽑길 기다리고 있었다.

­ 스르륵.

매끄러운 소리와 함께 범상치 않은 까만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저 주제 모르는 녀석의 어딜 베어버릴까. 스스로 죽이진 않겠다고 말했으니 일단 목은 제외하고.

역시 단검을 들고 있는 저 손목이 좋겠다.

검날이 반쯤 빠져나오는 순간, 그의 앞에서 단검을 빼어들고 있는 용병의 미래가 정해졌다.

“우선 하나.”

“뭐?”

애쉬의 중얼거림에 의문을 나타내는 용병.

애쉬는 용병에게 말 대신 행동으로 그것이 무슨 뜻인지 가르쳐주었다.

다리의 근육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며 그의 몸을 쏘아냈다. 부드럽게 반쯤 빠져나온 검이 급격히 거칠게 뽑혀 나오며 빛을 빨아들인다.

애쉬는 검을 강하게 뽑는 힘을 그대로 인도하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용병의 손목을 갈랐다.

촤아악!

그야말로 그림 같은 발도.

무언가 슥 하고 지나가는 것만을 느낀 용병은 자신의 오른손목에서 드는 뜨끔한 느낌으로 인해 그곳에 시선을 향했다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손목과, 절단부위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피를 발견했다.

용병이 벙쪄서는 그것을 바라봤다.

“…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자신의 손목은 왜 바닥에 떨어져 있고?

용병은 피가 쏟아지는 자신의 손목을 멍하니 보고 있었지만, 귓가에 들려온 팀장의 고함이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뭐해! 당장 뒤로 물러나서 지혈하지 않고!!”

“아, 아아아악!”

현실을 인식하자 뒤늦게 고통이 몰려왔다. 다른 녀석이 손목이 잘려나간 용병을 데리고 뒤로 빠졌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용병이 메웠다.

“그러게 한번에 덤비라니까.”

뭐, 사실 한번에 달려들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애쉬가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진 용병의 손목을 툭 차며 말했다. 떨어진 손목은 여전히 단검을 꽉 쥐고 있었다.

팀장은 그런 애쉬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그것은 다른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난스러웠던 태도는 어디 갔는지 온대간대 없고, 모두 굳은 표정으로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설마….”

방금 애쉬가 휘두른 검을 제대로 본 사람은 이 자리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얼핏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것만 알아챘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 용병들의 기색에서 긴장이 묻어나기 시작한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방금 목표물, 애쉬 론모어의 움직임에서 ‘악마’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경험 좀 쌓은 베테랑 용병들이라면 그 존재를 모를 수가 없는 괴물들.

전장의 공포이자 지배자로서 군림하는 괴물 집단의 그림자는 여유롭던 그들 베테랑 용병들 모두의 몸을 굳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놈은 ‘악마’가 아니다. 만일 ‘악마’라고 해도 겨우 하나라면 우리만으로 충분히 상대해 볼만 해.”

이제는 팀장이라 불리게 된 용병대장이 긴장한 기색을 숨기고 최대한 침착하게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악마’라도 겨우 한 명이라면 할 만 했다. 총이라는 무기는 아무리 약한 인간이라도 숫자만 모이면 자신보다 훨씬 강대한 적을 사냥할 수 있는 최고의 병기였으니까.

악마들이 전장의 공포로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개개인의 무력이 상상이상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 괴물들이 몇이나 모여 있다는 것도 컸다.

심지어 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라고는 겨우 칼 하나.

‘이 정도의 차이라면 ‘악마’라도 별 수 없을 거다.’

팀장이 가슴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꾹 눌러 담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포지션을 잡아라. 훈련 내용은 기억하겠지.”

“…알겠어, 대장.”

“팀장이다.”

대장이라는 부름을 정정해주고는 자신도 빠르게 움직인다. 그들이 잠시 얘기를 나누는 십여 초. 여전히 상대방은 뭘 하나 보자는 듯 칼을 빼어들고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자신들이 어떤 짓을 하든 전부 받아주겠다 이건가?

‘후회할 거다.’

부하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며 따분하다는 듯 하품하는 상대방을 본 팀장이 생각했다.

그리고 곧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

* * *

“마구잡이로 쏘지 말고 제대로 탄막을 형성해!!”

투다다다다! 대장격으로 보이는 적의 목소리와 함께 전신을 노린 총탄이 쏟아졌다.

‘생포는 포기했나보네.’

처음엔 살려주겠다고 떠들더니.

애쉬는 그들의 빠른 판단에 찬사와 비웃음을 보내며 곧장 상체를 숙여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최대한 피격면을 줄이고 적들의 사이로 파고들어 지들끼리 나자빠지길 유도하거나 사격을 자제시킨다.

그의 의도대로 아군 오사격을 의식한 용병들의 사격이 다소 감소했다. 총탄을 피해 한 바탕 춤을 췄으니 이젠 그의 차례다.

용병들의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애쉬에게 하나가 가까워졌다. 자신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뒤로 물러나고 있지만 느려도 너무 느리다.

“둘.”

팟! 검은 칼날이 햄이라도 썰 듯 가볍게 인간의 몸을 가른다. 한 박자 늦게 팔이 떨어진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으아악!!”

“뭐, 뭐야!”

“너무 빨라!!”

다른 용병들의 당황한 목소리. 하지만 멈춰 있을 새는 없다.

애쉬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총탄들이 그가 있던 자리에 쏟아졌다.

잠깐이라도 멈췄다간 저 총탄들에 의해 벌집이 되어버릴 터. 사격 실력들이 제법 뛰어나다.

하지만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를 잡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여기 말고도 하나 더 있었지.’

오는 길에 발견했던 저격수. 아직 애쉬는 수백 미터 밖에 위치한 저격수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아직 기회를 노리고 있는 듯 단 한번의 사격도 없었지만, 언제 저격해올지 모른다.

저격총의 탄환은 일반 라이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기에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셋, 넷.”

앞에 있던 둘을 스쳐지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그 중 하나에게서 묘하게 딱딱한 손맛이 느껴졌다. 사이보그의 신체를 베는 감각이다.

‘다리 쪽을 개조한 사이보그였나.’

“커헉!!”

신체 부위 전부가 기계 파츠로 되어 있었는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은 하나밖에 없다.

딱딱한 사이보그의 신체에서 시작된 전류는 오히려 그것을 벤 애쉬의 칼날을 타고 흘러 몸을 살짝 저릿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초인적인 육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젠장, 들어와!”

둘을 스쳐지나가고 다른 놈들에게 달려드는 순간. 정면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용병을 발견한 그의 시간이 느려졌다.

­ 퉁!!

여타 라이플들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둔중한 격발음.

정면의 용병이 들고 있는 물건은 일반 라이플이 아니라 산탄총이었다. 총구가 불을 뿜음과 동시에 탄환이 흩어지며 전면을 뒤덮는다.

게다가 탄환 자체도 일반적인 물건이 아니었는지, 불길을 머금고 있는 게 무척이나 불길해 보였다.

‘이건 잘못 맞으면 뒤지게 아프겠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애쉬가 생각했다.

무슨 탄인지는 모르겠지만 탄환에 묻어나는 저 불꽃이 장식은 아닐 것이다.

애쉬는 총이 격발됨과 동시에 몸을 측면으로 세우며 한 손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정면에서 날아오고 있는 수십 발의 샷건 탄환. 그 중 쳐내야 하는 것은 불과 열 발도 되지 않는다.

팅! 티딩! 그는 느려진 세상 속에서 검을 휘둘러 총탄을 걷어냈다. 검날에 불꽃이 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이렇게 느려진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은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릿느릿하게 답답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의 반의반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정면의 산탄을 걷어냄과 동시에 다시 시간이 가속한다. 후면에서 날아오는 일반 탄환을 방탄 코트로 받아낸 뒤에야 용병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 미친! 저 새끼 산탄을 칼로 쳐냈어!”

“아, ‘악마’라도 그딴 게 가능할 리가…!!”

“놀라지 말고 집중이나 해!!”

“으, 으아아아! 죽어!!”

팀장이 외쳤지만 집중한다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

애쉬가 가까워지자 정면에 있던 산탄총의 남자가 총을 마구잡이로 쏘려 했지만, 그렇게 되면 귀찮아 질 것이 분명했기에 앞서 움직인 애쉬가 격발과 동시에 산탄총을 절반으로 갈랐다.

더불어 방아쇠를 당기고 있던 손과 손가락도.

­ 퍼엉!

“아악!!”

산탄총을 난사하려던 남자가 피를 쏟으며 비명을 질렀고, 반으로 갈라진 총에서 탄환이 작게 폭발하며 산탄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그 중 상당수는 제 주인의 품에 안겼을 것이다.

‘이걸로 다섯.’

곧장 몸을 튕기듯 날려 가장 가까운 용병의 양 손목을 떨어뜨린다.

‘이걸로 여섯.’

그 다음은 뒤에 있던 용병이다.

수많은 개조를 거쳤는지 이것저것이 덕지덕지 붙어 거대해진 권총을 순식간에 세 토막으로 나누고, 오른 무릎 아래를 절단한다.

이걸로 일곱이었다.

순식간에 지상에 있던 열 한 명 중 일곱이 전투 불능이 됐다.

그제야 자신들이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것을 느꼈는지 애쉬의 다음 목표가 된 남자가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자, 잠깐, 잠까아아악!!”

써걱. 남자의 총을 쥔 왼팔이 떨어졌다. 팔이 잘린 남자가 피를 뿜어내는 어깨를 붙잡고 절규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아아아악!!”

배경음처럼 들리던 비명 소리가 쭈욱 늘어난다.

무언가를 느낀 애쉬는 본능적으로 의식을 가속시켰고, 다시 한번 그의 세상이 끝없이 느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감각에 뒤편 사각에서 무엇보다도 빠르게 날아오고 있는 게 잡혔다.

기회를 보던 저격수의 저격이었다.

‘이게 되네.’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아챈 애쉬가 생각했다.

저격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지금처럼 감각으로 그것을 미리 알아챌 수 있고, 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신체능력을 갖고 있다면 위협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여타 총탄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저격이라는 것을 당해보는 게 처음이었던 애쉬였기에 경계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굳이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저격수가 노리고 있는 곳은 그의 뒤통수. 역시나 저격수라고 할 만한 실력은 갖고 있는지 그 정중앙에 제대로 꽂히는 각도였다.

애쉬는 저격수의 탄환이 날아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만 살짝 틀어 그것을 피했다.

­ 핑!

총알이 예리한 소리와 함께 애쉬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 공사판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다시 시간이 가속했다.

“무, 슨….”

애쉬의 움직임과 바닥을 파고든 탄환을 발견한 팀장의 표정이 경악에 젖었다.

여태껏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고 있던 팀장이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은 도저히 그로서도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애쉬가 다시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려 할 때였다.

“항복! 항복하겠다! 사격 멈춰!!”

그가 발걸음을 떼려는 것을 본 팀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까지 전투 개시 후 불과 20여 초. 그 결과는 명확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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