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5. 후계경쟁(24)
* * *
기분전환을 위해 거리로 나온 애쉬였지만, 그의 발걸음에 따로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나온 것뿐이었으니까.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슬슬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긴 했지만, 또 밤이라고 하기는 뭐한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디를 가야 할까.
잠시 멈춰 서서 고민하던 애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곳, 도시의 중심에 도착하면 가려고자 하던 곳이 있지 않았던가.
에아임과 함께 이곳에 도착한 날부터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귀찮아져서 방문을 미뤘던 밤거리, 도심의 유흥가에 갈 때였다.
‘최근에 좀 욕구 불만이기도 했으니 딱 좋네.’
절의 중들처럼 일부러 색을 멀리하는 것도 아니고, 서령, 베일라, 빌헬름과 한 집에서 생활하며 여자를 안지 못한 것도 꽤 됐다.
이렇게 오랫동안 참은 건 이 게임 속 세상에 떨어진 직후, 혼란에 빠져서 헤맬 때를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애쉬는 무인택시 하나를 불러 타고 미리 알아봤던 1구역의 유흥가로 향했다.
*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스르륵, 턱. 애쉬가 내리자 무인택시의 문이 절로 닫혔다.
확실히 도시의 중심은 저 밑바닥의 빈민가와 다르다는 것일까. 이런 사소한 무인택시의 편리성까지도 차이가 있었다.
애쉬는 저절로 닫힌 택시의 문을 보며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곧 자신의 정면에 펼쳐진 거리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오늘도 빛이 번져 나오는 이 거리에♬]
[난 가끔 아무런 연락도 없는 전화를 들어…♪]
“역시 전에 갔던 곳이 좋은 것 같아.”
“어… 네 취향까지는 궁금하지 않았는데.”
“그딴 걸 왜 말하는 거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각종 장르의 음악들과 활기찬 분위기.
거리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돌아다니고, 게 중에는 연인처럼 보이는 이들까지 거닐고 있다.
이 거리에는 슬럼의 유흥가와 같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호객 행위를 하는 여성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그러면서도 어두운 톤의 조명이 조성하는 은은한 분위기가 감도는, 몽환적인 느낌의 거리였다.
“…확실히 땅값부터가 비싼 곳이라 그런지 다른데.”
잠시 고개를 돌려 거리를 둘러보던 애쉬가 중얼거렸다.
미리 1구역 유흥가의 위치를 찾아볼 때부터 슬럼에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느낌일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온도 차이는 그를 놀라게 한다.
거리의 위치는 1구역에서도 외곽 쪽이긴 했지만, 역시나 1구역인 만큼 제법 높은 빌딩도 많았는데, 그 중 대부분이 유흥업소인 듯 각 업종 별로 구분할 수 있도록 홀로그램이나 2D 영상 따위를 영사하여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카지노라면 코인 따위가 우르르 쏟아지는 영상이, 바(Bar)나 주점이라면 술잔에 맑은 술 따위가 쪼르르 흘러 담기는 영상이 빌딩 외벽에 영사되는 식이다.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걷던 애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가 좀 괜찮겠네.”
슬롯머신과 술, 그리고 여성의 실루엣을 대형 홀로그램으로 영사하고 있는 빌딩.
홀로그램의 퀄리티도 뛰어나고, 일단 빌딩의 크기부터가 가장 큰 것으로 보아 그 수준도 다른 곳에 비해 높을 것 같았다.
애쉬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입구를 지키는 가드들에게 잠시 설명을 들은 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처음 방문하시는 분입니까?”
“어. 그런데?”
“첫 방문이시면 우선 데스크에 가셔서 설명을 들으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일단 기본적인 것만 먼저 말씀드리면 1층부터 10층까지는 회원권이 없는 방문객 분들께서도…….”
“무슨 대형 회사도 아니고. 여긴 안내 데스크까지 있어?”
“예. 제가 말씀드린 것 외에도 따로 궁금하신 게 있다면 그쪽에 가서 물으시면 될 겁니다.”
가드들은 교육을 잘 받았는지 애쉬의 반말에도 인상하나 찌푸리지 않고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슬럼에 위치한 ‘달의 꽃’이 그랬듯 일정 층수 위로는 등급을 달성한 회원만이 출입할 수 있으며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데스크에 들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길 시 강제 퇴출 될 수도 있다는 경고 겸 안내였다.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애쉬는 대형 스캐너가 장착된 입구를 지나쳐서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철저하기도 하시구만.
스캐너를 통과한 애쉬가 생각했다. 가드들은 저 스캐너가 단순히 내부에서 소란을 일으킬 무기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했지만, 겨우 그런 물건이었다면 저렇게 클 리가 없다.
저것은 무기의 소지 여부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곳을 통과하는 인간이 사이보그나 강화인간은 아닌지까지 알 수 있는 물건 같았다.
아마 통과하는 순간 정면에 위치한 CCTV를 통해 얼굴까지 기록됐겠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나온 유흥이니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괜히 설레는 기분으로 입구 쪽의 복도를 통과한 애쉬는 곧 완전히 빌딩 안쪽 로비에 진입했다.
[The Paradise]
로비 중심에 이 거대한 영업장의 이름인 듯한 명패가 걸려있고, 그 바로 밑에는 가드들이 설명했던 데스크들이 쭈욱 깔려 있었다.
1층은 유흥시설이 아니라 기타 업무를 처리하는 곳 같다.
그곳을 그냥 지나치고 올라갈까 하던 애쉬였지만, 그는 곧 생각을 고쳐먹고 비어있는 데스크로 향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모처럼 온 곳인데 간다면 역시 최고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애쉬가 데스크 앞에 위치하자 안쪽에서 접객을 준비하던 여성 안내원이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역시.
애쉬는 자신과 눈을 맞춰오는 안내원을 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밖에서 보기부터 심상치 않은 영업장이었지만, 이렇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안내원의 외모도 심상치가 않다.
단순 접객을 위한 안내원의 외모도 어느 정도 되는 걸 보니 위층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애쉬가 안내원에게 자신의 용무를 말했다.
“첫 방문인데, 위쪽으로 가려면 회원권 같은 게 필요하다며? 그것 좀 구하려고 하는데.”
“아, 회원권 말씀이시군요. 그럼 간단히 설명을….”
“아니, 설명은 됐고. 회원권이나 주지 그래.”
어차피 이 안내원은 먹지도 못할 떡. 그렇다면 여기서 시간을 끌고 싶지는 않다. 어서 위로 올라가서 즐기고 싶은 마음이 급했다.
여성 안내원은 그런 애쉬의 재촉에도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11층에서 20층까지의 입장권은 회원 등록 후 방문 횟수가 일정 이상 되신 분의 경우 5천 크레딧에 판매하고 있으며, 첫 방문이신 고객님들께서는 1만 크레딧에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또, 21층에서 30층까지의 입장권은…….”
안내원은 각 층별로 나눠진 조건과 금액을 불렀고, 애쉬는 단번에 자신이 구매할 수 있는 최고층까지의 입장권을 구매했다.
“그럼 지금 바로 살 수 있는 건 50층까지다 이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50층까지 입장권 전부 등록하지.”
“…50층까지 한번에 말씀이십니까?”
“응.”
애쉬의 과감한 선택에 안내원이 일순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번복은 없었다.
지속적으로 이곳에 들르면 들를 수록 입장권의 가격이 줄어든다는 게 안내원의 설명이었지만 언제 그것을 다 기다리겠는가. 애쉬는 단숨에 자신이 갈 수 있는 최고층까지 올라가 즐길 생각이었다.
“그럼 11층에서 20층 입장권이 1만 크레딧, 21층부터 30층의 입장권이 3만 크레딧, 31층에서 40층까지의 입장권이 8만 크레딧, 41층에서 50층까지의 입장권이 15만 크레딧이니 총합 27만 크레딧의 결제를 도와드리겠습니다.”
27만 크레딧.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도 않은 채 입장권만 구매했을 뿐인데 지구의 한화로 약 5억 4천만 원 가량 되는 금액이 나왔다.
“여기.”
하지만 애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크레딧 카드를 넘겨 결제했다. 27만 크레딧이라는 돈은 분명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기존에도 여유가 넘쳤고 최근 의뢰금이 엄청나게 붙은 그에겐 크게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었다.
오히려 67층까지 있다는 빌딩의 꼭대기까지 입장권을 구매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
51층부터는 반드시 시설을 일정 횟수 이상 이용해야 하며, 또 이곳에서 얼마 이상의 금액을 사용해야만 구매할 수 있다기에 일단은 50층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해.”
안내원에게서 크레딧 카드와 함께 회원증을 돌려받은 애쉬는 데스크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11층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부터는 회원증을 통해 이용할 수 있었는데, 애쉬 회원증으로 탈 수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의 경우 이용객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열 개 가까이 있을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1층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엘리베이터를 탄 애쉬는 자신이 목적하고 있는 41층 위쪽의 시설을 살폈다.
“어디, 카지노랑 바는 기본인 것 같고, 호텔 시설이랑……? 이건 또 뭐야.”
시설표를 살피던 애쉬의 눈에 ‘파이트 클럽’이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자신이 아는 그 파이트 클럽이 맞나?
신나게 쌈박질하고, 또 그걸 구경하는 곳?
애쉬가 아는 파이트 클럽은 링 케이지 안에 들어가 싸우는 이들을 구경하며 도박 따위를 하는, 지구의 과거로 치면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 파이트 클럽이 존재하다니?
슬럼에도 좀 더 은밀하게, 그리고 잔혹하게 운영되는 불법 도박 시설로서 존재하긴 했지만, 샌님들이 점잔을 빼는 이곳에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간만에 욕구를 충족시키려 유흥가에 들른 애쉬였지만, 파이트 클럽이 있다는 것을 알자 생각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솔직히 궁금하지 않은가. 이곳, 1구역에 있는 파이트 클럽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또 그곳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수준은 어떨지.
게다가…….
47층 파이트 클럽의 우승자에게는 50층 밑에 있는 모든 직원 중 한 명을 초이스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시설표를 눌러 상세 내용을 펼치자 나온 우승 상품은 애쉬의 입맛을 잔뜩 돋우기에 충분했다.
저 말은 원래라면 안을 수 없는 여자도 품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인데, 저런 것을 보고도 의욕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1층에 있던 안내원의 외모도 괜찮았는데, 40층 위에 있는 여자들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는데도 제한이 있어 안지 못한다면 그만큼 아쉬울 수도 없을 것이었다.
아직 이른 저녁인 만큼 시간도 많겠다, 스트레스 해소와 이후의 욕구 충족까지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으니 여기서 뺄 이유가 있을까?
애쉬는 바로 파이트 클럽이 위치한 47층 버튼을 눌러 위로 올라갔다.
*
“이, 일단 접수 완료 됐습니다. 경기는 토너먼트 식으로 진행되며 지금으로부터 약 2시간 뒤인 오후 9시부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애쉬는 내리자마자 지나가던 직원 하나를 붙잡아 파이트 클럽에 참가 접수하는 법을 물었고, 신청 방법을 알게 된 직후 경기의 자세한 설명을 듣지도 않고 바로 선수 신청서를 넣었다.
오죽 급했으면 접수를 받던 직원이 당황한 채 뒤늦게 경기에 대한 설명을 했을 정도.
신청서 외에도 간단한 동의서와 서약서를 쓰는 등의 수고는 있었지만, 다행히 신청에 늦지는 않았다.
애쉬가 참가 접수를 마치자 그보다 먼저 참가 접수를 끝마친 이들인지 몇몇 힘깨나 쓸 것 같은 남자들이 경계하듯 애쉬를 살피곤 했는데,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가 참가 접수를 성공적으로 마친 순간 우승자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렇게 올라오자마자 파이트 클럽의 참가 신청을 끝낸 애쉬는 이후의 즐거움을 위해 마음에 드는 이성도 찾을 겸 이곳저곳의 시설을 탐방했다.
41층에 위치한 바의 바텐더들도 구경해보고, 42층에 있는 호텔 시설도 돌아본다.
그리고 그는 43층, 그리고 44층까지 두 개의 층을 차지한 카지노에 도착했다.
띠리리리링!
“와! 이게 안 붙어? 이거 기계가 맛이 갔나?”
“아, 제발 이러지 마…. 이번에도 지면 6연패라고.”
요란하게 울리는 머신 소리와 뭐가 마음에 안 드는 지 소리치는 이용객, 그리고 카드를 들고 탄식을 내뱉는 이용객까지.
다른 층에서는 얼마 보이지 않던 41~50층의 이용객들이 모두 이곳 카지노에 몰려있었는지 이곳은 떠들썩하고 오가는 사람도 많다.
애쉬도 도박을 막 싫어하거나 하는 건 아니었기에 흥미에 찬 눈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 그와 눈이 마주친 한 딜러가 말을 건네 왔다.
“룰렛 게임 한번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룰렛?”
“예. 불행히도 제 자리엔 손님이 별로 없지 뭡니까. 고객님께서 참가해주신다면 다른 고객님들께서도 조금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을지.”
딜러의 말대로 유난히 그의 앞에는 아무 이용객도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같은 룰렛 게임을 하고 있는 다른 딜러들의 앞에는 몇 명이라도 이용객이 있었는데 말이다.
“흐음…. 룰렛이라.”
애쉬가 그것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한번 해볼까 고민할 때였다. 천천히 애쉬와 딜러가 마주선 룰렛을 향해 한 남자가 다가왔다.
갈색 머리칼에 은근히 붉은 빛을 띠는 적갈색 눈동자. 떡대도 상당하고, 발걸음에서 힘이 넘친다.
애쉬는 그가 숨 쉬는 것, 발걸음을 옮기는 것 하나하나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몇 번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이름 좀 있던 놈들을 상대할 때 느끼던 감각. ‘방화광 루이스’나 예전 상대했던 ‘폭군 오마르’와 비슷하다. 아니, 그 녀석들보다는 좀 더 위인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지금 다가온 남자가 제법 괜찮은 실력자일 거라는 것이었다.
다가온 남자는 애쉬에게 충고하듯 말을 건넸다.
“이봐, 이 자리는 저주 받았다고 유명하던데. 안하는 게 좋을 걸?”
“저주?”
“그래. 나도 며칠 전부터 이용하고 있는데, 여긴 유난히 구슬이 맞질 않는다더군. 무슨 수작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남자를 가늠해보던 애쉬가 잠시 그것을 잊고 남자의 말에 관심을 드러냈다. 저주 받은 자리라고?
그래서 이 룰렛 앞에 사람이 없었구나.
이런 카지노에서 돈을 꼬라박는 도박쟁이들에게 미신이라는 것은 굉장히 크게 작용했다.
듣자하니 충고하는 남자도 며칠 전에 왔다는 것 같은데 이렇게 알고 있는 걸 보면 보통 유명한 게 아닌 것 같다.
애쉬가 사실이냐 묻듯 딜러를 바라보자 그가 난처하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수작이라뇨. 저는 결백합니다. 이곳까지 올라올 분들께 사기를 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냥 이상할 정도로 운이 없는 것뿐입니다.”
이용객들이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쓰는 돈만 무려 30만 크레딧에 가깝다. 설령 자주 들른다고 하더라도 최소 십 수만 크레딧.
그것만 해도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닌데, 이곳은 판돈의 단위도 상당히 큰 편이라 무슨 수작을 부리다 걸리기라도 하면 딜러의 목이 날아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목은 직업이 아니라 실제 육체를 말했다.
그런 딜러의 해명을 들은 애쉬였지만, 역시나 저주 받은 자리라는 말을 들으니 찜찜해진다.
결국 룰렛 게임에서 마음이 떠난 애쉬가 발걸음을 돌렸다.
“하하….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고객님.”
장사를 공친 딜러가 등돌린 애쉬를 향해 허탈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애쉬는 자신에게 조언을 건넨 남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네. 괜히 찜찜하더라니.”
“하하, 별 것 아니야. 난 조인 디아벨. 그쪽은?”
“애쉬, 애쉬 론모어.”
남자의 통성명에 애쉬가 대답했다.
원래였다면 시커먼 사내놈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다고 응답했겠지만, 상대방은 나름 호의로 다가온 녀석이었다.
그의 느낌상 실력도 있어보였고.
애쉬도 도박에 있어서는 미신을 조금 따지는 편이었기에 충고 받은 대가로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남자, 조인 디아벨이 제안했다.
“그래, 애쉬. 혼자 왔지? 마침 나도 홀로 왔는데 같이 게임이나 즐기지 않겠나? 내가 명당을 조금 알고 있는데 말이야.”
“…며칠 전부터 있었다면서, 그런 것도 다 꿰고 있어?”
“물론. 정보 수집은 모든 일의 기본이니까.”
“음.”
애쉬가 갑작스런 제안에 고민했다.
사실 애쉬가 이곳 카지노에 온 이유는 도박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파이트 클럽의 우승 상품으로 지명할 상대를 찾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된 거 조금 놀다 갈까?
마침 이곳에 좀 알고 있는 녀석 같으니 괜찮은 직원들을 알고 있을 것도 같았다.
생각을 마친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잠깐 놀지.”
“아주 좋은 선택이야. 오늘 땡 잡은 거라고, 친구.”
* * *