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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84화 (84/230)

〈 84화 〉 5. 후계경쟁(8)

* * *

“…도대체.”

베일라가 경악을 삼켰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니?

이제야 베일라는 애쉬가 평소에 지닌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남자에게 총구를 들이밀어 봐야 위협이 되긴 할까? 아니면 날붙이 따위로 저런 인간에게 닿을 수 있을까?

수년의 분쟁지역 군 복무 경력과 각종 격투기, 살인기술 따위를 배운 베일라였지만 저런 장면을 보니 그 모든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과연 그녀 자신이 몇이 있더라도 저런 자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나 의문이다.

그런 베일라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아연실색했다.

“무, 무슨….”

그들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칼 한 자루로 총탄을 베어내고 수십 발의 총알을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피해내는 인간이 있으리라고는.

그런 초인적인 일을 해낸 남자, 애쉬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울렸다.

“여기는 그 카우보이 같은 사람은 없나보네.”

베일라는 그게 누구를 뜻하는지 몰랐지만 검은 양복의 남자들은 알아들은 듯 술렁였다.

“…그 녀석이 당했다고?”

“그럼 다른 녀석들은….”

“…….”

애쉬와 대치했던 수십의 인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흔들리는 분위기.

설마 애쉬 혼자서 그들을 모두 처리했으리라곤 상상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방금 전 보인 광경을 떠올리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일라도 그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으니 상대방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검은 양복들은 애써 그것을 부정했다. 아무리 개인이 강하더라도 수십의 무장 병력을 상대로 저리 무사할 수는 없다. 아무리 타협해도 도망쳐 이곳으로 왔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돼, 됐어! 제깟 놈이 뭐라고! 놈도 인간이야! 맞으면 죽는다고!!”

“그, 그래. 놈도 총에 맞으면 죽는다. 일단 쏴 갈겨!”

“맞는 말이긴 한데.”

애쉬가 그런 반응에 대답했다. 그야 그도 총에 맞으면 죽는다.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두려움을 잊으려는 듯 방아쇠를 마구잡이로 당겼다.

탕! 타당! 격발음이 계속해서 울렸고, 애쉬는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그것을 모두 회피했다.

순식간에 발을 내딛고 두터운 나무 사이를 흐르듯 지나간다. 인간의 각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이었으나 신기할 정도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베일라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맞출 수나 있겠어?”

“으아아아!”

어느새 자신의 근처에 나타나 묻는 애쉬에게 다급히 총구를 돌린 남자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몇 발 나가던 총에서 더 이상 격발음이 울리지 않고 틱틱 공이 당기는 소리만 울린다.

총알이 모두 떨어진 것이다. 남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애쉬가 그런 남자를 보며 웃었다.

“잘 가.”

“컥!”

빛살 같은 칼날이 남자의 몸을 가른다. 목 위가 사라진 남자의 몸이 무릎을 꿇으며 피를 뿜어냈다.

털썩. 시체가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다시 한번 총탄을 쏟아냈지만 역시나 맞는 것은 없다.

마치 물이나 공기 따위를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허공에 총질을 하는 것처럼 제대로 조준을 하고 쏨에도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면.

앞에서 애쉬가 상대하고 온 놈들에게는 골든 캐니언이라는 지휘자가 있었지만 이곳에 그런 존재는 없다. 겁에 질린 검은 양복의 남자 하나가 등을 보이고 도망쳤다.

그러자 그들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우수수 무너졌다.

“나, 난 그만하겠어! 위약금 따위 갚고 말지!”

“나, 나도!”

“아아아!”

핫, 참. 애쉬가 굳이 그들을 따라갈 생각 않고 고개를 저었다. 저런 잡졸들까지 쫓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 낭비다.

그가 고개를 돌려 베일라가 숨어있던 두터운 나무쪽으로 향했다.

“아줌마 뭐해? 안 나오고.”

“…아줌마라고 하지 마십시오.”

베일라가 최대한 평소와 같은 태도로 대답하며 나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대단히 놀라고 있었는데, 이런 말투를 보면 괜히 김이 샌다.

그녀의 반응이야 어떻던 애쉬가 검을 한 번 털어내고 납검했다.

“아가씨랑 에아임 아저씨는?”

“같이 몸을 피하게 했는데, 그 뒤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셨다시피 바빠서.”

물음에 베일라가 대답했다. 애쉬는 그럼 다시 찾아봐야겠네, 하고 태연한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그에 베일라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에아임과 서령이 달려간 방향이었다.

“대충 어디 방향으로 갔는지는 아니까 저쪽으로 가보죠.”

“오케이.”

베일라가 앞장서고 애쉬가 뒤따랐다. 둘이 같이 움직이는 동안 오간 대화는 없었다.

괜히 어색한 분위기. 그러고 보면 둘이서만 이렇게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던가.

베일라가 생각했다. 여태껏 서령이나 에아임, 다른 비서들까지 해서 셋 이상 모이면 모였지, 둘이서 얘기를 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저번 13구역 지사에서 일이 있었을 때 정도.

그때도 애쉬의 옷을 챙겨다 주는 잠깐 동안만 있었다.

베일라는 잠시 애쉬가 보였던 몸놀림을 떠올리며 거기에 대해 말을 꺼내볼까 하다 애쉬의 목소리에 멈춰 섰다.

“잠깐.”

“…예?”

얼마 달리지 않아 뒤따르던 애쉬가 멈춰선 게 보였다. 베일라도 그에 따라 멈춰 섰다.

애쉬는 한 수풀 속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조금 부자연스럽게 쌓인 덩어리였다.

베일라는 그것을 보며 문득 불길한 상상을 했다.

설마.

‘저 안에 이사님이나, 에아임 수석비서의 시체가…?’

그런 그녀의 생각과 별개로 애쉬가 거침없이 그 수풀을 걷어냈다.

“이건….”

“여기서 한번 싸웠었나보네.”

그러나 베일라의 불길한 상상과 달리 수풀 속에 누워있는 것은 얼굴이 반쯤 함몰되어 피투성이가 된 검은 양복의 시체였다.

베일라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쪼그려 앉아 시체를 확인한 애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서 잘 빠져나간 것 같긴 한데. 어디로 갔지?”

“일단은 가던 방향으로 계속 향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가자.”

“예.”

베일라가 다시 앞장섰고, 애쉬가 뒤따랐다.

그리고 둘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마구잡이로 던져진 한 쌍의 구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베일라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물건.

서령이 신고 나왔던 굽 낮은 검은색 구두다. 아무래도 방향을 제대로 잡은 모양이었다.

“이사님은 이쪽으로 오신 모양입니다. 계속해서 가보죠.”

“어.”

애쉬가 대답했다. 베일라와 애쉬는 다시 말없이 발걸음을 계속했다.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애쉬와 베일라는 깊게 남은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런데….

“잠깐. 먼저 간다.”

“예? 애, 애쉬 씨!”

무언가를 느낀 애쉬가 베일라를 두고 먼저 앞으로 뛰쳐나갔다.

애쉬가 발견한 발자국은 맨발인 서령의 것 하나. 그리고 에아임의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용 구두 자국 하나였는데, 그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발자국의 깊이가 에아임의 그것과는 달리 일반인처럼 얕았던 것이다.

설마 에아임과 서령은 흩어져서 움직이고 있고, 흩어진 잔당 중 하나가 서령을 발견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든 애쉬가 급히 몸을 움직였다.

‘대체…!’

에아임은 어디로 가고 서령 혼자 돌아다니고 있단 말인가.

이대로 서령을 잃을 수는 없었다.

개인 간의 정 이전에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그들의 적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서령을 지키는 것이었으니.

바람을 가르게 빠르게 움직이길 잠시, 애쉬의 코에 흐릿한 비린내가 맡아졌다.

인간의 피가 함유하고 있는 희미한 철분 냄새. 대량의 피가 흩뿌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피 비린내가 퍼지고 있었다.

설마 유서령이…?

탓탓. 애쉬의 발걸음이 좀 더 바쁘게 움직였다. 싸움이 끝나고 적막에 휩싸인 숲에 그의 급한 발걸음만 울렸다.

곧 그는 진한 피 냄새의 진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시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의 시체가 있었다.

목을 비롯한 온몸에 가득한 자상.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아직도 출혈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저 남자가 피 냄새의 근원. 그렇다면 그 가해자는 어디 있는가.

주위를 돌아보는 애쉬의 감각에 무언가가 잡혔다.

“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내질러지는 짧은 단검.

갑자기 뒤에서 덮쳐든 공격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뻔한 애쉬였지만 이내 그 주인을 알아채고 그것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놔, 놔아! 놔!!”

“…유서령.”

피에 젖은 머리칼. 눈에는 초점이 잡히지 않았고, 손은 단검을 다루다 베이기라도 한 듯 자신의 피를 흘리고 있다.

여기저기 찢어진 스타킹과 피가 배어 나오는 발. 흐트러진 옷가지까지.

그 주인은 피범벅이 되어 패닉상태에 빠진 서령이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와 눈물이 뒤섞여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몰골의 그녀였지만, 애쉬는 그녀가 유서령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흑, 흐윽…!”

“진정해, 나야.”

애쉬 론모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 이름에 금방이라도 벗어나려 발악하던 그녀의 몸부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았던 검은 눈동자에도 잠시 빛이 돌아왔다.

“애, 애쉬…? 애쉬?”

“어.”

“애쉬….”

그와 눈을 마주한 서령이 힘이 풀린 듯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크고 검은 눈동자에서 깨끗한 눈물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지, 진짜. 진짜 애쉬예요? 진짜?”

“그럼. 내 코트는 어디 팔아먹었대, 그거 비싼 건데.”

애쉬가 억지로 우스갯소리를 던져봤지만, 서령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진짜인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그의 다리를 더듬었다.

이내 그가 환상 따위가 아니라는 진짜라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더욱 흐느꼈다.

“흐윽, 애쉬…. 나 어떡해요, 흑, 사람을….”

“괜찮아.”

애쉬가 쪼그려 앉아 그녀를 마주보며 머리에 손을 턱 올렸다.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듯이.

그에 잠시 흐느끼며 조용히 눈물 흘리던 서령이 애쉬에게 와락 안겼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풀어내지 못한 화를, 슬픔을, 두려움을 쏟아냈다.

“흐윽, 흑. 으아아앙! 애쉬, 애쉬이!”

평소였다면 무언가 한 마디 해줬을 애쉬도 지금만큼은 그녀의 가녀린 등을 쓸어주었다.

공포와 불안에 얼어붙었던 서령의 심장에 서서히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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