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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75화 (75/230)

〈 75화 〉 4. 유성 그룹(19)

* * *

그는 애쉬가 볼 수 있도록 총을 바닥에 던져 내려놓았다.

따로 들고 있는 무장은 없다.

팀장은 자신의 말대로 항복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두 손을 들어올렸다.

“멈춰주시오!”

“대, 대장!”

“뭐해! 너희도 총 버려!”

“하지만…!”

“당장!!”

툭, 타닥. 팀장의 강한 목소리에 몇몇 부하들이 들고 있던 총을 떨어뜨렸고, 또 몇몇은 자신들의 마지막 생명줄이 되어줄 총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사격은 완전히 끝났고, 그것만으로도 애쉬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기에는 충분했다.

“후우우.”

애쉬는 잠시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서 있는 사람의 숫자는 넷. 하나같이 그들은 공포와 경악의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바닥을 구르는 녀석들은 고통의 신음소리를 흘리며 각자 상처 부위를 어떻게든 지혈하고 있었다.

확실히 나름의 경험은 있는 듯 정신을 놓지 않고 출혈을 막는 게 보통 녀석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비한다면 일반인이나 다름없었을 뿐이다.

“하아….”

애쉬는 누군가의 쏟아진 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대장격의 남자를 비롯해 서 있는 넷은 그런 그를 긴장감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들은 총기를 몇 미터나 떨어진 곳에 버린 상태다.

나이프 따위의 근접 무기는 갖고 있었으나 총기로도 상대가 안됐는데 그런 걸로 어찌할 수는 없었다.

“뭐야, 김빠지게.”

애쉬는 완전히 꼬리를 내린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한 번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중간에 맥이 끊어졌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렇다고 항복한 상대를 도축하듯 칼질하자니 거슬린다.

저 건설 현장 위쪽의 둘은 여전히 총을 들고 있었으나, 팀장의 외침에 이미 총구는 내려진 지 오래였다.

그들 또한 잠깐 사이 느끼고 만 것이다. 그들로서는 애쉬를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팀장은 애쉬가 멈추자 그에게 빌 듯 말했다.

“항복할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목숨? 내가 언제 죽인데?”

대장격인 남자의 말에 애쉬가 삐딱하게 대답했다. 뺨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거슬려 소매로 쓱 닦았다.

“그냥 재밌게 놀다가 팔 다리 하나씩만 가져간다니까?”

“하지만 이대로 두면 전부 죽을 거요.”

애쉬의 말에 팀장이 대답했다.

바닥에 쓰러져 어떻게든 피를 멈추려고 하는 그의 부하들이었지만, 절단 부위가 너무도 넓어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그게 불가능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몇 초 사이에도 남자의 부하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쓰러진 녀석들의 지혈 처리만 하게 해주시오. 팔 다리는 원한다면 줄 테니.”

남자의 말에 애쉬는 쓰러져 있는 남자들을 둘러봤다. 확실히, 피를 꽤 쏟고 있다.

살려준다고는 했는데 이대로 두면 반드시 죽을 터.

이걸 허락할지 말지 잠시 고민한 애쉬는 곧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운이 좋네. 해.”

“고, 고맙소. 뭐해! 바로 지혈 들어가!”

팀장이 애쉬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그나마 서있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공사현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던 녀석들도 내려와 동료들을 수습하는데 함께했다.

“하, 기운 빠지네.”

애쉬가 그런 용병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대장격인 용병의 말과 행동에서 돈과 별개로 목숨까지는 거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이런 배려는 없었을 것이다.

상대방은 운이 좋았다. 정말로.

*

고용주는 과연 자신이 맡긴 임무의 목표가 저런 괴물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아니, 아마 몰랐겠지. 만일 알았다면 자신들만 보냈을 리가 없다. 아마 고용주 측도 자신들에게 보내준 서류를 읽고 거짓으로만 가득하다도 생각했겠지.

부하들의 부상을 수습하며 팀장이 생각했다.

저 목표물, 애쉬 론모어라는 남자는 그야말로 괴물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그가 강화 인간이든 사이보그든 필시 범상치 않은 개조 수술을 받은 인물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시 정부나 연방에서 키워낸 비밀병기일 수도 있다.

그런 웃기지도 않은 음모론적 생각조차 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십여 명이 쏘아내는 탄을 정면으로 달려들어 모조리 피하거나 칼로 쳐내고 시야의 사각, 그것도 머리 위에서부터 발포되는 총탄까지도 인지한다.

특히나 수백 미터 밖에서 가해진 저격을 보지도 않고 고개만 슬쩍 움직여 피하는 모습은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민간에는 엄격하게 금지된 군용 사이보그조차 가능할지 의문인 수준.

설령 총탄 하나하나를 인식하는 게 가능하다 해도 단순히 인식하는 것과 몸을 움직여 피하거나 쳐내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사이보그라고 해도 반사 신경까지 강화할 수는 없었으니.

“그래? 유성 그룹의 비서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였다 이거지?”

“…맞소.”

부하들을 모두 수습한 팀장은 괴물의 모든 질문에 순순히 답했다. 당장 저 괴물, 애쉬 론모어의 생각이 변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었으니.

애쉬가 그런 팀장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팀장도 알았다 그 자신이 알려준 정보 중에 이렇다 할 만큼 영양가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로 아는 것은 그게 전부인데.

딱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럴 만한 의리도, 이유도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까지 거짓으로 모면하려다 목숨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뭐, 그럼 됐고.”

애쉬가 팀장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았다.

이들은 분명 실력 있는 용병들이었지만, 결국 말단에 불과했다. 아는 게 많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럼 살려주는 거요? 고용주와의 관계를 끊고 다시는 그쪽에 협력하지 않겠소.”

“살려준다니까.”

살려는 준다고 약속했으니 살려준다.

애쉬가 팀장과 부하들을 둘러봤다. 부상에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구르는 것들이 몇. 멀쩡히 서 있는 것들이 몇.

애쉬는 경계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을 향해 다시 칼을 들었다.

“그럼 나머지는 마저 해야지.”

어디보자, 뒤처리할 사람은 필요할 테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애쉬가 말했다.

“셋만 지원해. 나머지는 멀쩡히 보내준다.”

* * *

셋의 팔다리를 몸통과 분리시켜준 뒤 돌아오는 길.

애쉬는 남자에게서 들었던 대답들을 떠올리며 조금 생각해봤다.

‘경쟁자 중 하나의 짓이라….’

대장격으로 보이던 용병이 알려주지 않았어도 이번 일의 원인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이곳 1구역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쉬에게 원한을 살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이번 일은 분명 경쟁자, 유서령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위협.

이전에 에아임에게 일어났던 습격과 같은 목적이었다.

자신을 목적으로 한 이유도 알 만 했다.

외부 소속, 그것도 슬럼 출신의 해결사라니 뒷배경도 없겠다,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실제로도 타당한 생각과 판단이었다.

…어디까지나 그가 평범한 해결사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 누군가의 계획과는 정반대였다.

애쉬는 홀로 십수 명의 용병들을 쳐부쉈고, 자신에게 행하려던 그대로 돌려주었다.

지금 당장은 용병들의 고용주 측에서도 알 수는 없겠지만, 임무가 실행됐음에도 그 이후에 애쉬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한다면 일의 실패를 알아채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럼 곧 그가 범상치 않은 실력자라는 것도 알게 되겠지.

어쩌면 애쉬와 유서령 사이에 오간 계약서, 그리고 계약금의 상세 내용까지 흘러나갈 수도…….

애쉬는 창백하게 질린 채 도망치듯 떠나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비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비서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어차피 이 정도는 위협이라고 할 정도도 안 되니까. 다만 에아임에게는 알릴 예정이었다. 외부의 손길이 닿은 인물이란 걸.

뭐, 그런 건 어차피 나중 일이니 나중에 알리기로 하고.

그보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을 것이 분명한 그 비서라면 의뢰인을 알지도 몰랐다.

일단 돌아가면 한 번 물어나 봐야겠다. 그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 걸 보면 뒤집어질 것처럼 놀라는 건 아닐까?

심약해보였는데, 기절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네.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속으로 웃은 애쉬가 발걸음을 빨리했다.

*

인적이 드문 길로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13구역 지사의 지상 입구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들어가려던 애쉬는 당연히 입구에서 경비들에게 제지당했다.

“멈추십시오.”

“응?”

두 명의 경비는 입구를 통해 들어온 애쉬가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그냥 맨몸으로 가로막은 것도 아니고, 파란 전류가 파직파직 흐르는 제압용 봉을 들이밀었다.

척 봐도 일반인에게 사용하기에는 다소 전압이 높아 보이는 물건이다.

제압용 봉을 든 경비 중 한 명이 애쉬에게 경고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들어오려 한다면 선 제압하겠습니다.”

“아.”

영문을 모른 채 멈췄던 애쉬는 그제야 경비의 시선이 바라보는 곳을 보고야 자신의 진입을 막은 이유를 눈치 챘다.

그는 용병들의 팔다리를 잘라주며 피를 조금 뒤집어썼었는데, 그것의 흔적이 좀 남았던 모양이다.

현장에서 나름 잘 닦고 온다고 오긴 했지만 옷에 남은 핏자국까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눈썰미 좋은 경비는 그것을 발견한 것이고.

애쉬는 그런 경비에게 양손을 들어 보여 저항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며 말했다.

“오늘 본사에서 찾아온 이사 있지? 그 사람 경호원인데 좀 다른 경호원들 좀 불러줄래?”

이왕이면 베일라라는 여자로. 애쉬의 말에 경비가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봤다. 임원의 경호원이라는데 따로 들어오는 이유도 모르겠고, 어째서 피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돌아다니는 것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일단 요구에 따라 연락은 해야 했다. 사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알고 온 만큼 그냥 무시하기엔 찜찜했으니.

경비들은 애쉬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압봉을 들이민 채 무전했다.

“입구 쪽 근무자입니다. 피에 젖은 옷을 입은 남자가 금일 방문하신 이사님의 경호원이라고 하는데, 그 분의 다른 경호원을 불러 확인 해달라고 합니다.”

“이왕이면 베일라라는 여자 경호원으로 불러달라는 말도 좀 해줘.”

애쉬가 경비가 전하지 않은 내용을 다시 한 번 말했다. 경비는 잠시 그걸 전해야할지 고민하다 결국 덧붙였다.

“…베일라라는 여자 경호원이 있다는데…….”

확인. 대기실에 들러볼 테니 이후 무전에 따라 행동할 것.

“예.”

뚝. 무전이 끊겼다. 경비들은 제압봉으로 그가 돌발 행동을 할 수 없도록 압박했지만, 애쉬는 그런 둘의 압박에도 편안히 기다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층계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뭐합니까, 애쉬.”

“아, 아줌마. 이 사람들한테 설명 좀 해줘. 나 이상한 사람 아니라니까.”

베일라와 경비복을 입은 남성 둘이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인원이 더 지원을 나온 것 같았는데, 그들이 활약할 일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다가온 베일라는 곧 애쉬의 옷이 피에 젖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무슨 피 입니까, 이건?”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는 게 어때?”

애쉬는 로비에 있는 사람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애쉬가 경비에게 제지당하여 경비원들이 제압봉을 꺼낸 순간부터 로비를 거닐던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모일 만큼 모여 있었는데, 베일라와 다른 경비원 둘이 더해지자 완전히 시선을 강탈하고 있었다.

애쉬의 눈짓에 그것을 알아챈 베일라가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경비들에게 말했다.

“일단 들여보내 주시죠.”

“하지만….”

“이 사람이 무슨 일을 벌여도 고용주이신 이사님께서 책임지실 일입니다. 여러분께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경비들이 다소 주춤거리자 베일라가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경비들은 잠시 시선을 맞추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어떻게 차림새라도 빨리 바꿔 주십시오.”

“예. 외부인력 대기실에서 옷이라도 갈아입히겠습니다.”

경비들이 물러갔고, 애쉬는 제압봉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피에 젖은 옷을 입고 사내를 돌아다니면 경비원들도 곤란할 것이다. 베일라가 애쉬에게 따라오라고 말하곤 앞장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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